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정책은 의제형성(agenda setting), 결정(decision making), 집행(implementation), 그리고 평가(evaluation)라는 일련의 순환과정을 반복하면서 보다 이상적인 형태로 완성되어 간다. 정책의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중의 관심을 유발하고 있는 각종 이슈가 정부 내에 진입하여 공식의제로 채택되는 의제형성 단계라 할 수 있다. 정책의 첫 단계인 의제형성이 합리적인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결정과 집행 그리고 평가에 이르는 일련의 정책과정을 왜곡시키기 때문이다. 올바른 의제형성을 위해서는 각종 관련 주체들의 바람직한 참여가 전제되어야 한다. 참여에 있어 중요한 것은 참여 대상의 범위와 참여의 수준이다. 참여 대상의 범위는 민주성의 원리를 지향한다. 즉, 특정한 정책의 이해당사자들이 배제되지 않고 골고루 참여하는 것이다. 이른바 정부가 각종 자문위원회를 구성하여 정부 바깥의 인사를 참여시키는 것도 바로 이런 취지다. 참여의 수준은 참여 주체들이 어느 정도 깊숙이 정책형성과정에 관여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으로서 전문성의 원리를 지향한다.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는 정책결정을 다수결의 원칙과 같은 민주성의 원리만을 지향하여 비전문가 그룹의 의견을 채택한다면 제대로 된 정책이 성립될 수 없다. 즉, 각 집단의 전문성에 따라 참여의 수준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것은 정책의 전문성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다. 마지막으로 참여의 형태이다. 단순히 정부의 필요에 의하여 참여를 흉내내는 정도에 그친다면 정책의 발전에 제대로 기여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우리 교육정책의 실정은 어떠한가. 현 정부 출범 이후 ’98년 교원정년 단축, 새학교문화창조 사업, ’99년 3월 교육발전 5개년 계획, 2000년 12월 교직발전종합방안, BK21 사업, 교원성과급 등 굵직한 현안들이 백화점식으로 발표되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항들은 학교현장에 제대로 적용되지 못하고 부작용만 양산하였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정책의 형성과정에 이해당사자이자 전문가 그룹인 교원들의 의사가 철저히 배제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정부는 각종 위원회 등에 교사의 참여를 보장하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정부가 결정한 정책의 정당성을 높여주기 위한 형식적인 참여에 불과하였다. 교원의 질을 좌우하는 주요한 교원정책인 정년단축의 경우, 우리 나라 대표적 교원단체인 한국교총의 의견이 철저히 배제되었고, 정부 내의 자문기구에 국한하여 형식적인 의견수렴을 거쳤을 뿐이다. 새학교문화창조 사업, 교육발전 5개년 계획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둘째, 참여 수준의 문제이다. 예컨대 교직발전종합방안의 경우, 학부모, 교원단체 등으로 추진협의회가 구성되었다. 그러나 교직발전종합방안의 대부분의 내용이 교원정책인 점을 감안할 때 적어도 전문가 그룹인 교원의 의사가 더욱 존중되어야 한다. 단순히 형평성만을 앞세워 교원단체의 의견과 학부모단체의 의견을 똑같은 비중으로 반영하는 것은 자칫 정책결정의 전문성을 떨어뜨리는 주요인이 되는 것이다. 정부가 일반국민의 여론만을 앞세워 교원정년을 단축한 것도 이와 마찬가지다.
셋째, 형식적인 참여의 문제이다. 적어도 공식적인 위원회가 조직되었으면 위원회의 결정사항이 최대한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오랜 논의 끝에 내린 위원회의 결정사항도 정부 내의 관료들의 판단에 의하여 무시당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교직발전종합방안의 핵심과제인 수석교사제의 경우, 특정 교원단체를 제외하고는 학부모단체, 전문가 그룹, 교원단체 등이 모두 도입에 합의하였으나 관료들의 판단에 의하여 정당한 이유없이 유보되었다. 바로 이러한 것이 교원들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지 못하는 원인인 것이다.
교육정책이 교육현장에 터하여 형성되고 결정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정부의 직제를 교육전문직 중심으로 개편해야 한다. 교육부내의 일반직 대 전문직의 비율은 매년 축소되어 왔다. 그리고 교원정책 전반을 다루는 교원정책심의관을 비롯한 교원정책 관련 간부직에 교육전문직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이는 교육정책이 현장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탁상공론이라는 비판을 받는 주요인인 것이다. 따라서 중앙부처의 교육전문직의 보임을 확대하고 시․INSERT INTO imsi4 VALUES 도교육청의 부교육감에 교육전문직 임용비율을 늘려야 한다. 나아가 전문직들이 조기에 행정기관으로 진출하여 본연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정부 관계법률의 개편이 시급하다.
다음은 실질적인 참여를 위한 제도적인 보완이 필요하다. 정부와 개최하는 단체교섭의 경우, 실질적인 참여의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합의사항의 실현이 강제되지 않거나, 교섭할 수 있는 범위가 제한되어 있는 등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아울러 교섭대상이 아닌 정책의 경우에는 정부가 공식적으로 확정하기 전에 반드시 교원단체 대표의 의견을 수렴토록 한다면 보다 현장 적용성이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적 장치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은 모든 교육정책 결정의 핵심은 바로 교원이라는 평범한 사실을 정부당국자나 정치지도자들이 유념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