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도는 강화도 외포리 선창에서 뱃길로 두 시간 거리에 떠 있는 섬이다. 북한땅인 연백군과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불과 5㎞ 남짓 떨어져 있다. 민통선 북방지역에 속해 있기 때문에 오랜 동안 사람들의 출입이 통제되어 있었던 까닭에 자연이 비교적 잘 보전되어 있다. 남북 해빙 무드가 무르익으면서 근래 일반인들의 출입이 한결 쉬워졌다. 보름도 하면 누구나 지명부터 궁금해한다. 지도에는 ‘볼음도’라고 나와 있지만, 한때 만월도(滿月島)라고 불려진 것을 보면 보름도가 원래 이름임이 분명하다. 보름도 가는 배는 외포리 선창에서 출발한다. 배가 선창을 떠나면 기다렸다는 듯이 갈매기들이 따라붙는다.
외포리 선창을 떠난 배가 파도를 가르면 여기저기서 가마우지가 놀란 듯이 바다위로 솟아오른다. 가마우지는 바닷속을 오랫동안 잠수하면서 물고기를 잡아먹는 잠수왕이다. 그러나 비행술은 신통치 않아서 물에서 날아오를 때는 어정쩡한 자세로 더펄거리기 일쑤이다. 그래서 더펄새라고도 했다. 배 닿는 시간이 되면 보름도 선착장에는 마을 사람들이 손님을 맞으러 경운기를 끌고 나와 있다. 선착장에서 마을까지는 걸어서 20분 가량이다. 길이 호젓해서 걸어가는 맛이 좋다. 보름도는 섬이 작아서 대중교통편이 없다. 물때에 따라 일정이 달라질 수도 있지만, 샛말에 있는 방죽과 습지를 먼저 돌아보고 난 뒤 안말로 가서 은행나무와 봉화산을 돌아본다. 조갯골 갯벌은 맨나중에 찾는 것이 무리 없다. 샛말 오른쪽으로는 논이 펼쳐져 있다. 갯벌에 방죽을 막아서 만든 논뜰이다. 이 논뜰에서는 보름도 초행자들 이 가장 신기해하는 광경을 볼 수 있다. 바다에 있어야 할 갈매기들이 논 한가운데 수십 마리가 떼지어 앉아 노닥거리는 광경이 그것이다.
바다에 있어야 할 갈매기 논에서 놀고
갈매기들뿐만 아니다. 흰뺨검둥오리, 백로, 왜가리들도 덩달아 제 세상처럼 놀다 간다. 그 바람에 애써 심어놓은 벼 포기들이 넘어지고 밟혀서 농부들이 속을 썩힌다. 논뜰을 지나 방죽에 이르면 다양한 우리 꽃들이 눈에 띈다. 방죽 주위로 엉겅퀴, 분취, 질경이, 억새, 찔레, 서양민들레, 토끼풀, 붉은 토끼풀, 개망초, 며느리발톱, 고들빼기, 씀바귀, 냉이, 꽃다지, 메꽃, 갯메꽃, 명아주, 좀명아주, 달맞이꽃, 쇠뜨기, 인진쑥 등등이 무릎을 덮는다. 방죽을 따라 안쪽으로는 제법 넓은 물길이 나있다. 안말 저수지의 물이 산을 돌아 예까지 흘러든 것이다. 이 물길은 보름도의 생명선이다. 물길 끝에 꽤 넓은 습지가 자리하고 있다. 방죽이 생기기 전부터도 이곳은 지대가 낮아서 물이 고여 있었다고 한다. 물가에는 방동사니, 갈대, 물억새, 골풀, 여뀌, 물띠, 부들, 줄 등이 자리하고, 물에는 마름, 개구리밥, 좀개구리밥, 붕어마름, 검정말...등이 관찰된다. 그런가하면 밀잠자리, 고추잠자리, 아시아실잠자리, 네발나비, 모시나비를 비롯하여 장구애비, 물장군, 물방개, 참개구리 등도 쉽사리 관찰된다.
샛말에서 안말로 가는 넘어가는 숲길과 논길은 여간 호젓하지 않다. 여기저기서 새소리도 요란하다. 농경지 주변으로는 농병아리, 흰뺨검둥오리, 쇠물닭, 물총새, 귀제비, 백로, 알락할미새들이 보이고 숲속에서는 검은등뻐꾸기 소리가 청아하다. 파랑새, 꾀꼬리, 휘파람새, 후투티 등등의 다양한 여름새들이 꿩, 멧비둘기, 소쩍새, 멧새, 박새류와 같은 텃새들과 잘도 어울려 산다. 보름도는 새들의 섬이다. 보름도를 한자로 표기한 ‘볼음도(乶音島)’의 뜻은 ‘새 소리 들리는 섬’이다. 얼마나 친환경적인 땅이름인가 싶다. 호젓한 숲길을 지나면 넓은 호수가 나타난다. 바다를 막아서 만든 저수지이다. 바다와 저수지가 만나는 산자락에 당당하면서도 한없이 너그러워 보이는 은행나무 한 그루가 있다. 천연기념물인 이 은행나무는 800여년 전 수해로 떠내려온 것을 주민들이 심은 것이라고 한다.[PAGE BREAK]다양한 우리 꽃에 요란한 새소리까지
보름도는 밤이 아름다운 섬이다. 바다 위로 고깃배 불빛이 아련하고 바다 멀리 뭍의 불빛도 파도에 실려 온다. 보름달이라도 휘영청 뜨면 선경이 따로 없다. 노을이 지고 밤안개가 깔리기 시작하면 개구리 울음소리는 여름밤의 정취를 한껏 돋운다. 비로소 도시를 떠나왔음을 실감하게 된다. 보름도에는 다양한 개구리들이 살고 있다. 근래 들어와 자취를 감춘 맹꽁이를 빼고 모두 5종의 개구리들이 살고 있다. 전등으로 논바닥을 비춰보면 신기하고 재미있는 장면들을 목격하게 된다. 개구리들은 턱 밑에 울음 주머니를 달고 있는데 울음주머니가 하나인 청개구리는 꽥꽥하고 울고 울음주머니가 둘인 참개구리는 ‘꾸루룩꾸루룩’하고 운다. 개구리들도 종류에 따라 리듬과 박자를 맞춰 운다는 사실을 아이들은 그렇게 신기해할 수 없다.
보름도의 갯벌은 영뜰과 조갯골에서 만날 수 있다. 마을에서 서쪽으로 10여분 떨어진 곳에 서로 이어져 있다. 필터 역할을 해주는 자갈이 적당히 분포되어 있어서 수질도 좋고 모래와 펄이 적절하게 펼쳐져 있어서 갯벌생물들도 다양하게 관찰할 수 있다. 모래밭을 흔히 사빈(砂濱sandy beach)이라고 한다. 사빈은 파도와 조류가 모래를 쌓아 올려서 만들어 놓은 지형이다. 두 해수욕장 사이에 해식애(海蝕崖)가 경계를 이루고 있다. 파도가 깎아낸 바위절벽 같은 것으로 거기에 지층이 기기묘묘하게 드러나 있다. 마치 나무뿌리가 드러난 것 같은 암맥이 볼수록 기묘하다. 이곳에서는 농어와 숭어가 제일로 친다. 그 밖에 전어, 학꽁치, 병어, 밴댕이, 망둥어, 갑오징어, 골뚜기, 꽃게 등등. 더러 재수 좋은 날에는 광어까지 주워온다. 조개골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초행자들이라도 맘만 먹으면 조개를 한 바구니씩 캐올 정도로 조개가 많다. 주민들이 상합이라고 부르는 백합을 비롯하여 가무락(모시조개), 동죽, 바지락, 피뿔고둥(소라), 굴 등을 직접 관찰할 수 있다. 고둥 종류도 많다. 검은 껍질에 돌기가 나 있는 것은 왕좁쌀고둥이다. 왕좁쌀고둥은 육식성에다 동작이 느리기 때문에 그들의 밥은 상처받은 게나 병든 민챙이들이다.
해송 숲 속에는 물까치들이 떼지어 살아
서해비단고둥도 흔하게 눈에 띈다. 민챙이도 고둥 종류에 속한다. 갯벌 위의 구멍들은 저마다 모양과 크기와 깊이가 다르다. 그것은 그 속에 사는 서식생물들의 종류가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길게는 칠게와 생김새에 있어서 사촌이다. 칠게보다 등짝이 길고, 집게발이 구부러져 있다. 칠게는 펄을 좋아하고 길게는 모래를 좋아한다. 물 먹은 모래밭에는 작은 엽낭게가 산다. 등짝 모양이 반원에 가까운 주머니 모양이다. 엽낭게가 모래를 은단알처럼 뭉쳐서 구멍 밖에다 사방 널어놓는 것은 자기 영역을 표시하기 위함이다. 그 모양들이 하나같이 예술이다.
바닷가엔 이따금 꼬마물떼새, 검은머리물떼새, 도요새들이 머물다 가고 멀리 떨어진 무인도에서는 검은머리 물떼새, 노랑부리백로, 붉은어깨도요새도 서식하고 있다. 겨울에는 저어새도 보인다. 바닷가엔 방풍림이 그림처럼 줄지어 서 있다. 해송을 중심으로 육송, 해송, 리기다 등 세 종류의 소나무들이 살고 있다. 해송과 육송끼리 교잡이 이루어진 것도 있다. 서해의 여러 섬들이 대개 해송으로 방풍림을 이루고 있는 데 비해 이곳에서는 다양한 활엽수들고 함께 자리하고 있다. 에너지 현대화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보름도의 산림은 보기가 민망할 정도의 민둥산이 었다고 한다. 그러나 불과 20여년만에 안으로 발을 들여놓지 못할 정도로 숲이 울창하게 변했다.
솔밭 가운데 솔붓꽃이 피었다. 늦봄부터 초가을까지 줄기차게 꽃을 피워내고 있다. 다른 붓꽃과는 달리 동그랗게 포기를 이루고 있다. 땅속의 잔뿌리가 매우 발달하여 억세므로 옛 사람들은 그 뿌리로 솔을 만들어 썼다. 솔붓꽃은 난쟁이꽃이다. 하지만 키 작은 풀꽃이라고 키 큰 나무의 조연이나 엑스트라로 태어난 게 아니다. 저마다 절대적인 가치를 지니고 태어났다. 키 큰 소나무들이 흉내조차 낼수 없는 예쁜 꽃도 그런 까닭일 것이다. 해송 숲 속에는 물까치가 산다. 물까치는 참새목 까마귀과에 속한 텃새로 까치보다 좀 작은 편이다. 머리는 검은색이고 몸은 밝은 회갈색이다. 날개와 꼬리는 밝고 푸른빛을 띠고 있다. 꼬리는 까치처럼 길다. 여러 마리가 떼를 지어서 산다. 사람이 접근하면 숲이 울릴 정도로 괴성을 질러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