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세기 독일을 대표하는 작가에 에리히 캐스트너(Erich Kastner, 1899~1974)가 있다. 그는 <걸리버 여행기>, <돈키호테> 등의 고전 명작을 현대 시각으로 다시 집필해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전 소설가로서, 안데르센 상 등 수많은 상을 받은 작가다. 그가 전하는 일화 하나를 소개한다.
어느 해 겨울 우리는 아주 친한 친구들 몇몇끼리 여행을 했습니다. 우리 일행 중에는 ‘에른스트’ 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여행 일정이 빽빽하고 먼 길이었기 때문에 모두들 피곤했습니다. 그 날 우리는 밤 열차로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나도 밤늦게 찻간에서 피곤해 쿠션에 기대어 앉아 있었습니다. 에른스트는 내 앞좌석에서 이미 잠들어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조용히 에른스 트의 숨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렇게 잠이 든 에른스트는 점차 깊이 수면에 빠져드는 듯했습니다. 그가 잠들고 한참 지났을 때였습니다. 에른스트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조끼 주머니를 뒤졌습니 다. 그리고 약통을 꺼내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큰일 날 뻔했어. 하마터면 수면제를 먹지 않고 잘 뻔했군!” 그는 부지런히 약을 먹고 다시 잠드는 것이었습니다.
언뜻 보면 좀 코믹해 보이는 장면이지만 깊이 생각해 보면 습관이 그만큼 무섭다는 것을 아찔하게 보여주는 일화이다. 서양 속담에 ‘습관은 제2의 천성(天性)’이라는 말이 있다. 타 고난 본성만큼 그 힘이 크다는 뜻이라 하겠다. 비슷한 말을 몽테뉴(Montaigne, Michel Eyquem de 1533~1592)가 그의 명저 <수상록(隨想錄)>에서 언급한다. “습관은 제2의 자연이다. 제1의 자연에 비해서 결코 약한 것은 아니다.” 같은 책에서 몽테뉴는 습관의 힘 을 더 직설적으로 말한다. “습관이 하지 않는 일이나 하지 못할 일은 없다.” 습관을 마치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power)처럼 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습관은 적어도 한 개 인의 내부에서는 그런 힘을 가지고 사람을 조종하고 통제한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그래도 가치중립적인 진술이다. 습관이 그저 힘이 막강하다는 것을 말한 것뿐이니까. 습관이란 말 그 자체는 좋고 나쁨을 담고 있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오늘날 현대인들이 ‘습관’이란 말을 사용했을 때는 긍정적인 맥락보다는 부정적인 맥락이 더 강하게 개입하는 듯하다. “습관을 버려라”, “습관을 고쳐라” 등의 말을 더 많이 듣기 때문이다. 설령 ‘좋은 습관’을 이야기할 때도 반드시 ‘나쁜 습관’을 고치라는 이야기 끝에 따라 나오는 것을 항용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몽테뉴도 <수상록>에서 습관 이야기를 꺼낼 때 이 점을 놓치지 않는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습관이란 것은 참으로 음흉한 선생이다. 그것은 천천히 우리들의 내부에 그 힘 (권력, power)을 심는다.” 나쁜 습관을 ‘음흉한 선생’으로 비유한 것이 적절한지는 모르 겠지만, 우리를 가르치고 인도해 마침내 그렇게 길들이는 어떤 존재를 ‘선생’으로 상정한 것 자체를 나무랄 수는 없을 것 같다. 달리 생각하면 ‘습관’과도 같은 막강한 힘을 발휘하 는 존재가 ‘선생’이라는 인식이 그즈음부터 있었다는 사실 하나를 확인하게 된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 새교육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