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하구는 해마다 10만 마리 안팎의 철새들이 찾아들고 있다. 이곳은 초겨울보다 겨울의 한가운데에 이르면 철새들의 개체수가 더 늘어나는 특징을 보인다. 천수만에 있던 새들이 이사를 오기 때문이다. 금강 하구의 탐조지역은 크게 네 지역으로 나눈다. 웅포를 중심으로 강경에서 하구둑에 이르는 강변지역, 하구둑을 중심으로 바다쪽 갯벌지역, 민물쪽 지역, 외항 밖 유부도지역 등이다.
금강 하구의 탐조는 강경에서 시작하면 좋다. 금강을 따라 군산으로 내려가다 보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해안의 고깃배들이 오르내리던 포구들을 만난다. 그러나 하구둑이 생겨 담수화가 진행되면서 이래저래 '물먹은' 마을들이다. 23번 국도를 타고 강경읍내를 빠져 나오면 전라도 익산 땅이다. 금강에 탐조를 올 때마다 조선말 명창 이날치(李捺致) 선생의 일화가 떠오른다. 한때 이날치는 강경에서 자동차로 불과 10여분 거리에 있는 익산 심곡사에 머물며 노래를 했다. 특히 온갖 새들의 울음소리를 내는 새타령을 듣기 위해 많은 이들이 심곡사를 찾았다. 그의 새타령을 듣고 임규라는 시인이 "이날치의 새소리를 듣고 온갖 잡새가 날아들어 함께 울었다"는 글을 남겼다. 새 울음소리를 아무리 그럴싸하게 내도 새와 하나가 되는 자연합일의 경지에 있지 않으면 불가능할 것이다.
강경읍에서 10여 킬로미터 거리에 있는 난포리는 부곡천이 금강 본류와 만나는 합수지역이다. 전에는 강변 농경지에 기러기들이 많이 내려앉았으나 언제부턴가 발길이 둑 끊어지고 이 고장에서 태어난 옛 시인의 노래만 남아있다.
"내리는 사람만 있고 /오르는 이 하나 없는 /보름 장날 막버스 /차창밖에 꽂히는 기러기 떼 /기러기 떼를 보아라 /아, 어느 강마을 /잔광(殘光) 부신 그곳에 /떨어지는가"
난포리 갈대 숲 너머 하중도 모래밭에 청둥오리가 모여서 졸고 물닭 몇 마리는 그 갈대 숲 앞에서 자맥질을 하고 있다. 물닭은 부리와 이마만 희고 전체가 까만 씨암탉처럼 생긴 물새이다. 잠수성 조류인 물닭 주변에 이따금 오리류들이 빙빙 도는 것은 물닭이 잠수를 해서 뜯어오는 수초들을 얻어먹기 위해서이다. 물닭은 때로 수십 마리씩 떼를 짓기도 하는데 최근에는 봄이 되어도 제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이 땅에서 비비적거리는 물닭들이 늘어나고 있다. 제성리마을을 지나면 다시 금강을 만난다. 갈대 숲으로 뒤덮인 강변을 따라 내려오는 길은 곳곳에서 탐조가 가능한 지역이다. 찻길로 자동차들이 쌩쌩 달려도 멀리 도망을 가지 않는다. 새들은 대체적으로 자동차들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다만 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무서워할 뿐이다. 따라서 자동차에서 내리지 않고 여유 있게 탐조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운 좋은 날이면 가창오리 볼 수 있어
웅포는 금강하구에서 탐조하기 좋은 곳 가운데 하나이다. 운수 좋은 날이면 이곳에서 하늘을 시커멓게 뒤덮는 수만 마리의 가창오리가 펼치는 군무를 볼 수 있다. 운수 좋은 날은 주로 1월중에 찾아온다. 천수만에서 놀던 가창오리가 해남까지 내려갔다가 북상하는 길에 금강하구에 떼지어 내려앉기 때문이다. 가창오리는 전세계적으로 약 10만 마리가 있는데 한·중·일 세 나라에서만 월동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한때 경남 창원 주남저수지를 즐겨 찾았는데 주민들이 호숫가의 갈대밭에 불을 지르는 등 노골적으로 미워하는 바람에 발걸음을 뚝 끊었다. 낮에는 주로 물위에 앉아 쉬고 아침과 저녁에 수만 마리가 떼를 지어 이동하기 때문에 조우하기가 쉽지 않다. 가창오리는 수컷의 얼굴에 태극 모양이 있어서 북한에서는 태극오리라고 부른다.
웅포대교 아래쪽 하중도에 갈대가 숲을 이루며 덮고 있다. 갈대 숲은 금강의 매력 가운데 하나이다. 갈대 숲이 없어지면 금강의 수질도 나빠지고 경관적 가치도 훨씬 떨어질 것이다. 하중도 주변으로 고니들이 무리지어 떠있다. 고니류는 얕은 물 속에서 수초나 갈대의 어린뿌리를 뜯어먹는다. 물 속에 머리를 박고 엉덩이를 하늘로 치켜세운 우물나무서기는 아무래도 우스꽝스럽다. 웅포에서 강변을 따라 서포까지 둑방도로들이 새로 생겨났다. 서포에 이르면 충남과 전북을 잇는 서해안고속도로가 금강대교를 지나간다. 서포지역은 본래 바닷물과 민물이 오르락내리락하던 기수지역으로 특수한 생태계를 보여왔다. 하구둑 건설로 수위가 높아지고 곳곳에 둑방이 생기면서 예전에 보이던 마도요·학도요·큰뒷부리도요·알락꼬리마도요·개꿩·흰물떼새·댕기물떼새·민물도요와 같은 해양성 조류들이 많이 사라졌다. 게다가 수위가 올라가면서부터 고랭이와 같은 키 작은 수생식물들을 누르고 갈대가 뒤덮이기 시작하자 개리와 고니들도 자리를 옮겨버렸다. 지금은 몇 종류의 오리류만 보이고 있다. 그나마 갈대 숲 너머 강 한가운데 모여있다.[PAGE BREAK]'검은머리갈매기'는 한반도가 주무대
강을 끼고 5분 정도 내려오면 하구둑을 만난다. 하구둑 건설로 금강은 이제 하구 없는 강이 되어 버렸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하구역의 특징적 생태계가 사라진 것이다. 하구둑 가운데 서서 좌우를 살펴보면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둑 오른쪽은 민물이며 왼쪽은 바닷물이다. 민물쪽은 간만이 없지만 바닷물 쪽은 간만의 차가 심하여 썰물 때는 갯벌이 시커멓게 드러난다. 그래서 둑을 경계로 이쪽 저쪽에 사는 철새들의 종류가 많이 다르다. 둑 오른쪽으로는 흰뺨검둥오리·청둥오리·쇠오리 등이 텃세를 하고 있는 반면 둑 왼쪽은 개리와 갈매기류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전문가에 따르면 오리류는 약 8000만년 전 중생대 백악기에 본격적인 분화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다른 조류들과는 달리 알에서 부화되자마자 곧바로 어미를 따라 물로 뛰어들어 헤엄을 치고 먹이를 찾게된 조성적(早成的) 특성도 그 무렵에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곳의 흰뺨검둥오리들은 북에서 내려온 철새와 이곳에서 번식한 텃새가 섞여있다. 외모로 봐서는 구별할 길이 없다. 흰뺨검둥오리 역시 알을 깨고 나오자마자 어미를 따라 물로 뛰어드는 천상 물새이다. 전체적으로 흑갈색을 띄며 부리 끝은 노랗고 뺨쪽은 밝은 상아색을 하고 있다. 오리류 가운데는 덩지가 좋은 편이다.
개리는 기러기와 비슷하게 생겨서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다만 부리가 검고 목 앞이 흰색인 것이 다르다. 그리고 기러기가 주로 농경지를 좋아하는 데 비해 개리는 강의 하구 갯벌을 좋아한다. 기러기보다 목이 길어서 강가 개펄 속 깊이 머리를 박고는 수생식물의 풀뿌리나 무척추동물을 잡아먹고 밀물이 들어오면 물위에 떠다니면서 수초 등을 뜯어먹기도 한다. 금강하구에서 노는 겨울 갈매기 가운데 진객은 역시 검은머리갈매기이다. 갈매기류 가운데서는 비교적 덩지가 작으며 주로 조간대 갯벌에서 먹이를 취한다. 전세계적으로 4000여 마리밖에 없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는데 이 새가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활동하는 곳이 한반도이다. 금강 하구를 비롯하여 주로 서해안 갯벌지역에 살면서 갯벌에서 먹이를 취한다. 하늘을 바람처럼 부드럽게 유영하다가 매가 꿩 채듯이 갑자기 급강하여 게나 갯지렁이 등을 잡는 1급 사냥꾼이다.
섭금류들은 염전 있는 갯벌만 찾아
"月落寒潮靜(달 지자 찬 물결 고요하고) /帆開宿雁呼(돛 달자 잠자던 기러기 우짖네) /朦朧烟霧岸(몽롱한 안개 자욱한 언덕) /已過酒家無(벌써 지났는가 술집 보이지 않네)"
배경적 분위기가 딱 금강하구인 조선조 시인인 조신준(曺臣俊)의 시이다. 기러기는 예로부터 '안서(雁書)'라 하여 기쁜 소식을 주는 새로 인식되어 왔다. 또 그림의 소재로도 많이 등장했다. 특히 갈대와 함께 그리는 노안도(蘆雁圖)는 단골소재였다. 노안은 노안(老安)을 의미한다고 해서 사랑방에 흔히 걸어두었다. 그 그림에 시제(詩題)가 없을 수 없다. 큰기러기보다 몸집이 작은 쇠기러기는 앞이마가 흰색이기 때문에 먼눈으로도 쉽게 구별이 된다. 큰기러기는 검은 부리 끝의 주황색 띠가 특징적이다.
물때에 맞추어 도요새와 물떼새들이 갯벌에 날아든다. 도요새와 물떼새는 물가를 걸어다니는 새들이라고 해서 섭금류라고 한다. 섭금류들은 거의 대부분 나그네새들인데 겨울에 보이는 섭금류들은 남쪽으로 돌아가지 않고 아예 겨울을 이곳에서 날 작정으로 주저앉은 녀석들이다. 섭금류들은 밀물을 따라 들어오고 썰물을 따라 나간다. 물이 많이 들어오는 사리 때에는 발가락이 보일 정도로 가까이 다가온다. 밀물이 갯가에 그득 찼을 때는 가까운 염전 등지에서 시간을 보낸다. 섭금류들은 염전이 가까이에 없는 갯벌은 찾지 않는다. 그래서 제철에는 금강 주변보다는 옥구 염전지역으로 가야 많이 볼 수 있다.
도요새류와 물떼새류는 구분하기가 좀 모호한 데가 있다. 대부분 도요새들은 부리가 길고 물떼새 종류는 비교적 부리가 짧은 편이다. 도요새는 갯펄 구멍을 쑤셔서 먹이를 취하는데 비해 물떼새는 숨죽이고 있다가 먹이가 사정권 안에 들어오면 달려가 먹이를 잡는다. 그들이 노리는 것은 작은 물고기, 패류, 갑각류, 수서곤충류 등이다. 갈대밭에 숨어사는 갈게와 참방게들도 그들이 즐겨하는 메뉴이다. 마도요는 도요새 가운데 몸집이 가장 좋다. 원래 '마(馬)'자가 들어간 것들은 몸집이 좋다. 아래로 굽은 부리도 가장 길다. 그것으로 갯펄의 구멍 깊숙이 넣어서 먹이를 잡아낸다. 깝작도요는 앉아있을 때 가끔씩 몸을 깝작깝작한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대표적인 나그네새이지만 간혹 무리에서 떨어져 여름이나 겨울을 나기도 한다. 서울 한강 난지도 강변에서도 관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