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다. 도심의 봄은 나무로부터 온다. 겨우내 움츠리고 있던 나무가 가슴을 한껏 하늘로 뻗는다. 겨우내 회색빛이던 나무가 초록색으로 물든다. 봄볕의 따사로움에 나무가 하루가 다르게 살이 찐다. 나목으로 앙상하게 서 있던 그 가지에서 새 생명이 움트니 이 세상에 환희가 가득하다.
나무 중에 벚나무는 가장 계절에 민감하다. 검은 살결이 아직 꽃을 피울 것 같지 않다. 그런데도 벚나무는 어느새 뭉툭한 살결을 뚫고 꽃을 내민다. 마치 어린 계집아이들이 분을 바르는 것처럼 눈 깜짝할 사이에 하얀 꽃이 부끄럽게 핀다.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은 우리의 삶을 위로하듯 하루가 다르게 꽃이 덤턱스럽게 커 가고 있다. 꽃이 만발하면서 사람들도 마음속에 꽃이 핀다. 저마다 일상에 번잡함을 잃은 듯 발걸음이 가볍다.
이번 주말에도 나는 밖으로 나왔다. 베란다까지 밀고 들어온 봄 햇살이 나를 밖으로 불렀다. 공원에서 나무를 본다. 모두가 꽃이 환하게 피었다. 꽃이 핀 것이 아니라 나뭇가지마다 꽃이 터져 나왔다. 자신의 아름다움을 값진 의상이나 장식품에 의존하는 인간을 비웃듯 나무는 봄꽃에 햇볕만 걸치고도 귀티를 낸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아직도 꽃을 피우지 못하고 있는 나무가 있다. 대부분 나무는 꽃을 피우고, 아름다움 축제를 벌이는데 홀로 야윈 몸으로 서 있다. 추위를 많이 타는지 울상스러운 얼굴이다. 영양 상태가 좋지 않아서 몸도 가늘디가늘다. 제법 몸집이 튼실한 나무는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는데 측은한 생각도 든다.
저 나무는 왜 몸이 부실할까. 혹시 어릴 때부터 몸이 약했을까. 아니면 비바람에 지쳐 제 몸을 키우지 못했을까. 이 생각 저 생각을 휘적거리며 발길을 돌렸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꽃이 졌다. 간밤에 봄비가 오고, 가볍게 바람도 불었다. 꽃이 진 것을 두고 바람 탓이러니 했지만, 지는 꽃은 남을 탓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내면에서는 아무런 동요도 없이 대지를 향해서 흩날린다. 이승의 온갖 인연을 끊고 무심히 떨어진 꽃잎이 가슴에 진다.
전생에 무슨 업보가 있기에 작은 숨소리도 못 내고 세상을 떠나는가. 언뜻 불쌍한 생각도 담았는데 자연의 이치대로 생명을 다하였기에 주저 없이 떨어지는 듯했다. 꽃잎을 떨어뜨린 나무가 오히려 훤칠해진 것을 보고 자연의 신비로움에 놀란다. 나무는 꽃을 떨어뜨리는 아픔을 이겨내고 그 자리에 어린잎을 잉태했다. 꽃이 진 자리에 연푸른 이파리가 돋는다. 이파리는 어린아이처럼 색깔도 부드러웠다. 꽃이 지고 잎이 돋아나니 나무가 제법 어른스러워졌다.
그 사이에 새로운 발견도 했다. 지난 번 꽃이 필 때 몸이 아파서 시들시들하던 나무가 이제야 꽃망울을 터뜨렸다. 그때는 몹시 불쌍하게 생각했는데 오늘은 저를 보는 사람들을 향해 슬며시 웃고 있다. 햇살을 먹음은 꽃이 유독 붉은 입술을 자랑한다. 때늦은 개화로 우리의 가슴에 아름다운 서정을 수놓아 주고 있다. 어느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고 있던 나무가 뒤늦게 우리의 주목을 받고 있다.
뒤늦게 꽃을 피우는 나무를 보면서 우리의 인생을 생각해 본다. 우리의 삶과 생활 또한 이와 같은 면이 있다. 주변에서 뒤늦게 삶의 꽃을 피우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비록 시기가 늦지만 더 화려하고 아름답기도 하다. 물론 남보다 빠른 나이에 성공을 하고 출세를 한다면 좋을 수도 있다. 또래보다 앞서면 더욱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뒤늦게 꽃을 피워 아름다움을 뽐내듯이 늦은 성공도 화려할 수 있다.
얼마 전에도 유명 연예인이 목숨을 스스로 버렸다. 들리는 이유는 여럿인데 그 중에 일이 없었던 것도 있다. 나무도 고난과 시련의 바람을 맞고 컸듯이 우리에게 주목받는 사람들도 보면 오랜 무명 생활을 견디고 오늘의 자리에 오른다. 지금 당장에 성과가 없다고 섣부른 생각을 담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아울러 꽃을 버리는 아픔을 겪고 나무는 또 다시 몸집을 불리는 것처럼, 우리도 삶의 그릇을 키우는 것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성공과 출세는 우리의 본질이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꽃이 시들듯이 사람이 획득한 명성과 명예도 시간의 산화로 볼품없게 변한다. 우리를 영원하게 하는 것은 세속적인 성공이 아니다. 세사에 때 묻지 않은 맑은 영혼을 지니는 것이다. 인간은 맑은 영혼 그 자체를 찾아 떠나는 삶 자체로도 아름다울 수 있는 존재다.
늦된 나무가 꽃을 피운 것을 다시 본다. 깊은 땅 속의 염원을 끌어 올려 움 틔운 한 떨기 생명이 찬란하다. 낯선 세상을 향한 첫 걸음이 수줍은지 얼굴이 불그스레하다. 만물의 질서에 순응하며 피었다가 다시 세상에 던져지는 슬픈 운명이 애처롭다. 꽃은 모두가 저마다 아름답게 빛나지만 어울려 더욱 아름다운 세상을 만든다. 이 장엄한 우주의 조화에 누가 시가의 빠름과 늦음을 말할 수 있는가. 우리의 삶도 늦되다고 탓할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