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나 중국의 석굴사원은 굴을 파서 지었지만, 우리나라의 석굴암은 석굴을 조립 형태로 축조한 인공 석굴사원입니다. 왜 이렇게 축조 방식에 차이가 날까요?” 4일 오전 10시20분 부산 동구 경남여고 1학년 7반 교실에서 열린 ‘역사-과학’ 수업 시간. 교단에는 2명의 교사가 올라섰다. 수업 주제는 ‘석굴암의 수수께끼’. 역사를 담당하고 있는 이 학교 강은영 교사와 과학교사 출신인 조갑룡 교장이 석굴암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과 과학적 원리를 공동으로 설명하는 수업이다. (중략) 두 명의 교사는 학생들에게 일제 강점기의 석굴암 보수공사로 인해 생긴 습기 문제에 대해 설명해 주고, 학생들에게 석굴암의 보존 방안에 대해 토론하는 시간을 주기도 했다. 이 수업을 들은 1학년 박송주 양은 “이렇게 두 명의 선생님이 두 과목을 접목시켜 한꺼번에 가르치는 수업은 처음”이라며 “원래 역사 수업은 좀 지루하다고 느꼈는데 과학적 원리와 함께 공부하니까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이날 수업은 경남여고가 이번 학기부터 시도하는 코티칭(Co-teaching)의 시범수업으로 열렸다. 코티칭 도입의 필요성을 주장해 온 조 교장이 과학교사로 직접 교단에 선 것도 새로운 수업 방식을 앞장서서 실행해 보이겠다는 의지였다. 조 교장은 “이제는 지식의 통합이 필요한 시대”라며 “학문 간 경계가 허물어지고 통합적 사고 능력이 중요해지는 시대에 기존의 수업 방식으로는 이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를 키워낼 수 없다”고 말했다. 경남여고는 교실수업 개선을 위해 올해 초부터 코티칭 도입을 추진해 왔다. 국어 영어 수학 물리 지리 역사 미술 윤리 음악 등 9개 과목 10명의 교사가 현재 코티칭을 연구 중이다.(중략) 수업에 대한 학생들의 만족도도 높았다. 학교가 수업에 참가한 2개 반 학생 5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수업이 재미있었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32%(18명)가 “매우 그렇다”, 49%(28명)가 “그렇다”고 답해 81%가 “재밌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수업 방법이 통합적 교과 이해에 도움이 되었냐”는 질문에는 44%(25명)가 “매우 그렇다”, 35%(20명)가 “그렇다”고 답했다. 부산일보 2009년 9월 8일 자에 실린 경남여고 기사
진실의 순간 역대로 음악 앨범이 가장 많이 팔린 뮤지션은 누구일까. 비틀즈나 마이클 잭슨으로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호텔캘리포니아(Hotel California)’로 널리 알려진 그룹 이글스(Eagles)다. 그들의 앨범 <데어 그레이티스트 히트(Their Greatest Hits) : 1971~1975>는 무려 2900만 장이나 팔렸다. 그 전설의 이글스가 올해 3월에 처음으로 내한 공연을 갖는다. 요즘은 예전만큼 음반이 판매되지는 않는다. 이글스의 경우 흘러간 그룹이어서가 아니라 음반 시장이 MP3 등으로 대체되었고 더욱이 지금 전 세계의 대중들은 음반 구입보다는 공연장을 찾는 경향으로 흘러가고 있어서다. 그러나 음악은 디지털화될 수 있어도 수많은 관객이 공연장에 모여 벌이는 한 판의 열광과 감동은 음반으로는 불가능하다. 이제 뮤지션들은 음반을 판매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청중들을 공연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낸다. 2007년 ‘We Can Funk’로 유명한 미국의 가수 프린스(Prince)가 영국 투어를 시작하면서 새 앨범을 영국의 2대 타블로이드지 중의 하나인 <데일리 미러(Daily Mirror)> 지의 일요판에 끼워 공짜로 독자들에게 뿌렸는데 그 결과 라이선스료와 콘서트 투어 등으로 오히려 더 많은 돈을 벌어들였다. 마돈나(Madonna)의 경우 워너브러더스 엔터테인먼트(Warner Bros. Entertainment, Inc.)와 계약을 끝낸 후에는 음반사가 아니라 공연 기획사와 계약을 한 것 등이 그 대표적 예이다. 공연이 음반을 누르고 다시 블루 오션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1200W의 ‘바우어스 & 월킨스(Bowers & Wilkins)’ 프리미엄 사운드 시스템의 소리가 최고인 줄 알다가 어느 날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지나가던 중년의 남자가 연주한 피아노 소리에 전율을 느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기록의 예술’이 아닌 ‘순간의 예술’이라는 음악의 본질에 가장 충실했던 지휘자 첼리비다케(Sergiu Celibidache, 1912~1996). 그는 스튜디오에서 여러 번 녹음해서 만든 음반은 아름답지만 가짜 음악이며, 음악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진실이라고 했다. 음반이나 음원이 아름다운 음악은 전달할 지 모르지만 연주자와 관객의 영혼이 부딪히는 ‘진실의 순간(Moment of Truth)’을 만들어 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1985년 <내셔널 지오그래픽> 표지를 장식하면서 사진작가 스티브 맥거리(Steve McCurry)를 스타덤에 오르게 했던 사진 ‘아프간의 소녀’를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소녀의 눈동자는 그 어느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그 순간의 치열한 진실을 말해 주고 있다. 수업 또한 이와 같이 살아 있는 진실이어야 하지 않을까. 교사와 학생의 인간적인 만남을 통해 벌이는 수업 역시 진실의 순간들로 채워져야 한다. 그것은 곧 감동이며 감동은 아름다운 변화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지식전달 수업은 음반을 듣는 것과 같다. 그런 수업은 어디에서도 가능하다. 수업은 세상의 모든 것에서 영감을 받고 자신의 심음(心音)을 쏟아내는 선생님의 공연이어야 한다.
생물을 가르칠 것이 아니라 파브르를 가르쳐라 〈생각의 탄생(Sparks of Genius)〉을 쓴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미셸 루트번스타인 부부는 이렇게 말한다. “과학적 지식이 아니라 그 지식을 창안한 과학자의 삶과 사고 과정을 가르쳐야 한다.” 이를테면 생물을 가르칠 것이 아니라 곤충학을 집대성한 파브르를 가르쳐야 한다는 뜻이다. 시인 김용택은 20년 넘게 초등학교 2학년 어린이들만 가르쳤다. “우리 학교는 참으로 아름다운 학교입니다. 뒤로는 우람한 휘문산이 있고, 앞으로는 아름다운 섬진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산과 강은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줍니다. 산을 닮고 강을 닮은 큰 사람이 우리 학교에서 반드시 나오리라 생각합니다.” 김용택은 수요일마다 전교생에게 동시를 가르쳤다. “풀꽃, 상추, 소나무들을 보여주고 시를 씌웁니다. 글 쓰는 기술보다 흙과 자연을 가르치는 거죠.” 김용택은 섬진강을 ‘나를 키운 시인학교’라고 했지만 시골 아이들의 마음을 풍요롭게 다듬은 건 섬진강을 사랑한 시인이었다.
언니가 아랫방으로 가면/ 달님이 언니를 따라가고/ 내가 엄마 따라 밖에 가도/ 달님이 나를 따라온다/ 그런데/ 신기하게/ 하늘에는 달이 하나뿐인데/ 어떻게 온 세상을/ 다 비출까.
‘섬진강 시인’ 김용택이 가르쳤던 전북 임실 덕치초 어린이가 쓴 시다. 전교생이 자작시 114편을 모아 2005년 말 <우리 형 새똥을 맞았다>를 냈다. 글을 갓 배운 1학년 지현이도 ‘벚꽃이 예쁩니다/ 예쁜 벚꽃을 보면 이모 생각이 납니다’라고 썼다.
나는 이제 30여 년의 교단에서 하얀 머리의 선생이 되었다. 제자는 스승을 닮는다던가! 어느 날 문득 나의 모습에서 거울을 보듯 닮아있는 고등학교 시절의 스승 김태홍 선생님의 모습을 본다. 수업은 물론 조 · 종례 때의 훈화까지도 그분의 그것을 흉내 낸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여기서 다 나열할 수는 없지만, 수업시간 내내 ‘시’보다는 ‘시인의 사생활’ 이야기로 우리들을 끊임없이 유혹(?)하셨고, 그것은 결국 점수 따는 것에 관심을 두는 우리들을 좋은 가르침으로 배우도록 하기 위한 전략이었음을 이제는 안다.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양귀비, 김옥균 등에 대한 감칠맛 나는 야사(野史)로 동서고금을 넘나들며 종횡무진 하시던 세계사 선생님의 자신감 넘치는 수업에 설득당하기도 했고, 지지리도 재미없게 수업을 진행하시는 분을 싫어하기도 했던 추억이 새삼스럽다. ‘좋았던 선생님과 싫었던 선생님의 기억은 오래도록 지속된다’는 말은 사실이다. 학창 시절의 선생님을 거울삼아 다르게 도전해야 한다. 싫어했던 선생님이 한 실수를 다시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최고의 교사는 늘 공부하는 사람이며 교사는 결국 학생을 가르치는 학생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교사의 역할은 정보 전달이 아니다. 정보와 지식은 책을 읽으면 다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학생들은 학교를 졸업하고 몇 년이 지나면 학창 시절에 배운 지식은 대부분 기억하지 못할 뿐 아니라 지식 그 자체의 용도 또한 크게 빛을 발하지 못한다. 그래서 ‘교육을 받았다’는 것은 ‘무엇을 얼마나 배웠느냐’보다는 ‘생각하는 방법의 변화가 얼마나 이루어 졌느냐’에 있다고 생각한다. 교육은 학생들이 ‘생각하는 방법의 변화’를 통해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를 높임으로써 장차 더 나은 학습 및 사고(思考)를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그리고 학생들은 자신들의 언어로 소통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교사는 학생들을 이해해야 한다. 그들의 관심사가 교사의 관심사여야 하며 그들의 관심사에 대한 호기심을 놓아서는 안 된다. 호기심이 사라지면 그때부터 사람은 매력을 잃어가면서 나이와는 상관없이 늙는다. 종종, 주저리주저리 수업만 하는, 호기심이 사라진 듯한 선생님을 본다. 그러면 아이들은 졸고 있다.
가르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방법으로 말하느냐”가 중요하다. “나는 잘 가르쳤지만 그들이 배우지 않았다”라는 것은 “나는 팔았지만 고객이 사지 않았다”라고 하는 것과 같다. 우둔한 학습자는 없다. 학습자가 이해하지 못하면 그것은 수업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수업도 상품이다. 따라서 확보된 고객이라고 불량수업(불량상품)을 강매해서는 안 된다. 좋은 수업은 없다. 좋아하는 수업이 있을 뿐이다. “내가 무엇을 가르쳤냐” 보다는 “학생들이 무엇을 배웠냐”가 중요하다. 변화없이 지루한 수업을 하는 것은 양념하지 않은 음식을 먹으라고 하는 것과 같다. 학생들이 자고 있다면 가르침은 있되 배움은 없는 것이다. 공부 못한다고 질책하고 야단만 치는 것은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에게 “왜 기운이 없냐?”고 따지는 것과 같다. 보편성과 진정성으로 아이들의 심금을 울리는 수업을 꿈꾸셨던 전임 학교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자료이다.
선생님! 색깔은 어떤 겁니까?/ 굉장하지!/ 선생님은 어떤 색깔을 좋아하세요?/ 파란색!/ 그건 뭐 같은데요?/ 파란색은 자전거를 탈 때 얼굴을 스치는 바람과 같지!
앞을 보지 못하는, 그러나 자전거를 타 본 적이 있는 아이와 선생님의 아름다운 수업 장면이다. 모든 수업은 다르고, 모든 학생들 또한 모두 다르다. 그래서 가르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룹 이글스의 기타리스트인 글렌 플라이(Glenn Frey)와 조 월시(Joe Walsh)는 공연을 할 때 30여 대의 기타를 무대 뒤에 준비해 둔다고 한다. 연주곡마다 표현하려는 맛이 다르기 때문에 각각의 곡에 맞는 기타를 사용하기 위해서다. 연주곡마다의 매력을 통해 관객들에게 지속적으로 다양한 감동과 신선함을 주기 위한 그들의 열정과 진정성에 박수를 보내면서, 올 2월에 열린 우리 학교 ‘2011학년도 교육계획서 수립을 위한 교직원 워크숍’의 기조 강연에서 그룹 이글스의 연주 실황과 함께 이들의 이야기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