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재정정책의 역사를 살펴보면, 교육계는 교육재원을 더 달라고 항상 조르고 정부는 안된다고 버티다가 어떤 계기(선거, 개혁, 정책변화 등)가 되면 약간씩 던져주는 식의 정책이 반복되어 왔다. 교육재원을 충분히 조달해주면서 교육계를 향하여 제발 교육을 잘해달라고 부탁해야 할 정부가 오히려 목에 힘을 주고 배짱을 부려온 것을 보면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정치인들과 공무원들도 가정에 가면 자녀교육을 최우선시하는 부모들이지만, 국가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위치에 앉게 되면 왜 우선순위가 바뀌는지 모르겠다.
내 자식 교육은 소중하지만 남의 자식 교육은 소중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자녀의 미래는 좋은 교육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국가의 미래는 교육과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아니면 교육은 개인의 관심 사항이지 국가의 관심 사항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유권자는 무섭지만 학부모나 어린 학생들은 무섭지 않은 것인지 모를 일이다.
그러고 보면 교육에 대한 관심에 비해 제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학부모들도 이상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 흔한 소송 중에 교육환경을 개선해달라는 소송 한번 없었고, 세금을 꼬박꼬박 내면서도 왜 등록금을 또 내야하는지 해명해달라는 소송도 없었다. 아이가 공부 못하는 것은 오로지 아이 탓이거나 부모 탓이라 여기면서 국가에 대하여 책임을 묻는 소송도 없었다. 학교에서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고, 등록금을 더 내라면 더 내고, 우리 국민들은 교육에 관한 한 순한 양과 같이 정부 정책에 순응해왔다. 자식들에 대한 책임과 의무에 익숙한 학부모로서는 국가에 대한 권리 주장에 익숙하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지방교육자치에관한법률과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을 분석해 보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교육재원 확보의 최종 책임자가 아니다. 국가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과 지방교육양여금만 부담하고, 지방자치단체는 일반회계전입금(중등교원 봉급전입금, 시·도세 전입금, 담배소비세 전입금, 지방교육세 전입금)만 부담하며, 나머지는 시·도 교육비특별회계가 부담하도록 되어 있다. 등록금 수입 외에는 특별한 세입원을 가지고 있지 않은 교육비특별회계로서는 추가적인 교육재원 수요가 있을 경우 부득이 등록금을 인상하여 충당할 수밖에 없었다. 국가가 이만큼 부담하고, 지방자치단체가 저만큼 부담하고 난 후, 모자라는 부분은 학부모 책임이라는 얘기이다. 결과적으로 교육재원 확보에 대한 최종 책임은 학부모에게 부과되어 있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추가적인 예산을 필요로 하는 새로운 교육정책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교육재원의 확충도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하는 것이 당연하겠으나, 현재에는 매년 등록금 인상을 통해 그러한 비용의 상당 부분을 학부모에게 전가시키고 있다.
학부모에게 전가하기 어려운 규모의 재원이 필요한 경우에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추가적인 교육재원 확충을 도모하기도 하지만, 그러한 과정에서 추가비용 부담을 둘러싸고 서로 책임을 전가하는 양상도 자주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들이 나타나는 것은 교육비 부담에 관한 명확한 틀이 설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PAGE BREAK]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등의 교육비 부담에 관한 법률(가칭)’을 제정할 것을 제안하고 싶다. 교육비에 관한 교육 이해당사자들-국가, 지방자치단체, 학교법인, 학부모 등-의 책임 한계를 명확히 설정하자는 것이다. 즉, 학부모와 학교법인은 교육비 중 일정액 또는 일정 비용만 부담하고 나머지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책임지는 구조로 바꾸자는 것이다.
이 법률에서는 지금까지의 교육비 부담 구조와 달리 먼저 학부모 부담의 한계를 명확히 설정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등록금으로 충당하는 비목을 지정하거나, 등록금을 일정 규모로 동결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학교법인의 책임도 분명히 하여 부담 못하겠다고 버티면 국가가 지원해 주거나 학교법인에 대하여 무한책임을 묻는 식이 아니라 애초부터 학교법인이 부담해야 할 한계를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 또한, 추가적인 교육재원 소요가 발생할 경우 생길 수 있는 책임전가 사태를 방지하기 위하여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간 부담 비율을 명시해야 한다.
이 법률이 제정되면 교육재원을 추가적으로 부담하기 어렵다고 버팀으로써 자신들의 재원을 확충하는 기회로 활용해온 지방자치단체들의 행태도 불식시킬 수 있을 것이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 교육비 확보의 최종 책임을 부과한다 해도 저절로 교육재원이 확충되는 것은 아니나, 그러한 법적 장치가 마련되면 교육계나 학부모가 좀 더 당당하게 책임소재를 따져 교육재원 확충을 요구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