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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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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고집쟁이 길들이기

“경순이 어서 일어나 !”
“......................”
질문에 답해보라고 지명을 받은 경순이는 묵묵부답으로 고개만 숙이고 있습니다.

“안 일어 날거야. 너 지금 선생님 말을 안 듣겠다는 것이니?”
“......................”
경순이는 선생님이 어서 일어나서 대답을 해보라는 독촉에도 도무지 말을 들으려 하지 않고 책상 속에 손을 집어넣고 가만히 무언가를 만지고 있습니다.

“자, 이제 숫자를 셀 거야. 센 숫자만큼 매를 맞을 줄 알아. 네가 고집을 부릴 모양인데 선생님도 전혀 너에게 지고 싶지 않거든........”
선생님이 다시 경순이에게 주의를 줍니다.

“..................”
아무리 주의를 주어도 도무지 움직일 기색이 없습니다.

“자, 빨리 일어나서 이야기 해보세요. 하나, 둘, 셋, 넷........... 열.”
그래도 조금도 움직일 기색을 보이지 않는 경순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선생님께서 소리를 꽥지르시면서 “경순이, 더 이상 못 참는다. 빨리 못 일어나?”

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경순이는 얼른 책상 속에서 자기 책들을 책보자기와 함께 움켜쥐고 밖으로 내달립니다.

우리들은 모두 눈이 둥그레져서 그런 경순이의 모습을 바라보며, ‘저렇게 선생님의 말씀을 안 들으면 어떻게 하지’하고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보다 먼저 선생님이 앞쪽의 문을 열고 뛰어 나가셨습니다. 우리들은 너무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으므로, 아무 소리도 못하고 숨을 죽이고 앉아만 있었습니다.

그 때 복도에서 경순이의 악을 쓰는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안 할 게요. 안 할 게요.”


몹시도 다급한 소리였습니다. 교실 문이 열리고 아이들이 우르르 복도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경순이는 선생님의 손에 어깨를 붙잡혀서 달아나지 못하고 있었고, 선생님의 손에는 교실 청소할 때 쓰는 수수깡으로 만든 빗자루가 거꾸로 잡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선생님이 경순이를 때렸다면 손잡이 부분으로 맞았을 것입니다. 아마 몇 대는 이미 맞았는지 고집쟁이 경순이가 손을 마주 잡고 빌고 있었습니다.

옆 교실의 선생님이 나오셔서 그런 우리 선생님의 손에서 빗자루를 빼앗으시면서 “왜, 이 녀석이 고집불통인데 또 고집을 부렸구만....., 그래도 그걸로 때리면 안돼요”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선생님은 빙그레 웃으시며 “이걸로 두어대 때렸는데요? 아프게 때리지는 않았으니 걱정을 마세요”하시면서 경순이를 대롱대롱 들듯이 치켜들고 교실로 끌고 들어왔습니다.

“너희들이 모두 보았듯이 선생님이 꾸중을 한 것도 아니고, 질문에 답을 해 보라는데 이렇게 고집을 부리더니 더구나 책보자기 싸들고 도망을 가려고 하다니 어디 이럴 수가 있니?”
“아니요. 경순인 고집쟁이래요.”
“집에서도 늘 저렇게 고집을 부려서 쫓겨나고 그래요.”
한 마을에 사는 아이들이 이렇게 고자질을 합니다.

“에이 녀석들, 같은 마을의 친구를 그렇게 고자질을 하면 어떠니? 너희들이 감싸주지는 못 할망정......”
“넌 저기 선생님 책상 앞에 꿇어앉아서 공부를 하고 공부가 끝난 다음에 선생님과 이야기를 좀 해야 하겠으니까 기다려라.”

이렇게 해서 마지막 공부 시간은 소동으로 제대로 공부를 하지 못한 채 한 시간을 보내 버리고 말았습니다. 청소가 끝나고 아이들이 모두 돌아간 다음에 선생님은 경순이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경순아, 너 오늘 왜 선생님의 말을 안 듣고 그런 일을 저질렀니? 선생님이 너에게 무얼 잘 못 시킨 거니? 넌 선생님이 무얼 시키려고 그러는지도 모르면서 일어나지 않고 고집을 부렸잖니?”
선생님의 말씀에 경순이는 고개만 숙이고 도무지 말을 하지 않습니다.

“선생님이 묻는 말에 대답도 하기 싫다는 말이니? 그럼 네가 스스로 말을 할 때까지 나도 말을 하지 않겠다. 네가 말을 하려면 선생님을 불러라. 나는 그 때까지 기다리면서 내 일이나 할 것이니까. 알겠지?”
그렇게 말씀을 하셔도 경순이는 대답도 없었고, 선생님도 이제는 말씀을 하시지 않습니다.

‘사그락, 사그락’

선생님이 무엇인가를 적으시는 펜의 소리만 들릴 뿐입니다. 다섯 시가 지나고 기나긴 여름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시계는 벌써 저녁 7시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이제 곧 어두워지고 밤이 올 것입니다. 그런데도 경순이는 꿇어앉은 자세를 흐트러지지도 않고 그대로 앉아서 고개만 숙이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아무 소리도 안하고 일만 하시면서 속으로 ‘네 녀석이 힘들면 말을 하겠지. 아무리 힘이 들더라도 너는 이번에 그 못된 고집을 고치지 않으면 평생 고치지 못할 지도 몰라. 그러니 나도 귀찮지만 참고 기다릴 거야’하고 참고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일부러 아무 말을 걸지 않고 스스로 이야기를 하기만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제 교실 안이 조금씩 어두워지기 시작하였습니다. 학교 아저씨가 문을 잠그고 다니면서 우리 교실에 남아있는 아이와 선생님을 보고서 “아니, 선생님 아직도 퇴근 않으셨어요? 저 아이가 뭘 잘 못했는데 어두워지는데 아직도 안 보내시고”하시는데도 선생님은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대어서 조용히 하라는 표시를 하면서 어서 나가라고 손짓을 합니다.

아저씨가 나가고 교실 안은 다시 고요가 몰려 왔습니다.

마치 바윗덩이 같이 말이 없던 경순이가 무거워진 다리를 주무르면서 “선생님 죄송합니다. 용서해 주세요”하고 울먹이는 소리를 합니다. 선생님은 일부러 못 들은 척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계십니다.

경순이가 다리를 계속 주무르면서 다시 좀 더 큰 소리로 “선생님 잘 못 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그제서야 선생님은 고개를 경순이에게로 돌리면서 “경순이가 말을 한 거야? 난 영영 말을 하지 않을 줄 알았지? 그래 무얼 잘 못했는지는 알고 있는 거니?”
“예, 제가 고집을 부리고 말을 듣지 않은 것이 잘못입니다.”
“그래? 그럼 앞으로는 그런 짓을 안 할 거니?”
“예, 이제는 절대로 그러지 않겠습니다.”
“그게 정말이지. 이제 그런 짓을 정말 안 할 거지?”
“예, 약속하겠습니다.”
“그래? 그럼 됐다. 이제 집에 가야지. 진즉 그렇게 했으면 좋았지 않니? 공연한 고집을 부리다가 시간만 잔뜩 잡아먹었잖니? 자 일어나라. 내가 동네까지 데려다 줄게”하시면서 선생님은 경순이를 손을 붙잡아 일으켜 주었습니다.

너무 오래 꿇어앉아 있던 경순이는 다리에 쥐가 나는지 일어서질 못합니다.
“다릴 뻗고 앉아서 잠시 주물러 보아라. 그럼 풀릴 거다.”
선생님의 말씀대로 경순이는 다리를 뻗고 앉아서 열심히 주물렀습니다. 한참 만에 경순이가 일어서고 선생님은 경순이를 데리고 마을 입구까지 약 1㎞ 정도나 되는 길을 데려다 주었습니다.

이튿날 아침, 경순이는 일찍 학교에 왔습니다. 선생님을 보고 다른 아이들과 다름없이 인사를 합니다. 

‘얘가 엊저녁에 무사히 잘 넘긴 것인가?’
걱정이 되었던 ‘참이라 다행이다.’ 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한 시간이 끝나고 쉴 시간에 경순이와 한 마을에 사는 혜경이가 선생님께로 다가와서 “선생님 엊저녁에 경순이 자기 집에 못 들어갔어요. 집에서 쫓겨나서 우리 집에서 나하고 같이 잤어요. 아침도 우리 집에서 먹고 학교에 왔어요. 할머니가 왜 경순이는 안 오냐고 하시길레 사실 이야기를 해드렸더니, 경순이가 늦게야 집에 들어오니까 ‘저놈의 고집쟁이가 집안 망신은 다시키고 이제야 와? 고집 더 부리지 왜 이제는 안 되겠더냐? 그년 고집쟁이는 필요 없어 어서 나가!’ 하시면서 야단을 하시니까 할 수 없이 우리 집으로 왔어요”하고 말씀 드렸습니다.

선생님은 ‘음, 집에서도 그렇게 해주셨다면 아마도 고집이 잡힐 수 있겠구나. 참 다행이구나”하고 생각을 하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경순이는 달라지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부르면 얼른 일어서서 대답을 하고 집에서도 심부름도 잘하고 친구들에게도 친절해졌습니다. 하룻밤 사이에 일어난 일로 달라진 경순이를 보면서 우리 반의 아이들은 선생님이 어떻게 했길레 저렇게 달라졌을까 궁금하였습니다. 우리에게는 아무런 이야기도 해주시지 않으셨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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