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름다운 경관으로 알려진 일본 북해도 지역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자연은 아직도 마그마 연기가 피어오르는 원시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태고의 모습이 잘 보존된 자연 경관도 볼만하였지만 전통을 유지하고 있는 일본식 주택 등을 통해 일본인의 전통문화에 대한 애착도 느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지금은 거의 사라진 북해도 원주민인 아이누족의 생활양식과 풍속이 2세들에 의해 보존되고 있다는 사실과 함께 '시라오이(白老)'라는 마을에 만들어진 아이누족 민속촌에서 남녀노소가 어울려 옛 풍속을 재현하는 모습에서 고유 민속문화에 대한 그들의 자긍심에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반면 흙 속의 진주처럼 가려져 빛을 발하지 못하는 소중한 우리 고유 민속문화의 현실을 떠올리며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우리 민속문화는 양적인 면이나 질적인 면에서 어느 곳에 내놓아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 민족의 생활터전이 산과 들과 강과 바다 등 다양하여 그 문화의 유형도 각양각색이며 또한 반만년이라는 유구한 역사를 거쳐오는 동안 대륙문화와 해양문화를 절충하여 발전시킬 수 있었던 반도라는 지정학적으로 유리한 여건을 가졌기 때문이다. 24 절후(節侯)에 맞추어 행해지는 주기전승의 세시풍속, 별신 탈놀이나 놋다리밟기와 같은 집단 놀이로서의 민속 예능, 어느 곳에나 산재해 있는 신화·전설·설화 등 민족의 얼이 담긴 이야기들, 민중의 공명공감 의식에서 싹튼 풍부하고 다양한 민요, 예의 범절을 기반으로 성립된 관혼상제, 그리고 길흉화복이 하늘의 뜻이라고 인식하여 하늘을 섬기던 민간신앙에 이르기까지 귀중한 유무형의 문화유산이 보고(寶庫)처럼 쌓여 있다.
이러한 민족 문화유산이 실제 생활에서 활발히 전개되다가 일제의 핍박을 받으면서 그 명맥이 단절되기도 하였으나 이 분야에 관심을 둔 많은 학자들에 의해 발굴·수집·정리되어 이제는 상당한 수준에서 체계화되었다. 그러나 이토록 독자성을 지닌 민속문화가 일반화되지 못한 채 관심 있는 일부 계층의 연구와 학문의 대상으로만 활용되고 있다는 점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민속이란 민중의 생활로 민중이 속해 있는 자연적·역사적·사회적 환경에 대처하고 적응하는 가운데 신앙과 지혜로 엮어낸 생활풍속을 말한다. 이러한 우리 고유의 민속문화가 민중은 물론 학교 교육의 현장에서도 외면 당한 채 사장되고 만다면 그 안타까움의 정도는 헤아릴 수가 없을 것이다.
더구나 민족의 정통성과 고유성과는 무관한 외래문화 섭취와 동화에 익숙한 오늘의 청소년을 보며 어떻게 민족의 주체성을 논할 수 있을 것인가? 이들에게 민족혼의 뿌리가 서려 있는 다양한 민속문화를 접하게 하고 배우게 함으로써 우리 것에 대한 소중함을 인식하게 한다면 교육 현장에서 요구되는 실추된 여러 여건들을 어느 정도 회복시켜 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를 위한 방편으로 민속자료 발굴과 수집에 학생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수학여행이나 체험활동을 학급 단위로 축소하여 일정한 지역을 대상으로 선정하고 교사의 지도 아래 민속 대상자료를 직접 수집·정리하는 기회를 준다면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각 가정은 가정마다 조상 전래의 습속이 있듯이 마을은 마을대로 지역은 지역대로 전래·전승·보존되고 있는 민속들이 수 없이 많다.
이러한 민속 자료를 직접 찾아보는 경험은 우리 민속문화의 실체를 파악하게 하고 민족혼의 뿌리를 터득하게 함과 동시에 한국의 기층문화 이해에도 큰 몫을 할 것으로 믿는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대학의 민속학과나 전문가의 도움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민속을 놀이문화로서 생각하는 편견에서 벗어나 민속문화의 내용적 가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신문화로서의 민속과 놀이문화로서의 민속을 구분하고 체계화하여 초등학교에서부터 고교에 이르기까지 교육에 필요한 문헌을 편찬하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라고 여겨진다. 또 필요에 따라서는 교과과정의 신설도 고려했으면 한다. 이것은 대학의 민속학과나 인류학과에 연계된 학습으로 이어지며 나아가서는 정신문화 계승 차원에서 한국 민족의 정신과 민족혼을 환기하고 전통문화 수립이라는 큰 목표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지구촌이라 부르는 이 시대에 모든 문화는 점점 그 특성을 잃고 보편화되어 가고 있다. 다시 말하면 민족의 고유성이 사라져 가고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우려되는 것은 경제·문화의 강국이라 일컫는 민족의 문화가 그렇지 않은 문화를 흡수할 소지가 있어 어느 정도 세월이 흐르면 소위 약소 민족의 문화는 그 흔적을 찾기가 어렵게 될 수도 있다. 이러한 때에 우리 고유의 민속문화를 체험하고 배우게 함으로써 우리 민족문화의 총체적 모습을 지켜갈 수 있을 것이며 실추되어 가는 도덕문화를 회복할 수도 있고 내 문화를 알고 남의 문화를 능동적으로 수용할 줄 아는 문화수용의 지혜도 터득될 것으로 확신한다. 민속문화의 체계적인 교육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이제부터라도 학교에서 민속문화에 대한 교육이 시작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