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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소식

‘피난’과 ‘피란’

2010년 7월 21일자에 중앙일보에 ‘대만으로 간 중국 보물’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는 대만의 국립고궁박물관의 역사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 인류가 남긴 문화유산을 어떻게 보존해 왔는가를 생생히 전하고 있다. 특히 국가는 망해도 유물을 지키려 했던 중국 국민당 정부와 수뇌부의 눈물겨운 역사가 애처롭다. 전쟁 중에 뱃길이 모두 끊기고 하늘길만 열려 있었을 때도 장제스는 공군총장에게 전화를 걸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보물을 대만으로 옮기도록 명령했다.

그런데 기사에 똑같은 뜻의 단어를 다르게 사용하고 있다. 

‘대만으로 간 중국 보물 -포화 속 황실 보물의 16년 피란길’
대한민국 국보에 붙은 번호에는 특별한 의미가 없다. 지정된 순서에 불과하다. 중국에는 한국과 같이 번호를 매긴 국보 목록은 없다. “타이베이에는 유물은 있지만 고궁이 없고(有寶無館), 베이징에는 고궁은 있어도 유물이 없다(有館無寶)”는 말이 있다. 사실 베이징 고궁박물원에도 960만 점의 보물이 있다. 그럼에도 대만 고궁박물원 소장품을 더 높게 친다. ‘천하제일가(天下第一家)’ 중국 황실의 진귀한 보물은 대만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그 중국 황실 보물들의 험난했던 피난기를 소개한다.

즉, 기사 표제에는 ‘피란’을 쓰고, 본문에는 ‘피난’을 쓰고 있다. 두 단어의 뜻을 새겨보면,

‘피난’
재난을 피하여 멀리 옮겨 감.
- 피난을 가다.
- 지진이 나자 마을 사람들은 피난을 떠났다.
‘피난하다(避難--)
- 재난을 피하여 멀리 옮겨 가다.
- 물난리가 나자 주민들이 산으로 피난하였다.

‘피란’
난리를 피하여 옮겨 감.
- 전쟁으로 거의 다 피란을 가 버리고 도시는 텅 비어 있었다.
‘피란하다(避亂--)
난리를 피하여 옮겨 가다.
- 전쟁이 일어나자 남쪽으로 피란하는 행렬이 줄을 이었다.



이렇게 보면, 재난 따위를 피할 때는 ‘피난’으로, 전쟁으로 인해 옮겨가는 것은 ‘피란’으로 하는 것이 정확한 단어 표현이다. 그런데도 이러한 혼란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언중이 공부를 안 하고 무턱대고 사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표준국어대사전도 한몫 했다고 보아야 한다. 

사전에서는 예문으로

세 명의 자녀를 고향에 둔 채 홀로 피난을 내려와 구제품 따위를 파는 행상을 시작해선…(김원일, ‘도요새에 관한 명상’).
국군은 제2·제3 방어선을 돌파당한 채 서울로 밀려들었고 정부는 수원으로 피난해 버렸다(이문열, ‘황제를 위하여’).

‘피란’을 써야 할 자리에 ‘피난’을 사용하고 있다. 특별히 뜻을 구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언중의 언어 현실을 반영했는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용례를 정확히 할 필요가 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다시 기사문으로 돌아가서, 기사에는 ‘허난(河南)성 정부 주석 자오쯔리(趙子立), 쑹산(松山)비행장, 장제스’ 등의 표현이 보인다. 이는 중국의 원음대로 표기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천안문 광장’이라는 표현도 보인다. 이는 우리식의 한자음으로 표기를 했다.

현행 외래어 표기법은 동양의 인명·지명 표기에 대해 중국 인명은 과거인과 현대인을 구분하여 과거인은 종전의 한자음대로 표기하고, 현대인은 원칙적으로 중국어 표기법에 따라 표기하되, 필요한 경우 한자를 병기한다고 규정한다. 이는 외래어 표기에 원음주의를 존중하는 정신을 따른 것이며, 동시에 우리의 한자음을 읽는 전통을 반영한 절충론이다.

그렇다며 앞에서 ‘천안문(天安門)’은 중국 원음대로 ‘티엔안먼’이라고 표기해야 한다. 앞에 예문에서 보면 모두 중국 원음대로 잘 표기하고 있다. 그러나 ‘천안문(天安門)’은 워낙 익숙해서 실수를 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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