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인적자원의 잠재력을 현실의 에너지로 전환시켜 국제 경쟁력의 원천으로 삼는 일은 21세기를 대비하는 우리 모두의 당면 과제이며, 지방대학이 존재하는 이유이다. 이를 위해 정책 당국의 지원도 있어야 하겠지만, 지방대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는 양질의 교육 제공과 같은 개별 대학 차원에서의 자구노력이 병행돼야 한다.
오늘날 지방대 위기의 본질은 수도권과 지역의 개발 불균형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수도권 중심의 불균형 발전은 지방 인재들의 유출에 근본적인 영향을 미쳤다. 지방대 위기 문제는 교육 문제이자 동시에 국가 균형 발전의 문제이며, 이 점에서 지방대학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교육분야뿐만 아니라 범정부적인 차원의 통합된 노력이 요청되는 것이다. 참여의 정부 출범 이후 신행정수도 건설이 가시화되면서 지방대학 문제에 대해 근본적인 해결책이 주어질 수 있다는 기대를 낳고 있으나, 이 문제가 하루아침에 발생한 것이 아닌 만큼 해결도 신행정수도로만 해결될 수는 없을 것이다.
지방대학들, 특히 지방사립대학들이 거의 예외 없이 학생 충원에 어려움을 겪게 된 데는 교육인적자원부의 잘못된 대학 정책을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다. 1997년 교육인적자원부가 대학설립 인가제를 폐지하고 ‘대학설립준칙제도’를 만들어 설립기준만 갖추면 누구나 대학을 세울 수 있도록 한 1996년 이후 지방대의 난립이 조장되었다.
고등교육 취학인구의 점차적 감소와 지역 인구의 감소와 노령화, 외국 명문대학의 국내진출 등 지방대학에 불리한 환경변화가 가속화될 경우 등록금 의존율이 높은 사립 전문대와 사립 대학, 경쟁력이 없는 사립 대학 및 도립 전문대들은 2003년 이후 생존에 문제를 실제로 야기시키고 있다. 무엇보다도 지방대의 미충원율은 해마다 높아지는 추세이다. 교육인적자원부에 따르면 2003학년도 지방대 미충원율은 18.3%에 달했으며, 이 가운데 13개 대학교는 충원율이 50%에도 못 미쳤다.
지방대의 높은 미충원율은 일부 학과의 폐과, 등록금 수입 감소로 인해 대학 재정 압박으로 인한 교육 서비스 질 저하로 이어지고 있다. 지방 대학교수의 실업 증가는 지역사회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으며, 대학원 지원 감소로 인한 대학 연구력 퇴보는 곧바로 박사학위 취득자의 교수 취업률 저조, 대학원 진학 유인가 하락, 해당 교수 연구력 저하라는 악순환을 가져오고 있다. 지방대학의 몰락은 지역주민의 고등교육기회 상실 또는 고등교육비 부담 증가를 초래하여 폐교 시설의 재활용 문제가 발생함은 물론, 고급 노동인력 감소로 인한 지역 발전 침체와 국가발전의 장애요인으로 등장하게 될 것이다. 결국 지방대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은 지방대 스스로의 자구 노력에 달려 있다. 이제 지방대 위기 극복을 위한 자구노력 대책을 살펴보기로 한다.[PAGE BREAK]Ⅱ. 지방대학 위기 극복을 위한 자구노력
1 신입생 유치와 모집정원 감축 노력 일부 지방대는 미충원율을 줄이기 위한 노력으로 신입생들에게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고 적극 유치하고 있다. 예를 들면, 신입생들에게 해외 연수 기회를 제공하거나(부산외국어대, 대구대), 최신형 휴대전화를 신입생 전원에게 선물하는 대학도 있고(동명정보대), 상당 금액의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신라대, 부산외국어대, 대전대 등). 타 지역에서 진학하는 학생들을 위해 학년에 상관없이 입주할 수 있는 기숙사 시설을 확충하는 대학도 많다(동신대, 원광대, 동주대 등). 통학버스를 광역으로 운영하여 타 지역 학생들의 등교를 지원하는 대학도 있다(원광대 등).
이러한 신입생 유치 노력에 병행하여 일부 지방 사립대학들은 최근 모집인원을 줄이는 근본적인 대책을 시행하기 시작했다. 배재대는 2003년에 모집정원을 2762명에서 2005년에는 2519명으로 감축했으며, 전북 군산에 있는 호원대는 현행 2280명에서 2005년부터는 1450명으로 무려 830명(36.4%)을 줄이기로 했다. 이밖에도 한남대, 전주대, 우석대 등이 입학정원을 100∼300명 가량 줄이기로 했다.
2. 산학 협력 강화 지방대학을 벤처창업 육성의 메카로 삼는다는 계획은 이미 1999년 3월에 발표된 교육인적자원부의 ‘교육발전 5개년 계획 (시안)’에 들어 있다. 호서대는 일찌감치 벤처 분야를 특성화 종목으로 정해 각광을 받고 있다. 호서대의 벤처 기술·벤처 경영은 두뇌한국(BK)21 사업 특화 분야로 선정되기도 했다. 수 년 전부터 산학협동 및 벤처 관련 교수진 수십 명을 확보했고, 벤처대학원 전용건물과 1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전용기숙사 신설을 추진하였다. 이 대학 벤처 학부에서는 천안 지역 4000여 개 중소기업을 포함, 전국적인 벤처기업 인력을 양성해 내겠다는 의욕을 보이고 있다.
최근 디지털 및 정보통신 분야의 무한한 잠재력이 확인되면서 지방대학 입장에서는 이 분야에 있어서 산학 협력의 새로운 장이 열리고 있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지리적 제약이 완화되면서 중앙과 지방 간의 차별이 희석되고 중심부(metropolis)와 주변부(periphery)간 구별이 희미해지고 있다. 기업의 입지(location)도 제조업과 같이 수도권이나 대도시 인근을 고집하지도 않고 정보통신기술을 응용한 원격근무(tele-working), 원격교육(tele-education)이 일상화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창업지원, 기술개발 등 부대조건을 달거나 유능한 인재 추천을 의뢰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이러한 성공적인 산학협력은 반드시 정보통신 분야에 국한되지 않는다. 경기도 부천시와 금형산업협동조합이 ‘인재양성’이라는 목표 하에 충남 보령시 대천대학 금형학과(금형 설계 및 제작 전공) 교수진을 부천 시내로 초빙해 2년제 금형학과를 신설하였다. 이 학과에서는 6개월 이상 된 중소기업 근무자를 대상으로 일주일에 3번씩 첨단 지식과 기술을 가르치고 있으며, 한 달에 한 번 학생들이 대천대학에 내려가 1박2일 현장실습을 한다. 이 경우 산학협력 하에 기존 사원의 재교육을 대학이 담당하여 재교육을 통해 인력난을 해결하는 사례이다.[PAGE BREAK]자동차 부품업체인 (주)만도가 2004년 초에 신 산학협력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경북대와 ‘경북대-만도 트랙’ 협약을 체결하였다. 이 프로젝트는 일자리 창출, 이공계 살리기, 지방대학 활성화를 모두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이러한 산학협동 프로젝트를 잘 개발하면 위기에 빠진 지방대를 살릴 수 있는 해법이 나올 수 있다.
3. 지방대의 국제 전문인력 양성 지방대가 살아남는 길은 국내의 중앙만을 쳐다보기보다는 역설적으로, 해외로 눈길을 돌려 교육의 세계화(globalization)를 통해 다시 중앙으로 진출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략을 채택하면 결국 지방도 살고, 세계화도 달성된다. 최근 일부 기업에서는 이러한 전략을 글로벌(globalization)과 지방(local)을 합친‘세방화(世邦化)’, 즉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 전략이라 부른다. 지방대가 수도권대학보다 국제화를 더 열심히 추진하고 해외 인턴십을 추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경북대의 경우가 대표적인 예이다. 경북대는 몇 년 전부터 학생들의 해외 인턴십을 적극 장려하고 있다. 해외 인터뷰 시험의 합격률을 높이기 위해 대학이 인터뷰 전문 외국인까지 채용하여 학생들의 해외진출을 돕고 있다. 해외 인턴십의 목적은 해외 연수를 통해 학생들에게 세계에 대한 눈을 뜨게 하고 실력을 키우도록 하는 것이다. 앞으로 경북대는 미국의 벤처기업과 합작연구소도 곧 세울 계획을 갖고 있다.
지방대학이 학제와 조직 개편 등 구조조정 노력을 통해 국제화에 앞장설 때 이에 대한 정부차원의 적절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보며, 지방대학 특성화 지원사업 가운데 국제전문 실무인력양성 사업은 이러한 의미에서 좀 더 확대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4. 지방대간 협력강화 및 통·폐합 최근 국립 창원대와 경상대가 21일 대학통합 추진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교환함에 따라 다른 유사한 상황에 있는 지방대학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충북 지역의 경우 충주대와 청주과학대가 학교 통합에 합의한 데 이어 충북대, 한국교원대, 청주교육대 등 3개 대학과도 통합을 추진 중이다. 부산대, 부경대, 한국해양대, 부산교대 등 부산 지역 4개 대학도 임의단체로 있던 통합 및 연합추진위원회를 상반기 중 사단법인화하고 통합작업을 본격화하기로 했다. 연합대학체제 구축을 선언한 광주·전남지역 5개 대학(전남대, 여수대, 순천대, 목포대, 목포해양대)도 총장협의회에서 1개 대학 다캠퍼스, 계절학기 공동운영 등의 사업안을 마련하고 대학별 교수 및 학생 공청회를 거쳐 시행키로 했다. 대구대, 대구카톨릭대, 대구한의대 등 대구 지역 3개 사립대학도 컨소시엄 구성을 위해 협상중이다. 강원대, 강릉대, 삼척대, 춘천교대 등 강원지역 4개 대학도 최근 기획처장 회의를 열어 연합대학 구축방안을 논의했다.
위기에 처한 지방대학들이 지식기반사회의 국가와 세계가 요구하는 인재를 양성하고, 지역주민의 고등교육에 대한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연합대학(university systems)을 구축하는 방안이 검토될 수 있다. 우선 지방 대학들간 협력프로그램의 수행을 통해 협력분위기를 조성하고 결과에 따라 연합대학(university systems) 구축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PAGE BREAK]연합대학은 미국의 캘리포니아 대 시스템(University of California System), 캘리포니아 주립대 시스템(California State University System), 일리노이 대 시스템(University of Illinois System), 위스콘신 대 시스템(University of Wisconsin System)과 같이 연합대학 총장이 연합대학 학사평의회(university board)와의 협의 하에 각 지역 캠퍼스를 관할하여 교육, 연구, 학·연·산 협동, 평생교육 분야에 있어서 공동으로 운영하는 형식이 될 수도 있고(강한 결속력), 일본 동경의 5개 대학(히토쓰바시 대학, 도쿄 공업대학, 도쿄 외국어대학, 도쿄 의치과대학, 도쿄 예술대학) 연합체제 구축사례와 같이 교양과정 공동운영, 편입학 상호허용, 일부 첨단분야 공동연구와 같이 형식(느슨한 결속력)으로 운영될 수도 있을 것이다.
연합대학 체제가 구축되면 기능의 분담, 대학간 학과, 학부의 통폐합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연합대학 체제가 구축되고 일정 시간이 지나 본 궤도에 오르면 외국의 사례를 참고할 때,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조치가 뒤따르게 될 것이다.
- 예산 편성 및 배분의 통합
- 교수 및 직원 인사의 통합관리
- 학과(부)의 설치 및 폐지, 정원 조정
- 교과과정의 편성 및 운영 협력
- 학위수여 업무의 통합
- 협력 연구체제 구축
- 입시제도의 통합운영
- 대학부설 연구소의 통·폐합
물론 연합대학 체제가 우리나라 지방대학에서 시행되려면 관계법령의 정비, 정부의 행·재정적 지원문제가 필연적으로 해결되어야만 한다. 하지만 현 단계에서 검토하고 준비하면서 분위기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 두 대학이 하나로 합쳐지면 비용 절감과 함께 인적·물적 자원이 재배치되는 등 시너지 효과가 기대된다. 그러나 지방대의 인수합병(M&A)은 인원감축 등 대학 내부의 희생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실제로 이루어지기는 쉽지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5. 인기 교육기관의 지방 설치 전국에 있는 한의과 대학의 경우를 살펴보면 지방대학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실제로 한의과 대학에는 전국 최고수준의 수재들이 지역에 상관없이 몰리고 있다. 사회적인 수요가 폭발하는 전공영역의 인재를 지방대가 키워낼 수 있다면 지방대에는 전국적으로 우수한 인재들이 문전성시를 이룰 것이다.
우선 새로 신설되는 전문대학원이나 과학기술대학원들을 우선적으로 지방에 설치하게 되면 우수인재의 지방유치 효과는 대단히 클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PAGE BREAK]결국 우수인재의 지방유치를 위해 지방대학이 우수인재가 몰릴 수 있는 인센티브를 지방대학이 줄 수 있어야 하며, 가까운 시일 내에 신설될 것으로 예상되는 의학 및 치의학 전문대학원은 물론이고, 법률가 양성을 목적으로 신설되는 법학전문대학원, 경영전문대학원 (MBA과정), 중등교원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교원전문대학원 도입이 결정되고 설치원칙에 있어서도 ‘지역인구비례’의 원칙이 지켜진다면, 권역별로 지방대학에 인기 전문대학원이 속속 신설되어 전국의 우수인재지도는 달라지게 될 것이다. 지방의 우수학생들은 굳이 수도권으로 가지 않고 지역에서 양질의 교육을 받고 지역의 발전을 위해 일하는 선진국형 지역발전 구도가 우리 나라에도 정착될 것이다.
6. ‘맞춤교육’으로 취업률 제고 충남 논산의 건양대는 ‘맞춤식 교육’으로 취업난을 극복하고 있다. 이 대학은 2004학년도부터 경영학부에 군수학(軍需學) 전공과정을 신설하고 신입생을 모집한다. 이 과정은 2006년 부산의 군수사령부가 대전으로 이전하는 것을 겨냥 군용물자에 대한 조달, 관리, 수송 등을 체계적으로 교육시켜 군수 관련 장교나 군무원으로 배출, 취업시키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대구 영진전문대도 기업수요에 맞춘 교육을 실시하여 성과를 올리고 있다. 이 대학은 맞춤교육으로 2003년까지 10년 연속 90% 이상의 취업률을 자랑하고 있다. 디지털전기정보계열 등 졸업생 150여 명 대부분이 매년 삼성전자 등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취업하고 있다. 영진전문대는 산업체와 공동으로 교재를 개발하고 과감한 시설투자를 통해서 기업실무와 거의 차이가 없는 양질의 기업 주문식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또한 학생들은 정규수업의 일환으로 산업체와 연계된 프로젝트를 상당수 수행하고 있다.
경기도 시흥의 한국산업기술대도 산학협력을 통한 취업교육으로 최근 3년 연속 취업률 100%를 기록하고 있다. 이 대학은 시화·반월 공단의 1300여 개 중소기업들과 산학협력을 제휴하고 있다. 이들 기업이 요구하는 수요에 맞춰 해마다 교육과정을 개편함으로써 교육효과를 높이고 있다.
Ⅲ. 맺음말
세계를 둘러보면 세계적인 명문대학 가운데에는 지방대학이 많이 있다. 미국의 하버드, 스탠퍼드 대학, 영국의 옥스퍼드, 캠브리지 대학 등 기라성 같은 대학들은 모두 중앙정부로부터 지리적으로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선진국일수록 지역의 균형 발전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며, 중앙과 지방이 함께 협력하는 국가는 학문의 수월성과 국가발전을 함께 이루었다는 사실을 다시한번 확인케 해 준다.
지방에 묻혀 있는 인적자원의 잠재력을 현실의 에너지로 전환시켜 국제 경쟁력의 원천으로 삼는 일은 21세기를 대비하는 우리 모두의 당면 과제이며, 또한 지방대학이 존재하는 이유가 된다. 이를 위해서 정책 당국의 지원도 있어야 하겠지만, 지방대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는 양질의 교육과 취업기회를 제공하는 개별 대학 차원에서의 자구노력과 지방대학간 연합과 협력체제 구축 등 살아남기 위한 노력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