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도 될까요?” 이것은 세상의 모든 차별 철폐를 염원하는 2002년 질라라비 장애인 야간학교(대구)의 문화체험 캠페인 표제이다. 문화를 왜 체험해요? 영화 보고 싶을 때 영화보고, 운동장에 가고 싶을 때 운동장에 가고, 바다가 보고 싶으면 바다에 가고, 밥 먹고 싶을 때 음식점에 들어가면 되지. 하지만 대부분의 장애인들은 보고 싶고, 가고 싶고, 먹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들이 접근할 수 있는 편의 시설이 극장에도, 운동장에도, 해변에도, 음식점에도 갖추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당대를 함께 살면서도 세상살이에 늘 주눅들거나 기죽어 있고, 삶의 언저리에서 맴도는 것이 우리네 장애인들 삶의 현실이다.
최근 서울 지하철 1∼8호선 전체 263개 역의 환승·승강 편의시설을 조사해 본 결과에 의하면, 엘리베이터가 없는 역이 71%인 186곳, 엘리베이터·리프트 모두가 없는 역도 무려 41%(109곳)로 밝혀졌다. 결국 지난 5월 서울지하철 5호선 발산역 1번 출구에서 리프트에서 내리다 타고 있던 전동휠체어가 리프트 뒤쪽 아래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1급 중증장애인 윤재봉(62) 씨는 한 많은 삶을 그렇게 마감해야 했다.
이제 장애인들은 ‘목숨 걸고’ 지하철을 탈 수밖에 없는 현실 앞에 절규하고 있다. 최근 장애인들은 “월드컵 4강 대∼한민국 장애인의 인권은 없다”라고 적힌 피킷을 들고 국가인권위 사무실을 점거해 단식농성을 했다. ’88년 장애인 올림픽을 치르고,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마친 우리네 현실이 이렇다.
교육부는 1995학년도부터 대학입학전형에 장애학생 특례입학제도를 도입한 이후, 현재 전국적으로 약 1천여 명 이상의 장애학생들이 4년제 대학에서 수학하고 있다. 말하자면, 이들은 대학에서 비장애 학생들과 함께 통합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획득한 특혜받은(?) 선택된 장애학생들이랄 수 있다. 하지만 통합교육은 말로만 되는 게 절대 아니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실현할 적절한 지원 서비스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최근 서울지법 민사부는 서울의 S대학에 대해 “장애학생의 학습권을 보장하고 있지 않다”며 대학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낸 지체장애 1급인 박모 씨에게 “학교는 250만 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비록 승소금의 액수는 작은 것이지만 그것이 갖는 의미는 준엄하다. 박씨가 재학하는 대학 관계자 가운데는 “돈 몇 푼 벌려고 학교명예를 떨어뜨리지 말라”고 면박했는가 하면, 동료학생들조차도 “장애를 팔아먹지 말라”는 인신공격까지 해댔다고 한다. 이처럼 비장애인들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지지 않는 한 ‘장애’에 의한 ‘소외’로서의 폭력은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이 땅의 장애인들이 기죽은 상태에서 “함께 살아도 될까요?” 라며 조심스레 발을 내밀 때, 대부분의 비장애인들이 “집에나 있지 무엇 하러 나왔어요?”라는 눈초리로 지켜보는 상황에서 장애인에게 접근권 보장이니 통합교육이니 하는 것은 기만이다. 장애인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학교와 사회는 비장애인들 모두를 위해 품위있는 학교이자 사회이다. 따지고 보면, ‘장애’는 개인의 병리문제가 아니라 원천적으로 우리 사회가 구성해 낸 사회적 병리문제이다.
장애인이동권 연대대표로 앞장서 일하는 박경석 씨(노들장애인 야학교장)는 장애인의 이동권 쟁취를 위해 거침없이 다음과 같이 토설한다.[PAGE BREAK]
(장애인에게) 교육, 노동, 문화 등 삶의 모든 영역이 차별로 나타난다. 이동권이 먼저다. 더 중요하다는게 아니라 이동의 문제부터 풀어야 한다. 대중교통은 누구나 다 이용할 수 있고 우리(장애인)도 누구나처럼 그래야 한다.
중증장애인이 저상버스(버스출입구 턱이 낮아 휠체어를 타고도 쉽게 탈 수 있는 버스)에 타려면 5분 정도 걸린다. 우리 사회는 그것을 참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다. 장애인들이 밖으로 나와서 돌아다녀야 한다. 그러면 아무리 몸이 비틀어져도 외계인처럼 보이지 않고, 친구나 이웃으로 보이게 된다(한겨레가 만난 사람, 2002. 8. 13).
박경석 대표가 애타게 갈구하는 그런 사회에서 장애인은 우리 모두와 함께 공부하고, 일하고, 놀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사람 사는 사회의 본래 모습이다. 또한, 그게 우리가 소망하는 교육이상세계(edutopia)의 본래 모습이다. 장애학생과 비장애학생의 통합교육을 위한 과정적 노력이 좀더 구체적이고, 철저히 이루어져야 한다. 이제 우리는 이 땅에 장애학생과 함께 하는 교육공동체를 기필코 구현해야 한다. 그래야만 교육이 바로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