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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체험 교육현장 37년을 마치며 ⑥


새천년이라고 야단법석을 떨던 2000년 나는 20년간의 고교교사 생활을 접고 집 부근 J중학교에 새 보금자리를 잡았다. 중학교는 업무도 수업도 많다지만 끝에서 끝으로 반복되는 출퇴근이 싫어 선택했었다. 남들이 승진을 위해 일찍 방향을 틀던 중학교에 늦은 안착이었다.

학교에서 권하는 대로 환경부장을 맡았고 그 해 깨끗한 화장실 우수학교로 선정되기도 했다. ‘푸른숲선도원’이란 교내 봉사단을 만들어 청결한 학교환경에 힘썼다. 매일 학생을 모으는 일도 예삿일이 아니었고 구석구석 눈과 잔손이 가지 않은 곳의 청소는 체질에 맞지 않은 것 같았다.

새벽에 수학여행단이 10여대 관광버스로 떠난 후 등교시간까지 기다릴 수 없어 혼자 온 운동장 전체를 돌며 청소한 일은 지금도 잊지 못할 일이다. 떠나기 전 인솔교사가 학생들 스스로 줍고 가도록 지시만 했더라면 바로 해결될 일이었는데….

20년 만에 중학생을 대하니 귀엽기 짝이 없고 행동 하나하나가 재롱스럽기 그지 없었다. 복도에서 서로 엉켜 뒹구는 일은 다반사였고 고교에서는 상상할 수 없던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한번은 학생이 입안을 빨갛게 물들여 자랑스레 벌리고 다닌다. 다쳤나 이상해서 한 번 더 보려 해도 도망가더니 바로 그 학생이 오후에 수업 중에 천연덕스럽게 앉아 있다. 입안을 다시 보니 웬걸, 언제 그랬냐는 듯이 멀쩡하다. 드라큐라 흉내 냈다나. 학생의 지능이나 가정의 소득격차도 심하고 복도에서 뒹굴고 장난치며 교실을 어지럽히는 습관이 우리 세대와는 전혀 다르다는 느낌이 든다. 학교홈페이지 활성화 방안으로 교사홈페이지로 바로 연결 되도록 했는데 나의 가족홈페이지-아부지 화방의 염색작품 중 특별히 많은 조회 수를 기록한 그림이 있었다. 추상작품인데 제목이 '여인'이라서 그랬던 것 같다. 못 말리는 중학생들.

환경부장 업무하면서 겪은 씁쓸한 일화 하나. A교회에서 학교장 허락을 얻어 운동장에서 체육대회를 진행하는데 사방으로 둘러싸인 아파트 주민들이 확성기 소리가 시끄럽다는 항의 전화가 빗발쳤다. 학교에 주민 출입이 자유로워지고 숙직을 업체에 맡긴지 얼마 안 돼 일요일 일직은 교사가 그대로 하던 때인데 마침 내 순서였었다. 스피커 볼륨을 더 줄이도록 당부하고 나면 또 전화, 다시 더 줄이고 나서도 전화. 밤일하고 잠 좀 자야한다는 사람, 시험기간인데 아이가 집중할 수 없다는 부모, 심지어 학교장 당장 바꾸라고 호통하며 핸드폰 전화번호 대라는 어른께도 부드럽고 정중하게 ‘죄송 죄송…’을 연발했다. 나중엔 비까지 와서 점심시간만 현관에 들어가자고 사정했고 현관을 내주니 지지고 볶고 난리법석에 막아놓은 출입금지판까지 무시하고 어린 아이들이 2층까지 올라가는 게 아닌가? 분명히 운동장만 빌려주는 허락이었다는 재확인에 이어 호통을 치고 나무라면 너무한다고 입방아들이니 그날 일직은 피곤한 하루였다.

이러한 업무의 스트레스라도 달래볼까 하고 대구시청 주최 ‘맑고 푸른 대구21 선포 4주년 기념 환경보전 실천사레 공모전’에 평소 환경에 대한 소견과 환경업무에 대한 경험들을 엮은 글을 제출했더니 소식이 왔다. 시상식에 참가하기 위해 시청에 들어가 보니 청사 안은 호텔처럼 천정 벽 같은 시설 구조나 집기들이 번들번들 한데도 학교와는 대조적으로 연신 새로운 의자와 테이블들이 들어오고 있는 중이었다. 등위로는 3등인데 최우수, 우수 다음 장려상이란다. 스스로 위로하며 상금 10만원을 받았다.

환경부장 업무에 임시 담임을 개월 수로 6개월 정도 맡은 일도 잊을 수 없는 일. 자주 건강상의 문제가 많은 부장 한 분이 병가로 쉬는 동안 6월부터 11월까지 그 반을 맡아야 했다. 그 당시 개인적 공부 때문에 영문해석 과제제출이니 리포트 작성에 1분 1초가 아까운 내게 이런 일을 맡기다니…. 7개월 후 정식 담임수당도 아닌 10만원을 교무부장 손을 거쳐 주는데 거절해도 통하지 않아 무조건 던져주고 차를 몰고 교문 밖으로 바삐 나가려다 전조등만 하나 깨뜨렸다. 교장 교감 교무부장과 하는 점심 한 끼로 탐탁지 않은 돈을 써버렸다.

이야기 순서가 바귀었지만 1999년 신문에서 우연히 한국교원대 교육대학원 계절제 신입생 모집 공고를 보게 되었다. ‘방학기간 중 수업, 기성회비 면제, 기숙사 완비…’ 평소 바라고 찾던 학교가 바로 여기라고 판단, 내게 필요한 미술교육을 이제 나도 받을 수 있겠구나하는 기대에 가슴 벅찼다. 희망을 가지고 바로 입시 준비에 나섰고 만학 대졸 후 엄두가 나지 않았던 대학원 공부를 5년 만에 실행하는 계기가 되었다. 합격하여 동생 같고 조카 같은 교사들과 평생교육 재충전의 즐거움을 누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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