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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울산 태화강의 선바위에서


 - 선바위에 서린 처녀와 스님의 전설 

 사람들은 울산이라고 하면 공업도시라는 이미지를 떠올린다. 그러면서 울산 시내의 태화강이 많이 오염되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태화강은 지난 1990년대만 해도 물고기가 거의 살지 못하던 죽음의 강이었다. 그러나 지금 태화강은 연어와 숭어, 은어가 은린을 번쩍이며 돌아다닐 정도로 완전히 되살아났다. 특히 태화강변에 위치한 십리 대밭은 그 규모의 장쾌함을 자랑하며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경외감을 안겨준다. 

 


 이 십리대밭을 따라 강 상류로 천천히 올라가보자. 언양 방면 국도 24호선을 따라 올라가니 푸른 물색이 어느새 옥빛으로 변한 곳을 만나게 된다. 가만 보니 십리 대밭이 슬그머니 마무리를 짓는 곳이다. 그리고 눈앞에는 거대한 바위 하나가 연초록 물빛 속에 아름드리 자태를 연출하며 고고히 잠겨 있다. 이름 하여 선바위라고 하는, 높이 33m에 둘레 46m를 자랑하는 기암괴석이 강물 한 가운데에 유유히 떠있다. 덩달아 선바위 주변의 층층절벽들에서도 기이함과 신령스러움이 묻어난다.

 울산 12경의 하나인 선바위와 십리대밭은 도심의 산소창고이자 철새도래지로써 울산 시민들에게 널리 알려진 명소 중의 하나이다. 또한 선바위 주변의 에메랄드빛 강물이 하늘로 치솟은 층암절벽들을 감싸고 있어 예로부터 수많은 풍류객들이 찾아왔던 곳이다. 한자어로 입암(入巖)마을이라고 불리는 이곳 주변 절벽에는 옛 선인들이 새긴 시조가 조용히 숨어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어느 곳을 가더라도 이런 선바위는 볼 수 있는데, 대개 이 선바위들은 그 기이한 모습 때문에 일종의 신앙대상으로 대접받기도 한다. 서울 무악동의 구멍 뚫린 선바위는 애기를 점지해달라는 기도처로 유명하며, 경북 봉화의 선바위나 강원도 영월의 선바위산은 사시사철 구경꾼들이 몰려든다. 또한 선바위들에는 그럴듯한 전설도 하나씩 전해져온다. 태화강 선바위도 예외가 아니어서 어느 스님과 처녀에 얽힌 전설이 선바위의 절리 사이로 아스라하게 묻어 있다.

  옛날 이 입암 마을에는 연꽃처럼 소박한 미모를 가진 처녀가 있었다 한다. 어느 날 젊은 스님 하나가 이 마을을 지나가다가 그 처녀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 그래서 처녀를 한 번 보고 싶었지만 불제자의 몸으로 여인을 그리워하는 것에 대하여 번민의 나날을 보내야 했다. 

  


  그러나 그도 건장한 사내인지라 마침내 처녀가 자주 다니는 빨래터에 가서 처녀를 기다리게 되었다. 드디어 처녀가 나타나 옥빛처럼 고운 자태로 빨래를 하기 시작했다. 아, 하늘의 선녀가 저리도 아름다울까? 스님은 처녀의 고운 모습에 넋을 잃었고 연모의 정을 품게 되었다. 번민을 거듭하던 그는 처녀가 사는 입암 마을을 매일 맴돌다가 결국 용기를 내어 처녀의 집으로 찾아가고 말았다. 스님은 처녀의 집 앞에서 목탁을 치며 공양을 기다렸고 얼마 후, 꿈에도 그리던 처녀가 눈부신 자태로 나타났다. 그러나 처녀는 스님의 눈길을 애써 외면한 채 동냥바랑에 쌀을 부었는데, 순간 이성을 잃은 스님은 처녀의 손목을 덥석 잡고 말았다. 화들짝 놀란 처녀가 집안으로 숨어들었음은 물론이었고 스님은 멍한 표정으로 처녀의 뒷모습만 바라보아야 했다.

  그 후 스님은 다시 빨래터에 숨어서 처녀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처녀가 나타나 빨래를 하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태화강 상류에서 폭풍우가 치더니 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는 어느새 홍수로 변하였고 집채만한 물 덩어리가 사정없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강 상류 쪽에서 엄청나게 큰 바위하나가 우뚝 발기(?)한 채로 둥둥 떠서 내려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빨래하던 미모의 처녀는 너무나 신기한 표정으로 “어머, 정말 이상하다! 저 바위도 장가가고 싶은 모양이야.”라고 외치며 넋이 나간 표정을 지었다. 처녀의 이 말이 끝나자마자 선바위는 처녀 쪽으로 쏜살같이 다가왔다.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그때 이 처녀를 지켜보던 스님이 급히 숲속에서 뛰어나와 처녀를 구하고자 했으나 그만 처녀와 스님 모두 선바위에 깔리고 말았다. 결국 처녀와 스님은 동시에 선바위에 깔려 이승을 떠나고 말았다. 어쨌든 스님으로선 그토록 그리워하던 처녀와 마지막 길을 함께 했으니 연원(戀怨)을 풀었다고나 할까?

  


  그 후로 비가 오는 날 밤이면 선바위가 서 있는 백룡담 주변에선 앳된 여인의 호곡 소리가 들리고, 푸른 강물에서는 큰 뱀이 찬란한 서기를 뿌리며 백룡담으로 다가와 수중고혼 처녀와 상봉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이 일이 있으면 이 마을에는 반드시 큰 비가 내려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스님의 신분으로 속가의 처녀를 사랑했기 때문에 하늘에서 벌을 내린 것은 아닐까.

  이 선바위 전설에서 재미있는 것은 처녀의 말이 무척 맹랑하다는 것이다. 우뚝 선 바위를 보고 장가가고 싶은 바위라고 지칭한 처녀의 당돌함이 그 얼마나 재치가 있는지. 처녀의 말대로 하자면 선바위는 발기된 남성의 성기를 상징하는 것이다. 
 
 강 저편에서 선바위를 쳐다보면 바위 뒤쪽으로 작은 기와지붕이 하나 보인다. 강물을 가로질러 선바위쪽으로 올라가니 용암정이라는 정자가 보이고, 맞은 편에 있는 선암사라는 작은 절에선 은은한 풍경소리가 여운을 끌고 있다. 용암정에서는 선바위 정상이 눈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이고, 처녀와 스님의 전설을 간직한 백룡담의 물색은 여전히 옥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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