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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미국 영재교육 현장을 찾아서 11

고전 100권 읽기와 워싱턴 D.C에서 마지막을

8월 3일

긴 일정의 마지막 날 오전 7시 30분 첫 일정인 메릴랜드주의 주도 애나폴리스의 세인트존슨 대학으로 향한다. 이 학교는 사립대학으로 4년 동안 100권의 고전을 읽어야 하는 특별한 교육과정과 미합중국의 가사를 쓴 사람을 배출한 곳이다. 가는 도중 워싱턴 D.C를 지나야 하므로 교통 체증이 다소 있다. 꼬리를 무는 자동차의 행렬의 번호판도 각양각색이다. 미국의 자동차 번호판의 종류는 워싱턴 D.C를 포함해 모두 51종류이다.

메릴랜드주로 접어든다. 이주는 미국 동부 대서양 연안에 있으며 애나폴리스엔 해군사관학교가 있다. 오전 9시를 조금 넘긴 시각 세월의 이끼를 덮어쓴 고풍스러운 모습의 석조 건물이 푸름 속에서 손을 내민다. 먼저 학교를 순회하며 설명을 듣는다. 세인트존슨 칼리지의 교육과정은 서양사와 인문학이다. 도서목록은 학년별로 정해져 있으며 모든 학생이 같은 과정을 공부한다. 전공분야는 따로 없고 졸업하면 인문학사 자격이 주어지고 상위대학으로 가서 더 공부한다. 교수 1인당 학생은 9명이며 교수라고 지칭하기보다 조력자로 통한다. 모든 수업은 토의 토론으로 진행되며 교육목표는 호기심이 많고 큰 비전을 갖고 장래를 준비하는 학생을 길러내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학생들은 배움에 대한 즐거움이 가득하다. 인류의 보편적 원칙인 고전을 읽고 토론하며 에세이를 통해 인생을 알고 생각과 마인드를 넓힌다.

정오경 정신을 집중해야 하는 모든 일정을 접고 오래된 참나무가 품어내는 푸른 그늘 밑에서 하늘 구름 바람이 여유로운 편안한 여름날을 본다. 이제 본격적인 워싱턴 D.C 체험을 위해 이동한다. 삼십 여분 달린 후 국회의사당 앞에 내린다. 이 건물은 53㏊ 넓이의 공원 가운데 서 있다. 사진이나 영상을 통해 본 곳을 직접 거닐어 보니 과히 풍광과 규모가 압권이다. 짧은 시간 파일 검색처럼 각 부처의 석조건물을 보며 백악관으로 걸음을 옮긴다. 

맑은 날씨에 백악관 앞쪽 대로에는 인파로 가득하다. 그 무리 중에는 곡을 연주하고 난타도 하며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지만 바쁜 일정상 걸음을 재촉하며 분수와 석조 건축물, 잔디가 조화로운 백악관 외곽을 한 바퀴 돈다. 아마 다양한 문화와 예술이 혼재하는 곳이 이곳인 아닌가 한다. 

팍팍한 다리를 두드리며 백악관을 뒤로 링컨기념관에 인접한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관으로 이동한다. 이 기념관은 1995년 김영삼 대통령 때 만들어졌다. 한국전쟁 당시 사망한 600만 명의 미군을 추모하며 19명의 한국전 참전용사상이 긴장한 표정으로 서 있다. 그리고 벽면은 우리의 산수화를 배경으로 전쟁의 메모리얼 조각이 보는 위치에 따라 나타나고 사라지는 기법이 사용됐으며, 그 입구에는 “Freedom is not Free”란 말이 보는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자기 나라 땅도 아닌 먼 이국땅에서 전쟁으로 숨진 사람들의 혼을 추스르는 곳이다. 그래서 유모차, 반려동물, 음주가 금지된 곳이며 특히 바닥에 새겨진 “알지도 못하는 나라, 만나보지도 못한 사람들을 지켜야 한다는 국가의 부름에 응한 미국의 아들과 딸들에게 미국은 경의를 표한다” 문구는 절대 밟아서는 안 된다고 한다. 

하지만 그 의미를 모르는 관광객들은 셔터 누르기에 바쁘다. 다시 링컨 기념관으로 자리를 옮긴다. 헨리 베이컨이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을 본떠 설계한 이 기념관은 높이 13.4m로 콜로라도산 대리석으로 만든 36개의 기둥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는 링컨 시대에 미국 연방을 이루었던 36개 주를 상징한다. 그리고 기둥 안쪽엔 조지아산 흰 대리석으로 만들어 테네시산 대리석 대좌에 앉혀놓은 높이 5.8m의 링컨 좌상이 기념관 내부를 위압하면서 연못 너머 169m 오벨리스크 모양인 워싱턴 기념탑과 국회의사당이 있는 동쪽을 바라보고 있다. 또한, 기념관 남쪽 벽에는 그 유명한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이 새겨져 있고 북쪽 벽에는 그의 재임 취임사가 새겨져 있다.

링컨은 추남이었고 부인은 악처였다 한다. 하지만 대통령 재임 시절 스스로 구두를 닦아 신은 겸손함과 노예해방, 미연방을 하나로 모으고 국가의 기틀을 마련한 사람이니 추앙받을 만하다.

링컨 기념관 돌아 나와 서니 호수와 기념탑, 국회의사당이 한눈에 들어온다. 문득 중학생 시절 우연히 이 장소의 모습이 담긴 사진엽서를 보고 실제로 가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지금 이 자리에서 있다니 감개무량하다. 

다시 기념관 계단을 내려오면서 미국이 강대국인 이유는 무엇인지 생각을 모아본다. 각기 특성을 가진 50개 주가 하나의 연방정부 아래 힘을 모으면 그 파워란 엄청난 것이다. 3억1500만의 인구와 43번째 대통령, 흰머리 독수리가 상징이며 4300명의 히스패닉과 4000만의 흑인이 공존하는 다양성의 나라에서 뿜어내는 공동의 파워가 미국중심의 세계질서를 만든 게 아닐까 한다.

오후 5시 30분 미국에서의 마지막 저녁 식사를 위해 워싱턴 D.C를 빠져나온다. 현대 욕망의 빅뱅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맨해튼, 독립선언서를 든 자유의 여신상, 유유히 흐르는 포토맥 강에서 오늘의 미국은 거대한 뚜껑이 닫힌 자본주의 호의 잠수함이라고 정의하면 어떨까? 일행들과 아쉬움의 건배를 하며 그동안 힘들었던 일정을 생각하니 추억이란 단순히 쌓이는 것이 아니라 화인처럼 찍혀 내 몸에 간직된다는 말이 떠오른다. 이제 남은 일은 걱정되는 14시간의 비행이다. 아마 시간이 더 지나면 이곳의 일은 되새김 되어 더 깊은 맛을 우려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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