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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변하는 교육환경, 가장 중요한 건 믿음"


처음 초등교사 생활을 시작한 것은 2009년 가을, 나는 담임교사가 아닌 영어교과 전담교사로 처음 아이들 앞에 섰다. 대학생활 중 영어에 소홀했던 것을 후회하며 발음 교정에 열중하던 어느 날이었다. 외국에서 어학연수를 3년 마치고 이제 막 귀국한 한 남학생이 전학을 왔다. 낯선 학교생활이 힘겨워 보이던 그 아이 얼굴에 유일하게 웃음꽃이 피는 시간은 영어시간. 정형화된 교실영어와 활동으로 버티던 내게 이 전학생의 존재는 공포 그 자체였다. 실력에 자신이 없어 안절부절 못하다가 몸과 마음의 병이 나를 덮쳐 시름시름 앓던 어느 날, “Any question?” 수업을 마무리하려는 찰나였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나지막한, 하지만 또렷한 목소리 “Your English is not lively.” 순간 돌처럼 굳어버린 나는 더 이상 구겨지고 싶지 않은 마지막 자존심으로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Thank you, See you next class.”
한동안 그 충격에서 헤어날 수 없었고 그 날 이후 난 교사의 지시를 잘 따르지 않는 말썽쟁이들의 일상적인 언행조차 나를 무시하는 것 아닌가 예민하게 반응하곤 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고 내게 교사로서의 자격이나 능력이 없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며 잔뜩 웅크려 겨울을 지냈다.

달콤 살벌한 퍼즐 맞추기
초등교사는 전 과목을 다 가르쳐야 하고 심지어 가끔은 영어나 예체능과 같은 전문성이 요구되는 과목을 맡기도 한다. 때로는 가르치는 내용뿐 아니라 가르치는 기술, 수업 이외 업무에 대한 능력, 학생과 학부모 상담, 생활지도 등 광범위한 영역 속에서 과연 나는 그 무엇 하나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 의구심이 들 때가 많다. ‘지적 권위도 예전 같지 않고 그렇다고 타고난 카리스마도 없는 경우 교사로서의 권위를 과연 어디에서 찾아야 하나’ 스스로에게 묻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슈퍼맨이 아니야, 열심히 하면 되는 거야!’라며 스스로 위로해 보지만 언제나 낙엽 떨어지는 가을마냥 쓸쓸한 교실이 못내 아쉽다.
그렇게 2009년이 지나고 이듬해 나는 담임이 되었다. 처음 만난 제자들은 너무나 귀여웠다. 담임 업무가 교과전담 교사에 비하면 월등히 많았지만 그래도 백배는 더 즐거웠다.
아이들은 너무 귀엽고 순수하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좋다. 말썽쟁이들이 화나게 하기도 하고, 가끔은 위험한 사고가 심장을 쿵 내려앉게 하기도 하지만 아이들 문제로 투정하고 고민하고 또 기뻐하는 내가 스스로 자랑스럽다. 가끔 아이들이 다른 선생님께 칭찬을 듬뿍 받은 날이면 나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하고 하루 종일 구름 위를 날아다니기도 한다. 아이들이 가고 난 교실 곳곳에 귀염둥이들이 몰래 쓰고 간 쪽지들이 숨어있을 때도 있다. ‘선생님 힘내세요! 내일 봐요♡’ 어느 하늘에서 이런 천사들이 뚝 떨어졌을까 싶은 마음에 아이들을 맘껏 안아주기도 한다.
‘선생님이 되고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자잘한 사건들만 떠오를 뿐 말로 표현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자잘한 조각들 하나하나를 보면 모두 나의 제자들이 주인공이다. 나는 해마다 내 편이 되어주는 30명의 제자를 만난다. 그리고 나 또한 누구보다 그 아이의 편에서 격려해주고 지지해준다. 이렇게 우리는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자잘한 추억의 퍼즐조각을 함께 맞추고 그림을 그려나가고 있는 것이다.

희망의 나라는 학교에서 시작
학교는 폐쇄적인 공간이라 가장 나중에 변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가끔 흠칫 놀라곤 한다. 교육과정뿐 아니라 행정적인 부분마저도 급변하는 학교 모습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다. ‘불필요한 변화는 과감하게 줄이고 교육적으로 바람직한 정책의 실현이 정착되면 좋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다. 정책을 결정하든 실현하든 간에 교육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보다 효과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현명함이 필요하다. 효과보다는 효율을 잣대로 평가하고 실적 위주의 활동이 지속되다보면 우리네 학교의 미래는 결코 밝지 못하리라 생각한다.
공교육에 대한 불신이 깊어진 만큼 교사와 학생·학부모 간 관계 정립에 있어서도 믿음을 더욱 쌓아가야 할 것이다. 여기까지는 ‘학교교육’이고 저기까지는 ‘가정교육’이라며 선을 그을 수는 없다. 교사는 학교에서의 엄마 아빠이고, 부모는 가정에서의 선생님이다. 모두가 행복한 학교를 만드는 길은 서로에 대한 믿음에서 시작한다. 행복한 학교에서 자라는 아이들, 그리고 그 안에서 가르치는 기쁨을 느끼는 교사가 가득한 내일이 열리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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