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랜만에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심어준 뜻 깊은 하루였다. 내가 담임을 맡고 있는 상당초 4학년 2반 어린이들이 청주삼백리의 미테재 생태문화답사에 참여했다. 청주삼백리는 산길, 들길, 마을길을 걸으며 내 고장의 산줄기와 물줄기, 역사와 문화를 살펴보고 있는 답사모임이다.
약속 시간에 맞춰 출발장소인 학교로 갔다. 매일 보는 아이들이지만 휴일인 토요일에 색다르게 만나니 반갑다고 우르르 몰려온다. 참석인원을 확인하니 우리 반 아이들 19명과 학부모 1명에 다른 반 아이들 3명까지 23명이나 된다.
안내장을 가정으로 보내며 답사를 안내할 때 참여하겠다는 아이들이 많았고, 몇 명은 오늘의 행사를 손꼽아 기다렸다. 하지만 고학년을 대상으로 행사를 계획했다가 우리 반만 참여하는 것으로 축소되며 참석자를 적게 예상했기에 담임을 믿고 아이들을 보내준 학부모님들이 고마웠다.
학교를 출발하자 가방을 둘러멘 아이들은 멀리 여행이라도 떠나는 양 신이 났다. 10여분 걸어 아파트단지를 벗어나니 평화로운 농촌 풍경들이 기다린다. 산더미처럼 쌓인 폐휴지, 빨랫줄에 걸린 옷, 발자국 소리에 놀라 흙탕물을 만들며 벼 포기 사이로 숨는 올챙이 등 도회지 아이들에는 모두가 새롭다.
운동교를 건너자 기다리고 있던 청주삼백리 송태호 대표, 충청일보 박광호 국장, 시낭송가 권금주 숲해설사가 아이들을 반갑게 맞이한다. 가까운 곳에 그냥 지나치기 쉬운 비선거리 표석이 있다. 비석이 서있는 거리를 뜻하는 비선거리를 걸어 양수척효자비로 갔다.
송태호 대표가 그 당시 최하층 신분이었던 백정 중 전국에서 최초로 효자비를 받은 양수척에 대해 설명했다. 양수척은 조선 성종 때의 인물로 젊어서 망나니짓을 하다가 효촌에 살던 경연 선생의 효성에 감명 받아 효자노릇을 하는 새로운 사람으로 변했다. 좁은 길가에 방치되고 있는 효자비의 앞면에 '孝子楊水尺之碑(효자양수척지비)'가 새겨져 있지만 판독하기 어렵다. 효자비 바로 앞으로 무심천의 지류인 월운천이 흐르고 청주에서 가장 높은 선도산이 가깝게 보인다.
효자비가 서있는 다다자연미술학교 주변에 노랗게 꽃을 피운 우산이끼가 지천이다. 권금주 숲해설사가 솔이끼와 우산이끼의 차이점을 알려주고 담쟁이 잎을 호박꽃으로 아는 아이들에게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를 들려줬다.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월오교 못미처에서 오른쪽 좁은 길을 따라가면 대로변에 청남경찰서가 있는 목련로다.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만져보는 게 산교육이다. 아이들은 호기심이 많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길가의 꽃이나 나무의 이름을 물어보기도 하고, 솔잎이 두 개면 우리 소나무ㆍ세 개면 외국에서 들어온 리기다소나무ㆍ다섯 개면 잣나무라는 것을 배운다.
힘차게 발걸음을 내딛던 아이들이 자꾸 목적지를 물어온다. 몇 명은 얼굴을 찌푸린 채 힘들어한다. 부모님과 놀이공원에 갈 것을 괜히 왔다는 불만도 들려온다. 휴일에는 집에서 편히 쉬고 싶다는 것을 왜 모를까. 부모님과 같이 왔더라면 벌써 포기하고 집으로 향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척 소기의 목적을 이루려면 어렵고 힘들어도 참아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친다.
청남경찰서의 담장에 장미꽃이 예쁘게 피었다. 꽃을 보자 아이들의 발걸음이 힘차다. 소풍날 기분을 내며 목련로를 걸어 풍차송어장 방향으로 접어든다. 작은 밭에서 자라고 있는 고구마와 완두콩을 관찰하는 시간도 가졌다.
풍차송어장 왼쪽의 산길이 청주와 보은을 이어주던 미테재 옛길이다. 옛길의 초입에서 숲의 주인은 산속에 살고 있는 동식물이므로 산에서는 손님으로서의 예의를 지켜야 하고, 아카시아의 정확한 이름 아까시나무가 '아, 까시야!'를 연상시킨다는 것도 배웠다.
평지의 도로는 땡볕이라 무더웠지만 숲길은 그늘 때문에 시원하다. 옛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오솔길과 밤꽃 향기가 진동하는 숲이 아이들의 마음을 연다. 힘들다고 엄살을 피우는 아이도 있지만 대부분은 숲길을 걸으며 대화를 나누고 오디와 산딸기를 맛보느라 즐거워한다.
중간에 휴식을 하며 송태호 대표에게 월운천에 살던 힘센 장사가 한 걸음에 건너뛰었다는 장수바위와 물방울이 퐁퐁 솟아나는 옹달샘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녹색의 보호색으로 나뭇잎에 앉아있어 눈에 띄지 않는 곤충들을 관찰하고, 녹색세상이 만든 아름다운 풍경을 구경하며 미테재 정상에 도착했다. 사람들의 왕래가 끊어지며 이곳에 있었다는 주막은 사라지고 오가던 사람들의 소원이 담긴 서낭당의 돌무더기도 허물어져 볼품이 없다.
길거리의 그늘에 앉아 점심을 먹었다. 먼 길을 걸어오느라 고생했고, 야외에서 먹는 점심이 꿀맛이다. 음식투정은 커녕 친구 것까지 탐내 웃음바다로 만든다. 청주삼백리 회원들이 나뭇가지로 만든 피리연주를 들려주고 인스턴트식품과 1회용 물품은 사용하지 말자는 의미에서 추억의 옛날 도시락을 보여줬다.
점심을 먹은 후 미테재와 서낭당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길게 줄서 기념촬영을 하고 왔던 길을 되돌아 걷는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다. 점심도 먹었고, 내리막길이 이어지니 힘이 난다. 시키지 않아도 콧노래가 합창이 되며 흥을 돋운다. 이날 화창한 날씨보다 더 밝고 활짝 핀 꽃보다 더 예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미테재 옛길에 크게 울려 퍼졌다.
미테재를 내려서기 전 권금주 숲해설가에게 심순덕의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시낭송을 부탁해 부모님의 고마움을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했다. 시낭송 끝 무렵의 방귀소리가 아이들을 웃음바다로 만들었지만 그 덕분에 추억남기기는 제대로 했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서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 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미테재 입구 풍차송어장에서 여러 가지 동물들을 구경하고, 큰 물레방아와 연꽃이 활짝 핀 연못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남겼다. 길가에 꽃피운 개망초로 꽃다발을 만들고, 몇 명은 개망초로 만든 월계관을 머리에 쓰며 환하게 웃었다.
자연과 접하면서 하나라도 더 보여주려고 지름길 대신 논두렁길을 택했다. 꽤 오랜 시간을 걸어 운동장 옆 정자에 도착했다. 약속한대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줬더니 쌓인 피로가 풀린단다. 4학년 꼬마들이 8㎞가 넘는 거리를 걸었으니 큰 고생길이었다. 오죽하면 일기장에 '산 넘어 산이 있었다.'고 쓴 아이도 있다. 그래도 2명의 어린이를 제외한 나머지 어린이들은 이런 답사라면 또 참석하겠다고 답했다.
"행사에 참여한 어린이들은 불과 50여년 전만해도 청주의 주요 교통로였던 옛길을 오가며 느림을 배우고, 월오동의 양수척효자비에서 옛 사람들의 부모공경을 깨우치고, 길가의 야생화에서 작고 적은 것이 소중함을 발견하고, 녹색세상을 만든 숲속에서 자연의 위대함과 호연지기를 키우고, 나무 그늘에서 부모님이 싸준 점심을 먹으며 가족의 고마움을 생각하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입니다. 이번 답사를 통해 많은 어린이들이 자연과 가까이 하면서 옛 것이 소중함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역사나 자연은 관심만큼 보인다. 목표가 뚜렷하면 힘이 들어도 '하하호호'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안내장에 써있는 것과 같이 현장체험학습이 알차게 이뤄진 이번 답사가 오랜 추억으로 남을 테고,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 것이기에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또 추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끝으로 일정이 바쁜 토요일임에도 아이들을 위해 봉사해준 청주삼백리 회원들과 휴일날 아이들을 보내주며 적극적으로 협조해준 부모님들에게 감사함을 전했다. 아이들에게 좋은 경험을 시켜줘 고맙다는 부모님의 메시지에 피로가 눈 녹듯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