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주고등학교(교장 권광빈) 본관 3층 1학년 영어과 토론수업. 5~6명의 학생들이 5개의 그룹으로 모여 있다. 교사가 나눠준 워크북에 따라 학생들이 생각을 정리하고 의견을 교환한다. 이현정 교사는 “게임이나 이미지를 통해서 감정형용사를 익히는 수업으로, 머릿속으로 느낌을 끄집어내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단어를 느끼게 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그룹별 리더가 나와 통 속에서 쪽지를 꺼낸다. 그 안에 적힌 감정형용사를 몸짓과 의성어로 표현하자, 학생들이 이에 맞는 단어를 유추한다. 물론 교사도, 학생도 영어만 사용한다. 학생들은 주눅들어있거나 긴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배우는 걸 즐기고 있다. 교실 가득 웃음소리가 유쾌하게 퍼졌고 50분 수업이 짧다고 느껴질 만큼 역동적이었다.
영어과 수준별 이동수업 중인 이 학생들은 1학년 가운데 영어과 A-클래스에 해당한다. 이 교사는 “수능에 나오는 영어 단어가 점점 어려워지면서 어휘의 난이도가 높아지고 있는데 학생들 100%는 아니어도 80% 이상이 이해하고 따라오고 있다”고 평가했다.
맞춤형 교육으로 학습역량 극대화능주고는 ‘4단계 학력향상 프로그램’을 도입해 최상위권·상위권(우정반)·중위권·집중반으로 구분, 교육과정의 특성화를 통한 교육의 고급화를 꾀하고 있다.
이 가운데 하나가 ‘HN(화순군-능주고) 인재육성 프로그램’. 최상위권 학생의 학업성취도를 극대화하고 글로벌 인재를 육성하기 위한 프로젝트로 1, 2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자체 서류평가와 면접평가를 실시, 47명의 인재육성반을 구성한다. 인문사회분야 학생은 심층독서토론논술, 인문학, 철학강좌를 듣고, 자연과학분야 학생은 기초과학 전문교수의 특별수업을 듣는다. 주제 선정과 논문 작성은 모두 학생들 스스로 결정한다. 대학 학부과정에 비견할만하다.
고급수학과 고급영어 심화과정도 운영한다. 이 과정은 교육부 고교교육력제고사업과 화순교육지원청 거점학교로 선정됐다. 최상위권 희망학생을 대상으로 하고 지도강사로 지역의 국립대 대학교수를 초빙한다. 권광빈 교장은 “외부 자원을 끌어들여 면 소재지의 지리적 한계를 벗어나 대학교 수준의 질 높은 강좌를 열어가고 있는데 학생들에게는 학업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진로탐색의 기회가 된다”며 “주중이나 토요일 수업을 위해서는 주 1회씩 사전 학습과 자료 점검이 필요하기 때문에 교사의 역할도 확대되지만 결과적으로 학생들의 학력수준과 능주고의 학교경쟁력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전했다.
성적 3% 이내 학생을 상위 1%로 키우고, 전체 학생을 평균 이상으로 끌어올린 것이다.
상위 30% 이내 학생을 중심으로 특정교과 우수자를 선발해 수능 1~2등급을 목표로 지도하는 ‘우정반’, ‘EBS 방송수업과 수학도약반’, 제2외국어 선택 수업을 실시하는 1등급 30% 이상, 3등급 이하 0% 달성 목표의 ‘중위권 도약반’, 전국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기초학력 미달 제로화를 목표로 멘토링 학습을 운영하며 ‘수학·영어 집중반’ 등도 운영하고 있다. 이는 능주고에 7등급 이하 학생이 없는 주요요인이기도 하다.
자기주도적 학습으로 목표설정
능주고 학생이라면 ‘보물단지’처럼 하나씩 가지고 다니는 것이 있다. 자기주도학습 플래너(Hi-SDL Planner. Hi-Self Directed Learning)다.
140쪽에 달하는 Hi-SDL Planner에는 ‘나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단계별 목표를 설정하게 되어 있다. 학생들은 (1)장래 내가 무엇을 할 것인지 분명한 꿈 (2)꿈을 도달하기 위한 장기목표(00직업 종사), 중기목표(00대 진학), 단기목표(1학기 학습성취 목표) (3)단기목표를 토대로 1주 단위의 학습계획표를 작성하고 매일 자기주도학습 시간을 기입한다.
“공부는 그냥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치밀한 전략이 필요합니다. 학습목표를 설정하고 이끌어가고 결과를 평가하는 자기주도학습은 학생 스스로의 많은 노력과 훈련이 필요하죠. 공부하는 이유를 알게 하고 공부의 맛을 느끼게 해주면 달라집니다.”
성태모 진로상담부장은 “실제로 196명 중 192등으로 입학한 학생이 고려대에 입학했다”고 전했다.
능주고 학생들은 입학 때 MBTI다중지능검사, 직업적성흥미검사, 심리검사 등 다양한 교차검사를 받고, 조기에 진로를 정할 수 있도록 맞춤상담을 한다. 상담교사는 학생들이 학습전략을 구체적으로 세울 수 있도록 돕고, 단계별(목표관리→시간관리→기억력→과목별 공부법) 학습코칭을 해준다. 때문에 학생들의 학습상담 요청이 많다.
“학생 수가 학년 당 200명 정도로 적정해 관심을 가지고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많습니다. 다른 학교에 비해 학생에 대한 멘토링이 잘 이루어지는 이유입니다. 또 또래자녀를 키워본 경험을 가진 교사들이 많아 학생들의 고민과 진로를 세심하게 안내하는 노하우가 쌓여 있어요.” 28년째 능주고에 재직하고 있는 이현정 교사의 말이다.
1:1 상담과 멘토링을 통한 교육의 최적화가 이루어지는 능주고. 학생부 관리가 잘 될 수밖에 없고, 자신의 꿈과 목표대학이 일치하는 학생일수록 충실한 자기소개서가 나올 수밖에 없는 교육환경이 만들어지게 된다.
학습플래너와 연계된 교육프로그램도 눈여겨볼 만하다. 월요일 1교시 자치활동시간을 활용해 진행하는 진로탐색을 위한 신문활용교육(NIE), 자기주도학습 전형으로 선발된 학생과 희망자를 대상으로 토요 학술동아리 결과물을 취합하는 토요문화학교 연구프로젝트, 권장도서 가운데 지정권수(연간 15권)를 읽고 독후록을 제출하는 독서활동수료제, 텝스나 토익 중 일정 목표점수를 취득하는 영어인증제, 1인 40시간의 봉사활동이수제와 해외아동 결연 후원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학생들의 욕구를 반영하고 이끌어주고 있다. 교과과정운영위원회를 통해 교장, 교감이 정책을 세우기보다 학년부장, 행정부장, 교과부장의 협의를 통해 연간 교과 및 교육활동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것도 장점이다. 그만큼 짜임새를 갖출 수 있고 현장의 목소리를 담을 수 있다.
학술동아리 중심의 토요문화학교명품교육 프로그램과 자기주도학습에 이어 능주고의 특성이 묻어나는 게 하나 더 있다. 바로 토요문화학교 운영이다. 학술동아리 중심의 토요문화학교는 기존 모든 동아리를 흡수해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활동에 따른 결과물이 나올 수 있도록 재편성했다.
24개 동아리 가운데 과학환경, 수학, 인문교육, 사회시사 등 16개 학술동아리에는 분야별로 교과와 연계된 지도교사와 관리교사를 두었다. 대체로 학생 중심의 동아리가 자율적으로 운영되지만 이 학교는 진로탐구를 위한 활동으로 이어진다. 하창익 GOM(God of Math) 지도교사는 “수학에 흥미를 가졌거나 수학교사를 희망하는 학생들이 모여 다양한 탐구활동을 수행해 나가는 과정에서 수학에 대한 친근감과 흥미도를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올해 초에는 학술동아리 연구활동 결과물을 정리해 <토요문화학교 학술동아리 소논문집>을 발간하기까지 했다. 소논문집에 참가한 GOM 학생들은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는데 모여서 주제도 정하고 각자 조사해야할 부분을 나눠서 하니깐 다양한 의견도 나오고 일이 더 쉬워졌다”며 “조사할 내용도 많고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더 보완해 완성도 높은 논문을 만들고 싶다”고 활동일지에 소감을 적었다.
교사는 교육의 핸들을 잡은 사람 능주고 교사들의 모습에서 학생들은 미래의 꿈을 발견한다. 교사들은 밤늦게까지 학생들의 학습조력자로 궁금증을 풀어주거나 상담자를 자청한다. 토요문화학교에 참석해 학생들의 지식탐구 안내자로 뜨거운 열정을 뿜어낸다.
성태모 진로상담부장은 교사의 역할에 대해 ‘핸들잡이 이론’을 들었다.
“운전대를 잡은 사람은 공통적으로 멀미를 안 합니다. 교육현장이 힘들고 어려운 점이 많다고 해서 학생들이 어떤 자료로 공부하든, 어떤 대학을 결정하든 상관하지 않는 교사들이 있습니다. 핸들을 잡은 교사는 책임감을 가지고 학생을 끊임없이 상담해주고 관리해줘야 합니다.”
최근 4년간 SKY대에 100명에 달하는 합격자를 배출하고, 지난 2월 졸업생 201명 가운데 SKY대 27명, 서울 및 수도권 주요대학에 164명을 합격시킨 이유가 여기에 있다. 능주고의 미래가 더 밝고 환한 이유는 학교-교사-학생이 일체가 되어 함께 성장하며 진일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도하는 교육보다 감화하는 교육 지향”우리학교는 전형적인 농어촌 인문고입니다. 근래 학교를 멍들게 하는 갖가지 공해로부터 자유로운 청정구역이기도 하지요. 우리는 제자들이 우리학교에서 자신의 인생을 준비하기를 열망합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필요로 하는 교육활동은 우리 스스로 마련해 힘닿는 데까지 실천하고자 합니다. 그 기본 원칙은 학생과 학교의 역량으로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교육활동입니다. 여기에 심층적이고 도전적 성격의 프로그램도 더해 꼭 필요한 학생이 꼭 필요한 시기에 충분히 익히고 깊이 터득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학교는 ‘지도’하는 교육보다는 ‘감화’하는 교육을 지향합니다. 즉 모든 교육활동의 ‘최적화, 고급화, 감성화’입니다. 우리의 원동력은 ‘자발성’과 ‘협동’입니다. 우리학교는 선생님과 학생, 학부모, 학교 법인, 지역사회가 함께 가꾸어가는 학교지요. 학생과 교사, 학부모와 지역사회가 함께 성장하는 학교, 그것이 우리학교의 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