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인적자원부가 편수기능을 빼내어 이를 민간 연구기관에 위탁하는 방향으로 직제를 바꾸려는 움직임을 보고 경악을 금할 수 없다.
편수국은 1948년부터 문교부의 수석 부서로서 출발하여 초 중등학교의 교육내용 행정을 전문적으로 수행해 왔다. 그러나 1996년 7월 직제개편의 미명 아래 편수국을 폐지한 후 계속 편수 전문직을 줄여서 현재는 교육과정정책과에 겨우 20여명의 전문직만 남겨두고 있었다. 이는 편수행정 기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는 최악의 상태인 것이다.
초 중등 교육의 교육내용과 방법, 교과서 등에 중대 문제가 발생해도 이를 해결할 주무 국장과 전문가도 없는 한심한 상태였기 때문에 편수행정의 강화가 시급한 실정이었다. 그런데 이를 강화하기는 커녕 이번에는 편수기능을 완전히 소멸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교육부는 초 중등 교육을 시 도 교육청에 위임하는 지방분권을 내세우고 있으나 이는 큰 착각이고 기초공통교육의 근간을 흔드는 극히 위험한 시도인 것이다. 지방분권화가 심화되면 그것이 원인이 되어 국가수준의 관여가 더 강화되어야 할 부문이 생긴다. 그런 분야가 바로 학교에서 우리의 자녀들을 어떠한 인간으로 기를 것이며,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 것인가를 선택하고 결정하는 교육과정에 관한 문제이다.
지방분권이 강화되어 재정, 시설, 인사, 사무 등과 같은 하드웨어적 영역은 그 지역 주민의 요구와 특성에 맞게 관리하는 것이 당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하드웨어를 결정할 수 있는 근본적인 교육설계도인 교육과정 즉 소프트웨어는 각 지방자치단체에 맡겨 놓을 수 없는 전 국가적인 영역인 것이다.
각 지방자치단체가 주민의 구미에 맞는 교육에 힘쓴다고 하더라도 초 중등 교육의 목표는 단순히 그 지역의 주민을 길러내는 것이 아니고 '대한민국의 국민'을 길러내는 일이다. 그래서 이미 철저하게 지방 분권화되어 있는 선진제국에서도 초 중등학교의 교육과정만은 중앙정부가 관여하여 국가수준 교육과정체제를 채택하고 있는 것이다. 분권화가 심화되면 정치적, 행정적으로는 공통화, 통합화를 실현하기 어렵기 때문에 분권화가 진전될수록 국가수준 교육과정이라는 장치로 교육의 공통화, 국민의식과 기본자질의 공통화를 보완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앞으로 통일에 대비한 남북의 교육통합 준비는 무엇보다도 교육과정과 교과서의 통합이 가장 우선적인 작업인데 이처럼 중요한 일은 누가 담당할 것인가?
교육과정의 위기는 교육의 위기이고, 교육의 위기는 곧 국가의 위기이다. 앞으로 지방자치가 강화된다고 해서 교육에 관한 모든 것을 지방자치단체가 결정한다는 원칙에 휩쓸려 교육부의 편수기능과 초 중등학교 교육과정을 혹시 각 시 도교육청에 전적으로 맡겨버리는 그릇된 판단을 해서는 절대로 안 되겠다. 부디 초 중등교육에 큰 혼란과 손실을 초래할 어리석은 결정은 피할 것을 간곡히 충고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