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 들어 깊어지기 시작한 교단의 갈등은 교사들의 이레 대한 헌신감이나 효능감을 급속도로 저하시키고 있다. 갈등의 한쪽에는 구태의연한 사고와 태도를 지닌 이들이 많아 교육에 변화와 창조의 바람을 일으킬 수 없다고 믿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그 반대편에는 우리가 하는 일이면 덮어놓고 반대하고 저지하려는 이들 때문에 도무지 학교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호소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겉은 조용해 보이지만 돌아올 수 없는 강을 이미 건넜다고나 할까요. 같이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사라졌어요. 시간표 짜고 담임 배정하고 할 때 빼고는, 보이지 않는 거리감이 너무 크고, 일을 하는데 ‘우리 같이 해 보자’ 이런 말을 건넨다는 게 솔직히 지금은 불가능해요. 그만큼 감정의 골이 깊어진 거죠. 서로 제 갈 길 가고 다른 사람 일에는 관심 기울이지 말자, 그런 심정이에요. 공동체 의식이니 유대감이니, 그런 건 완전히 옛날 이야기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야 쉽게 알 수 있잖습니까? 그 사람들 도가 지나쳐도 너무 지나쳐요. 해답이 빤히 보이는데 사사건건 쌍지팡이 짚고 나서니 똑바로 못 가고 돌아가는 거예요. 세상에 이런 비능률, 비생산이 어디 있습니까. 뭘 좀 해 보려 해도 아무 것도 못해요.… 출발부터가 잘못 됐어요. 그래도 학생들 교육은 중요한 건데, 그냥 내 버려 두는 식으로 자유 방임하는 거예요. 책임감이 없단 얘기죠. 이러니 목적이 다른 데 있다, 명분 뒤에 숨겨진 목적은 다른 거다, 분석이 되는 거죠.(공립 M고교, S교사와의 인터뷰)”
교직사회의 반목과 대립이 위험 수위를 지나고 있다. 유독 현 정부 들어 깊어지기 시작한 교단의 갈등은 교사들의 일에 대한 헌신감이나 효능감을 급속도로 저하시키는 것은 물론, 작금의 교실 붕괴조차 그저 관망하는 것 외에는 별달리 할 일이 없다고 믿게끔 만드는, 그런 심한 무력감 속으로 교사들을 밀어 넣고 있다. 갈등의 한 쪽에는 구태의연한 사고와 태도를 지닌 이들이 많아 교육에 변화와 창조의 바람을 일으킬 수 없다고 믿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그 반대편에는 우리가 하는 일이면 덮어놓고 반대하고 저지하려는 이들 때문에 도무지 학교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호소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두 집단은 나름대로 그 안에서는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끼리 대화도 하고 대안도 제시하면서 열심히 만나 보지만, 자신들이 몸담고 있는 학교 차원에서는 상대의 존재에 큰 저항감을 느끼면서 스스로 대화의 장벽을 설정한 채 안으로만 침잠한다. 일정한 ‘계기적’ 사건이 불거져 자기 집단의 힘을 드러낼 순간까지는 외견상 ‘한 지붕 두 가족’으로서 동거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특정 사안을 놓고 물리적 충돌까지 벌이며 분열하는 경우도 볼 수 있지만, 대체로는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면서 내심으로 상호 불신과 견제의 심리를 키워 간다. 요컨대, 공동의 비전을 갖고 나아가는 문화적 지향이 부재하며, ‘함께 하기’의 풍토가 사실상 불가능해진 것이 지금의 교직사회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럴수록 양 집단 사람들은 학교 밖에 형성된, 접근가능한 네트워크에만 몸을 맡긴 채 조직화·의식화되고, 거기서 제공한 논리를 학교 내로 이식하면서 더 한층 갈등하고 대립하게 된다. 교직사회는 두 개의 고립된 섬이고, 여기서는 어떤 교육 정상화 노력도 실현되기 어렵다.
노조 교사와 관리직 교사간 갈등 양상
교직사회의 다양한 갈등의 원인은 무엇인가. 그런 갈등이 오히려 조직 통합의 매개체가 아닌, 분열과 고립의 촉진제로만 작용하게 되는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여러 가지 관점이 있을 수 있지만, 앞의 인터뷰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는 그것을 교원노조의 등장에 따른 권력 투쟁의 심화와 연관짓지 말아야 할 다른 이유를 생각하기 어렵다. 관리직 교원이 독점하는 것으로 믿고 있는 학교사회의 권력을 민주적으로 분산하고 궁극적으론 장악하기 위해 조직의 기제를 최대한 활용하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대립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PAGE BREAK]단순화해서 말하면, 노조 교사들의 사고와 행동의 저변에는 투쟁 지향의 문화적 요소가 짙게 깔려 있다. 이런 문화는 힘의 우위를 매개고리로 하는 스스로의 권력 독식을 눈감아 주는 풍조를 말한다. 자신들을 축으로 한 대안적인 권력집단형성의 과정에서는 얼마든지 대립이나 마찰이 있을 수 있다는 식의 의식이 노조 교사들의 삶 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기에, 교직사회의 갈등 해소는 좀체 용이하지 않다.
외양적으로 볼 때, 학교사회에서 갈등은 다양한 종류의 집단 사이에서 발생한다. 신구 세대의 교사집단 사이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혹은 소속 교원단체가 다름에 따라 빚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 밑바닥에는 노조의 존재로 인해 형성된 분절 단위가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교직사회의 전형적인 갈등 양상은 노조 교사와 비노조 교사 특히 관리자 교사간에 발생하는 갈등이라 할 수 있다. 교원단체별 소속교사들간의 마찰도 대개는 이런 단위 속에 반영돼 나타난다고 봐야 한다.
일반적으로 노조 교사들은 많은 교육의 문제가 관리자 교사들, 특히 교장이 예전의 권위주의적 정부 하에서 보여줬던 행태를 버리지 않고, 지금도 그때처럼 교사와 학생들을 규율과 통제 속에 가두려는 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마치 다른 여건은 제자리를 잡아가고 있지만, 교장들의 태도 변화가 이뤄지지 않아서 학교교육의 개혁이 부진한 것으로 인식한다. 물론 교장도 변해야 한다. 교육환경의 변화를 수용하고 선도하기 위한, 유연하면서도 자율적인 선택과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지도자로 거듭나야 한다. 그러나 그런 변화는 동시에 노조교사 자신들의 변화와 그것을 담지하는 행정당국의 정책 방식의 변화와 함께 이뤄지는 것이어야 한다. 자신들의 표현대로 “교육정책도 바꿀 수 있고 교장도 물러나게 할 수 있을” 정도로 권력화한 존재로서 그에 걸맞는 역할과 책임을 수행하지 않는 한 교육의 내실화니 정상화니 하는 노력들은 공염불에 불과할 뿐이다.
정부의 현실성 없는 정책이 혼란의 주범
현 정부 출범 이후 교직사회에서 많은 갈등과 혼란이 발생해 온 것은 사실 정부의 교원정책이 일관되게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온 데 그 일차적인 원인이 있다. 일부 교사의 촌지 사례가 드러나자 이를 전체에 만연한 현상으로 규정하며 일종의 ‘정풍 운동’ 차원에서 교직사회를 흔들어 대더니, 이후 참교육인증제니 학부모에 의한 교원평가제니, 담임선택제니 하는 현실성 없는 정책들을 차례대로 쏟아내며 교직의 위상을 끝없이 추락시켰다. 이와 함께 교직사회의 그토록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교원의 정년을 3년이나 끌어내려 자존심과 사기를 짓밟았고, 결정적으로 교육부조차 절대 불가라고 하던 교원노조특별법을 충분한 사회적 합의 없이 서둘러 국회에서 통과시켜 교육 자체의 분열을 예고했다.
1999년 7월 출범 후에도 노조 교사들은 여전히 과거의 투쟁문화를 유지, 재생산하면서 자신들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존재와 역할을 부정하고 대립각을 형성함으로써 학교사회에 끊임없는 파열음을 생산해 왔다. 교장의 학교운영상의 소소한 문제나 잘못까지 낱낱이 캐서 알리고, “교장, 교감과는 항시 적대 관계나 후퇴없는 공식적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라고 서로 독려하면서 학교사회에 긴장과 대결의 분위기를 상시화시켰다. 그러나 관리자 교사들을 동반자가 아니라 적이라는 타도 대상으로 여기고, 적과 대화하고 타협하는 것을 어디까지나 전술적으로 볼 뿐 원칙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 의식구조는 필연적으로 관리직 교원들의 대항적 투쟁의지를 낳을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의 교직사회에서 평화적 인간관계를 기대하기 힘든 것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이다.
노조 교사들이 주장하는 ‘참교육’ 실현을 위한 투쟁적 색채의 활동방식은 교직사회를 모든 사회세력간 이념적 충돌의 대리전 양상으로까지 몰고 가기도 한다. 그 예로 우리는 지난해 여당이 소위 사립학교 운영의 공익화란 미명하에 ‘사립학교법 개정’을 시도하면서 자유시민단체들과 극심한 이념 대결을 전개한 일을 기억할 수 있다. 결국 이때의 싸움으로 사립학교 교직사회는 여당에 편드는 노조 교사와 학교경영의 자주권을 지키려는 경영자 및 학교 관리자 교사로 양분돼 엄청난 혼란을 겪어야 했다.
[PAGE BREAK]또 지난 해 교육부가 노조와의 단체 협상을 통해 노조 교사들의 교내 연수를 허용함으로써 사실상의 학교단위 노조 활동이 이뤄질 수 있게 하자, 노조 교사와 비노조 교사간 분열의 가속화를 우려한 관리직 교원들이 크게 반발하며 격렬한 논쟁을 전개한 일도 떠올릴 수 있다. 최근에는 교장을 교사들이 직접 선거로 뽑는다는 소위 선출보직제를 쟁점화시킴으로써, 향후 이 문제가 교직사회 구성원들간의 또 다른 대결 공간으로 변할 공산이 커지고 있다.
이렇듯 교직사회에 여러 가지 갈등과 대립의 양상이 뚜렷해지면서, 교원 노조의 활동이 오늘의 교직사회에 과연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어떤 현상을 야기시키고 있는지에 대한 다각적인 분석도 크게 요청되고 있다. 특히 교원노조 활동이 교직사회 발전의 걸림돌로 작용하는 것은 아닌 지를 냉철하게 따져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한 진단은 보다 새롭고 발전적인 교직사회의 모습을 조망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투쟁 통한 문제해결방식이 남긴 상처 커
교원노조의 등장은 교원들간의 관계, 특히 관리직 교사와 일반 교사들간의 관계를 일종의 협약에 의한 권리 및 의무 수행의 이분법적인 관계로 변모시켜, 학교사회에 긴장과 대결의 구도를 심화시켰다. 여기서 관리직 교원은 교사의 참여를 허용하고 이들의 요구를 수용해야 하는 위치로 바뀌면서 불가피하게 노조 교사들과 다양한 대립을 빚게 되었다.
노조 교사들의 활동 전개에 따른 갈등 양상에 대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노조 교사들은 관리직 교원의 교육활동과 관련한 기본적 권위를 불신, 침해함으로써 학교 내 인간관계의 불안정성을 초래하였다. 특히 교장은 정부 시책의 실천 주체로서 교사와 학생들을 대상으로 지시·명령·감독만을 일삼는 존재이기 때문에 교장의 독점적 권력을 무력화시키지 않으면 교육의 민주화를 달성할 수 없다는 논리를 전개하였다. 이를 제도적으로 해결하고자 주장하는 것이 ‘교장선출보직제’이며 ‘교무회의의 의결기구화’라고 할 수 있다. 교장을 무력화시키자면 교장을 교사 전체가 직선할 필요가 있고, 학교 운영의 주요 사항은 교무회의에서 의결하여 교장을 단순 집행기관으로 격하시킬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관행이나 약정으로 여겨져 오던 학교 경영상의 방침들을 비민주적 제도로 매도하며 들추어내고, 지난날의 사소한 잘못까지 침소봉대시켜 폭로하는 등의 학교경영 까발리기 작업을 서슴지 않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나타난 일로 이해된다. 이런 현상들이 빈번히 일어나면서 단위학교에서는 학교 운영의 구심점이 해체되고, 교원 계층간의 심한 불신과 적대감으로 갈등이 편재화되는 양상이 빚어지게 되었다.
둘째, 노조 교사들은 관리직 교원은 물론 자신들에 동조하지 않거나 반대 의사를 가진 사람들을 무조건 배척하는 풍토를 조성하여 인간관계의 붕괴를 초래하였다. 학교 일에 적극 참여하는 교사들을 어용으로 적대시하는 한편, 자신들의 편에 서면 민주교사로 부르며 다른 교사들과의 차별성을 부각시키려 하였다. 이런 경향은 젊은 교사들에게서 더욱 두드러진다. 교육개혁이나 교육의 민주화를 자신들의 전유물로 생각하고 대학 시절에 익힌 운동 논리로 교육현실을 바라보고 해석하며, 기존 질서나 교육과정에 충실해 학생을 교육 지도하는 선배 교사들을 역사의식이 없는 것처럼 취급하기도 한다. 그 결과 오늘의 교직사회는 세대차에 따른 의식의 차나 갈등의 골이 매우 깊게 형성돼 나타나는 실정이다.
셋째, 주요 교육정책 추진을 둘러싼 교직 구성원들간의 갈등과 대결을 심화시켜 전체 교육력의 약화를 초래하였다. 대표적인 예가 정부의 정년단축 조치로써, 고연령과 고경력의 교사를 무능 무사안일로 규정한 독단적 정책으로서의 성격이 다분했으나, 교직사회의 의견이 양분됨으로써 그대로 관철되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젊은 교사들 중심의 교원노조는 정년단축을 적극 지지하면서 정부와 결탁하였고, 이에 반대하는 대다수 선배 교사들과 교총의 활동을 교육 지배층의 기득권 유지 기도로 몰아붙이며 대립하였다. 이 사태 이후 교직사회는 ‘수석교사제 도입’이나 ‘교원성과급 지급’, ‘자립형 사립고 도입’ 등 중요한 정책 방안이 제기될 때마다 교원노조와 교총으로 양분되어 심한 갈등 양상을 보여 왔다. 그에 따른 교직사회의 침체와 무력감은 전체 학교사회의 교육력 약화를 가져와 지금의 교육 위기를 낳는 데 크게 일조하였다.
[PAGE BREAK]넷째, 학교 현장을 투쟁의 장소로 일상화시킴으로써 교직사회에 심한 무사안일과 적당주의를 잉태시켰다. 노조 교사들은 자신들의 정당한 주장을 부인하는 체제에 대한 투쟁을 필연적인 것으로 보면서 제도적 권리의 확보는 투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자기 집단만의 소모임 활동을 통해 학교 운영의 주요 사안마다 압력을 가하고,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비민주로 규탄하며 실력 행사도 불사한다는 자세를 일관되게 견지한다. 그 결과 학급담임 배정, 업무 배정, 예산 집행, 자율학습과 보충수업, 교무회의 운영과 교직원 연수, 애국 조회, 심지어 소풍이나 수학여행에 관한 사항까지 갖가지 이유를 붙여 반대하고 비판하면서 물리적 충돌을 빚기도 한다. 학교 내 문제뿐만 아니라 통일이나 사회개혁 등의 이념이나 체제 문제까지 들고 나와 다른 구성원들을 당혹스럽게 만든다. 학교 현장이 이렇게 언제든지 노조 교사들의 투쟁 공간과 대상으로 변하게 될 개연성이 높아지면서, 비노조 교사들의 상당수는 자기 일에 분명한 소신을 내세우지 못하고 노조 교사들의 눈치 보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노조 교사들은 여론에 끌려 다니거나 영합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심지어는 그들이 명백히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타이르기보다는 못 본 체하고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한다. 노조 교사들의 반대를 위한 반대와 현실성 없는 비판, 그리고 투쟁을 통한 문제 해결 방식으로 교직사회에는 무사안일과 적당주의, 편의주의 풍토가 점점 깊게 형성돼 가고 있다.
교원단체간 사안별 공조 필요한 때
교원노조 결성과 그 이후의 과정에서 교직사회는 말할 수 없는 내부 갈등을 경험하였다. 더욱이 이런 갈등은 다분히 권력 싸움의 토양에서 출현한 것이어서 그 해소가 결코 간단하지 않다. 그만큼 교직사회의 인간관계를 황폐화시키는 쪽으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런 사실은 지식경쟁사회의 새로운 교육체제를 확립해야 하는 오늘의 시점에서 결코 바람직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런 갈등을 그대로 두고서는 어떤 형태의 교육 개혁이나 교육 내실화도 소기의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 관리직 교원과 노조 교사들의 갈등 관계 청산은 국가적 과제로 간주돼야 하는 측면이 있다.
교직사회에 새로운 사회적 연대의 틀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우선, 오랜 투쟁 과정을 통해 이제 학교 사회에서 하나의 권력 집단으로서 부상한 노조 교사들부터 먼저 학교 권력 장악의 고삐를 놓는 일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싸움’을 매개고리로 하는 권력 독식에의 욕구에서 영원히 자유로울 수 없고, 학교사회 또한 결코 갈등의 풍조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노조 교사들에게 이런 태도를 기대하는 것은 단기간 내에는 거의 불가능한 일로 보인다. 이미 그들은 다양한 싸움을 통해 이러저러한 승리를 맛보았고, 그 혜택을 가장 크게 본 당사자라는 점을 매 순간 스스로 확인받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관리직 교원들이 스스로를 좀더 공고히 조직화시키는 일이 어느 정도 필요해 보인다. 어차피 권력 장악을 둘러싼 갈등 풍조가 쉽게 사라지기 어려운 분위기라면 노조 교사들의 권력에 대한 제도적인 억제가 필요하고, 그런 방안 중의 하나가 관리자 개념에 포함되는 교원들이 민주적 절차에 의해 하나로 조직돼 힘의 균형을 보장받는 것이 될 수 있다. 이런 체제를 바탕으로 상호간의 관점을 인정하고, 역할과 기능을 재정립한다면, 지금의 무한 대립과 투쟁에서 각종 교원 단체간 사안별 공조나 협력, 협조하는 것이 가능해질 수 있다. 사립학교의 사용자측에 대해 노조에 상응하는 권한을 부여하는 방안을 무작정 안된다고만 해서는 곤란하다는 얘기도 여기서 나온다.
더불어 정부 또한 노조와의 관계에서 확고하게 정도와 원칙을 걷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 매번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식으로 협상의 범위를 넘어선 사항들에까지 편법으로 합의를 해 주고 양보를 해서 노조의 투쟁 역량을 키워 줄 필요가 없다. 그런 정부의 무사안일한 대응이 지금의 교직사회 갈등을 심화시킨 점을 부인해선 안된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임을 확실히 인식하여 단협의 공공성을 망각하는 누를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끝으로 교원노조를 비롯해 교원단체는 작금의 교직사회 위기의 원인이 어디에서부터 연유되었는지 그 원인을 분석하고 대안을 모색하여 이를 극복하는 일에 이제부터라도 공동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현재와 같은 교직사회의 위기는 이를 건전한 교직문화 형성의 자양분으로 활용만 한다면 오히려 긍정적으로 볼 소지도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교직사회 붕괴로까지 치달을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