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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님 것은 과연 매화향이었을까

-배설과 순환의 미학, 뒷간


조현호 | 울산 옥현초 교사

냄새 나는 이야기
인도여행을 하다 보면 마을 근처 들판 여기저기에 쪼그려 앉아 있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대개 페트병이나 물통을 한 손에 들고 있는데요, 처음에는 설마 하고 의아해했더니 곧 익숙해져서 자연스럽게 대자연 속 한 풍경으로 다가오더군요. 그들에게 있어 자연은 곧 그들의 화장실이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남겨놓은 그것을 길가던 돼지, 소, 염소 등이 파헤칩니다. 인도에 익숙해질수록 그런 모습들이 결코 불결하고 미개하다기보다는 탁 트인 공간에서 우주의 기운을 받아들이고 공존공생하는 성스러운 과정임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중국여행에도 화장실 때문에 웃을 일이 많습니다. 급하긴 급한데 한참을 달려 도착한 휴게소란 곳에 들렀더니 남녀 공용인데다 칸막이 없이 옆 사람 혹은 뒷사람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때가 많지요. 기껏 칸막이가 있다 해도 고개를 쳐들면 옆 사람 모습이 훤히 보이고 게다가 앞문도 없는 경우도 많고….

처음부터 냄새 나는 이야기로 시작되었지요? 이번 호에서는 은밀하고 때론 엉큼하며 나만의 공간으로 지극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뒷간을 찾아가고자 합니다.

삼국유사에는 똥과 오줌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둘 있습니다. 신라 22대 지증왕은 옥경이 너무 커서 배필을 구하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사자(使者)로 하여금 배필을 찾도록 하여 삼도를 뒤지게 되었는데 모량부 마을에서 개 두 마리가 북만큼 큰 똥 덩어리 양쪽 끝을 물고 싸우던 것을 보고는 그 똥의 주인을 찾아내 궁중으로 맞아 황후로 봉하였다고 합니다. 또 29대 태종무열왕의 비 문명황후 문희는 언니 보희의 꿈을 사서 황후가 되었습니다. 그 꿈의 내용인즉 선도산에 올라 오줌을 누는데 서라벌이 온통 오줌으로 가득 차더라는 것이죠. 둘 다 똥과 오줌으로 왕후가 되었으니 여러분도 그런 류의 꿈을 꾼다면 좋은 징조로 보이니 기대(?)하셔도 좋을 듯합니다.

우리네 건축에서 뒷간은 집을 구성하는 필수적인 시설입니다. 그러면서도 대개 ‘뒷간과 사돈네 집은 멀수록 좋다’라는 말이 있듯이 생활공간에서 저만치 떨어진 곳에 있지요. 그 으슥한 곳에는 귀신이 삽니다. 이 치귀는 더럽고 냄새 나는 뒷간에서 머물러야 하는 것도 억울한데 행여 누군가 그를 놀라게 하거나 화나게 하면 좀체 화를 풀지 않고 사람에게 해를 입히는 고약한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뒷간을 드나들 때는 인기척을 내서 귀신을 놀래지 않게 해야 했고 요강이 재산목록 1호가 된 것입니다.

휴급소와 해우소
뒷간은 다양한 이름으로 불립니다. 서양의 ‘rest room’은 휴식이라는 의미가 더 강조되고 화장실이라는 의미는 말 그대로 몸을 씻고 화장을 한다는 의미가 큽니다. 변소(便所)란 편안하게 볼일을 보는 곳이고 뒷간은 뒤, 즉 북쪽에 있는 방을 의미합니다. 측간은 집 귀퉁이에 붙은 건물을 이르며, 북수간(北水間)은 목욕이나 뒷물을 겸하는 공간을 의미하지요. 참선을 하는 절집에서는 뒷간이 동쪽에 있으면 동사(東司), 서쪽에 있으면 서정(西淨), 남쪽에 있으면 등사(登司), 북쪽은 설은(雪隱)이라고도 불렀습니다.

정방(淨房)은 몸속을 깨끗이 하는 공간을 말하며 정랑(淨廊)은 ‘깨끗한 복도’라는 의미에서 시작합니다. 절간의 뒷간은 대개 좌우 양쪽에 남녀의 칸을 두므로 좌우를 기준으로 복도가 자연스럽게 생기게 되고 선암사나 연곡사처럼 ‘丁’자 형의 건물은 들어가는 입구가 복도로 되어 있지요. 그래서 정랑이 뒷간을 의미하게 된 것이죠. 청측(圊廁)도 우리네 뒷간을 의미하는 전통적인 호칭입니다.

해우소는 사찰중심으로 쓰이다가 근래에는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말입니다. 해우소는 승당(僧堂), 욕실(浴室)과 함께 삼묵당(三黙堂)으로 말을 해서는 안 되는 곳입니다. 절 뒷간에는 입측오주(入厠五呪)라고 하여 다섯 단계에 걸쳐 주문을 외게 합니다. 화장실에 들어갈 때부터 볼일을 마치고 돌아갈 때까지 각각 외는 주문을 이릅니다. 이는 뒷간에서 똥을 먹으며 산다는 담분귀가 주문을 듣고 자리를 비키도록 하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복잡한 듯한 이 청규을 통해 배설이 또 하나의 수도의 과정임을 깨닫게 해줍니다. 입측오주는 다음과 같습니다.

버리고 또 버리니 큰 기쁨일세
탐욕과 성냄, 어리석은 마음 이같이 버려,
한 조각구름마저 없어졌을 때,
서쪽에 둥근 달빛 미소 지으리.
옴하로다야 사바하

비워서 청정함은 최상의 행복,
꿈같은 세상살이 바로 보는 길.
…(이하 생략)…


해우소라는 말은 경봉 스님이 통도사 극락암에 계실 때 처음으로 등장하였다고 합니다. 6․25 전쟁 이후 하루는 스님이 나무토막에 붓으로 휴급소(休急所)와 해우소(解憂所)라는 글을 써서 뒷간에 걸었습니다. ‘휴급소’는 급한 것을 쉬어가라는 의미로 소변보는 곳을 의미하고 ‘해우소’는 몸속에 있는 큰 걱정을 떨쳐버리라는 의미로 대변보는 곳을 의미한다는 설명이었죠. 그는 세상살이에 바쁘다는 사람들이 정작 제일 중요한 자기 자신을 찾는 일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 세태를 보고 휴급소에 가서 다급한 마음 쉬어가고 해우소에서 근심 걱정 버리고 가면 그것이 바로 도 닦는 것임을 일러주었던 것이었습니다.

궁궐의 매우틀
베르사유 궁전에는 뒷간이 없었다고 하지요. 그러다 보니 우리네 요강과 같은 이동식 변기에다 볼일을 보고는 구석진 곳이나 정원, 나무 밑에다 오물을 버리기 일쑤였다고 합니다. 그 당시 서구에서는 길가에 볼일 보는 것이 흔한 일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몸에서 나는 냄새를 감추기 위해 향수문화가 발달했고, 길가다 위층에서 떨어지는 오물세례를 피하기 위해 파라솔이 발달했다고 합니다. 높은 구두가 생겨난 것도 이런 세태에서 유래되었다지요.

그렇다면 우리나라 궁궐의 경우는 어떠했을까요? 조선시대 궁궐에는 뒷간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경복궁에도 뒷간이 28군데 정도 되었다고 합니다. 단, 예외적으로 특수신분인 왕만큼은 배설작업에 있어서도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는데요, 왕의 배설물은 지칭하는 이름부터가 달랐습니다. 하늘 같은 임금님의 똥은 ‘매화(梅花)’라고 일컬었고 그의 오줌은 ‘매우(梅雨)’에 비유했다고 하네요. 임금의 눈물을 옥루(玉淚)라고 하고 임금님의 몸을 옥체(玉體)라고 일컫던 시절에 임금님의 그것마저 향기로운 것이라 해서 그렇게 이름붙인 것이죠. 그러니까 임금님 전용 이동식변기는 ‘매우틀’ 또는 ‘매화틀’로 불리었습니다.

창덕궁에서 발견된 매우틀은 높이가 21㎝, 너비가 39.5㎝ 길이가 22.5㎝ 정도 되는 크기로 나무로 틀을 만들고 주단으로 푹신하게 치장하였습니다. 장방형의 구멍이 뚫린 윗부분으로 볼일을 마치면 복이나인이라는 직책의 신하가 그릇만 빼서 처리했다고 합니다. 양쪽엔 두 발을 올릴 수 있게 발판을 만들어 두었고 앞에는 가리개를 꽂았던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매추라고 불린 잘게 썰어놓은 여물을 바닥에 깔아두었다네요.

창덕궁 경운각에는 옛날 임금님의 변을 꺼내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현지 해설사의 설명에 따르면 건물의 가장자리에 별도의 공간을 마련하여 왕이 볼일을 보면 그 아래로 떨어지고 그것을 신하들이 꺼내어 왕의 건강상태를 체크했다고 하지요. 왕의 건강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척도였던 거죠.[PAGE BREAK]
절집의 뒷간
절집의 뒷간 중 대표적인 곳이 선암사 뒷간입니다. 절집 뒷간 중 답사 1번지라고 일러도 무난할 것입니다. 처음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입구에 붙어있는 이름을 보고 ‘깐뒤’라 읽어야 할지 ‘뒤깐’이라 읽어야 할지, 오른쪽부터 읽어야하는지 왼쪽부터 읽어야 하는지 당황합니다. 그 당황함을 가라앉히고 좀 더 멀리 시선을 대하면 대변소라는 다른 이름이 붙어 있어 오른쪽부터 읽어야 함을 알 수 있지요. 그 규모가 보통이 아니지만 아래에 짚을 깔고 충분한 환기창을 마련해두어 냄새는 잘 나지 않습니다.

시인 정호승은 그의 시에서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라고, 해우소에 쭈그리고 않아 울고 있으면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 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고 노래했으니 여러분도 눈물 날 때 꼭 들러보시기 바랍니다.

영월의 보덕사는 장릉의 원찰입니다. 그곳에는 120년이 넘게 원형을 간직한 뒷간이 잘 남아 있습니다. 나무로 만든 벽면 중간중간에 창살 대신 조그만 구멍을 내서 밖을 내다볼 수 있도록 되어 있는데 그 네모나고 십자꼴의 나무 구멍이 만들어낸 좌우 대칭의 아름다움이 절묘합니다. 그곳에 쭈그리고 앉아 벽의 나무구멍으로 밖을 내다보고 있으면 밑을 간지럽히는 바람의 장난이 비데와는 비교할 수 없이 시원합니다.

실상사에서는 위생과 청결의 논리로 일관된 이른바 ‘화장실 현대화 운동’에 밀려 재래식의 뒷간이 사라져가는 현실에서도 소중한 생명줄로서의 생태 뒷간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내부에는 장애우를 위한 배려로 끈을 매달아 놓기도 하고 쪼그려 앉았을 때 앞뒤 구분 못 하는 분을 위해 ‘앗, 거꾸로네요! 뒤로 돌아앉아 주세요’라는 친절한 문구에다 ‘대변을 보신 자리에는 톱밥 반바가지를 꼭 뿌려 주세요’라는 당부까지 잊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땅을 살리고 먹거리를 살리며 농사짓는 농부님을 살리고 그 쌀과 채소를 먹는 우리들의 생명을 살려내는 길은 똥을 제대로 대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라는 큼직한 안내문까지 남아있어 뒷간 향기가 구수한 곳입니다.

비구니 절집인 동학사에는 해우실이 있습니다. 이 해우실로 건너가는 다리가 곧 해우교지요. 불국사 비로전 앞에 모아둔 돌로 된 변기를 보면 신라시대부터 수세식 변기가 있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배변기능의 복원을 위해
병산서원(屛山書院)은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병풍처럼 펼쳐진 산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만대루가 그 산을 닮아 옆으로 길게 누웠습니다. 이 병산서원 오른쪽, 그러니까 고직사 앞쪽에 미로같이 동그랗게 말린 ‘한데뒷간’이 있습니다. 지붕이 없는 이 뒷간은 돌과 흙으로 담을 두르고 짚으로 용마름까지 짜 얹었습니다. 2년 전에 서원 고직사에서 하룻밤을 묵은 적이 있습니다. 새벽에 잠이 깨어 밖을 나와보니 밤하늘에 별들이 서로 자기를 봐달라고 발광(發光)하는 것이 여간 예쁘지 않았습니다. 휴급을 위해 문을 나서서 한데뒷간에 갔더니 밤하늘의 발광이 지붕 없는 그곳까지도 따라왔더랍니다. 격식과 틀에 얽힌 엄격한 유학의 공간에서 둥그렇게 말린 형태로 짚을 뒤집어쓰고 있는 이 머슴 뒷간을 보면 덜렁이 마당쇠가 용변을 보다가 도련님의 호출을 받고 바지도 제대로 올리지 않은 채 달려 나올 것 같습니다. 도동서원 내의 뒷간은 앞뒤를 분간 못 하는 사람들에게 앞뒤를 일러주고 있습니다. 나무로 된 가리개가 설치되어 있어서 작은 놈들(?)의 일탈을 막아주고 있습니다.

청도 운강고택 솟을대문 옆에 자리한 뒷간은 그 품격이 대단합니다. 뒷간 위쪽 부분에 나무를 깎아 난초문이나 산수문 등으로 치장하였습니다. 이곳의 뒷간과 인근 임당리에 있는 400여 년 전통의 내시가의 뒷간을 비교해 본다면 더욱 흥미로운 답사가 될 것입니다.

정여창 고택은 운강 고택과 더불어 고샅이 있어 유명한 곳입니다. 고샅이란 대문까지 이르는 골목길을 말합니다. 이곳 행랑채 옆에 있는 뒷간은 칸막이가 없는 2인용인데 오른쪽에는 복숭아형으로 바닥구멍을 내고 왼쪽에는 장방형으로 바닥구멍을 내놓았습니다. 특히, 사랑채에서는 다른 곳에서 보기 드문 구시를 볼 수 있습니다. 얇은 나무를 대어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도록 하였는데 집안 어른들이 이곳에 소변을 보면 하인들이 뒷처리를 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격조 높은 사랑채 한쪽에서 그런 비밀스런 공간을 엿볼 수 있지요.

구례 운조루 대문을 들어서면 왼쪽에 뒷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바닥구멍 뒤로 짚을 마련해두어 거름으로 쓰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지요. 이 뒷간은 위성류라는 중국 원산인 나무 뒤에 자리하고 있어 숨은 멋이 느껴집니다.

정부의 강력한 부동산 대책에도 이제는 곪고 곪아 곧 터져버릴 것 같은 거품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빈익빈 부익부에 대한 원성의 소리는 더 커져만 가는 것 같네요. 자기만 먹고는 순환시키지 않으려는 똥통 같은 생각에 사로잡힌 이들이 있는 한 원성의 소리는 더 커져만 갈 것입니다. 기업들은 기업들대로 개인은 개인대로 자기 몫 챙기기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더 퍼 줄 수 있는 메세나[Mecenat]에 대한 마인드를 가져야 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배변기능이 상실된 이 시대에 운조루에 있는 타인능해(他人能解) 쌀통을 그리워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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