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 봄 결혼식을 치렀고, 그 해 가을 필자는 집과 예단, 혼수 대신 남편과 414일 간의 세계여행을 떠났다. 사진작가로 잘나가던 여자에서 멀쩡히 잘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운 여자가 됐다. 떠나기 위해 집과 자동차를 정리했고, 쓰던 가구와 물건을 모두 팔아 치웠다. 한국에서 우리의 흔적을 찾을 수 없을 거라는 말만 남긴 채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갔다. 배낭 두 개 달랑 메고.
한국을 떠난 지 132일 째, 우유니로 향하는 우리의 발걸음엔 가속도가 붙었다. ‘세상에서 가장 큰 거울’ 또는 ‘지상 위의 천국’이라 불리는 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 사막. 때는 3월 말, 우기가 거의 끝나가는 시기였기에 운이 좋아야 물 찬 우유니를 볼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혹여나 물 찬 우유니를 보지 못하게 될까 불안 초조해 하는 우리의 마음과는 다르게 그곳으로 향하는 버스는 느릿느릿 속 터지게 더디기만 했다. 버스로 10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다던 라파스에서 우유니까지 가는 구간은 울퉁불퉁하고 질척한 비포장 도로 위를 가다 서다 반복하더니 14시간 만에야 끝이 났다. 게다가 히터 하나 없는 고물 버스 속에서의 긴긴 14시간이 어찌나 춥고 배가 고프던지…….
그렇게 고생, 고생하며 도착한 우유니 마을에 대한 첫 인상은? 세계 최고의 여행지라는 수식어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가난하고 휑하여 쥐뿔도 없어 보였다.
이 조용하고 한적한 우유니 마을에서 가장 시끄럽고 북적대는 곳이 바로 중앙 거리의 여행사 앞이다. 우유니의 소금 사막은 현지 여행사를 통하지 않으면 여행 자체가 불가능하다. 물 차오른 울퉁불퉁한 소금 결정체 위를 달려야 하기 때문에 커다란 바퀴의 지프차를 타야 하기도 하고, 지표 하나 없는 새하얀 사막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한 이유도 있다. 사막에서 길을 잃고 5일 만에 극적으로 구조됐다는 소문, 혹은 아예 행방불명됐다는 소문도 파다하다. 한두 평 남짓한 허름한 여행사 몇 개가 이 마을 전체를 먹여 살린다 해도 과언이 아닐 듯했다. 우리도 그 중 한 곳에서 투어를 신청했다.
우리를 태운 지프가 호기롭게 소금 사막 한가운데를 향해 달렸다. 아! 드디어 천국의 풍경, 그 미지의 공간으로 향한다는 생각에 심장이 터질 듯 두근거렸다.
우유니 소금 사막의 별칭은 ‘천국’이라 했다. ‘하늘과 소금’, ‘비온 후 갬’, ‘바람은 필요 없음’. 이것이 바로 천국의 조건이다. 최근에 내린 비가 발목 언저리에 찰랑거릴 정도로 차 있어야 하고, 그 물에 비친 상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바람이 불지 않아야 했다. 별것 아닌 이 몇 가지 조합이 딱 맞아떨어져야만 비로소 우유니 사막의 천국이 드러난다. 10시간이면 도착한다던 버스가 14시간이 걸린 이유가 바로 이 천국을 만들기 위해 최근에 내린 비 때문이었다는 건 후에 안 사실이다.
하늘과 땅이 만나는 곳. 하늘이 땅이고, 땅이 곧 하늘인 곳. 지평선 위에 떠 있는 모든 것을 데칼코마니처럼 그려내는 우유니 소금 사막이다. 빛과 소금이 만들어내는 신의 마술, 신의 예술.
온통 새하얀 마른 소금에 공간감도 시간감도 사라질 때쯤, 꿈에 그리던 천국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 드디어 천국에 도착했다는 환호의 표식으로 우리를 태운 지프는 신나게 원을 그리며 천국의 한가운데에 멈춰 섰다.
당신의 상상 속 천국은 어떤 모습인가? 눈부신 햇살? 하얀 뭉게구름? 사람들의 얼굴에서 피어나는 행복한 미소? 앞, 뒤, 옆을 보고 발아래까지 둘러봐도 온통 천국의 풍경이다. 눈이 부시다. ‘정녕 지구상에 존재하는 곳인가? 보고 있어도 믿을 수가 없다. 우유니 소금 사막은 어떤 상상을 하든 그 이상의 천국을 보여준다.
우유니의 시공간은 우리가 알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손을 뻗으면 잡힐 듯한 지평선, 아니 수평선인가?
원근감이 없어 동서남북 갈피를 잡을 수 없고, 흐르는 시간조차 가늠하기 어렵다. 초현실주의를 대표하는 화가 살바도르 달리도 우유니 여행에서 작품의 영감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의 작품처럼 ‘초현실’, ‘비현실’이 바로 우유니를 대변하는 단어라 할 수 있겠다.
해가 진 후에도 진한 감동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쉬이 가시지 않는 흥분에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어느덧 시계는 새벽 3시를 가리켰고, 그 즈음 지난밤 우리를 숙소에 데려다 줬던 가이드가 다시 돌아왔다. 더 놀라운 광경이 기다리고 있으니 지금 출발해야 한단다.
이보다 더 놀라운 광경이 있다고? 새벽 3시에? 그는 어둠 속에서 지프를 몰기 시작했다. 아무런 표지판이 없는 소금 사막에서 물 찬 우유니를 향해 거침없이 달려가던 한낮의 재주도 신기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방향을 딱 잡고 차를 모는 건 더욱 신기한 재주였다. 어떻게 길을 찾느냐는 물음에 낮에는 내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아주 먼 산을 지표로 삼고, 밤에는 하늘의 별을 따라 간다고 했다. 영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방법, 별을 따라 가다니!
그 밤, 그 새벽은 낮의 우유니와는 전혀 다른 매력이 넘쳤다. 낮에 본 우유니가 ‘보고 있어도 믿을 수 없는 경이로움’이었다면, 밤의 우유니는 ‘넋을 놓고 바라보게 되는 아름다움’이었다. 물 맑은 호수 위에 떠 있는 은하수는 평상시 상상할 수 있는 개수의 별을 넘어서 있었다. 어느 누가 머리 위에서 쏟아져 발아래까지 반짝이는 별들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어느 누가 까만 눈동자 속을 흘러가는 은하수를 상상할 수 있겠는가? 아마도 태어나서 그 전날까지 본 별을 합친 것보다 그 때 그 순간 떠 있었던 별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어느덧 인생의 삼분의 일을 훌쩍 넘겼다.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해야 할 일이 많아지고, 웬만한 일에는 무심하고 무뎌졌으며 살면서 부딪쳤던 크고 작은 시련에 다쳐볼 만큼 다치고, 구를 만큼 굴러 세상과 맞짱 정도는 뜰 수 있을 만큼 크고 단단한 동그라미가 된 줄 알았다. 어른이 다 된 줄 알았다. 어느 날, 덜컥 만난 거대한 자연 앞에서 나는 그저 아직 ‘작은 점 하나’도 되지 않았음을 알기 전까지.
세 단어로 알아보는 볼리비아
1. 소금 사막
포토시 주에 위치한 우유니 소금 사막은 안데스 산맥이 융기하는 과정에서 바다의 소금과 주변 산지에서 흘러내린 염류가 합쳐져 생성된 분지 지형이다. 면적은 약 1만 2000㎢ 정도로 경상남도보다 약간 넓은 규모. 소금 매장량은 약 100억 톤 이상으로 추정한다. 값비싼 광물인 리튬이 매장되어 있는데, 그 양이 세계 총 매장량의 절반에 해당할 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리튬 개발권을 얻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볼리비아 정부와 협상을 시도하는 중이다.
2. 내륙 국가의 해군
볼리비아는 바다와 접한 면이 없는 내륙 국가지만 현재 해군 5000여 명, 군함 170여 척을 보유하고 있다. 1879년 당시 볼리비아는 바다와 접해 있는 아타카마 사막을 영토로 보유하고 있었으나 자원이 풍부한 이곳에 눈독을 들인 칠레가 볼리비아를 침략함으로써 전쟁이 일어났고 1883년, 결국 이 전쟁에서 칠레가 승리했다. 이후 볼리비아는 바다를 빼앗겼지만 여전히 해군을 유지하고 있으며 그 해군은 현재 티티카카 호수와 볼리비아 영토 내 하천을 지키는 역할을 한다.
3. 가는 길
볼리비아 여행을 위해서는 사전에 비자를 받아야 한다. 볼리비아만 방문한다면 국내 영사관에서도 발급이 가능하지만 다른 나라를 거쳐서 들어갈 경우 해당국의 볼리비아 대사관이나 영사관에서 신청할 수 있다. 준비 서류는 여권, 여권 사진 1장, 황열병 예방접종 증명서, 신용카드 사본, 볼리비아 내 숙소 확인 증명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볼리비아로 가는 직항 노선은 없기 때문에 주로 캐나다나 미국 항공사를 이용해 페루의 리마나 칠레의 산티아고를 거쳐 라파스로 들어가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다. 라파스에서 우유니까지는 버스로 10시간, 항공으로 50분이 소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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