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26 (화)

  • 흐림동두천 12.1℃
  • 흐림강릉 10.8℃
  • 서울 12.2℃
  • 대전 9.3℃
  • 대구 9.4℃
  • 흐림울산 10.8℃
  • 광주 12.4℃
  • 흐림부산 15.2℃
  • 흐림고창 12.3℃
  • 제주 17.0℃
  • 흐림강화 10.6℃
  • 흐림보은 9.9℃
  • 흐림금산 9.7℃
  • 흐림강진군 12.3℃
  • 흐림경주시 7.7℃
  • 흐림거제 13.0℃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교단일기

중년에도 여전히 빛나는 삶

나이 60이면 삶이 달라진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이 나이에는 공을 들여 키우던 아이들도 자기 가정을 꾸리고 나가서 산다. 이제 자식이 떠난 둥지에서 부부는 허전함과 친구가 돼야 한다. 젊은 시절에 가족 부양을 위해 부단히 달려왔지만, 일도 손에서 놓은 나이다.

이때 비로소 보이는 것이 ‘나’다. 한가롭게 지내다보니 ‘나’를 만난다. 특별히 할 일도 없다보니 오롯이 ‘나’에게 몰입한다. 몸은 예전 같지 않다. 검은 머리카락은 온데간데없고, 흰 머리만 무성하다. 게다가 머릿속은 훤히 비어 볼품이 없다. 순간 아쉬움만 남는다.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집도 한 채 샀다. 공부도 할 만큼 했다. 출세는 못했지만, 직장에서 내 역할을 다했다. 아내와 함께 자식도 올곧게 키웠다. 이만하면 인생의 절반은 성공한 것이 아닐까.

누구나 청소년기가 있다. 나도 돌이켜보니 그때 힘들게 컸다. 학교 다닐 때 시험 기간이 생각난다. 특별히 왜 공부해야 하는지 모르고, 그저 어른들이 먹고 살려면 해야 한다고 해서 매달렸다. 공부도 뛰어나게 잘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더 힘들었다. 10등 안에 들어야 하고, 다시 7등, 5등 안에 드는 게 목표였다. 고등학교 때는 마음이 몹시 아팠다. 해서 부모님과 갈등도 많았다. 갈등이 아니라 이상하게 부모님과 의견이 맞지 않았다. 그냥 베도는 것이 일이었다.

이제 출세하겠다는 욕망도 사그라진 지 오래다. 손아귀에 마지막까지 쥐고 있던 승진의 꿈도 접었다. 모든 것을 놓으니 마음이 편해졌을까. 욕심을 놓으면 사는 것이 편해질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여전히 삶의 무게는 가볍지 않다. 몇 해 전 아버님이 돌아가셨는데, 올해는 장안 어른이 세상을 떠나셨다. 아버지는 나를 낳아주시고 키워주셨다. 내가 아이들을 위해 젊은 날을 보낸 것처럼, 아버지도 가족을 위해 힘든 세상을 견디고 이겨내셨다. 내가 어른이 되었어도 늘 자랑스러워하시고, 대견해 하셨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치매를 앓고, 겨울에 기침 몇 번 하시더니 힘없이 가셨다. 아버지는 젊은 날에 큰 산이었는데, 세월 앞에서는 힘을 내지 못하셨다. 장인어른도 내가 하는 일에 늘 앞서서 박수를 쳐 주셨다. 특히 쓴 글을 열심히 읽어주셨다. 생로병사가 우리의 모습이라고 하지만, 사랑하는 가족과의 이별은 아픔이 크다.

그렇다. 우리 삶은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 가족의 건강, 자식 교육, 출세, 돈 벌기. 이 모두가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내 몸도 예전과 다르고, 가족들도 뜻하지 않은 병이 올 수도 있다. 나이 먹고 경제 활동을 할 수 없으니, 경제적 어려움도 클 것이다. 우리가 연약한 인간이라서 그런 것도 아니다. 현실이라는 거세게 몰아칠 때는 우리 힘으로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그저 흘러가야 할 뿐이다.

우리가 살아봐서 아는 것처럼, 남은 인생도 그리 녹녹치 않을 것은 뻔하다. 즐거움이 있는 듯 하다가 힘든 고갯길을 만난다. 고갯길에서 목이 메는 울음을 쏟아내야 한다. 다행이라면 힘들고 지칠 때 쉬어가면 된다는 지혜를 배웠다. 힘들고 지칠 때 좀 쉬어가면 된다. 고갯길에서 발아래 길을 보면 새로운 삶의 길이 보이다.
중년은 서녘 하늘의 노을처럼 쓸쓸하게 가는 길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일을 하지 않다보니, 인생의 끝자락에 있는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우리 삶에서 멈춤이 어디 있고, 쇄락이 어디 있겠나.

사람들에게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시기는 언제일까?”라는 질문을 한다면, 어떤 답을 할까? 사춘기 시절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청년 시절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수필가이며 철학자인 김형석 교수는 인생의 황금기는 60세부터 75세까지라고 했다. 덧붙여 정신적인 성장과 인간적 성숙은 한계가 없다고 하면서, 노력만 한다면 75세까지는 성장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스스로 60세 이전까지는 모든 면에서 미숙했다고 고백한다. 은퇴 후 무기력하게 사는 사람들에게 일침을 준다.

오랜 삶에서 얻은 이치가 있다면, 인생의 황금기는 어느 특정한 시기가 없다. 오히려 은퇴 후는 쉼이 있고, 그 어느 때보다 삶의 평화를 누릴 수 있는 시기이다. 일을 안 해도 여전히 인생길에서 주역으로 살아야 한다. 삶의 성숙을 위해 노력한다면, 지금이 빛나는 순간이다.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