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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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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강마을 편지 - 원추리 화단, 그 처절한 생존 경쟁의 현장


아침 나절 화단의 아파트 앞 화단의 잡초를 뽑았다. 말라가는 초롱꽃대를 잘라 정리를 하였다. 작년에는 수많은 초롱꽃이 초롱초롱 종소리를 내듯 아름답게 피어났었다. 진보라, 연보라, 흰색의 꽃초롱이 화단에 가득하여 참 아름다웠다. 그런데 올해는 꽃대가 훨씬 적다. 꽃밭의 안주인으로 화사한 자태를 한껏 뽐내듯 무리지어 피는 초롱꽃이 은퇴를 앞 둔 여배우의 모습이다.

올해 눈에 띄게 줄어든 초롱꽃 무리와는 다르게 늘어난 꽃무리를 보이는 것이 원추리이다. 몇 년 전 화왕산의 계곡에 핀 원추리 한 포기를 옮겨 두었더니, 해마다 노오란 꽃을 몇 송이씩 참하게 피웠다. 꽃 핀 자리마다 씨앗이 맺히더니, 어느새 원추리가 화단 여기저기에 많이 돋아나 있었다. 꽃밭의 주인 행세를 하던 초롱꽃이 자리를 내어주기 시작한 것이다. 그 자리에 원추리가 있다. 새로운 은막의 스타가 막 등장하듯 그렇게 무수한 꽃대를 올리기 시작한 것이다. 며칠 후면 원추리꽃이 화사한 연회복차림으로 레드카펫에 등장하여 쏟아지는 플래시세례를 즐기는 신성이 될 것 같다.

생태계의 법칙은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 또한 살아남은 자가 또한 강한 자이다. 여릿여릿 보이는 작은 풀꽃 하나도 살아남기 위한 전략을 세운다. 꽃다지와 봄까지꽃과 광대나물들은 새봄이면 누구보다 먼저 손톱보다 작은 꽃을 피운다. 봄눈이 미처 녹기도 전에 살기등등하던 겨울이 기세를 꺾어 버릴 즈음이 되면 어느새 볕바른 양지에 노랗고 붉은 작은 꽃을 피우는 것이다. 키큰 떨기나무는 그 큰 덩치 때문에 봄을 준비하는 기간이 아무래도 길다. 하지만 몸 가볍고 부지런한 풀꽃들은 부지런함을 무기로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것이다. 스스로 더 강하게 진화하여 키 큰 나무들이 본격적으로 성장을 시작하기 전, 하얀 봄눈 사이로 눈을 녹이며 피어나는 노란 복수초의 처절한 아름다움은 우리들을 언제나 감동시킨다.

여름화단은 이제 원추리 세상이다. 그 옆 울타리에는 작년에 옮겨 심은 루드베키아도 피었다. 학교 화단에 있는 멕시코해바라기라 불리는 여름꽃을 심어 두었더니 올해는 제법 이글이글 정열적인 얼굴이 강렬한 인상을 준다. 북아메리카 원산의 루드베키아는 아무 곳에서나 잘 자라 영역을 넓히는 꽃이다. 올해는 원추리가 꽃밭의 주인 행세를 시작했지만, 내년에는 이 작은 화단의 패권을 루드베키아와 다툴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지금은 많은 것을 가진 젊고 튼튼한 젊은이이지만, 언젠가 나보다 더 젊고 능력 있는 사람이 나타나면 이 자리를 물려주어야 할 것이다. 그 때 나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할까? 평소 타인의 아픔 따위를 무시하고 나의 기쁨을 향해 달린다면, 얼마나 슬픈 모습으로 퇴장을 하여야할까를 생각한다. 지금 내 곁의 소중한 사람과 눈을 맞추며 마음의 평화를 가진다면 그 때 나는 외롭지도 아프지도 않고 고요할 것이란 생각을 한다. 나는 자연의 한 귀퉁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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