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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존중 의식’ 교육 해야한다

최근 사회·경제적인 혼란으로 인해 생명을 버리는 사람의 수가 증가하고 있다. 일종의 베르테르 효과라 부르는 유명인 자살 모방 사건, 묻지마식의 사회를 비관한 살인 사건, 신변을 비관한 각종 투신자살 사건 등 그 유형을 모두 헤아리기조차 힘들 정도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 혼란스러워진 이유는 단지 사회·경제적인 어려움이라기보다는 생명에 대한 존중의식이 희박해졌기 때문이다.

희박해진 생명존중의식

우리나라에서는 외환위기 이후 경제적 파산때문에 자살이 급격히 증가했지만, 그 이후에도 자살률은 떨어지지 않았고 그 증가세는 지속되었다(<표 1> ‘연도별 사망률, 사망자 수 변화 추이’ 참조). 그래서 우리나라가 OECD 국가들 중에서 헝가리(21명/인구 10만 명당), 일본(19.1명)을 제치고 최고의 자살률(2006년 기준, 21.5명)을 기록하고 있다. 10대 청소년의 경우에도 자살로 인한 사망률(4.6명)이 교통사고(5.4명)에 이어 2위를 차지할 정도로 문제가 심각하다.

자살이 사회적으로 큰 문제로 대두되자 국가적으로 자살예방대책 마련을 위해 급조된 정책을 제시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 대책으로는 크게 미흡하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자살은 일시적·단기적인 대책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유명인의 자살 사건이 발생하면 그제야 자살 문제에 대한 국가·사회적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일시적으로 커진다. 마치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라고나 할까? 어쩌면 소 잃는 것을 걱정하기보다는 외양간 새로 마련하는 것이 더 쉽다고 생각하는 듯해 왠지 씁쓸한 마음을 갖게 된다.

자신에게 해를 가하는 행동을 흔히 자해, 자살이라고 말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살인, 폭력이라고 표현한다. 전자가 내적으로 후자가 외적으로 각각 향하고 있는 지향점이 차이나지만 두 가지 모두 생명을 존중하지 않는 행동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즉, 이러한 문제 행동들은 생명존중의식의 결핍에서 발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생명존중의식이라는 측면에서 그 문제의 심각성을 점검해 보고, 청소년 자살예방을 위한 교육 방향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청소년의 생명존중의식, 어느 수준일까?

‘생명존중의식’보다 ‘돈’이 우선
지금 우리 사회의 생명존중의식은 어떤 수준일까?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그리 긍정적인 답변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많은 사람들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 생명의 가치보다 경제적 측면을 강조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돈이면 모든 것이 해결 가능한 사회이고, 인간 생명은 그 앞에서 중요도가 한참이나 뒤처져 있다. 즉, 생명존중의식은 물질적인 가치보다 우선순위에서 크게 밀린다.
이와 유사한 질문으로 우리나라 청소년의 생명존중의식이 어느 정도 수준일까? 그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조사 결과를 제시해 보겠다. 몇 해 전 필자가 근무했던 연구소에서 자살예방교육의 필요성을 청소년들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그 결과 중에서 여러 명의 청소년이 자신의 생명은 자신이 알아서 하는 것이라고 응답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반문하기를 “자살하면 왜 안 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 달라”고 설문 응답지에 적었다. 응답한 내용을 보는 순간 말문이 막혀 버렸다. 이러한 질문에 우리는 어떻게 논리적으로 답해야 할까? 기성세대는 인간 생명이 소중하다는 사실과 자살을 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런데 요즘 청소년들은 당연한 사실에조차 의문을 던진다. “인간 생명은 소중하니까 자살은 절대 안 된다”라는 식의 윤리·도덕적 답변을 늘어놓는다고 해서 그것이 청소년들에게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까? 별반 큰 호응도를 기대하기 힘들 것 같다.

자살은 개인이 결정할 수 있는 권리?
다른 예로써 청소년에게 자살 행동에 대한 생각을 물어보았다. 많은 청소년들은 자살이 인간이 갖고 있는 일종의 권리라고 답했다. 자살은 개인이 결정해야 할 문제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정말 이것이 옳다면 자살은 어떤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어려움을 끝까지 참아 내며 힘든 삶을 억지로 살아갈 이유가 없는 것이다. 당장의 고통을 없애기 위해 죽어 버리면 그뿐이다.
개인적인 소견으로 자살이 사회문제로 떠오르게 된 기저에는 생명존중의식이 낮아진 이유를 꼽고 싶다. 실제로 자살 위험성은 자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 생명에 대한 의식이 어떠한가를 통해 알아낼 수 있다. 부모님 세대는 현재 청소년 세대보다 훨씬 힘들고 고단한 삶을 살았다. 그럼에도 자살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해 준다거나 자살을 인간의 권리로 여기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세대와 사회 분위기는 그렇지 않다. 생명존중의식이 사라진 사회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각종 자살 사건에도 커다란 충격을 받기보다는 점차 무뎌진 감정 상태에 있는 듯하다. “그 사람, 정말 자살할 만한 상황이었어. 그다음에는 누구 차례이지”라고 궁금해하기도 한다. 이것은 우리 스스로 자살 행동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생명존중의식 회복, 자살예방을 위한 대책

자살 행동은 특정한 개인이 겪게 되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직면할 수 있는 문제이다. 실제로 2007년 청소년상담원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청소년 중에 58.8%가 자살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부모나 선생님의 꾸중, 왕따, 폭력, 성적 하락 등의 외부로부터 자살 촉발 요인이 발생하게 되면 청소년들이 자살을 시도할 확률이 높아질 수 있다.
자살 행동을 막아 내는 일은 참으로 힘든 일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살리는 일은 그 무엇보다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 사회가 무엇보다 생명을 살리는 일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어떻게 하면 우리 사회가 인간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회가 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이 지면을 통해 자살예방을 위한 대책을 몇 가지 제안해 보고자 한다.

(1) 청소년 자살예방교육 제도화
첫째, 청소년 자살예방교육을 제도화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자살에 대한 얘기를 드러내는 것조차 꺼리는 분위기가 강하다. 더욱이 학교에서 자살 사건이 발생하면 소문이 날까봐 예방교육을 실시하거나 개입하기는커녕 사건 자체를 감추려는 모습이 역력하다. 특히, 청소년에게 자살 행동은 전염성이 강하다. 이로 인해 자살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나 태도가 형성될 수 있다. 청소년들이 음성적으로 습득한 내용으로 인해서 자살에 대한 오해나 편견을 갖게 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학교 제도권 내에서 자살예방을 위한 교육을 실시하는 편이 더 낫다. 아는 것이 힘이며, 자살예방교육이 사후 치료보다 효율적이다. 자살 사건이 발생한 후에 자살예방교육의 실시를 제기하기보다는 자살예방을 위한 체계적이고 제도화된 교육을 먼저 실시해야 한다. 그것도 전교생을 대상으로 하는 일외적 강연보다는 소규모로 나눠 토론을 하는 방법이 보다 효과가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2) 생명존중의식 확산을 위한 노력 필요
둘째, 사회적으로 생명존중의식 확산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지금 당장은 힘들겠지만 우리 사회 전반에 깔려 있는 생명 경시 풍토를 바꾸어 나가야 한다. 도미노처럼 계속되는 자살 사건으로 인해 어느 순간부터 우리 사회는 자살 사건에 대해 무감각해져 있는 듯하다. 자살은 돌이킬 수 없는 행동이다. 자살하면 모든 것이 끝이다. 자살을 힘든 순간에 선택할 수 있는 하나의 선택지 정도로 여겨서는 예방이 불가능하다. 사회적으로 생명존중의식 확산과 풍토 조성을 위해 우리 사회 모두에서 힘을 모을 필요가 있다. 한 가지 좋은 사례가 한국생명의전화에서 2006년부터 실시해 온 “생명 사랑을 위한 밤길걷기 행사-해질녘에서 동틀 때까지”이다(사진 참조). 자살을 상징하는 어둔 밤의 캄캄한 터널을 지나서 광명의 동이 트는 것과 같이 생명 사랑의 마음, 생명존중의식을 사회적으로 확산시키는 일이 중요하다.

(3) 자아존중감 깨닫게 해야
셋째, 청소년들에게 삶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한다.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 순간에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경우가 많다. 자신의 존재 가치와 살아갈 이유를 발견하지 못한다. 자신은 쓸모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즉, 자아존중감이 극도로 떨어진 상태다. 이와 반대로 살아갈 이유가 있는 사람, 삶의 희망을 찾은 사람은 절대로 자살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청소년들에게 자신의 존재 이유를 깨닫게 해야 한다. 이것은 거창하고 심오한 철학을 말해 주라는 것이 아니다. 청소년들이 지금 당장 좋아하는 것, 기뻐하는 것을 발견하게 도와주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들이 좋아하는 것을 계속해야 한다는 마음이 들도록 함으로써 충동적이고, 일시적인 자살 생각을 이겨 낼 수 있다. 축구 또는 인터넷 게임이든, 영화나 음악이든 청소년들이 지금 당장 자신의 삶을 지속할 의미가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좋다. 자살 생각이나 자살 시도가 일어나는 시점에서 잘 견뎌 낼 수 있도록 청소년들에게 희망의 씨앗을 뿌려 주면 일정 기간이 지나가면 그때 왜 자신이 자살을 생각했는지 돌아볼 만큼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극복할 힘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4)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실제적인 교육
넷째, 청소년들에게 인간 생명의 가치를 느낄 수 있도록 실제적인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 청소년들은 자신의 생명을 개인의 것으로 생각한다. 앞서 제시한 조사 결과처럼, 자살도 개인의 권리라고 여긴다. 만일 그들이 한 생명이 자라기까지 얼마나 주변의 사랑과 보살핌이 필요했는지를 안다면 자살이 인간의 권리라는 주장을 쉽게 하지 못할 것이다. 자신이 스스로 삶을 선택하지 않았듯 자신이 죽는 것도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이 땅에 태어난 소명의식을 깨닫게 해 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도덕·윤리 교과목에서 제시되는 이론 위주의 생명존중의식 함양을 위한 교육 방식으로는 안 된다. 청소년들은 실제적이고 느낌이 있는 교육을 요구한다.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청소년들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주변에서 자신에게 베푼 사랑을 확인해 볼 기회를 주어야 한다. 자기 주변에 누군가가 있어서 친밀한 유대 관계를 갖는다면 자살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그런 고귀한 존재라는 사실과 주변에 그러한 사람이 있음을 알게 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자살은 결코 넘어서는 안 되는 정지선

끝으로 한 책의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얘들아, 너희가 나쁜 것이 아니야>(미즈타니 오사무, 에이지21)라는 책에 보면, ‘밤의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일본의 미즈타니 오사무라 교사가 등장한다. 그 교사는 밤거리에서 방황하는 청소년들을 직접 찾아가서 헌신적으로 지도한다. 다음은 그 과정 중에 청소년들과 대화한 내용을 옮긴 것이다.

“선생님, 저 왕따 시키고 괴롭힌 적 있어요.”
“괜찮아.”
“저 도둑질한 적 있어요.”
“폭주족이었어요.”
“괜찮아.”
…중략…
“죽어 버리고 싶어요.”
“하지만 얘들아, 그것만은 절대 안 돼.”

위의 책 내용을 소개하는 이유는 청소년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선이 있음을 알게 해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 경계선은 자신의 생명을 지키는 일, 즉 자살하지 않는 것이다. 자살은 결코 넘지 말아야 할 정지선이다. 이것은 학습 성취도를 높여 주는 일보다 중요하다. 왜냐하면 뒤처진 학업은 나중에라도 만회할 수 있지만 단 하나뿐인 생명을 끊는 자살은 돌이킬 수 없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천하보다 소중한 생명을 지켜 주는 일, 이 길에 학교 선생님들께서 앞장서 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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