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감으로 일깨워 주는 채소의 맛3학년 교실, 모둠별 바구니 속에는 여러 가지 색깔의 펠트지로 만든 상자와 포일로 포장된 작은 접시가 담겨있다. 궁금증이 많은 정곤이는 오늘 수업에 대한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손가락으로 포일에 구멍을 뚫어 무엇이 들었는지 확인하기 바쁘고, 옆에 앉은 지민이는 접시에 담긴 것이 자신이 싫어하는 채소라는 것에 벌써부터 표정이 어두워진다. 오늘은 식품을 다양한 방법으로 맛보고 친구들에게 자신이 느낀 맛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제일 먼저 예쁜 모양과 색깔의 케이크 사진을 학생에게 보여주니 별다른 질문이 없어도 여기저기에서 “아! 맛있겠다”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사진 속 케이크가 왜 맛있다고 생각하니?”라고 질문하자, 한 학생이 손을 들어 “그냥 색깔이 곱고 모양이 예뻐 맛있을 것 같아요”라고 대답했다.
“그럼, 색깔이 곱고 모양이 예쁜 건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눈으로 보면 되잖아요.”
‘왜 선생님이 저렇게 쉬운 질문을 할까?’하고 의아해하며 학생들이 동시에 대답했다.
“그래요, 모양이 예쁘고 색깔이 고운 음식을 봤을 때 먹어 보지 않아도 여러분들은 머릿속으로 맛을 짐작할 수 있어요. 방금 우리는 눈으로 사진 속의 케이크 맛을 보았어요.”
과자를 씹을 때 바삭거리는 소리는 귀로 맛을 음미하는 것이고, 참기름의 고소한 냄새는 코로 맛을 볼 수 있다. 이를 학생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예로 들어 질문과 대답을 통해 음식을 먹을 때 혀뿐만 아니라 귀, 코, 손, 눈을 이용해 맛을 음미하는 방법이 있다고 설명했다. 설명이 끝난 후 상자 속 제비를 뽑아 자신이 맛보아야 하는 채소를 집어 혀, 귀, 코, 눈을 이용해 맛을 보았다. 맛보기에 앞서 상자 속에서 자신이 뽑은 것이 비록 싫어하는 채소라도 꼭 한 입 먹어 보고 씹을 땐 어떤 소리가 들리는지, 냄새는 어떤지, 색깔은 무슨 색인지에 대해 친구들에게 이야기하기로 약속했다.
모둠 친구들은 한사람씩 상자 안에 손을 넣어 각각 방울토마토, 파프리카, 오이, 양상추, 당근 등이 적힌 제비를 뽑았다. 평소 자신이 싫어하는 채소를 뽑은 친구들의 입에서는 한숨과 비명이, 좋아하는 채소를 뽑은 친구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퍼졌다.
오이에서는 쓴맛이, 파프리카에서는 단맛이 나요 이제 자신이 뽑은 채소를 여러 방법으로 맛을 보는 시간. 선생님이 설명한 다양한 방법으로 채소를 맛보기로 했다. 자신이 먹은 채소를 씹을 때 어떤 소리가 나는지, 무슨 색인지, 냄새는 어떤지, 그리고 혀에서는 어떤 맛이 나는지 친구들에게 소개하기로 했다.
평소 잘 먹지 않는 채소를 뽑은 학생들은 아주 조심스럽게 코로 냄새를 맡고, 씹을 때 나는 소리를 듣기 위해 채소의 끝 부분만 살짝 베어 먹었다. 오이나 방울토마토와 같이 학생들에게 거부감이 적은 채소를 뽑은 친구들은 보란 듯이 한입 크게 베어 문 다음 소리나 맛의 느낌을 잊어버릴까 봐 활동지에 부지런히 자신이 느낀 맛과 소리, 색, 냄새 등을 기록했다.
한사람씩 자신이 맛본 채소에 대해 발표할 시간.
오이를 맛 본 수진이는 친구들에게 “상큼한 냄새가 나며 맛은 시원했다”고 설명했다. 반대로 민정이는 “선생님 저는 오이에서 쓴맛이 났어요”라고 대답하자 일부 학생들이 ‘에이~거짓말!’이라는 표정을 짓는다.
“민정이는 오이의 꼭지 부분을 먹었구나. 오이의 꼭지 부분은 쓴맛이 날 수도 있어요.”
설명을 들으니 그제야 이해가 간다는 듯이 학생들이 고개를 끄떡이며, 자신이 느낀 오이의 맛에 대해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학생들은 노란색 파프리카를 씹으면 아삭한 소리가 나고, 맛은 달다고 표현했다. 파프리카에서 단맛이 난다는 소리에 다른 채소를 뽑은 친구들도 같이 파프리카 맛을 보면서 다들 자신이 느낀 맛에 대해 한마디씩 한다. 방울토마토는 처음에 툭 하는 소리가 났다가 다음엔 아삭아삭하는 소리가 난다고 말했다. 양상추에서 흙냄새가 난다고 표현한 친구가 있는 반면, 양상추를 싫어하는 장난꾸러기 승오의 “선생님, 양상추에서 지옥의 맛이 나요”라는 말에 교실에서는 한순간 웃음이 터졌다.
맛을 표현하는 방식에는 정답이 없다. 단지 학생들에게 맛을 느끼는 방법이 혀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귀, 눈, 코, 손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느낄 수 있으며 평소에 꺼려하는 채소를 친구들과 함께 먹어 보고 표현함으로써 자신이 느껴보지 못한 맛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영양교사로서 좀 더 욕심을 부리면 이러한 수업을 통해 채소 때문에 급식시간에 항상 울상인 학생들이 ‘채소와 친해질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도 살짝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