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이나 수학여행 양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학교 전체 또는 학년 전체가 한꺼번에 떠나는 대량관광 형태에서 몇몇 학급 또는 개별 학급으로 떠나는 소규모 소풍여행이 자리잡아가고 있다. 내용에 있어서도 자연과 문화를 향유하고 배우는 체험학습 형태로 바뀌고 있다. 이번에는 단풍 속에 묻힌 속리산의 자연과 문화를 돌아보려 한다. 생태적 시각에서 문화유산을 읽고, 문화적 시각에서 자연생태를 보는 디지털 적인 관점이 교사들에게 필요하다. 속리산과 법주사는 정상인 천왕봉 등정만 욕심 내지 않는다면 전국 어디서든 당일 코스로 무리 없이 돌아볼 수 있다.
법주사는 진표율사가 지은 미륵의 집 먼 옛날 완주 땅에 한 소년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소년은 여러 친구와 함께 소를 먹이러 산으로 갔다. 소년은 소들이 풀을 뜯어먹는 동안 냇가에 가서 개구리를 잡았다. 소년은 버들가지에 개구리를 꿰어서 물에 담가두고는 물놀이를 했다. 날이 저물자 소년은 잡은 개구리를 그만 깜박 잊어버리고는 소를 몰고 바삐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음 해에 소년은 다시 소를 먹이러 그 골짜기로 갔다. 그런데 작년에 잊어버리고 온 그 개구리들이 버들가지에 꿴 채로 그 때까지 살아서 울며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소년은 가슴이 미어지는 아픔을 느꼈다. 여러 날을 잠 못 든 소년은 홀연히 집을 나서 산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나중에 큰 스님이 되었다.
이 이야기는 신라 하대에 미륵불교를 일으킨 진표율사의 출가에 얽힌 이야기이다. 법주사는 진표율사가 백두대간 속리산 품속에 지은 미륵의 절집이다. 속리산과 법주사는 궁합이 잘 맞는다. 사찰문화는 사찰환경의 꽃으로 피고 진다. 따라서 사찰문화 체험은 사찰의 환경에 대한 이해가 병행되어야 비로소 효과가 배가된다. 속리산 들머리인 보은 외속리 장안마을에 옛 집 몇 채가 있다. 이 집은 전통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와는 거리가 멀다. 속리산에서 내려온 물줄기가 집 뒤에서 Y자형으로 갈라진다. 집 뒤에 물을 두면 홍수의 범람이 염려스럽다. 그래서 집 뒤에다 야트막한 제방을 쌓아 빙 둘렀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차례나 물에 잠겼다. 게다가 산에 기대지 않고 농경지 한가운데 지은 집이라서 사방이 허(虛)하다. 이를 막기 위해 담들을 비교적 높게 쌓았다. 집 뒤에다 가산(假山)을 만들고 우람한 솔밭을 담처럼 두른 것도 그런 까닭에서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풍수와 같은 조상들의 생태적 지혜를 가르칠 필요가 있다. 즉 풍수를 통해서 '자연 읽기'를 가르치고 풍수를 통해 자연에 조화된 삶을 가르치는 것이다. 열두구비 말티재를 넘는다. 해발이라야 기껏 400m 안팎. 말티재 열두구비는 세조 임금과 인연이 깊다. '말티고개'라는 지명은 세조가 물이 좋다는 복천암을 찾아갈 때 고개가 너무 가파르고 좁아서 가마에서 내려 말을 갈아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전설이 있다. 열두구비 말티재를 넘어서 만나는 속리천은 1급수 하천이다. 버들치와 피라미를 비롯해서 맑은 물을 좋아하는 7종의 민물고기들이 서식하고 있다. 곳곳에 갈대와 물억새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갈대꽃이 채 피기 전에 산간사람들은 갈대이삭을 뽑아 빗자루를 만들어 대처에 나가 팔았다. 그러나 지금은 갈목비를 만드는 사람도 없고 갈목비를 사다 쓰는 이들도 없다. 해마다 갈대만 헝클어지고 있다.
풍수같은 조상의 생태적 지혜 배워야 천연기념물 정이품송은 세조가 법주사로 행차하는 길에 스스로 가지를 치켜올려 편히 지나갈 수 있게 해주었다는 그래서 정2품의 작위를 받았다는 전설의 소나무다. 우리 나라 소나무를 다섯 가지 생태형으로 분류할 때 이 정이품송은 중부내륙형 소나무에 속한다. 언제 보아도 단아하며 기품이 있다. 비록 늙고 병들어도 노신(老臣)의 기품은 여전하다. 그러나 수령이 600년에 이른다는 정이품송도 이제 노후병색이 역력하다. 산림청은 정이품송이 죽기 전에 건강한 후손을 보기 위해 전국에서 신부감을 구한 결과 삼척 준경묘에 있는 금강송이 최종적으로 간택되었다.
정이품송 부근에 학생들과 시민들을 위한 야생화 테마파크가 최근 조성되었다. 1㎞ 가량의 계곡 주변 조성된 3000여평의 테마파크에는 수백 종의 식물들이 있다. 나비를 비롯한 곤충 관찰도 가능하다. 목본류로는 보리수, 마가목, 팥배나무, 회화나무, 모감주, 쥐똥나무, 병아리꽃나무, 흰말채나무, 병꽃나무 등 50여 종이 식재되어 있다. 야생화는 족도리풀, 단풍취, 용머리, 부처꽃, 참나리, 금불초 등이 심어져 있다. 또 어류·수서곤충·수서식물 등을 관찰할 수 있는 8자형의 연못이 조성되어 있다. 현장 해설이 필요하면 전화(043-542-5267)나 이메일(songni@npa.or.kr)로 신청하면 된다.
속리산 주차장에 이르면 멀리 속리산의 한 자락이 보인다. 해발 1058m의 속리산을 제대로 보려면 여러 날이 걸리겠지만 당일로 돌아보는 데는 주차장-오리숲-법주사-복천암-문장대를 왕복하는 코스가 무난하다. 개울에는 달뿌리풀이 물억새와 갈대들을 괄시하며 물가에 군데군데 군락을 이루고 있다. 갈대와 흡사하지만 물이 닿는 모래땅을 좋아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줄기는 2m 가량 되며 줄기에 털이 나 있다. 지상으로 뻗은 마디의 수염뿌리로 번식하기도 하지만 털이 있는 씨앗이 바람에 날려서 번식하기도 한다.[PAGE BREAK] 오리숲은 속리산 품안이요 법주사의 오지랖이다. 오리숲에는 몇 종류의 참나무를 중심으로 고로쇠나무, 국수나무, 까치박달, 단풍나무, 덜꿩나무, 물푸레나무, 병꽃나무, 산딸나무, 산벚나무, 산철쭉, 산초나무, 생강나무, 싸리나무, 진달래, 쪽동백나무, 풍개나무 등의 활엽수들이 터널을 이루고 있다. 활엽수들 사이로 이따금 노송이 서 있다. 소나무와 활엽수의 싸움은 번번이 활엽수의 승리로 끝나지만 소나무의 덩지가 크면 활엽수도 맥을 못 춘다. 오리숲과 계곡 숲으로 들어서면 박새, 곤줄박이와 같은 박새류를 비롯하여 쇠딱다구리, 오색딱다구리, 어치, 잣새 등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육식성 조류로는 천연기념물인 올빼미와 수리부엉이를 비롯하여 쇠부엉이, 소쩍새, 솔부엉이 등이 살고 있다.
3000여 평의 테마파크에 볼거리 많아 법주사 일주문을 지나면 키 작은 봉교비(奉敎碑)가 서 있다. 봉교(奉敎)란 '왕이 내린 명령'을 말한다. 내용인 즉 속리산에 들어와 함부로 유흥하지 말고 속리산 스님들에게 함부로 부역을 시키지 말라는 왕의 명령이다. 먹고 마시고 흔들고 노는 향락 취향의 관광에 대한 경고의 의미는 지금도 유효하다. 봉교 주변으로 전나무들이 장승처럼 서서 숲을 이루고 있다. 전나무는 서늘하고 다습한 곳을 좋아하기 때문에 개울이 가까운 곳에 터를 잘 잡고 있다. 허우대는 멀쩡하지만 측근보다 직근이 약하기 때문에 바람 센 곳에서는 잘 넘어지는 편이다. 낙엽송은 일제 식민시대에 들어온 나무이다. 이름도 'Japanese larch'이다. 침엽수 가운데 유일하게 단풍이 들고 낙엽이 진다. 수정교 다리 아래로 속리천이 내려가고 있다. 계곡 주변의 나무들이 계곡 안쪽을 향해 모두 고개를 내밀고 있다. 조금이라도 햇볕을 더 받기 위함이다. 도로변의 가로수들이 안쪽으로 굽어서 터널을 이루는 것도 그 때문이다. 금강문(金剛門)을 지나면 천왕문 앞에 두 그루의 잘 자란 전나무가 마치 금강역사처럼 버티고 서 있다. 법주사는 탑이 없는 절이다. 그래서 천왕문 위쪽에 자리한 팔상전이 탑을 대신한다. 아니, 팔상전 자체가 나무로 지은 거대한 목탑이다. 그리고 석탑이건 목탑이건 탑은 모두가 나무를 닮았다. 특히 이곳의 팔상전은 잘 자란 한 그루의 침엽수를 보는 듯하다. 가람배치의 중심축에 따라 팔상전을 지나면 석등이 있고 석등을 지나면 대웅보전이 자리한다. 보물 제915호인 대웅보전 계단에는 불교를 지켜주는 돌원숭이 두 마리가 조각되어 있다. 대개 대웅보전 마당에는 나무를 심지 않는 게 원칙이다. 목조건물은 습기에 약하기 때문이다. 또 대웅보전 앞에 나무를 심어놓으면 대웅보전 안으로 들어가는 빛의 반사를 가로막기 때문이다. 그런데 법주사에는 대웅보전 앞에 잘 자란 나무 두 그루가 서 있다. 표찰에는 '염주나무'라고 되어 있지만 불자들은 보리수(菩提樹)로 알고 있다. 가끔 이름만 듣고 이 나무가 부처님이 성도 하신 그 보리수나무인 줄 알고 열심히 합장하는 이들도 있지만 인도의 보리수나무는 이 나무가 아니다. 절에 와서는 담도 볼거리 가운데 하나이다. 법주사에서는 부서진 기와조각들을 주워 모아 황토에 섞어서 담을 쌓은 곳이 많다. 폐자재의 재활용 측면에서 좋은 예가 된다. 가을이 되어 붉게 단풍든 담쟁이가 흙담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담쟁이는 낙엽활엽수 덩굴식물이다. 꽃은 암꽃과 수꽃이 따로 있는데 여름에 작은 황록색 꽃이 핀다. 열매는 하얀 가루로 덮여 있으며 가을에 검게 익는다.
문장대로 등산로는 나무 공부에 적격 도로 나와 수정교를 건너면 왼쪽으로 복천암-중사자암-문장대 가는 길이 나 있다. 조금 올라가면 저수지가 나온다. 내속리면 사람들의 상수원이다. 건너편 솔숲이 건강해서 건너다보는 눈 맛이 좋다. 가끔 물위로 원앙들이 날아든다. 둥지도 아마 사람들의 출입이 금지된 건너편 산기슭의 어느 고목에 틀었을 것이다. 원앙은 오리과에 속하는 천연기념물이다. 우리 나라 텃새 중에서 가장 예쁜 새다. 텃새라고는 해도 얼음이 얼면 먹이활동을 할 수 없기 때문에 평야지대로 내려간다. 상수원을 지나 조금 오르면 오른쪽에 세조가 목욕했다는 목욕소가 있다. 길섶에는 김의털이 나 있다. 실낱처럼 가는 잎은 곧추서지 못하고 마치 할아버지 긴 수염 같이 땅표면에 누워있다. 건조한 땅을 좋아하지만 숲 속에서 자주 보인다. 마음을 씻는다는 세심정을 지나 복천암까지는 단풍 숲길이다. 붉은 단풍은 여름이 끝나고 기온이 떨어지면서 나무의 푸른 엽록소(잎파랑이) 생산이 멈추면서부터 물들기 시작한다. 붉게 물드는 나무에는 단풍나무류, 진달래, 철쭉, 산벚나무, 화살나무, 붉나무, 옻나무, 산딸나무, 매자나무, 윤노리나무 등이 있다. 은행나무처럼 노랗게 물드는 것들은 잎 속에 카로티노이드라는 색소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생강나무, 고로쇠나무, 느릅나무, 미류나무, 피나무, 자작나무, 버즘나무(플라타너스) 등은 노랗게 물든다. 갈색 단풍은 카로티노이드에 더하여 탄닌이 생긴 때문이다. 갈색물이 드는 나무로는 모든 참나무 종류와 느티나무 등이 있다. 단풍은 일교차가 심할수록 깨끗이 물든다.
복천암은 아미타불을 모시는 미타암이다. 마당에 향나무를 심은 것도 극락왕생을 기원하기 위함일 것이다. 극락보전 주위로 꽃향유가 무리지어서 피어있다. 꽃향유는 한해살이풀로 한쪽으로 치우쳐서 빽빽하게 피고 늦가을에 열매가 익는다. 속리산에는 가는꽃향유가 희귀종으로 자라고 있다. 문장대로 올라가는 등산로는 나무 공부하기에 좋다. 노각나무는 꽃과 수피가 아름다운 교목이다. 노랗게 물드는 단풍도 일색이다. 함박꽃나무는 목련과에 속하는 낙엽활엽소 교목으로 산목련이라고도 한다. 주황색으로 물드는 단풍이 좋아서 정원수로도 심는다. 문장대에 오르면 신선대를 지나 최고봉인 천왕봉까지 가는 산행로가 있으나 학생들을 인솔한 산행이라면 무리하면서 천왕봉을 등정할 이유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