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그대로 지리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지리산고등학교(교장 박해성)는 모든 교육이 무료다. 수업료는 물론 학생들에게 어떠한 기부금이나 잡부금도 받지 않는다. 이런 설명만 들으면 돈 많은 독지가나 대단한 재단에서 설립한 학교라고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지리산고는 교육에 뜻을 가진 평범한 교사들이 세웠다.
많은 사람들의 손길로 세운 지리산고
지리산고가 처음 태동한 것은 대안학교가 시작된 1998년. 매년 7~8만 명의 학생이 중도탈락하고 있음에도 이들을 받아들일 교육시설이 없는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는 박해성 교장을 비롯한 부산 • 경남지역의 교사, 시민의 뜻이 모여 가칭 ‘학림고등학교 설립 추진위원회’를 탄생시켰고 약 5년간의 노력 끝에 2003년 4월 21일 지리산고등학교 설립인가를 받았다.
박 교장은 학교 설립을 추진하던 때를 이렇게 회상한다. “처음 시작할 때는 정식학교로 인가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지도 않았다. 단지 학교를 중도에 포기하는 학생들, 특히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교육에서 멀어진 학생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풍부한 재원을 가지고 시작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학교 건물을 물색하는 데만 1년의 시간이 필요했고 수리하는 데도 1년이 걸렸다. 그나마도 부산 경성전자고(당시 광성공고) 전기과 학생들의 자원봉사와 학교법인 남성학원 교사들을 비롯한 후원회의 지원이 있어 가능했다.
인가를 받기 전까지 이 학교는 검정고시 중심으로 교과과정이 운영됐다. 교사들도 전임이 아니라 부산 등지에서 수업 후 2시간 이상을 달려온 현직교사들이 맡았다.
완전무상교육을 실천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지리산고의 모든 교육과정은 완전 무료다. 단순히 수업료만 면제인 것이 아니라 교복, 기숙사비, 급식비 등 일체의 돈을 받지 않는다. 학교에 적응을 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학생들 중 대다수가 가정형편이 어려운데 대부분의 대안학교는 월 50만 원 이상의 학비를 받고 있기 때문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박 교장의 생각이다. 그래서 어려운 학교 형편에도 일체의 돈을 받지 않는다.
운영비는 2000명에 이르는 회원들이 내놓는 회비로 충당하는데, 최근 경제사정이 좋지 않아 현재 회비를 내는 회원은 500명 정도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2008년부터 교육과학기술부에서 교사 11명분의 인건비를 지원해 주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공군사관학교와 해군교육사령부 기술행정학교를 비롯한 외부 협력기관과 서강대 김열규 명예교수, 전 서울대 영어영문학과 황동규 교수 등 외부 전문가들의 특강도 학교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진주 한일병원에서 무료로 학생들의 건강을 보살펴주고 있으며, SK네크웍스에서 2007년부터 학생들에게 무상으로 교복을 지원하고 있다.
현재 지역에 상관없이 전국에서 신입생을 받고 있는 지리산고는 여건상 한계 때문에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 중 성적 우수자를 우선적으로 선발하고 있지만 점차 선발인원을 확대해 성적에 관계없이 의지만 있다면 누구나 입학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교사의 헌신이 바탕 된 24시간 교육
기숙형 특성화 학교인 지리산고는 전교생이 기숙사 생활을 하는데, 특별한 것은 교사들도 24시간 학생들과 함께 생활한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교사들이 기숙사에서 함께 생활을 하지는 않지만 박 교장을 포함한 대부분의 교사들이 교사들이 학교 근처에 숙소를 마련해 생활하고 있다.
‘사제동숙’이라는 이름의 이러한 활동은 교사들이 항상 학생들 가까이에 있어 자칫 지나친 통제를 생각하기 쉽지만, 통제나 감시활동은 하지 않는다. 늘 학생 곁에서 생활하며 친근감을 형성해 쉽게 질문도 하고 수시로 상담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이는 교육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성’이라는 지리산고의 교육방침에 따른 것으로, 상담을 통한 인성 함양을 통해 모든 교사가 상담일지를 작성하고 있으며 한 학급에 2명의 담임과 1명의 부담임이 수시로 학생을 보살피고 있다.
서울대 정치학과 학생들과 3~4인이 묶여 멘토링 활동도 하고 있는데, 나이차가 많지 않아 좀 더 편하게 상담할 수도 있고 꿈도 키울 수 있어 학생들의 반응이 좋다. 또한 캄보디아에 공책을 만들어 보내는 등 서울대 정치학과 학생들의 봉사활동에도 함께 참여하고 있다.
한편, 지리산고의 수업은 70%가 영어로 진행된다. 의사소통이 완벽히 되진 않지만 24시간 학생과 교사가 함께 생활하고 있기 때문에 이해가 잘 되지 않은 부분은 언제든 보충이 가능하다.
그리고 매년 지리산종주를 하는데, 극기활동을 통해 인내심 등을 키우는 것에 국한되지 않고 자체 워크북을 제작해 지리나 과학 등 교과와 연계한 통합교육이 이뤄지도록 하고 있다. 이 일을 담당하고 있는 변경환 교사는 “기회가 생긴다면 다른 학교와 함께 이 일을 진행하고 싶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이 밖에 최소한 1인 1기를 갖출 수 있도록 다양한 방과 후 강좌가 제공된다. 전교생 50명이 조금 넘는 적은 학생 수에도 교사와 외부전문가가 참여 해 16개가 넘은 강좌를 마련, 학생들이 다양한 분야를 배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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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은 것보다 더 많이 돌려줄 수 있어야
박 교장은 “학생도 학교도 형편이 어려워 주변으로 많은 도움을 받고 있지만 형편이 어렵다고 해서 받기만 한다면 올바른 인성을 가질 수 없다”며 “어려운 환경에서도 남을 위하고 봉사할 수 있는 인성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지리산고의 학생들은 매주 목요일 독거노인을 방문해 보살피는 등 연간 120~140시간의 봉사활동을 한다.
많은 봉사시간도 대단하지만 지리산고의 봉사활동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특정한 날짜를 정해서만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수시로 봉사활동을 해 봉사를 생활화한다는 데 있다. 외부기관에서 견학기회를 제공하면 그냥 감사히 보고 마는 것이 아니라 견학장소 주변을 깨끗이 청소하는 등 호의에 반드시 보답하고, 수학여행을 가서도 비용을 아껴 다녀온 후 어려운 사람들에게 기부한다.
또한 최근에는 ‘봉사대장’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 ‘봉사대장’ 프로그램이란 학생 개개인이 봉사대장이 되어 주변사람들이 봉사활동에 참여하도록 독려하는 활동을 통해 봉사정신과 리더십을 동시에 키우도록 하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적어 큰 효과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점차 참여하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한편, 이러한 봉사활동은 학생들에게만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지리산고에서는 전 교직원이 진주사회복지자활센터에서 교육을 받는 등 학생들이 봉사활동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한다.
“모교를 잊어라”
“모교를 잊어라.” 듣는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이 말은, 지리산고의 학생들이 사회에 나가 자신이 졸업한 모교나 자기 주변에만 연연하지 말고 넓은 세상에 관심을 갖고 봉사하는 큰 인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담긴 말이다. 지리산고가 봉사활동이나 체험활동을 강조하고 우리나라뿐 아니라 외국의 학생들을 유치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현재 지리산고에는 코트디부아르, 잠비아 등에서 온 외국인 학생 3명이 재학하고 있다. 외국에 나가있는 선교사나 해외공관을 통해 추천받은 이 학생들은 여느 국내 학생과 마찬가지로 공부할 의지는 있지만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다. 지리산고에서는 이들 학생들이 고등학교는 물론 그 이후의 학업까지 지원해 각자의 모국에 기여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이러한 외국 학생 지원은 어려운 학생에게 학습의 기회를 주는 것은 물론, 우리나라의 이미지 개선과 함께 다른 내국인 학생들에게 외국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장점도 갖고 있다.
“사립학교 간 교류의 고리를 만들었으면…”
신입생 20명 모집에 100명 이상이 지원할 정도로 자리를 잡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이 박 교장의 생각이다. 그는 “한정된 재원이지만 좀 더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하다”며 “사립학교 간에 인사교류 등 상호교류의 고리를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훌륭한 교사들이 많이 있음에도 한정된 학교에서만 인사이동을 하기 때문에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묻혀버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박 교장은 “스스로 부족한 점을 많이 느끼고 있어, 능력과 의지가 있는 분만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우리학교의 교장 • 교사로 모시고 싶다”며 사립학교 간 교류에 대해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