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교육청이 중‧고교생들에게 교복을 무상 지원하기 위해 오는 9월 열리는 강원도의회 임시회에 ‘강원도 학생 교복비 부담 경감을 위한 지원 조례안’을 상정키로 했다는 보도이다. 중‧고교 신입생 전원인 3만 3,000여명 모두에게 1인당 20만원씩 교복비를 지원하는데 약 65억원의 예산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이번 강원교육청의 ‘무상교복’ 추진은 무리한 무상 교육복지 시리즈로서, 학교기본운영비를 잠식해 학생들이 찜통교실, 석면교실, 비 새는 교실에서 고통받고, 교수학습자료 구입과 학습체험 등 수업활동이 위축되는 현실을 외면한 채 되레 이를 더 가중시키는 무책임한 포퓰리즘 정책이다.
아울러 내년 6월 지선(地選)인 교육감 선거를 겨냥한 전형적인 선심성 정책이라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는 점에서 즉각적인 철회를 촉구한다. 특히, 강원도 내 시‧군들이 무상급식 분담액이 부담스러워 도교육청에 삭감을 요구하며 다툼을 벌이는 상황에서 나몰라라 무상교복까지 추진하는 것은 세수 감소에 따른 지자체의 재정난을 무시하고, 나아가 ‘도교육청 재정은 여유롭다’고 밝히는 앞뒤가 안맞는 처사이다.
최근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는 무상급식, 무상보육, 등 무상 교육복지와 노후교실 개‧보수, 비정규직 처우개선 등에 들어가는 천문학적인 예산을 빚더미 시도교육청 재정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며 교부금 교부율 3%p 인상을 정부와 국회에 요구하는 ‘호소문’을 발표한 바 있다. 또한 전국 각급학교는 찜통교실을 해소할 냉방 전기요금조차 충당하기 어려워 급기야 수백개 학교가 개학을 연기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호소문 발표와 개학 연기까지 초래한 열악한 교육재정은 무상교복 조례 추진으로 한 순간에 그 진정성을 의심받게 될 지경이다.
사실 2012년 시도교육청 평가에서 강원교육청은 기초학력미달 비율, 고교 학생 학업중단 비율, 학교체육활성화 비율, 특성화고 취업률, 교과교실제 활성화, 방과후 학교 취약계층 지원, 방과후 학교 활성화 등 7개 항목에서 최저 등급인 ‘매우미흡’ 평가를 받았다. 초등 돌봄교실 무자격 강사 비율은 17.5%로 뒤에서 두 번째로 열악히다. 무상교복 지원 방안 추진보다 더 화급한 재정지원 사업이 없는지 되돌아봐야 할 대목이다. 특히 강원교육청은 무상급식 추진조차 벌써 도교육청과 기초 지자체가 분담액 비율을 놓고 파열음을 내고 있어 교육재정 부담이 더 가중될 전망이다.
최근 강원도내 시장군수협의회가 강원도교육청에 무상급식에 필요한 예산 중 시·군이 부담해야 할 비율을 더 낮춰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춘천시는 아예 지난 19일 초·중학교 무상 급식에 필요한 예산에 소요되는 자체 재원 29억원 중 인건비 9억8800만원을 부담할 수 없다고 발표했다. 무상급식 추진조차 불투명한 상황에서 무상교복 지원을 추진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결국에는 재정난을 겪는 지자체를 기만하는 조치다.
올해 전국의 학교는 에너지와의 전쟁, 전기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에너지와 전기 절약에 온 국민이 한 마음 한 뜻으로 난국을 헤쳐나가고 있다. 또 폭염으로 인한 전기료 부담이 우려돼 전국의 각급 학교가 개학을 연기 중이다. 학교 기본운영비도 턱없이 부족한 데 입학생 전원에게 교복 무상 지급을 추진하려는 정책 방안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우선 순위를 잘못 정한 사태인 것이다.
사실 많이 양보를 해 무상교복 지원을 동의한다고 해도 그 폭은 전원이 아니라, 기초생활 수급자, 차상위 수급자, 소년소녀 가장, 다문화 가정, 장애인, 한 부모 가정의 자녀 등 사회적 배려 대상 계층에게 우선돼야 한다. 선별적 복지에서 보편적 복지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게 진정한 복지의 방향인 것이다.
포퓰리즘에 터한 무리한 무상 교육복지 정책들은 결국 학교 재정을 압박해 도리어 가장 기본적인 교실복지와 후진적 공교육을 방치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무상교복 추진에도 결국 다른 시급한 교육 예산의 희생이 따를 것이다. 솔직히 우리나라 현실에서 무상 교복 지원 이전에 더 시급한 것이 열악한 교실 수업여건 등 학교살리기 정책임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그럼에도 무상교복 지원 조례를 무리하게 추진하는 것은 내년 선거를 의식한 선심성 포퓰리즘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만약 그런 저의가 있다면 더욱 빨리 이 조례를 철회해야 옳다. 도민들을 일시적으로 속일 수 있을지라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는 것이다.
잘못된 정책은 조속히 철회하는 것이 능사이다. 하루빨리 강원도교육청은 무상교복 지원 조례 추진을 철회해야 한다. 특히 이번 강원도교육청의 일탈적인 조례 추진이 타 시도교육청의 향후 조례 이안과 정책 추진에 전례가 된다는 점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만약 전기(前記)한 대로 이번 강원도교육감의 무상교복 지원 조례 추진이 음성적으로 내년도 교육감 선거를 지향하는 것이라면 향후 도민들로부터 냉정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건전한 조례, 정책 등의 추진으로 도민들의 지지를 받는 것이 정도이지 형편도 안 되는 여건에서 무조건 퍼주기식 포퓰리즘으로는 일시적 눈가림을 가능할 지 몰라도 궁극적으로는 일탈적 목적을 성취할 수는 없는 것이다.
결국 사회복지 차원에서 교육 관련 지원도 선별적 복지에서 보편적 복지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국민적 요구는 무한하고 방대하지만, 예산은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호사가들은 북유럽의 스칸디나비아 제국의 복지를 이상향으로 내세우지만, 당해 국가들과 우리나라의 담세율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
흔히 복지를 얘기할 때 마다 전가의 보도처럼 인용되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무상’이라는 말은 참 좋은 말이다. 세상 사람 중에서 무엇이든 무상, 무료로 준다는 것을 마다할 사람이 있겠는가? 보편적 복지의 함정은 거기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담세 없는 복지 포퓰리즘이 국가의 흥망을 좌우한 사례를 심심찮게 목도하고 있다. 예산 지원이 없는 포퓰리즘은 위험한 것이다.
가령, 피자 8쪽을 8명의 사회적 배려 대상층이 먹을 때에는 1인당 한 쪽씩 먹을 수 있지만, 그 8쪽을 사회적 배려 대상층 8명, 일반 국민의 자녀 8명 등 16명이 먹을 때에는 1인당 반 쪽씩 먹게 된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어려운 계층에 부여될 혜택이 박탈되는 역(逆 ) 사회복지화를 경계해야 하는 것이다. 사회적 배려 대상층 자녀들에게 돌아갈 복지 예산이 그렇지 않은 일반 국민의 자녀들에게 돌아간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절대 안 된다.
분명히 복지는 감언이설로는 안 된다. 예산을 생각치 않고 무조건 퍼주는 것이 아니다. 예산의 범위 내에서 반드시 필요한 사람부터 혜택을 주고 그 범위를 점차 넓혀 가는 것이 진정한 복지의 방향이고, 나아가 올바른 행정인 것이다.
현재 박근혜정부도 공약을 추진하기 위해 담세율에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공무원, 회사원 등 봉금생활자들의 ‘유리지갑’ 반발을 고려하여야 한다. 정책과 복지에 예산이 수반되지 않으면 공염불이다. 복지야말로 세계화 시대 모든 국가, 사람들이 지향하고 강조하고 있는 가치이자 덕목이다.
하지만, 외람되게도 그 복지를 위한 예산은 모두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나온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위정자들은 포퓰리즘으로 국민들을 현혹하지 말고 건전한 상식에 터한 정책으로 선별적 복지에서 보편적 복지로 서서히 나아가야 함은 자명한 일이다. 선심성 포퓰리즘이야말로 21세기 민주주의와 복지주의를 가로막는 최대 장벽이라는 지적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또 선별적 복지에서 보편적 복지로 나아가는 것이 현재 세계적인 복지 트렌드(trend)라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