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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무대돋보기> 딸에게 보내는 편지

자식에 대한 기대와 죄책감 사이
성장기 딸을 향한 어머니의 독백


서른 다섯, 그녀는 음악계에서 알아주는 유명 가수이자 열한 살 딸을 둔 엄마다. 아이를 원하지도 않았고 자장가 한번 제대로 불러준 적 없지만 엄마는 딸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다. 그래서 그녀는 딸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배우 최정원의 일인극 '딸에게 보내는 편지'(원작 아놀드 웨스커·연출 최용훈·4월 11일까지 서울 마포구 산울림 소극장 02-334-5915)는 성장기의 딸에게 어머니가 들려주는 인생 이야기다. 어머니는 이제 막 가슴에 멍울이 생긴 딸아이가 남자들 때문에 울게 되지 않을까 걱정한다. 어머니는 자신이 할 수 없었던 것을 딸이 해내기를 바란다. 딸이 자라서 의사가, 발레리나가, 우주비행사가 되기를 소망한다. 친구를 잘 고르고, 잘못된 일에 대해 다른 사람 탓을 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그러나 그로 인해 자신이 피하고자 한 상황을 딸이 마주하게 될까 두려워한다.

딸을 짐처럼 여겼던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빈다. 죄의식에 사로잡힌 어머니는 여섯 살짜리를 혼자 버려둔 채 밤무대로 나간 것은 너를 강하게 키우기 위해서였노라고 변명한다. 그러나 어머니는 이제 딸의 존재만으로도 행복해한다. "사랑하는 내 딸아, 너 같은 아이는 하느님의
선물이야."

사람들에게는 '답다'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교사답다, 학생답다, 아이답다, 어른답다…. 그렇다면 '어머니답다'는 것은 뭘까. 늘 참고 양보하고 기다리는 것? 그것은 우리가 어머니에게 씌운 족쇄일 뿐이다. 연극은 어머니도 이루고 싶은 꿈이 있고 자유를 갈망하는 인간이더라는 사실을 들춰낸다.

이 세상에 어머니의 자녀가 아닌 사람은 없다. 세상 모든 여자들은 어머니의 딸이며 세상 모든 남자들은 어머니의 아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하는 내 딸아, 사랑하는 내 아들아"라는 해바라기의 외침을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곤 했나 보다.

어머니는 항상 자식에게 더 좋은 어머니가 돼주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미안해하고 자책한다. 그녀의 잘못이란 '자식'이라는 평생의 빚더미를 선물이라 착각한 것이 전부인데 말이다. 왜 몰랐을까. 더 좋은 어머니가 있다면 더 좋은 자식도 있다는 것을, 우리도 더 좋은 아들 딸이 되지 못한 것을 어머니에게 늘 미안해했어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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