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송기섭(충남대 교수·국문학)은 성실한 학자이다. 그의 성실성은 그가 읽어 나가고 있는 동서고금의 수많은 책들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그 책들을 이리저리 쪼개고 연결하여 남들이 하지 않고 하기 싫어하는 일을 묵묵히 해낼 때 빛을 발한다. 그가 최근에 펴낸 평론집 『몽상과 인식』(예림기획 刊) 1부에서는 문학 일반론을 다루고, 2부에서는 시인론을, 3부에서는 작가론을 다루고 있다.
이 작품에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탈오리엔탈리즘의 가능성이다. 근대 이전과 이후를 나누는 저간의 연구 경향을 넘어서서, 주자학적 전통이 근대문학에 끼친 영향을 해명하는 작업에 한창인 저자의 평론집은 그의 관심이 단순히 문이재도(文以載道)로서의 동양적 문(文) 개념에 머물지 않고 정(情)을 기르는 것으로서의 근대문학 일반론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당연함을 새삼스럽게 들추는 이유는 그의 그런 작업이 비로소 문학 일반에 뼈를 세우고 살을 입히는 일이 된다는 데 있다. 문학의 뼈와 관련해서는 문학의 도(道)를, 문학의 살과 관련해서는 문학의 정(情)을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전자는 주자학에 대한 그의 관심의 결과이고, 후자는 바슈라르를 읽은 그의 이력의 산물이다. 그 두 가지가 결합되는 특이한 방식이 그의 연구와 비평의 독보적 영역을 이루게 되리라고 생각한다. 생각건대 이 일은 한국의 연구 풍토에서 아직 시도되지 않았던 지난한 일이 될 것이다.
이 책은 몽상으로서의 문학이라는 저자의 주장에 할애된다. 그가 분석한 작품은 거의 전적으로 작가와 그의 몽상이 빚어낸 공간 속에 위치한다. 『유가 전통의 진정성』이란 글이 이 책에서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의 정체성을 찾아 미래 세기로 나갈 희망의 표지”(347면)로 그가 제시하는 유교적 덕목은 “유한한 인간 조건을 초원토록”(4면)하는 몽상의 힘과 어떻게 결합될 수 있는가? 나는 그의 작업이 도에 의해 지배되는 정의 세계를 분석하는 차원에서 도와 정이 서로 피와 살이 되는 세계를 이루어놓은 상생의 차원으로 나아가기를 바란다. 그의 성실성은 능히 이 일을 해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