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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산타할아버지 하면 생각나는 것이 크리스마스 전날 하얗게 내린 눈 위로 눈썰매를 타고 굴뚝으로 들어와 착한 아이들에게 선물을 안겨주는 할아버지로 인식돼 있다. 대체적으로 어릴 때는 진짜 산타할아버지가 와서 주는 것으로 알고 양말을 벽에 걸어두기도 하고, 머리맡에 두고 기대에 부푼 선물로 오지 않는 잠을 청하기도 한다. 이 당시에 산타의 선물로 착한 일을 얼마나 하였는지 반성을 하기도 하는 것이다. 성탄 날 산타할아버지가 주고 간 선물을 보고, 마음에 흡족한 아이들은 내년에는 더욱 열심히 착한 일을 해야겠다고 다짐을 하며, 조금 부족한 아이들은 더 착한 일을 많이 하여야겠다고 다짐을 하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 아이 키울 때도 해마다 연례행사로 산타의 선물은 행해져 왔다. 그러다가 초등학교 중학년이 되면 스스로 깨닫게 되지만 그래도 아이들은 얼마나 꿈에 부풀어 기다리는 순간들인가. 뒤 늦게 산타의 선물이 엄마 아빠에 의해 주어진다는 선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지라도 어릴 때의 순수함과 기다림으로 마냥 그리워하며 거짓말일지라도 산타의 선물을 부정하지 않는 것이다. 이 꿈이 깨어지게 되면 아름답고 그리운 동심의 크리스마스는 하나의 꿈과 즐거움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크리스마스가 와도 신비한 느낌이 없어지는 것이며, 아름다운 산타에 대한 그리움을 잊어버리는 것이기에 삭막한 크리스마스로 단지 종교 단체의 성탄축하의 날로 기억되고 마는 것이다.

산타 할아버지의 꿈을 잃어버리면 행사 위주의 산타로, 이벤트성 산타로, 상업성 산타로 보이기에 별 흥미가 없는 것이다. 어떤 때에는 언론을 통해 단체 산타가 불우이웃을 돕는 행사로, 아니면 백화점에 상업용 및 홍보용 산타로, 바쁜 부모를 대신해 주는 산타로 아니면 크리스마스 행사에 대신해 주는 산타로 각광을 받으며 이제는 완전히 상업적 산타로 전락하여 신비함이 없어진 1회용 인스턴트 식품처럼 의례적인 산타로 인식되기 마련이다.

얼마 전에 병설학교 유치원 선생님이 산타할아버지 역할을 의뢰해왔다. 나는 언제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면 심사숙고하지 않고 대체적으로 거절을 하지 않는 편이다. 나의 승낙을 듣고 무척 기뻐하던 모습이 엊그제 같은데 오늘이 크리스마스 산타축제를 하는 날이란다.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하였더니 아이들에게 부모님들이 원하는 것을 선물에 붙어 있는 쪽지에 쓰인 내용을 보고 산타할아버지처럼 큰소리로 칭찬도 하면서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면 된단다. 특히 처음 아이들과 만날 때 산타할아버지 분위기가 잘 나타나도록 연기해주길 부탁하는 것이다. 나는 원래 여러 사람 앞에서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편이지만 최대한 노력을 하여 아이들이 실감나게 해 주어야겠다는 다짐을 하였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나는 유치원사무실로 갔다. 거기에는 빨간 산타복과 모자, 수염, 신발이 있었다. 나의 체구가 통통하여 잘 맞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이 산타의 복장이 내 체구와 비슷한 사람이 입는 모양이다. 제대로 잘 맞았다. 거울을 보고 싶었다. 그러나 아이들이 가까운 교실에 있어서 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코 밑 하얀 수염과 턱수염이 연결되어 있는 선을 귀에 걸었다. 유치원 선생님이 너무나 잘 어울린다며 칭찬을 해 주었다. 다시 한 번 내가 해야 하는 멘트를 또 물어 보았다. 하여튼 최대한 실감나게 하면 된다는 것이다. 공연히 마음이 두근그렸다. 40여년을 아이들 앞에서 수업을 하였던 내가 이런 모습으로 유치원 아이들 앞에서 실감나게 연기를 해야 한다는 점에서 공연히 위축이 되는 것이다.

교실로 들어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나는 얼굴에 미소를 마음껏 지으며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꼬맹이들의 까만 눈동자가 일시에 나에게로 쏠렸다. 나는 순간적으로 손을 흔들며 “메리! 크리스마스” 하면서 들어갔더니, 아이들도
“메리 크리스마스” 합창을 한다.
“어린이 여러분 여기가 00초등학교 병설유치원 맞지요?”
“예, 맞아요. 산타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안녕? 반가워요. 으~음 여기 앉아서 우리 착한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어야겠구나.”

나는 준비된 의자에 앉아서 아이들을 둘러보았다. 아이들은 신기한 듯 내 모습을 하나하나 뚫어지게 살펴보고 어떤 선물을 줄 것인가 궁금해 하고 있었다.
“나는 오늘 우리 유치원 어린이들이 너무나 착한 일을 많이 하고, 선생님 말씀 잘 듣고, 부모님 말씀을 잘 듣는 것을 알고 선물을 주기 위해 왔어요. 이제 이름을 부르는 어린이들은 차례대로 이 산타할아버지에게 오세요.”

차례대로 아이들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부모님이 바라는 내용을 슬쩍 읽어보고 산타할아버지가 칭찬과 부탁을 하면서 선물을 나누어 주니 아이들은 너무나 신기해했다. 왜냐하면 집에서 하는 일과 잘하는 일 부족한 일, 앞으로 바라고 싶은 일을 그대로 정확하게 말해 주니 아이들은 신기하기도 할 것이다. 내가 선물을 주고 나면 선물에 붙어 있던 쪽지는 선생님이 아이가 들어갈 때 아무도 모르게 슬쩍 떼어내기 때문에 감쪽같이 속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이들이 조금 지루할 것 같으면 산타할아버지가 노래를 듣고 싶다며 부탁을 하면 너무도 귀엽고 신나게 부르는 것이다. 실은 내가 봉사활동을 하러 온 것이지만 아이들의 순진하고 진지한 모습을 보니 나 또한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 행복한 시간을 맛보게 된 것이다.

아이들과의 선물 전달시간이 끝나고 산타할아버지와 사진 찍는 시간이 되었다. 모두가 행복한 모습으로 사진을 찍는 모습이 귀엽기만 하다. 단체사진과 개인 사진을 찍고 꼬맹이들은 교실로 돌아갔다. 오늘 산타할아버지 역할을 너무 잘 하시고 도와 주셔서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이 한 아이가 들어왔다.

“산타할아버지!, 아무리 밖에서 찾아보아도 할아버지가 타고 온 썰매가 보이지 않아요? 썰매 어디다 두셨어요?”
“오! 그래, 아이들이 만지고 장난칠까봐 아이들이 보지 않는 곳에 두었단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단다.”
“산타할아버지 내년에도 또, 오세요. 안녕히 가세요.”하며 뒤돌아 가는 아이의 모습에 미소가 지어졌다.

글쎄 내년에도 올 수 있으려나. 내년 8월이면 정년퇴직인데, 산타할아버지 역을 하면서 꼬맹이들을 위한 봉사활동으로 모처럼 순수한 동심의 세계에서 젖어 보았다는 점에서 산타의 선물은 아이들이 아니라 바로 내가 받은 것이다.

“메리크리스마스! 성탄을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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