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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칼럼

내신 좋은 학생이 우수하다고 하더니

서울대가 2012학년도부터 고등학교 내신 성적 반영 비율을 낮추고 수능을 높인다는 새 입시안을 발표했다. 현재 고2가 치르는 2012학년도 서울대 입시에서 내신(학교생활기록부) 비중은 줄어들고 수능 비중은 커진다. 수시모집의 지역균형선발은 내신 전형을 완전히 없애고 입학사정관제로 전환된다. 정시모집에서도 내신 반영 비율은 10%포인트 줄어든다.

백순근 서울대 입학본부장은 입시 변경안에 대해 “매년 지원자들 중 내신 만점자들이 늘어나고 있다.”며 “고교에서 전략적으로 내신을 관리해 기계적인 만점자를 많이 배출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백 입학본부장은 “학교별 추천 인원수를 기존의 3명에서 2명으로 줄여 모든 학생에게 면접 기회를 주는 전면적 입학사정관제를 실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울대의 새 대입 전형안은 내신 반영을 줄이고, 면접은 확대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면접도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는 하나의 방법이라는 점에서는 동의하지만, 내신 비율이 줄어드는 것은 찜찜한 구석이 있다. 이전부터 대입에서 내신 반영 문제는 교과부와 대학 간에 시각 차이를 보여 왔다. 교과부는 공교육 살리기라는 명분을 내걸고, 대학은 서울 강남 지역 고교나 특목고 출신 학생을 많이 뽑으려는 의도로 내신 반영에 반발을 했다. 2008학년도 대입시에서는 내신 50% 반영 문제를 두고 교육부와 사립대 총장들이 대립한 적이 있다. 그러더니 새 정부 들어서 내신 비율에 대한 가드라인이 무너지고 있는 인상이다. 연세대는 당장 내년부터 내신을 반영하지 않는 전형을 신설했다.



이러한 일련의 정책은 고등학교 내신을 신뢰하지 않는 인상을 주고, 결국에는 공교육을 위태롭게 할 가능성이 크다. 내신 성적은 현행 교육제도에서 공정성이 보장된 평가개념이다. 내신 성적은 학생들의 성적 및 성장과정 등이 사실적으로 가장 잘 반영되어 있는 자료다. 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선진국에서도 내신은 학생 선발에 중요한 자료로 활용된다. 이런 이유로 대학의 내신 반영은 안정적인 공교육을 구축하는데도 큰 도움을 준다.

일부에서는 학교 간 차이가 있는 현실에서 내신 성적의 일괄 적용은 비합리적인 면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학교 간 차이를 운운하는 것도 자의적이고 비합리적이다. 그리고 학교 교육이 실행되는 상황에서 수능시험 성적만으로 입학생을 선별하고, 우수함에 대한 판단을 그것 하나로 단정 짓는 것도 모순이다. 내신은 학생이 주어진 여건에서 학업 성과를 거둔 것으로 무엇보다도 존중되어야 하고, 수능시험 성적과 함께 대학의 입시에 반영할 수 있는 핵심 자료로 부각되어야 한다.

서울대는 지역균형선발제도를 거쳐 합격한 학생들이 수능 성적 위주로 선발하는 정시 일반전형 학생들보다 고학년이 될수록 우수한 성적을 낸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다. 즉 내신 성적 우수자가 결코 학력이 낮은 것이 아니다. 서울 강북이나 지방 소도시, 군 지역의 학생들이 수능성적이 낮은 이유는 교육 여건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환경적 요인으로 교육기회를 갖지 못해 대입 역량을 키우지 못한 것이다.

서울대의 발표는 고등학교의 현실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비판받아야 한다. 백 입학본부장이 ‘고교에서 전략적으로 내신을 관리’한다고 했는데,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진단을 내렸는지 궁금하다. 공정하게 ‘내신 관리’를 하는 것은 학교의 고유 업무다. 학교에서 학과 공부를 열심히 해 스스로 내신을 잘 관리하는 학생은 있어도 학교 차원에서 잘 관리(?)한다는 말은 맞지 않다. 이는 마치 ‘내신 조작’처럼 들리는데 무책임한 발언이다. 아울러 이번 조치는 고교의 내신 성적 부풀리기를 차단한다는 것이라고 했는데, 학교에서 무슨 내신 부풀리기를 했는지 말해야 한다. 현재 내신 제도는 상대평가 방식으로 내신 부풀리기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우리나라 입시 정책의 변화는 고등학교 교육에 큰 영향을 미친다. 더욱 서울대의 입시 정책은 학교 교육의 근간을 좌우한다. 따라서 서울대는 중심을 잃지 말고 대입 정책에 누구보다도 선도적이고 논리적이어야 한다.

지금 우리 교육은 공교육 강화와 사교육비 절감이라는 절대 명제 앞에 서 있다. 이에 대한 답이 대학 입시에서 내신 비율 유지다. 대학의 내신 반영은 입시 형태의 중심이어야 하고, 공교육의 마지막 보루이어야 한다. 대입의 내신 반영은 명분이 확실하고 국민 모두가 동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적극 옹호해야 한다. 강남과 비강남, 대도시와 소도시의 학력차가 존재한다는 어설프고 이분법적인 논리로 접근하는 태도는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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