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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칼럼

EBS의 성공,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보도에 의하면, 전국의 고3 수업 시간에 절반이 EBS교재를 활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9월 24일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임해규(한나라당) 의원이 전국 15개 시도교육청(경기도 제외)으로부터 제출받은 결과다. 이 현황에 따르면 2011년도 전국 고등학교 3학년 정규수업에 EBS 교재를 사용하는 학교가 조사 대상 1,866개교 중 50% 정도다. 두 곳 중 한 곳은 EBS 교재를 사용한다는 말이다.

영역별로 살펴보면, 외국어영역은 51.7%(960개교), 언어영역은 51.4%(954개교), 수리 48.0%(891개교)로 중요 과목의 활용도가 비교적 높았다. 뿐만 아니라 사회탐구 45.3%(841개교), 과학탐구 41.8%(775개교)로 전교과 시간에 EBS 교재를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통계는 놀랄 일이 아니다. 교육당국은 사교육 절감 대책으로 ‘EBS 강의 수능 70% 연계 출제’ 방침을 수시로 밝혔다. 금번 9월 모의평가 때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정부의 사교육비 경감 정책에 부응하기 위해 EBS 수능 교재와 연계를 강화해 출제했다고 재차 확인했다. 당시 평가원은 언어영역이 76%로 가장 높은 연계율을 보였으며, 수리 가·나 70%, 외국어(영어) 70%, 사회탐구 70.9%, 과학탐구 70%, 직업탐구 70.6%, 제2외국어·한문 70% 등의 연계율을 유지했다고 말했다. 따라서 금번 통계는 성공한 정책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규 수업 시간의 EBS 교재 사용 통계는 씁쓸한 현상이다. 전국의 수험생이 학교 수업은 소홀히 하고, 천편일률적으로 EBS 교재 문제 풀기에 매달리고 있다는 뜻이다. 극단적으로 말해 학교의 교육이 입시위주의 문제풀이로 변했다. 교육적 특색도 없고, 개성도 없다. 교실에서 학생의 창의력은 물론 교사의 역할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EBS에 집중은 공교육을 살리기 위한 것이라고 했지만, 결국은 공교육을 해치는 꼴이 되었다. 교육 방송도 마찬가지다. 이는 주입식, 획일적인 훈련에 지나지 않는다.

EBS 방송으로 사교육을 잡겠다는 의지도 빗나갔다. 과거에 EBS와 연계된 문제는 영역을 가리지 않고 상당수가 매우 어려웠다. 수리는 과목 특성상 연계 효과가 제한적이어서 어려움이 더했다. 그러면서 학생들은 EBS 교재 공부를 위해 학원을 찾기도 한다. EBS 교재를 활용하면 사교육비가 줄어들 것이라던 당초 기대와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지금 고3 교실에서 교과서나 수업 노트로 공부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여타 참고서도 필요 없다. 전 과목 EBS 실전모의고사만 있으면 해결이 된다. 참 편리하고 간결해서 좋다.

수업은 교과서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선생님의 수업 노트가 빛을 내야 한다. 목표가 대학에만 맞춰져 있으면 생각을 확장시켜 줄 수 없다. 학습은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도 중요하다. 학습자 스스로가 학습의 참여부터 목표 설정 등 자발적 의사에 따라 선택하고 결정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참고서도 마찬가지다.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것보다 학습자가 선택하고 스스로 완벽하게 소화하는 능력도 키워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은 부지런하고 두뇌는 뛰어나지만, 스티브 잡스같은 창조적 인재가 나오지 않고 있다. 왜 그런가. 수능 시험 문제 풀이에 익숙한 학생은 결국 대학에서도 달달 외우는 공부만 한다. 성실해서 학점도 최고다. 아이폰을 만든 스티브 잡스는 그렇게 만들어진 인재가 아니다. 그는 컴퓨터만 잘하지 않고 다양한 공부를 하러 다녔다. 그는 예술가이자 전문가이자 공상가였다. 그는 학문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창조성을 기반으로 새로운 세계를 개척했다. 인류가 무엇을 원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도전했다.

21세기 필요한 인재는 창의성을 지닌 복합형 인재다. 다수 영역의 지식을 갖추고 그것을 현실 문제 해결에 창의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인재여야 한다. 창의성을 지닌 복합형 인재는 고차적 사고와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길러진다. 문제를 제기하고 스스로 해결하는 능력, 그리고 대화와 토론 등을 통해 자기표현에 능통한 사람을 길러야 한다.

작년에도 수능 시험이 끝나고 아이들은 EBS 수능 교재를 쓰레기 치우듯 버렸다. 아이들은 교과서는 버리면서 아까워했다. 혹시 대학에서도 볼 수도 있다고 보관하는 아이도 있다. EBS 수능 문제집은 미련을 두지 않았다. 아무 쓸모없는 책이다. 수능 연계 출제라니 울며 겨자 먹기로 가지고 있었다.

교육 당국이 학교 교육 정상화라는 대승적 차원에서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왔다. 합리적 기준도 없는 70% 연계 출제 방침부터 버려야 한다. 일방적으로 비율을 정해 놓고 압박을 주는 것은 교육 당국의 태도가 아니다. 그리고 EBS 교육방송의 성공으로 공교육이 위축되는 것은 심각한 현상이다. 그것이 사교육비를 절감시키는 길이라고 해도 다시 점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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