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하는 교직상 정립, 교사 주체의 교육개혁, 탈정치이념·교육본질 추구
“교권 추락 현실을 가정교육이나 사회 잘못으로 돌리지 않는다. 교원 스스로 전문적 소양을 쌓아 학부모와 사회의 신뢰를 되찾는다. 교직이 노동직이 아닌 전문연구직임을 교원 자신이 증명해 보여야만 신뢰와 존경을 받는 교육개혁 주체로 나설 수 있다. 사회적 신뢰와 제자들의 존경을 받으면서 교육자 스스로 자긍심을 고취하는 가장 올바른 방법은 바로 ‘연구하는 교직상 정립’이다.”
현장교원이 중심이 돼 교육의 기본(제자리)을 찾고 새로운 교육풍토를 조성하자는 ‘새교육개혁포럼(이하 포럼)’이 지난 11월 4일 프레스센터 19층에서 창립총회를 열고 본격 출범했다. 지난 8월 포럼 창립에 대해 결의를 다진 이후 뜻을 같이 한 교원 및 학계·정계 인사 5000여 명이 포럼 창립멤버로 동참했고, 이날 행사에는 300여 명이 넘는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포럼 공동대표인 안양옥 한국교총 회장은 “정부 수립 전부터 한국교총은 ‘현장과 교원 중심’의 ‘새교육개혁 운동’을 주도했다”며 “포럼은 과거 새교육개혁 운동과 같이 교육과 교육자 위기가 가중되는 현시점에서 기본으로 돌아가(Back to the basic) 교육자 중심의 교육재건 노력을 통해 제자교육과 대한민국 발전이라는 막중한 책임을 다하고자 출범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날 포럼은 연구하는 교직풍토 조성에 방점을 두고 △현장중심 연구 운동 추진 △교육본질 회복 추구 △수업·교실 바탕 정책 선도 △교직 전문연구직 표방 △교육한류 확산이라는 교육발전을 위한 5대 비전을 제시했다.
이의 실천을 위해서는첫째, 교육정책의 싱크탱크 등 현장중심 연구운동의 구심체 역할에 앞장선다. 관념적 이론에서 벗어나 교육공동체가 함께하는 구체적인 교과·교사 ·교육 중심적 접근 방식으로 나아갈 계획이다. 둘째, 정치이념에 휘둘리지 않고 모두가 바라는 항존적 교육가치를 추구한다. 헌법가치인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을 지켜내 정치적 고려에 의해 수시로 바뀌는 교육정책과 제도 때문에 혼란스럽고 고통받는 학교현장이 되지 않도록 노력한다는 것이다. 셋째, 정부에 앞서는 교육현장 주도의 정책과 지식을 양산하는 주체가 된다. 포럼의 지속적 개최, 포지션 페이퍼 출간 및 교과연구회 활성화, 교사연구지 창간 등 현장교원과 교수들의 연구의지를 높이고 정책을 선도한다는 계획이다. 넷째, 교직을 전문직주의에 기반한 전문연구직임을 표방하고 스스로 끊임없이 연구하는 교직풍토를 조성해 나갈 계획이다. 마지막으로 대한민국 교육제도와 교육내용을 더 발전시켜 동·서양의 많은 나라가 선망하고 배우고자 하는 ‘교육한류’의 중심이 될 수 있도록 교육강국의 기틀을 다질 계획이다.
포럼은 5대 비전 실천운동 확산을 위해 12대 과제 및 주요의제를 추후 운영위원회를 통해 확정하고 구체적인 새교육개혁 운동을 전개해 나가기로 했다.
한편 이날 창립총회가 끝난 후에는 12대 과제 중 첫 번째 주제인 ‘국가교육과정과 교과 난이도 및 학습량의 상관관계’에 대해 제1차 포럼을 진행했다.
제1차 포럼 ‘국가교육과정과 교과 난이도 및 학습량의 상관관계’
교육과정개정, 교육의 질 향상됐나?
“뒤죽박죽, 어렵고, 양 많아”
정치성 담은 교육실험 그만
교원 중심 정책 결정·시행을,
교사의 교재 재구성 의지 중요
창립총회에 이어 ‘국가교육과정과 교과 난이도 및 학습량의 상관관계’란 주제로 진행된 제1차 포럼에서는 황규호 이화여대 교수(한국교육과정학회 회장)가 기조발제자로 나섰다.
그는 먼저 “우리나라의 경우 여러 차례 국가교육과정 개정에도 불구하고 ‘교육과정에 따라 학교교육의 질이 향상되었는가’라는 질문에 분명한 답을 찾기 어려운 것은 교육과정이 하나의 주기적, 의례적 행사 또는 대선 공약과 같은 특정 집단에 의해 규정된 특정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추진됐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그는 “2009개정교육과정을 보더라도 교육과정개정이 교육적 필요보다는 대통령 임기 이내 공약을 달성하려는 의지를 반영하는 등의 정치적 논리에 따라, 그리고 1년 만에 번복된 학기당 8개 과목 이내의 집중이수제와 같이 충분히 검증되거나 검토되지 않은 ‘묘수’ 중심의 개정이 다수 추진됐다”고 말하고 “이런 정책들과 관련해 교육주체들 사이의 집단적 대화와 성찰에 필요한 시간적 여유도 갖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반성을 바탕으로 그는 한국 교육과정 혁신의 과제와 방향에 대해 △교육적 가치의 다원성 존중 △학습경험의 질을 중시하는 교육과정개정 △성찰과 반성을 위한 집단적 대화 여건 조성을 제시했다.
황 교수에 따르면 ‘교육적 가치의 다원성 존중’은 교육의 목적이나 본질적 가치에 대한 의견 차이에 대해 절충적, 종합적 입장을 취하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여러 가치 중에서도 ‘인간으로서의 성장’에 관련되는 가치에 대해서는 그것이 다른 가치들에 의해 압도되지 않도록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교육과정개정의 핵심 비전을 명료하게 제시해 교육과정개정안의 세부과제를 통해 구현하고자 하는 핵심적 교육 가치를 더욱 명료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실제로 2009개정교육과정의 경우 ‘하고 싶은 공부, 즐거운 학교’, ‘학생들의 학습흥미 유발’, ‘배려와 나눔을 실천하는 창의인재양성 교육으로의 변화’ 등을 방향성으로 제시했지만 그것이 강조하고 있는 교육적 가치의 내용에 대해서는 명료화하지 못했다. 집중이수제, 창의적 체험활동 강화, 단위학교 교육과정 자율화와 특성화 확대 등의 주요 개정내용들 역시 각각 어떤 교육적 가치나 비전들을 구현하기 위한 방안인지 체계적으로 설명돼 있지 않다고 꼬집었다.
두 번째 해법, ‘학습경험의 질을 중시하는 교육과정개정’은 학습자 성장에 기여하는 학습경험의 제공 여부를 핵심적 관심사로 삼자는 의미다. 이를 학습내용의 양과 수준의 적정화 문제로 본다면 이제까지 주로 학습부담 경감을 위한 과제로 인식돼 온 것을 학습자의 학습경험을 교육적으로 더욱 의미 있게 변화시키기 위한 과제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적은 수의 주제들을 깊이 있게 학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양과 수준 적정화의 근본적 취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세 번째, ‘성찰과 반성을 위한 집단적 대화 여건 조성’을 위해서는 위로부터 부과되는 강요된 자율이 아닌 학교가 필요로 하는 진정한 자율권의 확인과 지원이 중요하며, 근본적으로 교사의 자율성과 전문성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는 것을 핵심적 과제로 꼽았다.
교원 중심에 두는 정책개발·시행 필요
이어 진행된 토론에서 김진숙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연구위원은 “전반적으로 공감하나 교육적 가치의 다원성 부분에 대해서는 이견”이라며 “교육정책의 정치적 색채를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고, 우선순위(priority)는 존재할 수밖에 없지만 우선순위에서 밀려 있는 가치들에 대한 포용성은 강화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왕준 경인교대 교수는 “교육과정개정이 교육적 필요보다 정치적 논리에 의해 추진됐다는 것은 그동안 우리나라 교육과정개정이 특정 인물이나 정당 이익을 위해 이루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이의 해결책으로 교육관련 전문가 집단이 모여 교육의 본질을 추구하기 위한 힘을 결집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조영종 천안부성중 교장은 “한국교육의 문제점들은 근본적으로 교육의 본질적 가치가 훼손되고 있다는 데 있으며 그 중요한 원인의 하나가 교원을 중심에 두지 않는 정책개발과 시행”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중혁 머니투데이 교육팀 팀장은 “지역에 따라 교육서비스가 달라지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교육의 본질을 되찾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포럼에서는 현직 교사들이 13개 초·중등 교과별 포지션 페이퍼 연구를 통해 최초로 현재의 교과별 난이도와 학습량에 대한 현장의견과 문제점을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교사들의 공통된 의견은 잦은 교육과정 개편으로 인해 교과내용이 학년을 고려하지 않은 ‘뒤죽박죽’으로 돼 있는 점과 난이도 역시 어렵고 학습량도 많다는 의견을 냈다. 다만 교사가 교수-학습 여건에 맞게 ‘이런’ 교과를 재구성해 가르칠 수 있도록 교사의 전문성과 의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