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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웅혼한 정신을 일깨우는 산문

-김탁환의 ‘밀림무정’을 읽고

소설을 왜 읽는가. 그것은 다른 세계와 만나기 위해서다. 우리가 사는 일상은 반복적이고 지루한 면이 있다. 그래서 소설 속에서 일탈을 꿈꿀 수 있다. 소설 속의 세계에 들어가면 잠시 현실을 차단할 수 있다. 소설 속에서 인물이 웅성거리는 소리를 듣고, 사건에 섞여서 지내다 보면 일상의 찌듦을 털어낼 수 있다.

소설 속에서 현실적 자아를 동일시하는 행위는 위험한 측면이 있다. 소설은 가상의 세계다. 그 세계는 어떤 세계에 대한 안내일 뿐이지 목적지가 될 수 없고, 종착역이 될 수 없다. 이러한 세계에 마주하게 되는 삶은 현실적 세계로 돌아왔을 때 자칫 방황의 끈으로 흩어질 수 있다.

그러면서도 소설을 읽는 즐거움은 버릴 수 없다. 소설의 낯섦이 이내 친숙함으로 다가오는 매력이 있다. 누구나 일상은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없고, 저마다 개인적 시간 안에 갇혀 있다. 매일 스쳐지나가는 타자의 삶에 무심하고 방관적이다. 하지만 소설을 읽으면 사건에 냉철하게 참여할 수 있다. 소설의 문장을 통해서 생각하고 인식할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 소설은 일상세계 경계선 바깥을 경험하고 소통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소설의 낯선 세계에 말을 거는 행위는 길들여지지 않은 도전 의식이 바탕이 된다. 도전은 고통스럽지만 인생에서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그 세계는 따뜻하고 아늑하고 행복한 열정이 존재한다. 바쁜 일상에서 김탁환의 장편소설 ‘밀림무정’을 꼼꼼히 읽는 것도 불편한 도전이다. 그러면서도 장면마다 현실에서 느끼지 못하는 절대적 꿈틀거림이 있어 읽는 순간 즐거움이 넘쳤다.

‘밀림무정’도 시간과 공간이 모두 낯선 세계다. 1940년대 개마고원을 배경으로 명포수 ‘산’과 백두산과 만주를 호령하는 백호 ‘흰머리’의 이야기는 쉽게 접하지 못했던 세계다. 포수 ‘산’의 아비 ‘웅’은 사냥을 나갔다가 백호에게 목숨을 잃었다. ‘산’의 동생은 두 팔을 잃고, 온전했던 정신까지 빼앗겨 노름꾼이 됐다. ‘산’은 아비의 유품인 총 ‘밀림무정’을 들고 단 하나의 적 백호를 찾아 설원을 누빈다. 반대로 개마고원의 ‘흰머리’는 암컷과 새끼를 ‘산’에게 잃었다. 백호에게도 ‘산’은 쓰러뜨려야 하는 적이다. 서로에게 가족을 몰살당한 후 이들은 개마고원을 헤매며 서로의 흔적을 추격한다.

“산은 떠돌았다. 개마고원에서부터 백두산을 넘어 만주 숲의 바다까지. 흰머리를 죽이는 것이 삶의 목표였다. 훌훌 털고 새로운 일을 하라는 권고도 받았지만, 산은 자신을 노려보던, 아비를 죽이고 수의 오른팔을 뜯은 백호의 청회색 눈동자를 잊을 수 없었다. 운명이었다. 둘 중 하나가 죽지 않고는 끝나지 않는 비극”(1권 129쪽).

가족은 삶의 전부다. 가족은 나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서 가족을 빼앗은 적(敵)은 용서가 될 수 없다. 백호도 암컷과 새끼를 잃었다는 점에서 가족을 잃은 것과 같다. 소설의 표현대로 둘의 원한 관계는 하나가 죽지 않고는 끝나지 않는다.

“머리만 밖으로 내놓은 흰머리를 발견했다. 충격으로 기절한 듯 미동이 없었다.…… 탄환이 흰머리의 관자놀이를 뚫고 작디작은 뇌에 박히면, 끝이다.…… 7년 동안 내가 원한 승부가 이것이었나. 아니다.…… 이렇게 목숨을 앗는 것은, 너를 추격한 7년 세월을 비웃는 짓이다. 넌 개마고원의 지배자답게 당당해야 하고 극복하기 어려울 만큼 빠르고 크고 강해야 한다. 약한 너를 죽이는 것은 내가 원하는 복수가 아니다. 이건 아니다. 난 널 쏘지 않겠다. 쏠 수 없다(2권 61~62쪽).”

드디어 적을 쓰러뜨릴 순간이 왔다. 방아쇠만 당기면 7년 동안 쫓던 흰머리를 쓰러뜨릴 수 있다. 아버지를 죽이고 집까지 쳐들어와 동생 ‘수’의 팔을 앗아간 원수를 갚을 수 있다. 이제 고통스러운 추격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둘의 승부는 단순히 죽이는 것에 있지 않다. ‘산’은 자신이 원하는 승부가 아니라며 흰머리를 쏘지 않는다. ‘쌍해’ 아저씨가 ‘흰머리만 쫓다가 꽃다운 청춘 다 보낼 거냐? 너도 이제 떠돌이 생활 끝내고 정착해야지. 결혼도 하고 아들딸도 낳고, 웅이 형님도 이 정도로 마무리하길 원하실 게다.(2권 69쪽)’라고 권했지만, ‘산’은 흰머리를 다시 살려낼 방도를 찾는다.



이 순간 일본군 소좌 ‘히데오’가 해수(害獸) 소탕을 명분으로 군대를 이끌고 나타난다. 이로 인해 소설은 포수와 맹수의 대결 구도에서 ‘산’과 ‘히데오’의 대결 구도로 바뀐다. ‘히데오’는 흰머리가 기절한 틈을 타 창경원으로 가로챈다. 결국 흰머리를 개마고원으로 보내고 떳떳한 승부를 치르려던 ‘산’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간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는 맹수 퇴치 작업으로 최소 150마리의 조선 호랑이를 사살했다. 당시 일본은 식민지 경영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를 들어 우리나라에서 야생의 맹수를 말살하려고 했다. 소설은 이러한 역사적 배경이 스며 있다. 경성 시민에게 백호는 영물이고, 산신령이다. 그래서 백호가 창경원에 갇혀 있는 동안 민중은 함께 눈물을 흘린다. 이를 두고 일본은 불순하다고 탄압한다. ‘히데오’에게 흰머리는 들짐승일 뿐이다. ‘히데오’는 호랑이 토벌을 하는 ‘해수격멸대’의 대장으로 조선총독부의 조종을 받고 있다. 그리고 흰머리를 일본으로 데려가려 한다.

소설 속의 이러한 이야기 전개는 민족 감정도 자극한다. ‘산’과 ‘히데오’의 대립은 단순한 호랑이를 두고 일으키는 갈등이 아니다. ‘산’이 겪는 어려움은 나라 없는 백성의 슬픔이다. ‘산’을 비롯한 조선인은 이유 없이 일본인 군인 ‘히데오’에게 무시당하고 탄압을 받는다. 호랑이를 잡은 사람은 ‘산’과 ‘쌍해’ 등이지만, 신문에는 이들의 이름은 보이지 않고 ‘히데오’와 그의 부하들이 영웅으로 부각된다. ‘히데오’의 횡포는 정복자의 만행이다.

‘주홍’도 일제강점기가 낳은 슬픈 인물이다. 그녀는 당돌하고 매력적인 호랑이 학자지만, 외로움과 평생 벗하고 살 수 밖에 없는 비극적 운명의 여인이다. 그녀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조선인으로 도쿄 유학파다. 사회운동가로 조선에서 계몽운동 등을 했지만 돌림병에 유명을 달리했다. 그녀는 아버지의 동기생인 총독 아저씨의 외동딸로 키워졌다. 이름도 조선 이름을 잃고 ‘미츠코’라고 불렸다. 그녀는 양부모 밑에서 함께 외국 여행을 하며, 부유하게 살았다. 그러나 그녀는 낯선 곳에서 늘 허전한 삶을 살았다.

눈 덮인 ‘밀림’은 뼈를 깎는 추위가 휘몰아친다. 절대 강자와 싸우는 그 순간은 그야말로 ‘무정’의 공간이다. 목숨을 건 승부의 세계는 오직 사는 것과 죽는 것만 있다. 이 공간에 ‘주홍’의 ‘산’에 대한 사랑은 뜨거움이 있다. ‘산’의 거침없는 길을 함께하는 그녀의 애절한 사랑은 사건의 긴장감과 흥미를 더해간다.

‘주홍’은 ‘히데오’의 끊임없는 구애에도 불구하고 ‘산’을 택한다. 주홍은 오직 출세를 위해 흰머리를 쫓아다니는 ‘히데오’에게는 남자의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주홍은 진정한 승부를 겨루는 남자 ‘산’에게 매력을 느낀다. ‘산’은 가진 것도 없는 사냥꾼이다. 안락한 생활도 보장할 수 없는 떠돌이다. 주홍은 이러한 산의 모습에서 남자의 모습을 본다. 거대한 적을 쫓는 모습에서 뜨거운 매력을 느낀다.

우리 시대에도 누구에게나 적은 있다. 적을 쓰러뜨리기 위해서 바쁘게 일상을 뛰어다닌다. 이 소설은 남성들이 사는 목적이 무엇인가. 누구와 싸우는가를 자문하는 고민이 녹아있다. 이 소설은 ‘산’이라는 남자가 거대한 사회와 싸우는 삶의 기록이다. 그리고 야성이 넘치는 남자이야기다. 오직 승부를 찾아다니는 도전이 있다. 실제로 기자간담회에서 김탁환은 “지금 시대의 화두는 ‘진짜 적이 누구인가’라고 생각한다.”며 “적이 없는데도 적을 상정하고 이기려고 하는 모습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가장의 모습이며 가장들의 싸움을 그리고 싶었다.”고 책을 쓴 계기를 설명했다(한국일보, 2010년 11월 9일).

소설에서 ‘산’이 백호를 죽일 수도 있는데 마지막 순간 승부를 피하고 오히려 또 다시 새로운 승부의 길을 열어 놓는 역설적인 선택을 한다. 이 선택은 이해할 수 없는 측면이 있지만 오히려 소설의 구성을 선명하게 하는 면이 있다. 이 장면은 공정한 싸움의 의미를 강조하기 위한 구성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싸움만 있고 승부는 없다. 싸움은 비열하고 치졸하다. 싸움은 공정하지 못하고 타인을 넘어뜨리기 위한 술수만 있다. 싸움은 룰이 없고, 상처만 남는다. 하지만 승부는 정정당당함이 있다. ‘산’의 선택은 이러한 정정당당한 승부를 하기 위함이다.

‘산’과 ‘주홍’의 로맨스는 소설의 대미를 장식한다. 사건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는 없었지만, 소설 마지막 부분의 ‘에필로그’는 둘의 사랑이 쉽게 연상된다. 소설의 시간은 2010년으로 흘러온다. 주 회장은 일본 최고의 아이티(IT) 회사를 세운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는 호랑이 연구가인 미혼모의 외아들이다. 즉 그는 ‘산’과 ‘주홍’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다. 그가 북한에 입국한 것은 그의 아버지 ‘산’의 흔적을 찾아온 것이다. 그곳에서 아버지 ‘산’과 어머니 ‘주홍’의 애틋한 사랑을 확인한다.

작가는 1940년대 개마고원의 설경과 원시림 속의 고요를 영상을 보여주듯 그려내고 있다. 작가의 섬세한 글쓰기는 개마고원의 설원만큼 아름다운 빛을 낸다. 한반도의 지붕 개마고원에서 약육강식하는 동물 세계도 눈을 못 떼게 하는 영상이 그려진다. 21세기에 얼어붙은 백두산 골짜기에서 호랑이와 대결하는 ‘산’의 모습과 일본 군대를 습격한 호랑이의 모습은 색다른 경험의 공간이다.

소설을 덮는 순간 나는 이토록 재미나는 이야기를 펼친 작가의 노력에 대해서 생각했다. 어떤 소설이 재미있고 잘 되었다고 느낄 때는 역시 뛰어난 작가가 있기 때문이다. 김탁환은 이번 소설을 위해 대학 교수직을 버렸다. 세칭 안정된 직업을 버리고 새로운 모험을 한 것이다. 그리고 숱한 자료와 역사서를 탐독하고 완성품을 만들어냈다. 김탁환의 이번 작품은 안일과 편안함에 따르지 않고 온전한 작가의 길로 들어서는 남성다운 배포가 만들어낸 작품이다.

소설만이 아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에서 최고가 되는 길은 절대적 명제가 동반되어야 한다. 진정으로 원하는 단 한 가지를 가지려는 인생은 그 무엇보다 아름답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찾지 못하고 이리저리 방황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무엇을 쫓아다니고 기웃거릴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결정으로 자신의 인생을 선택하라. 자신의 선택에 의해 남아 있는 상처는 아물지 않아도 아프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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