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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소식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상경기)

내가 교육대학교를 졸업하는 해는 유류파동이 엄청나게 몰아쳤던 1973년도였다. 교육대학교 2학년 겨울방학은 교육과정을 모두 마친 상태였기에 무엇인가 뜻있는 일을 해 보고 싶었다. 교육대학교 2학년 과정을 마치면 초등학교 교사로 임용이 되기 때문에 교직이외의 사회생활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없다고 생각을 한 나는 서울로 가서 새로운 경험을 해 보고 싶었다. 무엇을 어떻게 어디에서 할 것인지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무작정 떠나볼 작정이었다. 젊음과 패기로 그냥 사회의 현실과 맞부닥뜨려 볼 양으로 겨울옷을 챙기고 내게 필요한 최소한의 생활용품만 커다란 군청색 가방에 넣어 가지고 떠나는 것이다.

옷을 챙기는 모습을 본 어머니는 앞치마로 눈물을 훔치면서 “이 추운 겨울에 연고지도 연락 없이 어떻게 하려고 하느냐”며 연신 불안하여 “제발 가지 마라”고 하였지만 한 번 결심한 내 의지를 꺾지는 못하였다. 이왕 고생을 하러 가는 것이기에 돈도 서울 가는 완행열차 여비 정도만 가지고 출발하였다. 완행열차 안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고 짐을 올려놓는 선반위에도 들어갈 틈이 보이지 않았다. 열차 안은 사람들의 온기로 후텁하였지만, 밖은 칼바람의 매서운 바람소리와 멀리서 가까이 다가오는 산야는 눈으로 휩싸여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꽁꽁 얼어붙게 하고 있었다. 나는 가끔 동화책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서울에 가면 멋진 세계가 펼쳐지리라는 상상을 하며, 희망과 꿈을 안고 자신감으로 충만하였다. 좋은 직장을 가지게 되면 교사로 임용이 될 때까지 열심히 하여 고생하시는 부모님을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도록 하여야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서울역에서 내린 나는 남대문 쪽으로 걸어가면서 무조건 큰 건물을 찾아서 들어갔다. 그리고는 사무실 앞에서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어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일하던 사람들이 커다란 가방을 둘러메고 들어오는 시골촌놈을 보고도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 창가에 앉아있는 예쁘장한 여 사무원한테 “혹시 여기 일하는 사람 필요하지 않나요?, 일을 하려고 시골서 올라 왔는데요.” 하는 이야기를 듣고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모두 자기 일하기에 여념이 없는 듯하다. 여 사무원은 “여기는 일하는 사람을 구하지 않습니다.” 눈길도 주지 않고 싸늘한 말 한 마디를 내뱉는 것이다. 사람이 와도 모두가 의식을 하지 않는 것이 기분이 나빴고, 사무적으로 톡 쏘아 붙이는 말소리가 주눅을 들게 하였다. 뒤돌아 나오는 뒷모습이 무척 부끄러웠다.

남대문을 지나 동대문 쪽으로 가면서 두어 군데를 더 알아보았지만 똑 같은 대답만 듣고 나왔다. 아까부터 뱃속에서는 꼬로록 꼬로록 하는 소리가 들리며 배도 고파오기 시작하였다. 날은 어두워지기 시작하는데 당장 먹고 잘 일이 문제였다. 배도 고프기도 하였지만 커다란 가방을 둘러메고 다니다 보니 이제 다리도 천근만근 늘어져서 더 걸을 수도 없었다. 자꾸만 나의 꿈과 희망이 잘못되고 있음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겨울 해는 짧아서 인지 벌써 몇 군데의 가게에는 네온사인이 들어오기 시작을 한다. 가까운 곳을 보니 직업소개소가 있다. 들어갈까 생각을 하였지만 한 번 더 찾아보기로 하고 계속하여 걸어갔다.

동대문이 보였다. 동대문 옆 이스턴 호텔 있는 쪽으로 접어들었다. 동대문 시장이 있어서 인지는 몰라도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번쩍이는 네온사인을 받으며 벌써 젊은 청년들이 손님을 유혹하고 있었다. 눈망울이 똘방똘방하고 머리칼은 장발로 기른 얼굴이 하얗게 생긴 깍쟁이 같은 아이가 접근해 왔다. 가까운 곳에 술집이 있는데 분위기가 좋다며 한 잔 하라며 권유를 하는 것이다. “얘, 음식도 파냐?”하며 넌지시 물었더니, “예!, 원하시면 무엇이든지 다 해 드릴수가 있어요.”한다. 나는 무조건 따라 갔다. 배도 고팠지만 음식을 먹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밥 한 그릇 얻어먹고 몸으로 때울 심산이었다.

호객을 하는 아이는 신이 나서 힐끗힐끗 뒤를 돌아봐 가며 히죽히죽 웃으며 시장골목을 지나 네온사인이 휘황찬란한 간판아래 지하실을 가르친다. 간판을 보니 ‘000탑 싸롱’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입구에 들어서니 "어서 오십시오."하며 구십도 절을 하는 젊은이를 보며 무엇이 잘못되어 간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곳은 음식점이 아니라 술집으로 음식은 일체 팔지를 않는 곳이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체념하고 층계를 따라 어두컴컴한 지하실로 따라 들어가서 문을 열자마자 우렁찬 밴드소리와 노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실내 장식이 붉은 색으로 위압감을 느낄 수 있도록 무대장치가 호화스럽고 여기저기 테이블에서는 젊은 남녀들이 술을 먹는 모습을 드문드문 볼 수 있었다. 자꾸만 무엇이 잘 못되어 간다는 것을 느낄 즈음 하얀 가운을 입은 멋쟁이 신사가 메뉴판을 들고 앉으라며 의자를 가리킨다. 이제는 몸과 마음이 위축이 되어 “저~, 실은 술을 먹으러 온 것이 아니라 일자리를 구하러 왔는데….” 끝까지 말을 잇지를 못했다.

머리를 숙이고 조금 있으니까 잠바를 입은 인상이 별로 좋지 않은 건장한 젊은 남자가 와서 아래 위를 살펴보더니 내 바로 앞에 앉는다. 유심히 살펴보던 건장한 남자는 “야! 일자리 구하러 왔냐?, 요즈음 얼마나 일자리 구하기가 어려운지 모르는 가 보구나. 지금은 있는 사람도 떼어낼 판인데, 뭘 몰라도 한참 모르고 있구먼.” 한마디 던지고는 그냥 나가 버리는 것이다. 젊은 종업원이 따라 오라며 뒤쪽으로 데리고 간곳은 주방이었다. 주방 한쪽 귀퉁이에 사물을 넣어 놓을 수 있는 조그만 공간이 있었다. 옷을 갈아입고 나오라고 한다. 와이셔츠에 조끼만 걸치고 나왔다. 주방에서 일하는 아이가 가까이 다가오더니 “형. 배고프지요? 이것 먹어 보세요.”하며 내미는 것은 도루묵 구은 것이었다. 눈물이 벌컥 쏟아져 내렸다. 나는 그 아이를 볼 수 없어서 외면하고 한 참 서 있다가 한 손으로 받고는 “밥은 없냐?” 눈치를 보며 간신히 입을 열었더니, “여기는 밥 같은 것은 없어요. 안주하고 남은 것을 조금 있다가 줄게요.” 한다. 웨이터가 빨리 따라 오라고 하기에 생각할 겨를도 없이 따라 나갔다.

영업장 안에 손님이 없으니 빨리 손님들을 모시고 와야 한다며 지금 부사장이 무척 화가 나 있는 상태라고 한다. 배도 고프고 춥기도 하였지만, 따라 나갔다. 자라목처럼 목을 최대한 웅크리고 가게 앞에 서 있었다. 웨이터는 먼저 시범을 보일 테니 따라서 해보라고 한다. 술이 조금 취한 듯한 30대 중반의 아저씨들이 둘이 어깨동무를 하고 걸어가는 앞으로 가더니“어서 옵쇼. 예쁜 아가씨들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술값은 저렴하고 안주는 공짜로 드립니다. 술 한 잔 하고 가십시오.”하면서 90도 인사를 한다. 그러나 “야! 임마, 필요 없어 꺼져.” 소리치며 지나갔지만,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또 다른 사람을 향해 같은 방법으로 안내를 하는 것이다. 한 참 후 내 앞으로 오더니 씩 웃는다. “이렇게 하는 거야, 잘 봤지?”하면서 한 번 해보라고 한다. 그러나 영 용기가 나질 않아서 피식 웃고 말았다.

호객 행위를 하기 위해 지나가는 사람 앞에 섰지만, 말이 떨어지지 않아 “안녕하세요? ….”머뭇거리고 있는 사이 벌써 사람들은 지나가고 말았다. 공연히 멋 적어서 뒤통수만 만지며 되돌아 올 수밖에 없었다. 밤이 깊어 갈수록 온 몸이 덜덜 떨렸다. 주방에 심부름 하는 아이가 빨리 들어오라고 한다. 주방에 따라 갔더니 플라스틱 양동이와 걸레를 주며 홀에 물을 훔쳐서 양동이에 퍼 담아서 버려야 한다고 한다. 이 홀은 지하에 있기 때문에 방수처리가 잘 되어 있질 않아서 물이 새어 나오는 것이다. 그래도 살을 도려내는 듯한 추위에 밖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것 보다는 나았다. 한 쪽 대기실 테이블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아가씨들 사이를 기어 다니며 걸레질을 하면서 물을 훔쳐냈다. 그 와중에 담배를 태우는 술집 아가씨들을 보며 신기해하였고, 너무나 예쁜 아가씨들이 이런 곳에서 생활을 한다는 것이 속상하기도 하였다. 아가씨들이 담배 사오라는 심부름도 하며 활동을 하다 보니 거의 12시가 되어 갔다. 영업시간을 마치는 시간이 된 것이다. 그때에만 하여도 통행금지 시간이 있었기에 영업을 12시 이전에 마쳐야만 하는 것이다.

모두들 돌아간 영업장은 한판 전쟁을 치루고 난 전쟁터 같았다. 널브러져 있는 의자는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빈 맥주병과 그릇을 치우고 닦은 후 어느 정도 정리가 되자, 그때에야 주방에서는 국수를 삶는 것이다. 남아 있는 사람은 부사장과 영업부장 주방에서 심부름 하는 아이와 웨이터 한 명이 남아서 국수를 먹고 이곳에서 잠을 자게 되는 것이다. 잠자리는 방이 따로 없기 때문에 의자를 모아놓고 잠을 자는 것이다. 너무 피곤하고 추위에 떨었던 탓인지 그냥 쓰러져 잠을 청했다. 오늘 하루가 십년은 지나가는 듯하였다. 앞으로 어떻게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인지?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 그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오로지 주어지는 상황에 따라 대처해 살아갈 뿐 다른 방책이란 아무것도 없다. 아! 졸려 어서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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