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적으로 나쁜 경험’이란 없다. 교사의 열정은 학생들의 ‘나쁜 경험’마저도 ‘좋은 경험’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교사는 교사다워야 한다’는 계몽적 강박 안에서 ‘모범적 열정 모드’에만 갇혀 있는 것 같다. 자유로운 열정을 가져보자. 가르치는 일의 낭만성을 풍부하게 해 줄 것이다.
01. 내가 ㅅ 선생을 만난 것은 K 고등학교에서 근무할 때이었다. 나는 28세 신참 교사였고, ㅅ 선생은 나보다 서너 살 더 위의 훈훈한 선배 교사였다. ㅅ 선생은 학생들과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어울리기를 좋아했다. 굳이 선생 티를 내지 않으려 했다. 과학 선생인 그는 귀찮은 실험들을 재미있는 실험으로 끌어가려고 허다한 준비들을 마다하지 않았다. 운동장에서 학생들과 공을 차고, 이런저런 야영 프로그램에 기꺼이 학생들과 어울렸다. 그는 ‘소명’을 말하지 않았지만, 특유의 열정을 읽을 수 있다. 그저 어디에도 강박 되지 않고 학생들과 어울리는 것 자체를 즐겼다. 그의 열정은 상당히 쿨(cool)한 것이어서 열기보다는 그야말로 신선하고 서늘한 것에 가까웠다.
그해 가을 ㅅ 선생은 경주로 2학년 수학여행을 인솔해 갔다. K 고등학교는 그전 해에 지역 폭력조직에 학생들이 연루되어 홍역을 치렀던 처지이라, 교장선생님은 학생 지도에 각별한 관심과 정성을 쏟으라고 당부했다. 여행 인솔의 대표 책임을 맡은 교감선생님은 여행 중에 교칙을 어기는 학생은 처벌을 면할 수 없음을 여러 번 공지하였다.
경주에서의 첫날 저녁, ㅅ선생은 자기 반 몇몇 장난꾸러기들이 숨겨 둔 술 몇 병을 뒤져서 압수했다. 예상한 대로 학생들은 수학여행에 ‘일탈의 의식’을 다채롭게 준비해 왔던 것이다. ㅅ 선생은 별일 없는 것처럼 자기 반 아이들과 더불어 수학여행의 일정을 진행해 나갔다. 학생들이 더 은밀하게 숨겨 두었던 술도 ㅅ 선생은 기막히게 찾아내어 아이들을 주눅 들게 했다. ㅅ 선생은 또래 아이들의 일탈 문화를 알고 있었다. 살벌한 경고나 꾸중이나 체벌은 없었다. 다만 분별력 없는 음주는 사고를 일으킬 수 있고, 해롭다는 것을 명시적으로 강조했다.
3박 4일 여행의 마지막 날 밤, ㅅ 선생은 술을 압수당한 학생들을 조용한 방으로 모이게 했다. ㅅ 선생의 앞에는 제자 녀석들로부터 압수된 술이 놓여 있었다. ㅅ 선생은 아이들을 향해서 말했다. 일탈의 정서나 영웅 심리로 술을 마시는 것은 위험하고 해롭다. 성인이 되기 전에는 술에 다가가지 말라. 아이들은 숨을 죽이고 담임인 ㅅ 선생을 주목했다. 술은 어른이 계시는 가운데서 반듯한 태도로 예를 갖추어 배워야만 바른 습관으로 자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ㅅ 선생은 녀석들에게 딱 한 잔씩 술을 따라 주었다.
놀라고 당황한 것은 학생들이었다. 이런 장면을 예견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제법 엄숙한 의식 같기도 했다. 처음에 킥킥거리던 녀석들도 이 이상한 의식에 진지하게 참여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금지된 술을 선생님께 바른 예법에 따라 한 잔씩 받은 녀석들은 무언가 의미 있는 경험을 한 것 같았다. 대단한 인정을 받은 느낌이었다. 좀체 잊기 어려울 경험이었다. 이렇게 한 잔씩의 순서가 끝나고 ㅅ 선생은 남은 술에 대해서는 영원한 압수를 선언했다. 그리고 한 마디를 더 보탰다. “다른 아이들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지 말라.” 그렇게 수학여행은 끝났다. 그런데 학교로 돌아오자마자 여기저기 수학여행에서 생긴 사고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학생부가 바빠지기 시작했다. 수학여행 마지막 날 밤, 그러니까 ㅅ선생이 술 한 잔씩을 자기 반 학생들에게 내려 주던 바로 그 시간, 다른 반 학생들 일부가 몰래 여관 바깥으로 나가 술을 마시고 싸움을 벌인 것이다. 그 외에도 여기저기 학생들의 음주 행위들이 잇달아 터져 나왔다. 학교는 징계와 처벌을 시작했다. 징계를 받는 학생들로부터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ㅅ 선생님 반도 선생님이 주는 술을 마셨다는데, 그 아이들은 왜 처벌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물귀신 작전이라고나 할까.
학교는 위반자에 대해서 예외를 두지 않았다. ㅅ 선생의 반 아이들도 처벌 대상에 올렸다. ㅅ 선생이 학교 당국에 이의를 제기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학생들 앞에 할 말이 없었다. 그는 자신도 징계해 줄 것을 강력하게 요청했다. 그렇게 해야만 비로소 정신이 자유로워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사로서 강박 되는 것을 싫어했던 그의 ‘자유 실천’은 이렇게 상처를 입었다. 징계를 자청함으로써 그는 비로소 다시 교사로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교사란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계몽적 강박(should be 의식)에서 자유롭고자 했던 것이다.
1978년에 있었던 일이다. 정답이 딱히 있는 일은 아니리라. 억압이 시대정신처럼 지배하던 시절이었다. 그 학생들도 이제는 쉰 살 중반의 초로들이 되었겠다. 그때 그 일은 연륜과 더불어 어떤 감화의 꽃으로 마음에 남아 있을까. 그들에게 ㅅ 선생님은 어떤 사도(師道) 가치로 각인되어 있을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ㅅ 선생은 ‘자유로운 열정’을 지닌 교사이었다. ‘강박 되지 않는 교사 의식’을 가짐으로써, 교사로서의 존재론적 자유를 보전하려 했던 사람,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싶다.
02. 수학여행은 팔색조와도 같은 다채로운 경험의 공간이다. 고통스럽고 기상천외한 경험들도 여기에 기꺼이 합류한다. 교실 밖에서 자연과 역사와 문명을 직접 몸으로 체득하는 것이므로 중요한 교육의 장이라고만 수학여행을 이해하는 것은 교과서적인 모범 답안에 해당한다. 현실의 수학여행은 그런 모범 답안만으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더구나 고등학생쯤 되면 ‘세상’에 대한 발칙한 도전과 기성의 질서에 대한 반항적 일탈을 시도하고 싶다. 그렇게 함으로써 호기심 저쪽에 놓인 ‘어른 세상’으로 넘어가 보려는 영웅 심리가 작동한다. 수학여행으로 하여금 통과제의(initiation)의 관문을 삼고, 수학여행에 기대어 불온한 음모들이 꾸며져서, 마침내 수학여행에서 해방구(解放區)의 쾌감을 기대한다. 이는 청소년기 특유의 ‘보이지 않는 문화’로 엄연히 존재하고 소통된다. 이를 일종의 잠재적 교육과정으로 볼 수 있는 것이라면, 어찌 교육이 관심 가질 일이 아니라고 도외시만 할 것인가. 모범 답안으로서의 수학여행만을 고수하다 보면, 수학여행 폐지론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막상 ‘수학여행 폐지론’ 앞에서 주춤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모범 답안의 바깥에 있는 수학여행의 여러 현상도 교육이 챙겨서 보듬어야 하는, 또 다른 교육의 영토임을 부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교육은 모범적 기대와 이상적 모드(mode)로 기획되지만 그렇게만 수행되지는 않는다. 일탈과 역작용의 과정 속에서도 교육적 소통과 교육적 실천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교육적 실천(pedagogy)이 있음으로써 우리는 다시 우리의 아이들의 일탈과 우리가 몸담고 있는 고단한 교육 현실에서 다시 감동과 희망을 찾아 나설 수 있는 것 아닐까. 이렇게 우리를 추동하는 힘이 바로 열정이다. 교사의 열정이다. 교육을 긴 흐름으로 보면 ‘절대적으로 나쁜 경험’이란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어떤 특정의 경험을 결정론적으로 나쁘다고 규정해 놓으면 그 이후의 교육적 지도가 유연하고 융통성 있게 마련되기가 어렵다. 여기에 진정한 인간 발달과 전인교육을 고민하는 교사들의 열정이 필요하다. 어떤 특정의 단계에서 ‘나쁜 경험’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어떻게 ‘좋은 경험’과 이어질 수 있도록 고민하는 것, 그것을 교사의 열정 이외에서 기대하기란 어렵다. 좋은 열정은 어디서 오는가. 그것은 교사의 존재론적 자유를 존중받는 데서 오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자유가 열정에 진정성과 창의를 부여한다. 그 진정성과 창의가 우리들의 열정에 신뢰와 감동을 선사한다. ㅅ 선생의 ‘자유로운 교육 실천’이 그런 암시를 준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 새교육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