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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체험 교육현장 37년을 마치며 ⑩


IMF 경제위기사태에서 벗어났다고 그런지 요즘 학생들은 자신의 소지품에 대한 애착도 정리 정돈하는 습관도 제대로 돼 있지 않은 경우가 많고, 또 이런 광경을 자주 목격했다.

습관이 얼마나 잘못됐으면 늘 지도하고 당부하는데도 저럴까? 아니면 저 학급만 그런가? 도둑이라도 들어 도난당하면 일이 아주 커지는데 걱정스럽다. 쉬는 시간에 복도를 지나다 보면 창문도 출입문도 열려 있고 전등은 켜져 있으며, 바람마저 불어 부득이 문을 닫고 담임한테 조용히 귀띔해 준 적도 있었고, 학생 소지품 분실사건 조사한다면서 수업할 학생들이 담임께 불려가 늦게 오는 바람에 반쪽 수업을 했던 적도 있었다. 하루빨리 개선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다. 

또 한번은 어떤 사설경비업체 경비원이 월요일마다 어느 반 창문 어디가 열려 있더라고 문단속을 너무 세밀히 반복 지적해 전달하다가 얼마 안가 그만 둔 경우도 보았다. 아무리 옳은 일도 얼마나 지혜롭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받아들이는 상대방 반응은 다른 것이다.

학교시설 경비관리를 외부용역회사에 맡기고 주민의 출입이 자유로워진 요즘 과거에 없던 일이 늘었다. 운동장에서 주인 없는 핸드폰을 주워 찾아 주었더니 정작 물건 주인은 어디서 분실했는지조차 모르던 취객도 있었고, 일요일 새벽부터 축구한다고 운동장을 휘젓고 간 다음 월요일 아침 일찍 출근해 보면 방치된 소주병과 과자부스러기, 동물의 것인지 인변인지 모를 오물 때문에 상을 찌푸린 사례, 직접 치워보지 않은 사람은 그 떫은 심정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하루는 교장선생님 단골 주차공간에 오물이 방치돼 있었는데 맨 먼저 출근한 그날따라 허드렛일 하는 분이 출장이라 할 수 없이 직접 삽을 찾아 처치하려니 모래흙도 가까이 없어 난감한 적도 있었다. 

수세식화장실은 또 얼마나 편리한가. 그런데 간혹 물을 잘못 내린 학생 때문에 계속 물소리가 나거나 오물이 복도로 넘쳐 여럿이 고생해 처리하던 일, 방과후 외부 강사 수업 끝날 때까지 기다려 문단속 확인하던 일, 방학 중에 신발장에 둔 실내화가 없어져 개학날 종일 구두를 신고 지낸 일도 있다. 이러한 경험은 학생과 생활하는 교사만이 겪는 피곤한 일이 아닌가 싶다.

너무 씁쓸해 잊을 수 없는 사건 하나. 3학년 입시원서 제출과 진학설명회 개최, 진학상담, 전문계고교 면접 등으로 어수선하던 어느 날, 내 차량 엔진덮개 위와 차량 옆면 한쪽을 예리한 도구로 죽 그은 선과 낙서가 발견되었다. '♡' 모양도 있고 ‘사랑해요’라는 글씨까지. 누가 그랬는지 밝혀질까 기대와 함께 훈계한답시고 학생들이 이래서 되겠느냐는 말을 학급마다 들어가 전했지만 누구 소행인지 밝히지 못하고 수리비만 물었다. 그 뒤로도 몇몇 여교사들의 타이어에 바람을 빼거나 유리창이 파손된 사건이 이어졌으니 얼마나 맥 빠지는 ‘묻지마범죄’인가. 이 일이 있던 무렵을 전후해 학교마다 다투어 CCTV를 설치하지 않았나 싶다.

2008년 A중학교는 나의 마지막 근무지. 평교사라고 해야 최소한 나보다 열 살 이하였다. 오래된 학교였지만 시설현대화사업 추진으로 기자재나 시설이 훌륭한 편이었고 건물 도색에 본관과 별관 복도연결 공사, 식당 신축, 운동장 인조잔디 조성 등 괄목할만한 개선이 계속되었었다.

교장 선생님 부탁에 따라 젊은 교사의 전입을 적극 권유하기도 했고, 과거엔 내 자신이 맡을 수밖에 없었던 힘든 업무들을 모두 적극 맡아 해주는 동료교사들에게 늘 고마운 정을 느끼고 있었다. 학교에서도 곧 퇴직할 내게 원로 대접을 하려고 노력했지만 산후휴가 여교사, 기간제교사가 많아 전임 학교처럼 시험감독시간을 줄여주거나 임시담임을 면해주는 혜택은 없었다. 나 자신도 마지막 근무인데 힘닿는 데 까지 열심히 해내야지 하는 긍정적 사고로 받아들였다.

이 학교에서는 지금까지 자주 가르치던 미술기법 외에 교과서나 참고서에서도 보지 못했고 시도하지도 않았던 표현으로, 짙은 바탕 종이에 어떤 모양을 오려내고 물감이 아닌 색종이를 붙이는 구성작업을 하도록 했는데 여러 학급을 반복하다 보니 참으로 놀랄 정도의 훌륭한 작품이 눈에 띄었다. 청출어람이라 했던가? 학원 같은데 다니며 특별히 미술과외 받는 학생도 없고, 평소에 참 놀랍다 싶은 학생의 솜씨도 뵈지 않았지만, 이 영역의 표현에서 어떤 학생은 같은 재료라도 신기에 가깝도록 나름대로의 특별한 요령으로 그리며 칼질을 하고, 딱 어울리는 밝은 색종이를 붙여나가는데, 교사가 제시한 시범작품 이상의 소재와 깔끔하고 우아한 작품을 창조해내는 것이었다.

또 지금까지는 학생 개개인에게 직접 준비물을 사오도록 지시하고 준비상태를 점검한 다음 실기학습을 진행할 수 있었지만, 이 학교에서 처음으로 일부 영역이지만 준비물을 구비해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고 수업하게 되어, 얼마나 수업진행이 수월한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첫해는 예산을 진작 준비하지 않아 한 학년만, 다음 해에는 전체 학년에 모두 한 번씩 혜택이 돌아가게 했다. 수업 중 우수작품은 모두 가을 축제인 종합작품전시회에 선보이기도 했다.

지역교육청에서 수업컨설팅 관련 발대식인가 한다는 공문이 와서 본교에서 나와 젊은 교사 한 명이 참석했다. 취지는 좋은데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받을 여건이 되지 못할 것 같았다. 자신이 근무하는 학교교사는 제외한다고 돼 있으며 타교에서 실제로 요청하는 학교도 몇 달 동안 없었다. 정작 제자의 개인적 요청이 있었지만 거리도 떨어진데다 고등학교 수업이었고, 중학교의 내 수업을 제쳐두고 스승의 입장에서 개인적인 수업컨설턴트 역할을 할 여건이 되지 않아 안타깝게도 도움을 주지 못했다.

교생실습 하러 온 대학생들이 있었는데 미술과 교생중 학생들 눈에 밟히는 꽃다운 교생(?)이 한 명 있어 한동안 1학년 학생들이 불같은 호기심을 표현하기도 했고, 종종 미술실을 긴장된 분위기로 조성하기도 했지만 나 자신은 수업이나 실기과제물 평가 업무에 도움이 되지못해 부담만 느꼈다. 여러 번의 주의도 아랑곳하지 않고 굽 높은 구두를 신고 복도를 지나다니는 몇몇 교생의 행동은 다른 사람들 눈에도 딱 거슬리는 일이었다.

마지막 학교는 전임 학교처럼 교육복지투자우선지역 학교였고 나도 같은 분야를 맡고 있던 터라, 방과후 학생동아리 프로그램을 한 가지 진행했다. 하지만 일부 학생들은 6교시를 마치고 8교시까지 기다리거나, 7교시에 다른 프로그램과 겹치는 경우 때문에 여러 학급 학생이 모여서 활동하고 그 결과물을 보관했다가 여러 학생들 앞에 보여주는 일들이 쉽지만은 않았다. 위의 홀치기염색작품 머플러도 방과후활동 미술공예동아리 수업지도할 때 제작한  작품의 한 예이다.

동부지역 학교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전투기 소음이 수업을 방해하는 수가 많았지만 한편 교내외 생활지도도 훌륭했고 학생들 원 바탕이 순박해서 말썽스런 행동이 연중 거의 없다. 그래서 경찰청 학교표창도 있었고 여러 방면에 걸친 우수실적을 올렸으며 더구나 마지막 해에는 단체, 개인 표창들이 수두룩했다. 흐뭇하기도 하고 내가 몸담고 있는 학교의 영광이다 싶어 교육신문 리포트 현장소식으로 학교를 알리기도 했다.

2008년 겨울부터 개인적으로 인터넷에서 우연히 신간서적 이벤트에 몇 번 당첨 되었는데, 한국교육신문 리포트에 서평까지 올리게 되면서, 그 전엔 1년에 2~3권 읽을까 하던 책을 이때부터 한 달에 한 두 권씩 독서를 꾸준히 할 수 있게 되었다. 마침 젊은 여교사의 제안에 따라 독서클럽 ‘호모리더스’를 만들게 됐고, 그래서 더 부지런히 독서활동도 하고 아울러 그 전에 써놓은 서평을 이용해 다른 회원 선생님들에게 책 소개도 할 기회가 되었다.

언젠가 한번은 전문직 후보에 대한 간접 면접조사 방식인지는 모르나 전화로 응답 내용은 비밀에 부쳐달라며 '몇 년 전 근무했던 학교의 교사 A에 대해 문의하겠는데 그 당시 교무부장이었지요?' 확인하며 성실히 답변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조사대상자 A의 업무 능력, 실적, 인성 특이사항에 대해 평가자 C(본인)가 아무리 정확히 말해준다 한들 전화를 건 조사관 B가 받아들이기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것이고 또 B, C가 A에 대해 잘 아는 사이인지 여부, 호의적 또는 부정적인 시각을 가졌는지 여부에 따라 평가결과가 서로 달라질 것이 아닌가?, 객관적 평가방법이라 할 수 있는지 의문을 지울 수 없었다.

퇴직 전 몇 개월간 공로연수기간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건 알았지만, 난 예체능과목의 특성상 수행평가라든지 미술실 자료와 비품정리 등, 책임지고 처리해야지 생각하는 일은 바로 나의 일이라고 믿었기에 연수기간 없이 2월말까지 계속 근무하기로 작정했다. 매년 방학만으로 휴가기간이 충분하다고 여기기도 했다. 그래서 본교의 생생한 교육현장 소식도 한교닷컴에 올리고 마지막 날까지 봉사하는 정신으로 성실히 업무를 추진하려고 노력했다.

2010년 2월 말. 가까운 식당에서 모든 선생님들이 성의껏 베풀어주시는 퇴임성찬을 4년 만기로 떠나는 교사들과 함께 모든 직원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마치면서, 축하의 화환에 파묻혀 ‘새내기 시절 첫 인사말을 어찌 해야 할지 궁리하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세월이 지나고 보니 마치 3박 4일의 체험 교육현장을 마치고 떠나는 기분 이다. 남은 분들께 건강과 가정의 행복을 빌고 교육발전을 위해 더욱 힘써주시기 바란다’는 마지막 소감을 전했다.

대구광역시교육청 퇴직교원 정부포상 전수식장에서 홍조근정훈장 받은 것을 마지막으로 나의 교육체험 37년은 끝을 맺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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