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맞아 아침 일찍 길을 떠났다. 사진 찍기를 유난히 좋아하는 아내와 함께하는 여행은 늘 신선하고 가슴이 설렌다. 오전 여덟시. 서산을 떠난 우리의 애마는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달리다 9시30분쯤 서울 갈림길에서 영동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오토크루즈 컨트롤을 시속 100킬로미터로 설정해놓고 끊임없이 스쳐지나가는 아름다운 산야를 흥미롭게 감상한다. 유난히 습하고 무더웠던 여름이 이곳 강원도 접경으로 들어서자마자 이미 저만치 뒷걸음질을 치는 듯하다. 아니 오히려 세상은 온통 가을색으로 가득하다.
아, 좋다! ‘좋다’는 말 이외에 또 어떤 형용사가 더 필요하단 말인가. 핸들을 잡은 손은 가볍고 엉덩이는 들썩여진다. 조수석에 앉은 아내는 풍광이 바뀔 때마다 우와, 우와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다.
그랬다. 강원도로 가는 길은 정말 산세가 수려하다. 칼날 같은 능선과 능선이 겹쳐지며 푸른 녹음을 만들어내고 그 녹음은 다시 뭉게구름이 되어 능선을 타고 피어오른다. 산들은 녹음의 구름이요 녹음의 양탄자다. 겹쳐지고 포개어진 산세는 다시 하나로 흐르고 흘러서 영월로 집중된다. 세상의 그 어떤 솜씨 좋은 화가가 저토록 아름다운 풍경을 그려낼 수 있단 말인가.
청량한 강원도의 공기를 폐부 깊숙이 들이마시며 여행객은 불현듯 신선이 되고 시인이 된다. 일찍이 조선시대 송강 정철 선생은 강원도와 금강산의 풍광을 일컬어 중국의 ‘여산(廬山)’보다 낫다 하였거늘, 그 말이 과장이 아님을 이제야 확실히 알겠다.
‘처음’이란 단어는 늘 가슴을 설레게 한다. 첫사랑이 그렇고, 첫 출근이 그렇고, 첫 만남이 그렇다. 하루를 여는 신 새벽의 공기를 마시는 것처럼 신선함이 코끝을 간질인다. 과연 영월은 어떤 모습으로 이처럼 설레는 여행객의 마음을 충족시켜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차는 이제 문막 IC로 접어들고 있다. 연꽃잎처럼 이어진 산봉우리 사이로 흰 운무가 춤을 춘다. 운무는 푸른 봉우리만 외로이 남겨놓고 아득히 멀어져간다. 하지만 이내 또 한 무리의 운무가 야금야금 봉우리들을 먹어치운다. 숨고 도망치며 숨바꼭질을 반복하던 산봉우리는 이제 흰 구름으로 가득하다. 어느 것이 하늘이고 어느 것이 봉우리인지 분간하기조차 어렵다. 문득 조선시대 이매창의 시 한 수가 떠오른다.
걸어서 백운사에 오르니
절이 흰 구름 사이에 있네
스님이여, 저 흰 구름을 쓸지 마소
마음은 흰 구름과 함께 한가롭다오.
잠시 여주휴게소에 들러 유부우동으로 이른 점심을 먹고 다시 길을 떠나 드디어 영월군내로 들어섰다. 제일먼저 큼지막한 돌에 “하늘이 내린 살아 숨 쉬는 땅! 강원도”라 새겨진 이정표가 우리를 반긴다.
시원하게 뚫린 이차선 도로를 따라 우리의 거침없는 진군은 계속된다. 이름 모를 산야초들이 아기자기하니 정겹다. 단종께서도 이 길을 걸었을까 생각하니, 갑자기 비감이 어린다. 숙부에게 왕위를 강탈당하고 천리 길을 걸어 영월로 오던 단종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우리 같은 범인의 경지로는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착잡한 심정이었으리라. 그래서 그랬는지 영월 땅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모든 경치가 슬프도록 아름답다는 역설적인 생각마저 들었다.
우리 부부는 한가로운 길섶을 골라 잠시 차를 세우고 가녀린 구절초 한 송이를 말없이 바라본다. 이름 없는 들꽃이지만 저 처연한 자주색의 자태가 단종을 추모하는 듯하다. 어떤 꽃들은 울고, 어떤 풀들은 슬픈 표정을 짓는다. 그랬다. 영월은 돌멩이 하나, 풀 한 포기에도 단종에 대한 충심이 깃들어 있는 듯하다. 과연 충절의 고장답다.
점심때가 조금 지나서 드디어 청령포의 너른 주차장에 도착했다. 주차장에서 바라다 보이는 강 건너 저 곳이 바로 왕위를 빼앗기고 영월로 유배된 단종이 머무르던 곳이라고 한다. 비극의 현장답지 않게 원경으로 보기엔 참으로 수려한 풍광이다. 비취빛 강물이 둥그런 원을 그리며 유배지를 감싸며 흐르고 또한 단종이 머물렀다는 적소주변을 빽빽한 장송들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단종에 관한 비극적인 사건만 없었다면 천혜의 휴양지라 해도 손색이 없겠단 생각이 든다.
아내와 나는 우선 다른 관광객들을 따라 선착장으로 이동하여 ‘청령3호’라 쓰인 나룻배에 올랐다. 배를 모는 사공이 말하길, 적소(謫所)까지 가려면 삼면이 깊은 강물에 둘러싸여 이 배를 이용하지 않고는 출입할 수 없다고 한다.
여행객들은 대부분 초행길인 모양으로 전국 각지에서 골고루 모여든 듯하다. 배가 움직이자 이내 푸른 강물이 뱃전을 위협한다. 처음에 하찮게 생각했던 강물이었는데 막상 배가 물살을 가르자 꽤나 수심이 깊어 보여 사뭇 공포심이 인다. 정말 배가 없었다면 오도 가도 못하는 천혜의 고도인 셈이다.
그때 아내가 손에 들고 있던 새우깡 하나를 물속에 던지자 기다렸다는 듯이 피라미들이 순식간에 새까맣게 몰려든다. 저 물고기의 조상들은 단종의 용안을 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숙연한 생각이 든다. 열일곱 어린 나이에 천만리 떨어진 낯선 고도에 갇혀 바람과 구름과 새와 물고기만을 친구로 삼으며 하루하루 사약이 오기만을 기다렸을 단종의 공포가 떠오른다.
한 마리 원한 맺힌 새가 궁중을 나온 뒤로
외로운 몸, 짝 없는 그림자 푸른 산 속을 헤맨다.
밤이 가고 밤이 와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해가 가고 해가 와도 한(恨)은 끝이 없구나.
두견새 소리 끊긴 새벽 묏부리에 달빛만 희고
피 뿌린 듯 봄 골짜기에는 지는 꽃만 붉구나.
하늘은 귀머거리인가, 슬픈 하소연 어이 못 듣고
어찌 수심 많은 이 사람의 귀만 홀로 듣는가.
- 단종의 어제자규루시(御製子規樓詩) -
청령포에 들른 자, 그 뉘라서 통곡하지 않으리. 아내의 손을 잡고 청령포를 걷는다. 발걸음을 내딛자 땅속 저 깊은 곳에서 단종의 통곡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아, 556년 전의 비극이 다시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느낌이다. 나도 모르게 눈을 감는다.
어린 소년 단종이 흰 두루마기를 입은 채 어소주변을 걷고 있다.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하다. 한양에 두고 온 아리따운 아내(정순왕후)를 생각하는 모양이다. 길가에 핀 야생화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단종은 갑자기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낀다. 북받치는 설움에 통곡하는 것이리라.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아내의 고운 얼굴. 어린 아들을 두고 차마 눈을 감지 못하던 아버지 문종. 그리고 어여쁜 누나 경혜공주.
여기가 궁궐인가 착각하여 눈을 부릅떠보면 다시 섬이다. 이 넓은 백사장에 사람은커녕 단종의 마음을 알아주는 돌멩이 하나 없다. 그렇게 하루 종일 섬 안을 배회하던 단종은 어둠이 청령포를 깜깜하게 먹어치운 다음에서야 비로소 처소에 든다.
낮은 그럭저럭 지내왔지만 이제 찾아올 사람도, 찾아갈 사람도 없는 밤은 어찌 지낸단 말인가. 절대고독의 상황에서 슬픔과 두려움으로 몸부림치는 단종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어소 안에서의 단종의 생활은 서민들의 그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1457년 임금에서 노산군으로 낮추어진데다가 죄인의 몸으로 유배형까지 내려졌으니 지존의 존엄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주방시녀와 침방시녀만이 단종을 지켰으니 그 불편함이 오죽했으랴.
어소주변을 배회하다보니 일반상식으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장면이 눈에 띈다. 어소주변을 감싸고 있는 낙락장송들이 마치 사람이 절을 하는 모양으로 어소를 향해 굽어 있었다. 안내인의 설명을 들으니 소나무들이 모두 단종을 향해 절을 하고 있는 것이란다. 인공적으로 전혀 손을 대지 않았는데 나무들 스스로 굽어진 것이라고 하니 그저 신기하기만 하다. 한낱 미물인 식물도 단종의 원통함에 공감하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소주변에서 몇 발자국을 걷다보면 하늘을 찌를 듯이 기립해 있는 인자한 소나무 한 그루를 볼 수 있다. 바로 그 유명한 ‘관음송’이다. 언뜻 보면 두 그루처럼 보이는데 실상은 한 뿌리의 한 나무이다. 세조 2년인 1456년에 왕위를 빼앗긴 단종의 모습을 지켜보며 슬픈 울음소리를 들었다고 해서 ‘볼 관(觀)’과 ‘소리 음(音)’ 자를 따서 관음송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높이 30m, 가슴높이 둘레 5.19m 크기로 청령포의 많은 소나무 중에 단연 으뜸으로 평가받는다고 한다.
한 시간 여를 청령포에 머물다 우리는 다음 목적지인 옥녀봉과 선돌을 가기 위해 다시 ‘청령3호’에 올랐다. 옥녀봉과 선돌에 가면 단종의 아내에 대한 절절한 사랑을 느낄 수 있다는 안내인의 친절한 설명에 아내는 어서 가자며 나를 채근했다.
아내의 채근하는 모습을 보며 가정과 가족의 소중함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았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언제나 생사고락을 함께하며 나를 지켜주는 아내와 딸. 내가 여기까지 온 것이 사실은 아내와 딸이 나도 모르게 뒤따라와서 내가 주저앉고 싶을 때 내 어깨를 주물러주거나 부축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런 그들의 사랑을 나는 그동안 너무나 당연시하며 살아온 것은 아닌지 반성해본다. 우리 인간은 한없이 어리석어서 가장 소중한 것은 정작 잘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물이 그렇고 공기가 그렇고 가족이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돈이 좀 없으면 어떠랴. 아무리 경제적으로 풍족한 사람일지라도 가족 간에 화목하지 못하고 갈등이 심하면 결코 행복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번 영월 여행을 통해서, 또 단종의 생애를 통해서 나는 하루하루 생명의 위협 없이 편안히 살 수 있다는 것과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곁에서 마음껏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행복인지를 깨달았으니 참으로 귀한 여행인 셈이다.
오늘밤에는 아내와 함께 영월의 아늑한 객관에 누워 밤이 새도록 슬프도록 아름다운 영월의 역사와 사랑과 그리움과 인생에 대해 이야기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