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여름방학을 끝내고 첫 출근하는 날. 다른 날보다 일찍 서둘러 출근을 하였습니다. 아이들이 오기 전에 교실 대청소를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빈 교실에는 지난 여름에 교실에들어왔다가 미처 나가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 몇 마리 곤충들이 교실 바닥에 누워 있을 뿐, 예전과 다름없었습니다. 부지런히 비질을 하고 걸레질을 마치고 집중 보관 중인 화분들을 살피러 갔습니다. 교실에 있을 때는 생생하던 화분 2개가 물길이 미치지 못했는지, 주인이 없어서였는지 잎이 마르고 늘어진 채 나를 원망하고 있었습니다. 말 못하는 식물들이지만 참 미안했지요. 아이들이 오기 전에 죽은 꽃들을 정리했습니다. 생명이 다한 모습은 그것이 식물이건 파리 한마리이건 간에 아이들에게 보여주지 않는 게 좋기 때문입니다.
대충 정리를 끝내고 교실에 가려는데 교무부장 선생님이 부르셨습니다. "장 선생님, 2학년에 새 식구가 왔습니다. 축하드립니다." 1학기 때부터 입버릇처럼 남학생이 전학 오면 좋겠다고 했는데 여자 아이였습니다. 키도 크고 예쁘장한 여자 아이를 보는 순간 여러 가지 생각으로 즐거웠습니다.
"00이 어머님! 참 잘 오셨습니다. 어떻게 읍내 학교에서 작은 시골 학교로 오실 생각을 하셨습니까?" "예, 덕진초등학교가 방과후학교를 열심히 한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아이들이 공부도 잘 하고 학원에 안 가도 될만큼 좋다고 하더군요."
"첫날인데 오늘도 공부를 하나요? 책을 안 가져 왔는데요." "예, 우리 학교는 1교시부터 바로 공부를 시작한답니다. 교실도 다 정리했으니 아이 책상과 의자만 들여가면 되겠습니다. 책 걱정은 마십시오. 헌 책도 있으니 공부를 시키겠습니다. 언제든지 상담이 필요하시면 불러 주십시오. 열심히 가르치겠습니다."
낯설어하는 학부모님에게 이것저것 간단히 이야기를 나누고 아이를 데리고 바로 수업에 들어갔습니다. 우리 반 아이들은 새 친구를 보고 매우 기뻐하며 반가움을 눈눗음에 숨기고 있었습니다. 남자 둘, 여자 셋인 우리 반의 성비가 2대 4로 더 맞지 않게 되었지만 이젠 짝꿍을 만들어 줄 수 있게 되어서 기쁘고 모둠 학습도 더 잘할 수 있게 되어 내가 더 신이 났습니다. 처음으로 남자 아이와 짝을 정하게 되었으나 수줍어 하며 자기 생각을 말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가위 바위 보로 짝을 짓게 하였지요.
그런데 평소에는 제일 말이 없는 은비가 제일 먼저 인재를 지목하여 짝을 이루는 모습이 참 신기해서 한참이나 웃었습니다. '용감한 사람이 원하는 친구와 짝이 되는건데...'하고 혼자 중얼거린 소리를 들은 모양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 반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들어온 이후 처음으로 둘이서 짝을 지어 앉게 된 것입니다. 그 동안 개인 별로 칭찬점수를 계산해 주었는데 이제부터는 두 사람이 한 모둠이 되어 협동점수를 받게 된 것입니다. 개인 간 경쟁보다도 팀별로 경쟁하는 게 아이들의 인성 발달에도 참 좋지요.
즐거운 생활 노래를 부르면서도 모둠별로 가사 외우기나 계이름 외우기를 쟁반 노래방으로 돌아가며 부르게 하니 분위도 좋고 아이들도 참 즐거워 하였습니다. 둘이 마주 보고 손뼉을 치며 박자를 맞추어 노래부르는 모습도 참 보기 좋았습니다. 점심을 먹을 때에도 짝끼리 먹고 역할 분담 활동을 할 때도 짝끼리 다정하게 하는 모습을 보며 행복했습니다. 세상은 역시 어울려 살아야 좋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는 3대 3으로 두 팀을 나누어 즐거운 게임이나 시합도 하기 좋을 것 같습니다.
새로 전학 온 아이 덕분에 다른 때보다 활기차게 2학기를 시작하게 되어 참 좋습니다. 아이들도 새 친구와 어울려 행복한 2학기를 보내겠지요. 당장 새 친구에게 주는 그림과 편지를 쓰며 벌써부터 눈을 맞추고 소곤대는 모습, 우리 반의 자잘한 규칙을 가르쳐 주며 친절함을 보여주는 따뜻한 아이들이랍니다. 저렇게 금방 친해지고 동화되는 아이들처럼 우리 어른들도 그렇게 서로를 받아들이며 살면 얼마나 좋을까요. 지역으로 나뉘고 종교와 정치적 이념으로 갈라져서 서로 얼굴을 붉히는 어른들이니까요.
소규모 학교인 우리 학교가 살아남는 방법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아이들의 실력 향상과 높은 인성지도로 지역사회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개학 첫날부터 개학식마저도 학급 교육과정 시간으로 쓰며 알차게 시작한 하루였습니다. 1학기처럼 첫날부터 아침독서를 하고 읽기 책 받아쓰기를 하며 방학 숙제를 하나씩 점검했습니다. 일상적인 반복 훈련은 몸에 밸 때까지 해야 효과가 있음을 생각하면 학교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예외적인 학사 일정이 생기면 아이들은 금방 느슨해집니다. 어른들보다 더 민감한 아이들에게 잠재적 교육과정이 주는 영향은 매우 크기 때문이지요.
날마다 해는 동쪽에서 뜨는 것처럼 학교에 오면 습관처럼 책을 읽고 고운 말을 쓰며 친구와 잘 어울려 공부하고 바르게 인사하며 질서를 지키고 식사후에는 반드시 양치질을 하는 일 등은 하루도 빠뜨려서는 안 됩니다. 그러한 습관이 집에 가서도 마을에 나가서도 행동으로 옮겨지리라는 믿음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학교에 오니까 행복하다는 아이들도 있고 집에서 노는 게 좋아서 방학이 더 길었으면 한다는 아이도 있습니다.
당장 내일부터는 오후 4시까지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으로 아이들이 힘들어 할 것입니다. 그래도 한 아이도 빠지지 않고 씩씩하게 잘 참여하여 자신의 삶을 살아갈 우리 아이들이 대견합니다. 여름방학 동안 무럭무럭 자라고 탈없이 지내며 일기도 꼬박꼬박 잘 쓰고 독서학습지랑 알뜰하게 정리해 온 모습이 기특하기만 합니다. 가족들이 모두 바빠서 방학 동안 여행도 못하고 집에서만 놀았다는 아이는 친구들을 만나 연신 웃으며 친구랑 눈을 맞추며 즐거워합니다.
내일 아침에는 우리 반 아이들 일기장이 즐거울 것 같습니다. 새 친구 이야기로, 짝꿍 이야기로 주제가 바뀔 테니까요. 앞으로도 네 명쯤 더 들어와서 재미난 교실이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오늘은 참 즐거운 날이었습니다. 아무래도 내일은 새 친구를 위한 축하 파티라도 해야겠습니다. 짝꿍이 생겼다며 즐거워하는 우리 반 아이들의 시선이 담임인 나에게 더 멀어지는 것 같아 은근히 샘이 나지만 품안의 자식은 언제든 떠날 준비를 하게 해야 되니까 참아겠지요? (2008.9.1 선생님이 쓰는 교실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