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서해안에서는 새만금이라는 / 세계 최대의 관(棺)을 짜고 있습니다./ 그 캄캄한 관으로 들어갈 / 갯지렁이와 아무르불가사리, / 갯가재, 가시닻해삼, 달랑게, / 범게, 밤게, 서해비단고둥, 동죽, / 큰구슬우렁이, 쏙붙이들이 / 죽음의 날을 기다리며 / 아무 말도 못하고 있습니다.(이하 줄임)
지난 봄 새만금 시국선언 때 낭송된 최승호의 <말 못하는 것들의 이름으로>라는 시의 첫 연이다.
‘단군이래 최대 민족사업'이라는 화려한 찬사와 함께 새만금 간척사업은 반만년 민족사에 가장 곤혹스러운 환경화두로 등장하고 있다. 이 화두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두고 온 나라와 만백성이 몸살을 앓고 있다. 겨울이 오고 있는 새만금으로 뭇 생명들의 안부를 물으러 생태기행 첫걸음을 떠난다. 새만금 가는 길은 어제나 오늘이나 서해안의 임종을 보러 가는 기분이 든다. 인간들이 뚝딱거리며 죽음의 관을 짜고 있는 동안에도 철따라 뭇꽃들이 피고지고, 새들이 뜨고 내리는 것을 보면 차라리 눈물겹다.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김제로 빠지면 드넓은 ‘징개맹개 외배미들'이 펼쳐진다. 이 너른 들을 가로질러 동진강과 만경강이 흐르고 있다. 노을을 실루엣으로 하고 몇 척의 고깃배들이 물 빠진 하구 갯벌 위에 일 없이 얹혀 있다. 최근에 나온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만경강과 동진강 하구는 우리 나라 최대의 도요새 도래지로 나와 있다. 도요새 종류는 월동과 번식을 위해 시베리아에서 남태평양까지 오간다. 우리 나라 서해안은 그들의 여로에 없어서는 안 될 중간 급유지이다. 서해안을 찾는 도요새의 개체수는 약 1백만 마리로 추정되고 있다.
새만금이 아시아 최대의 도래지라는 붉은어깨도요새를 비롯하여 흑꼬리도요, 큰 뒷부리도요, 쇠청다리도요사촌, 송곳부리도요, 넓적부리도요, 꺅도요, 꼬마도요, 중부리도요, 민물도요, 깝짝도요, 붉은발도요, 알락도요, 검은머리물떼새, 흰물떼새, 장다리물떼새….
이들이 이처럼 새만금을 많이 찾는 이유는 간단하다. 먹이가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간척사업으로 새만금 갯벌이 사라지면 그들도 함께 사라질 것이다.
동진강을 건너면 부안읍 못 미쳐 계화도로 가는 길이 나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소금창고가 있었던 염창을 지나면 계화들녘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바둑판처럼 짜여진 계화논뜰 오른쪽 멀리로는 아까 지나온 동진강 하구이다. 지금은 계화 북단 방조제가 가로질러 달리고 있지만, 새만금공사가 끝나면 육지가 될 지역이다. 썰물이 빠져 나가면 하구 갈대밭과 이곳은 게들의 마을로 변한다.
[PAGE BREAK]썰물 빠진 갯벌은 게들의 놀이터 새만금 갯벌의 지질은 모래갯벌과 펄갯벌로 크게 구분된다. 모래갯벌은 주로 해수의 흐름이 빠른 해변에 나타나고, 개흙질이 많은 펄갯벌은 흐름이 완만한 강 하구에 형성되어 있다. 새만금 지역은 이렇듯 지질이 다양해서 우리나라 서해안에서 볼 수 있는 대부분의 게들을 모두 관찰할 수 있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하구의 마른 갯벌이나 염생식물지역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으로는 한쪽집게발이 유난히 큰 농게, 갯벌 가장자리 갈대밭을 좋아하는 갈게, 집게발이 유난히 붉은 붉은발사각게, 행동반경이 넓어서 집안까지 드나드는 도둑게 등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게들은 날씨가 추워지면 굴 속이나 바위틈에 틀어 박혀 나오지 않는다. 계화마을 앞에 조류지가 자리하고 있다. 계화들 간척 때 생긴 호수이지만, 자연성을 잘 보전하고 있다. 갈대숲을 바람막이로 하고 청둥오리, 흰뺨검둥오리, 쇠오리, 논병아리 등이 모여 있다. 갈매기도 저네들끼리 끼룩대며 놀고 있다. 겨울이 깊어지면 더 많은 겨울새들이 내려앉을 것이다.
철새 공부는 쉬운 것부터 해야 재미가 쉽게 붙는다. 아이들에게 조류도감 뒤적이게 하면 금새 진력이 나서 재미를 잃게 된다.
청둥오리는 이곳에서도 개체수로는 으뜸이다. 그것은 우리의 자연조건에 가장 잘 적응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수컷은 청동색 얼굴과 흰 목도리로 두르고 있어서 누구나 금방 알 수 있으나, 암컷은 수더분해서 다른 오리들과 구분이 잘 안된다. 그것은 알을 낳고 새끼를 품어야 하는 자신을 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멧비둘기는 도회지에서도 어렵잖게 볼 수 있는 텃새이다. 전체는 붉은 색이 감도는 회갈색이다. 검은 가로띠 무늬가 있다. 잡식성이라지만, 곡식류를 좋아하는 편이다. 이곳의 멧비둘기는 계화산 중턱에다 둥지를 튼다. 까치둥지에 비하면 작고 엉성하다. 조류지와 새만금 간척지 사이에는 해변도로와 계화방조제가 가로 놓여 있다. 방조제 둑 위에 올라서면 마치 DMZ 철책같은 철조망이 앞을 가로 막는다.
쭈꾸미는 모래 속에서 눈만 빠끔 그 철책선 너머로 여의도의 140배나 되는 새만금간척지구가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 변산-가력도-신시도-야미도-비응도를 잇는 33킬로미터의 새만금 방파제가 수평선 위를 가로질러 달리고, 방파제 끝으로 고군산열도의 크고 작은 섬들이 떠 있다. 이제 머지 않아 육지가 될 바다 풍경들이다.
지질에 따라 종류의 차이는 있지만, 바닷가에는 갈대, 갯쑥부쟁이, 갯메꽃, 칠면초, 나문재, 천일사초, 갯잔디, 퉁퉁마디, 갯쑥, 갯질경이, 보리사초 등등의 염생식물(halophyte)들이 자라고 있다. 바닷바람이 짭쪼롬히 넘나드는 뚝방 아래에 철늦은 갯쑥부쟁이들이 피어있다. 갯쑥부쟁이는 두해살이 풀꽃으로, 주로 바닷가에 자란다. 잎 양면에 잔털이 많다. 꽃은 초가을부터 늦게까지 가지 끝에서 피며, 꽃색깔은 연자주색이다. 양지쪽에서는 겨울에도 꽃을 볼 수 있다. 계화방조제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면 돈지마을이다. 예전에는 갯벌에서 캐낸 동죽이며 맛조개를 경운기에 산더미처럼 실어나르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으나 요즘 마을사람들은 거의 손을 놓고 있다. 외지 사람들만 주인 없는 갯벌을 들락거리며 몇 줌씩 캐 가고 있다.
[PAGE BREAK] 돈지를 지나면 해창천 하구를 만난다. 새만금 간척을 반대하는 이들이 설치미술 하듯 장승과 솟대들을 세워놓았다. 게중에는 게를 비롯한 갯벌생물들을 솟대 위에 올려놓은 것도 눈에 띈다. 해창천 앞 갯벌은 자갈과 모래성분이 많아서 고둥류들을 관찰하기에 알맞은 곳이다. 썰물 때 갯웅덩이에서 관찰되는 갯우렁이, 굴이나 따개비 등을 먹고 사는 맵사리고둥, 바위에 붙어사는 밤고둥과 눈알고둥, 비교적 깊은 곳에 사는 피뿔고둥, 죽은 물고기를 먹어치우는 왕좁쌀무늬고둥, 꽁무니 부분이 뾰죽한 총알고둥, 바위에 붙어 꼼짝을 하지 않는 테두리고둥 등은 이곳의 고둥 가족들이다. 겨울철에도 새만금 모래톱에 나가면 쭈꾸미들을 어렵잖게 발견한다. 연체동물은 몸이 햇볕과 바람에 노출되면 피부가 건조해지기 쉽고, 특히 쭈꾸미는 낙지와는 달리 구멍을 파지 못하기 때문에 모래 속에 몸을 숨긴 채 눈만 빠끔 내놓는 경우가 많다. 그 밖에 낙지, 따개비, 개불, 개맛, 굴, 말미잘, 민챙이,바다선인장, 불가사리, 분지성게, 군부, 쏙, 갯가재, 망둥어, 갯지렁이... 등등도 아이들이 신기해하는 갯벌생명들의 이름들이다. 부안 출신의 신적정 시인의 기념
비를 지나면 새만금 전시장이다. 정부는 ‘농업기반공사'라는 그럴싸한 이름으로 바꾸고 전시관까지 지어서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생태계 파괴, 환경오염, 어민 소득감소, 어장피해, 혈세 낭비 등등으로 이미 제2의 시화호를 닮아가고 있어서 새만금을 찾는 발걸음을 무겁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