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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평가, 누가 왜 어떻게 하나

금융기관이 기업에 돈을 빌려줄 때 기업 신용을 평가하는 일이 중요하다. 우리 나라에서는 한국기업평가(주), 한국신용평가(주), 한국신용정보(주) 같은 민간 신용평가 전문회사들이 기업이나 금융기관들의 신용을 조사·분석해 평가한다.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민간 전문회사로는 미국의 스탠더드앤푸어스와 무디스 등이 손꼽힌다. 보통 기업이 신용평가를 의뢰하면 그 기업에서 발행하는 채권이나 기업어음의 신용도를 조사해 상환 능력이 높은 순으로 AAA, AA, A, BBB, BB, B…D 식으로 등급을 매겨 평가한다.

곽해선 l 경제교육연구소 소장(www.haeseon.net>


무디스 한국 신용등급 A3 유지

세계적 신용평가업체인 무디스가 우리 나라 신용등급을 종전과 같은 A3로 평가하고 ‘부정적’전망을 유지했다.
2일 재정경제부에 따르면 무디스는 지난 2월11일∼13일에 가진 정부와 연례협의 결과를 토대로 우리 나라의 국가신용등급과 전망을 이같이 밝혔다.
무디스는 자체 보고서를 통해 우리 나라는 지난해 북한핵문제와 SK글로벌 분식회계 문제 등으로 부진한 성장을 기록했지만 외환위기를 겪은 동아시아 국가 중에서 가장 활발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와 함께 올해 5%대의 성장률을 달성하려면 지금의 수출 호조세가 지속돼야 하고 소비와 투자의 회복이 동반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우리 나라는 국가채무가 안정적으로 관리돼 재정부문 건전성도 양호한 수준인 데다가 6년 연속 경상수지 흑자 등에 힘입어 대외부문 건전성도 좋아 한국투자공사 설립으로 외환보유액이 조금 줄어도 국가신용등급에는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무디스는 전망했다.
무디스는 이와 함께 LG카드 사태 등으로 비은행 금융 부문의 취약성이 드러났지만 은행의 건전성은 유지되고 있으며 카드사 부실이 은행의 신용등급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파이낸셜 뉴스> 2004년 4월 2일



경제와 관련해서 말하는 ‘신용(Credit)’이란 돈을 빌려쓰고 제때 갚을 의사와 능력을 뜻한다. 따라서 ‘신용이 좋다’는 이야기는 빚을 진 이가 빚을 제때 갚을 의사가 있고 갚을 능력도 충분하다고 평가하는 것이다.

신용이란 무엇인가

‘신용이 좋다’고 평가되는 금융 거래자는 빚 갚을 능력이 충분하고 또 빌린 돈을 떼먹을 생각도 없으리라고 인정받는다. 그래서 금융 거래 때 비교적 싼 이자로 쉽사리 자금을 빌릴 수 있다.
신용이 좋지 않다고 평가되는 거래자는 반대다. 빌린 돈을 갚겠다는 의사를 보이더라도 그럴 능력이 못 된다고 평가받거나 처음부터 갚을 의지가 있는지 의심받는다. 그러니까 신용이 나쁘면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리기 어렵다. 설사 빌릴 수 있더라도 신용이 좋은 거래자에 비해 비싼 이자를 치러야 한다.

신용평가 왜 중요한가

왜 금융거래에서는 돈을 빌려주는 쪽이 신용을 평가해 빌리는 이를 차별할까.
빌려주는 입장에서 볼 때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아 득을 보려면 빌려가는 상대가 신용이 좋아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신용이 나쁜 상대에게 빌려주었다가는 이자는커녕 원금도 제때 받지 못해 손실을 보는 수가 생긴다. 그러니 돈을 빌려줄 때는 빌려가는 상대가 신용이 좋은지를 중시하지 않을 수 없다. 결과적으로 빌리는 쪽에서는 신용이 좋으면 쉽게 싼 이자로 자금을 마련할 수 있지만 신용이 좋지 않으면 자금 마련에 어려움을 겪는다.
[PAGE BREAK]그러고 보면 신용은 금융 거래의 생명이다. 돈을 빌려주는 쪽은 늘 돈을 필요로 하는 쪽이 원리금을 갚을 의사와 능력, 곧 신용이 있는지, 있다면 얼마나 있는지 주의할 수밖에 없다.
개인간 거래 혹은 개인과 금융기관의 거래에서도 중요하기는 마찬가지지만, 특히 금융기관이 기업에 돈을 빌려줄 때는 기업 신용을 평가하는 일이 중요하다. 신용이 있다고 평가해 거금을 빌려주었는데 그 기업이 망해서 돈을 떼먹는다면 그로부터 입는 손실 때문에 이번엔 금융기관이 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런 일이 생기면 해당 금융기관과 거래하는 투자자, 고객들도 큰 낭패를 보게 된다. 그 결과 금융 거래에는 큰 혼란이 생길 수 있다. 특히 금융기관 중에서도 보통 수많은 기업, 가계와 거래하는 은행이 쓰러질 지경에 처하면 수많은 기업과 가계가 경제적 파탄에 처하고, 궁극적으로 국민경제 전체의 혼란과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런 위기가 잘 수습되지 못하면 정권도 정치적 위기를 겪게 된다.
그런 일이 없이 금융 거래가 원활하게 이뤄지려면 평소 금융 거래 때 돈을 빌려주는 쪽이 돈을 빌려가는 거래자의 신용을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 그런데 금융 거래 당사자가 거래 상대의 신용을 평가하는 일은 간단치 않을 때가 많다. 은행 등 금융기관 같은 금융전문기관에게도 거래 고객 특히, 기업이나 다른 금융기관의 신용을 평가하는 일은 복잡하고 어렵다.
더구나 오늘날에는 세계 각국의 금융시장이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고 그렇게 연결된 세계 시장에 각국의 개인, 기업, 금융기관, 정부가 서로 복잡하게 얽혀 거래한다. 때문에 거래자들의 신용에 관한 정보를 광범위하게 모아 제대로 신용평가를 한다는 것이 한층 어렵다. 이처럼 신용평가라는 것이 전문성을 요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이 일은 전문 신용평가회사가 맡아 한다.

신용평가, 누가 어떻게 하나

우리 나라에서는 한국기업평가(주), 한국신용평가(주), 한국신용정보(주) 같은 민간 신용평가 전문회사들이 기업이나 금융기관들의 신용을 조사·분석해 평가한다. 이들은 신용평가 결과, 곧 신용정보를 기업과 금융회사에 제공하는 대신 평가 수수료를 받는다.
보통 기업이 신용평가를 의뢰하면 그 기업에서 발행하는 채권이나 기업어음의 신용도를 조사해 상환 능력이 높은 순으로 AAA, AA, A, BBB, BB, B…D 식으로 등급을 매겨 평가한다. 신용평가 의뢰를 받지 않았다 할지라도 일정 수준 이상 되는 기업들을 골라서 등급을 매겨 신용도를 평가해 두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평가를 해 등급을 매겨두고 수시 혹은 정기적으로 평가를 다시 해 등급을 조정한다. 반드시 신용평가를 의뢰하는 기업뿐 아니라 투자가의 의뢰를 받아 특정 금융기관이나 기업의 신용 상태를 조사해 알려주기도 한다.
금융기관이나 투자자들은 신용평가회사들이 내놓는 신용평가 정보를 대출과 투자에 널리 활용한다. 기업에 돈을 빌려줄지 말지, 투자를 할지 말지, 혹은 돈을 빌려줄 때 이자는 얼마나 받을지 등을 결정하는 과정에 신용정보를 참작한다.
따라서 기업들로서는 신용평가회사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좋은 평가를 받으면 국내외 금융기관이나 투자자로부터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가 비교적 쉽다. 빚을 내더라도 이자 부담이 적어진다.
만약 신용평가회사들로부터 신용등급을 깎이면 국내외 금융기관이나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마련하기가 어려워진다. 융자에 따르는 이자 부담이 더 커진다든지, 투자나 융자를 거절당할 수도 있다. 그러니 신용평가회사의 신용평가는 평가를 받는 기업들에게는 부담이 된다. 그렇지만 기업이 채권이나 기업어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려 할 때는 그 채권이나 기업어음의 신용도 평가를 전제로 증권을 발행할 수 있기 때문에 신용평가는 대부분의 기업들에게는 싫든 좋든 필수다.
설사 개별 기업 중에 혹 신용평가를 꺼리는 곳이 있다 해도 신용평가 자체는 금융 거래 전체가 원활하게 돌아가는 데 꼭 필요한 일이다. 신용평가를 제대로 하고 평가정보를 제대로 활용한다면 금융 거래가 원활하게 돌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 신용평가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빌려주거나 투자한 돈을 떼이는 등 금융사고가 자주 생기고 결국 금융거래가 어려워지는 사태를 예방하기 어렵다. 금융거래가 어려워지고 금융시장에서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면 궁극적으로 기업들도 애를 먹게 된다.
[PAGE BREAK]신용평가회사들의 신용도도 다 같지 않다. 우리 나라에도 신용평가회사가 여럿 있지만 신용평가 솜씨를 공정성이나 정확성 면에서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민간 전문회사로는 미국의 스탠더드앤푸어스(S&P: Standard & Poor’s Corporation)와 무디스(Moody’s Investors Service) 등이 손꼽힌다. 둘 다 뉴욕에 본사가 있다.
유럽에서는 런던에 본사가 있는 유럽 최대 규모의 프랑스계 신용평가회사 Fitch IBCA(Fitch International Bank Credit Analysis Inc.)를 꼽는다. 유럽계 금융기관들이 주로 신용평가를 의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들 업체는 평소 세계 각국 금융기관과 기업을 대상으로 장 단기 신용도를 등급을 매겨두고 수시 혹은 정기적으로 신용을 재평가해 등급을 조정, 발표한다. 때로는 특정 투자가의 의뢰를 받고 특정 국가의 금융기관이나 기업의 신용상태를 조사하고 대가를 받기도 한다.
금융기관과 기업뿐만 아니라 각국 국가신용등급(국가신용도 country risk)까지 매긴다. 예를 들면 스탠더드앤푸어스는 2004년 5월 현재 우리 나라 신용등급을 ‘A마이너스’로, 무디스는 ‘A3’로 매기고 있다.
무디스 등 메이저 신용평가회사가 매기는 기업이나 국가의 신용도(country risk)는 세계의 금융기관, 기업, 정부, 국제금융기구 등이 모두 인정하고 융자나 투자에 관련된 판단을 할 때 주요 자료로 활용한다. 예를 들면 스탠더드앤푸어스 평가로는 우리 나라 국가신용도가 다국적 금융기업인 씨티그룹의 신용등급(AA)보다도 낮다. 이 말은, 국제금융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때 씨티그룹이 우리 나라 정부보다 낮은 금리를 치른다는 얘기다.
신용평가회사들이 국가신용도를 평가할 때는 평가를 맡은 직원이 대상 국가의 경제와 정치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외환보유액 등 거시경제변수와 금융동향, 정부정책 등에 관한 자료를 수집 분석하고 정부나 주요 민간 기업 관계자들과 면담 혹은 현장 실사를 거친다.

신용평가, 나라 경제 좌우하는 메카니즘

국제적으로 명망있는 신용평가회사가 어느 나라 신용도를 평가하면 그 나라 경제에는 으레 즉각 중대한 여파가 생기곤 한다. 예를 들어 스탠더드앤푸어스 같은 신용평가회사가 어느 나라 신용등급을 급격하게 떨어뜨리면 그것만으로 그 나라에서는 당장 기업과 금융기관의 국제 금융 거래에 어려움이 생긴다. 주가가 폭락하고 외국인 투자가 급격하게 빠져나가 나라 경제 전반이 나빠지기 쉽다.
아무리 신용평가를 한다지만 일개 민간기업의 발표가 이처럼 어느 나라 국민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신용평가회사의 신용등급 발표에 따라 국민경제 전반에 걸쳐 자금 조달 비용에 큰 차이가 생기기 때문이다.
오늘날 각국은 수출입 거래와 금융 거래를 많이 한다. 자금과 재화를 국제적으로 거래하려면 국제 금융시장에서 외화 자금을 융통할 수 있어야 한다. 국제 금융시장에도 국내 금융시장과 마찬가지로 자금을 공급하는 쪽과 수요자가 있고 양자를 연결해주는 이들이 있다.
자금 공급자는 주로 많은 고객들에게서 풍부한 여유자금을 맡아 재테크를 하는 투자은행(investment bank), 보험회사, 연금·기금 등이고, 자금을 필요로 하는 쪽은 주로 각국 정부와 기업이다. 은행 등 금융기관은 자금의 공급자이면서 동시에 수요자로서 금융을 중개한다.
신용평가회사들이 특정 금융기관이나 국가의 신용등급을 낮추면 해당국 정부는 물론 금융기관이나 기업에 대한 해외 금융기관들의 융자조건이 일제히 전보다 까다로워진다. 대출금리를 올린다든지 심지어는 아예 자금 융통을 거절하는 일까지 생길 수 있다.
국가 신용등급이 오르면 반대로 자금 융통 조건이 완화된다. 우리 나라 은행들만 해도 한 군데서 보통 몇 십억 달러씩 외화를 빌려쓴다. 신용등급 한 계단 차이에 따라 연간 수십억 원대의 이자 지출이 왔다갔다한다. 그러므로 신용평가가 나라 경제에 큰 의미를 갖는 것이 당연하다.
[PAGE BREAK]좋은 신용평가를 받으려면 어떻게 할까

기업의 대외 거래 규모가 커지고 해외 진출이 확대되면 그만큼 외화자금 수요가 늘어난다. 금융시장의 세계화 추세, 국내 금융시장의 개방 추세를 타고 우리 나라 금융기관과 기업들이 외화자금을 얻기 위해 국제 금융시장에 의지하는 정도도 예전에 비해 많이 커졌다. 앞으로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그럴수록 우리 나라 기업이나 금융기관, 정부 모두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신용평가회사로부터 좋은 신용을 얻는 것도 갈수록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될 것이 분명하다.
신용평가회사로부터 높은 신용등급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기업은 기업대로, 정부는 정부대로 기업과 나라 경제를 잘 꾸려서 각종 경제지표가 좋은 실적을 내야 한다. 실무적으로는 신용평가사를 상대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논리적으로 대응하는 능력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신용평가회사에서 국가신용등급을 결정할 때는 사전에 대상국 경제지표도 챙겨보지만 관계자들과의 면담도 중시한다. 신용평가의 요체는 대상자의 미래 채무상환능력이 얼마나 좋은지 판단하는 일이므로 평가자의 주관이 많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신용평가 담당자들과 면담할 때 정부관료나 민간 기업 관계자들이 장래 전망을 자신 있게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태도도 기술적 측면에서 중요하다.
이를테면 재정적자가 크게 늘어났더라도 그만큼의 재정지출 증대로 경제 성장 잠재력이 커져 궁극적으로 미래 세수(稅收)를 늘린다면 재정적자가 늘어난 사실이 국가신용평가에 반드시 부정적 요인으로만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해석을 신용평가회사를 상대로 논리적으로 전달해 설득하기에 따라서는 면담을 통한 신용평가의 결과를 바꿀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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