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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밥> 저자 김경원, 김철호 씨



좀처럼 베스트셀러가 나오기 힘든 인문 분야에서 주목받고 있는 책이 있다. ‘국어에 관련된 책은 재미없다’는 상식을 깬 <국어 실력이 밥 먹여 준다>(유토피아·이하 국밥)가 바로 그것. 이 책은 두 명의 저자가 오랫동안 편집과 번역 일을 하면서 느꼈던 한국어의 ‘뉘앙스 차이’를 분석한 것이다. 다음 글을 읽기 전에 우선 당신의 국어 실력도 테스트 해보자. ‘엉덩이’와 ‘궁둥이’의 차이를 아는가? ‘가족’과 ‘식구’, ‘뜰’과 ‘마당’, ‘고맙다’와 ‘감사하다’는? 같은 의미인 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각각 달리 써야하는 말, 그것이 뉘앙스 차이다. 내달부터 본지에도 이 뉘앙스 차이에 관한 연재를 시작할 두 명의 저자를 만나 ‘한국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국·밥>이 출간되자 마자 베스트셀러가 됐습니다. 인기비결이 있다면 말씀해주십시오.
김철호 “‘한국어 뉘앙스’라는 기존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소재를 다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일방적으로 서술하고 가르치기 보다는 문제-풀이-답을 통한 구성으로 독자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다른 국어 관련 책들과 차별화 한 것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책과 관련된 독자평을 보니 ‘국밥이라 그런지 술술 잘도 넘어 간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국밥 한 그릇’, ‘한 끼만 먹어도 든든한 국밥’ 등 제목과 관련해 재미있는 댓글들이 많았습니다. 제목은 누구의 아이디어입니까?
김철호 “도서출판 느린 걸음에 있는 선배가 사석에서 제안해준 제목입니다. 제목을 듣는 순간 첫 느낌이 좋았고, 이름에서 뾰족한 주장, 혹은 상식을 뒤집는 효과가 느껴져서 주변의 반대도 불구하고 선택했습니다. 또 영어 실력이 밥 먹여 준다는 요즘 세상에서 국어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어떻게 한국어의 뉘앙스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셨나요?
김철호 “오랫동안 편집자, 번역자 생활을 하면서 나름대로는 한국어에 대한 문제의식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어느 경우에 이 표현이 맞을까?’, ‘이런 경우에는 저런 표현이 적용되는데 그 이유는 뭐지?’ 등 그동안 늘 품어왔던 의문들을 직감이 아니라 원리로 이야기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중 <서울대 임홍빈 교수의 한국어 사전>이 한국어 낱말들의 뉘앙스 해설을 시도한 것을 보게 됐어요. 외국인을 위한 사전이라는 한계가 있었지만 ‘뉘앙스 차이’라는 아이디어를 얻게 됐죠.”

김경원 “뉘앙스 차이에 대한 관심보다 평소에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번역가로서 글을 많이 쓰다 보니 언어에 대한 엄격함이 베인 것이었어요. 그런 노하우를 출판을 하거나 대중들에게 알린다는 생각은 못했는데 좋은 기회를 만난 것 같습니다. 김철호 씨한테 한국어의 뉘앙스 차이에 대한 얘기를 듣고 금방 <일본어 학습장>이 떠올랐어요. 홋카이도 대학에서 객원연구원 생활을 할 때 지인께 선물 받았는데 일어를 공부하면서 외국인이기 때문에 느낀 한계를 말끔히 해소해줬어요. 책의 첫 장부터 제가 너무 알고 싶었던 낱말의 차이를 서술해주고 있어서 굉장한 매력을 느꼈죠. 또 그 책이 200만부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가 된 것을 보고 일본인들의 자국 언어에 대한 큰 관심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글을 읽을 때, 쓸 때 항상 궁금해 했던 것이 지금 생각해보면 뉘앙스 차이였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막상 모르는 낱말을 사전에서 찾아도 궁금증이 말끔히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김경원 “궁금했는데 설명을 찾기 어려운 것은 우리나라의 사전 문화가 다양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또 막상 사전을 찾아도 이 낱말은 저 낱말로, 저 낱말은 이 낱말로 풀이하는 식이 많아서 아쉬운 게 현실이죠. 우리나라는 국어대사전에 대한 문제제기도 많을 뿐 아니라, 문화수준에 비해 사전문화가 발달해 있지 않아요. <국·밥>같은 ‘뉘앙스 사전’을 비롯해서 ‘거꾸로 찾는 사전’, ‘어미 조사 사전’, ‘어원사전’ 같은 여러 종류의 사전이 나와서 많이 알려졌으면 해요. 다양하게 발달할수록 말에 대한 지식이 풍부해지고, 그러다보면 말을 기초로 한 여러 가지 문화 콘텐츠들이 더욱 발전하게 되거든요.”

-책에서 ‘국어’나 ‘우리말’보다는 ‘한국어’라는 표현을 쓰자고 주장하시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김경원 “‘국어’라는 말을 쓰는 나라는 한국, 일본 정도뿐입니다. ‘국어’는 식민지시대에 널리 쓰였던 말이에요. ‘나라의 말(國語)’이라는 뜻이 아니라 자국 중심적이고 배타성을 지닌 단어입니다. ‘우리말’도 마찬가지죠. 모국어 사랑은 좋지만 지구촌시대가 된 지금, 외국인이나 세계각지에 흩어져 있는 한국인이지만 한국어를 쓰지 않는 여러 타자를 배려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한국어’는 ‘국어’보다 우리 언어를 설명할 수 있는 객관적인 단어죠.”

-정말 국어가 밥 먹여주는 시대가 왔다고 보십니까?
김철호 “기업의 인사담당자들은 신입사원의 가장 부족한 능력으로 ‘영어’보다 ‘국어’를 더 많이 꼽습니다. 영어 업무를 잘 하는 사람도 정작 국어로 보고서를 쓸 때는 표현력과 창의적 언어구사력, 논리력 부족을 드러낸다고 해요. 이런 현실 때문인지 최근 들어 인재 선발 기준으로 한국어 구사 능력을 중시하는 경향이 늘고 있습니다. 국어 실력이 진학과 취업에서 중요한 시대가 온 것이죠. 국어를 올바로 이해하고 제대로 사용하는 능력은 어느 분야에서든 업무 능력의 기본이 되고 논리적 사고력의 기초가 됩니다.”

-한국어를 잘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김철호 “우리가 항상 쓰고 있지만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그 의미를 생각해보지 않은 ‘말’ 자체에 대해 의문을 많이 가지고 생각해보세요. 물고기는 자신이 물속에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자동적으로 숨을 쉬며 살지만 물을 의식하는 순간 강력한 충격을 받게 되겠죠. 그리고 나면 시야가 확 넓어질 거에요. ‘말’에 대해 거리를 두면서 객관화 해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김경원 “무엇보다 책을 가까이 할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해요. 그 중에서 부모가 독서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좋죠. 요즘 맞벌이 부부들은 정말 시간이 없어서 책을 못 읽는데 아이들에게 그냥 읽는 모습만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책을 손에 들어야 합니다. 아이들 몸 가까이에 항상 책장을 두고, 서점에 많이 데려가고, 책과 친근하게 만들어 주세요. 그리고 책에 대해 대화를 하십시오. 책을 읽는 것과 그것을 생각으로 만드는 것은 다르니까요.”

-한국어를 잘 알기 위해 아직도 노력하는 일이 있다면.
김철원 “중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동음이의어를 통한 말장난을 좋아합니다. 예를 들면 ‘너는 무슨 띠니?’라는 질문에 ‘나는 토끼띠’, ‘나는 파란 띠’라고 대답하는 말장난입니다. 이런 것은 말에 대해 곰곰이 따져보게 돼서 언어감각을 기르는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김경원 “모르는 말이 있으면 반드시 찾아보는 습관이 있습니다. 안 찾아보면 잠도 못잘 정도죠.”

-논술은 중요해지고 있는데 학생들이 아주 기본적인 글쓰기 훈련도 안 돼 있어 고민이라는 교사들이 많습니다.
김경원 “아이들의 글쓰기 문제에서 인터넷을 빼놓을 수 없어요. 특히 요즘 아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이미지, 영상 문화 문제가 심각해요. 이미지로 한 번에 보니까 읽지도, 쓰지도, 생각하지도 않거든요. 그러니 출판문화는 더욱 열악할 수밖에 없어요. 아이들이 시각매체와 문자 매체를 어떻게 조화롭게 받아 들여야 하느냐에 대해 선생님들께서 평소에 문제의식을 가져주셨으면 해요”

김철호 “맞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언제나 접할 수 있는 시각매체는 무의식중에 빠져버리는 속성 때문에 상상력을 제한합니다. 또 인터넷에서 쏟아지는 무분별하고 엄청난 양의 정보들은, 좋은 정보를 조직화해서 쓸모 있게 만드는 사고력을 저해하죠. 문자, 글은 고도의 추상적이고 상징화된 기호라서 생각하는 힘이 중요한데 말이죠.”

김경원 “인터넷에 떠도는 글 자체가 제한적인 어휘만 사용하기 때문에 아이들의 상상력을 차단하기도 해요”

김철호 “인터넷에서 깊이 있는 글을 찾기 힘든 것도 그 때문이에요. 심도 있고 밀도 있는 활자 매체에 비해서 가볍고 짧고 단순하며 대중적이죠. 인터넷 폐해 중에서 게임이 가장 심각합니다. 게임 개발자들이 상상해 만들어 놓은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거든요. 아이들 스스로 상상하고 생각하는 훈련을 어렵게 만들어요. 사고력을 통해서 아이들의 언어 능력이 정밀해 지는데 바로 이 생각하는 힘을 떨어지게 하죠. 심각한 문제입니다.”

김경원 “사고의 최종 목적지는 글이에요. 선진국에서 학생들의 에세이를 중요시하는 것을 봐도 글쓰기 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은 어느 나라나 공통된 인식이에요. 그래서 아이들의 글쓰기 문제는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합니다.”

김철호 “글쓰기 훈련을 위해서는 이태준 선생님의 책 <문장강화>에 나와 있는 것처럼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그 중에서도 다상량, 많이 생각하는 것이 우선이죠. 언어자체가 사고의 도구이고, 사람들의 생각은 글을 통해 집적되고 전수되며 전파되거든요.”

-일선의 교사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김철원 “학교 다닐 때부터 아쉬웠는데 국어를 비롯한 모든 과목을 지도할 때 단어, 낱말의 의미를 정확히 알려주셨으면 해요. 전치사에 대해 배운다면 ‘전치사’는 앞 전(前)자에 놓을 치(置)자를 써서 어떤 단어 앞에 놓인다는 말이고, 그래서 명사나 대명사 앞에 놓인다고 단어부터 개념을 명확히 해주는 것이죠. 개념 명확히 알려주면 학생들의 언어 감각도 키워지거든요.”
                                                                                           | 이상미 smlee24@kft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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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원, 김철호 저자는 서울대 국어국문과 동기로 학생시절 ‘인문대 문학회’ 동아리 활동을 같이 했다. 김경원 전임연구원은 여러 문예지에 문학평론가로 활동했고 일어 및 영어 번역가로서 <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 <토토로의 눈물>, <폴 오스터> 등을 한국어로 옮겼으며 현재 인하대 한국학연구소 전임연구원이다. 김철호 교수는 민음사에서 편집자 생활을 시작, 정신세계사, 월간 작은이야기 편집장, 나무 심는 사람 주간 등을 거쳐 현재 도서출판 유토피아 대표와 한국출판인회의 부설 sbi 교정교열과정 교수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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