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기원은?
나의 기원은 언제, 어디서 무엇 때문에, 어떻게 누구로부터 시작되었을까? 그리고 내 존재의 끝은 무엇이며 어디로 갈까? 그 오랜 질문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젊은 날에는 그저 존재하기 위해서 살아남아야 했기에 그 질문을 접어두었었다. 그 질문에 해답을 얻기 위해 수십 년 종교에 발을 담그기도 했고 좌절했으며 결국은 홀로서기를 선택했다. 존재에 대한 질문을 종교에서 얻지 못하고 탈출한 지금은 오로지 책으로 돌아왔다. 책이라는 대양에는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계속 되어온 존재에 대한 질문과 해답을 얻으려는 나와 같은 사람들의 순례길이 즐비했다. 이 책은 바로 인간 존재에 관한 우주적인 질문이 들어있어서 관심을 끈다.
인간은 질문하는 동물이다. 그것은 사색하는 인간을 만들었다. 그 생각의 기원이 오늘날의 인류 문명을 만들었다. 과학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을 거듭하여 급기야는 인간의 영역을 넘어서려는 시도까지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시도는 과학의 이름을 달고 지구인이 우주의 일원임을 밝혀냈다. 내 존재가 저 머나먼 별들과 같은 원소로 이루어진 극히 우주적 존재라는 것이다. 인간은 우주먼지이며 별과 같은 물질로 이루어졌으니 모든 인간은 스타인 셈이다. 그러니 내 존재는 어느 날 갑자기 뚝 떨어진 창조물이 아닌 변화와 혁신을 거듭해 온 <이기적 유전자>의 결과물인 셈이다.
인간은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이다. 뇌과학자들은 행복을 느끼는 것은 뇌의 영역이라고 말한다. 그러니 인간은 뇌가 사는 것이라고 비약해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음이나 가슴마저도 뇌에 있다고 인정하는 추세이다. 뇌를 행복하게 하는 자극과 일이 존재의 이유가 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어느 인문학자는 인간이 행복을 느끼는 순간은 여행을 하는 순간이라고 한다. 사람에게 따라 다르겠지만 대체로 그렇다는 것이다. 아득한 옛날 인간의 시원이 별에서 비롯된 것이니 여행을 좋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인간은 먼 우주에서 지구별로 찾아와 정착한 여행자이므로 인간의 유전자에는, 무의식의 저변에는 여행자의 DNA가 세포마다 각인되어 있을 것이므로.
아인슈타인은 이미 10대에 상상만으로 우주여행을 했다고 한다. 그것도 빛의 속도로 여행을 한다는 가정을 하고서. 이렇듯 여행을 좋아하는 인간의 시선은 늘 우주를 향해 있었다. 눈으로 볼 수도, 직접 만질 수도 없는 우주에 관한 지식은 끝없이 발전해왔다. 이 책은 그 질문을 시작하고 노력해 온 과학자들의 기록물이다.
이 책은 일단 예일대 최고의 과학 강의라는 부제가 눈길을 끈다. 어쩌면 과학 공부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아쉬움으로 늘 목말라 했던 영역이다.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검정고시로 채운 배고픔이 또아리를 틀고 앉아 학문에 대한 굶주림이 무의식적으로 나를 끌어당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극히 필수적인 고등학교 지식만으로, 특히 과학은 생물을 선택하여 검정고시를 치렀기에 화학이나 물리, 지구과학 쪽은 동경의 대상이다. 그러다보니 습관적으로 우주과학 계열의 책을 본능적으로 읽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학문적이고 난해한 내용이지만 대충 읽어만 두어도 도움이 된다. 요즈음은 텔레비전에 나오는 과학 강의가 책에서 본 내용과 연결되어 이해가 가는 경험을 자주하게 되어 기쁘다.
우주, 모든 것의 기원
인간의 뇌는 매우 신비하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이해하기 힘든 영역도 뇌의 어딘 가에 저장해 두었다가 자극을 받게 되면 순간적으로 깨닫게 해주는 대단한 컴퓨터라는 걸 실감하곤 한다. 배우려는 마음만 있으면 얼마든지 공부를 할 수 있는 '골디락스 영역'을 스스로 만드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걸 깨닫곤 한다. 배움에는 왕도가 없으니 모로 가도 얼마든지 앎의 종착점이나 진리의 다리를 건널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해주는 것은 바로 책이다. 겨울방학은 바로 '골디락스 영역'인 셈이다. 일 년 중 책에 몰입할 수 있는 최상의 시기이다. 이제 1년 쯤 남은 정년퇴직 후에는 긴긴 겨울방학이 기다린다. 책만 보는 바보처럼 살 수 있는 생애 최고의 순간이 기다리고 있다! 존재의 시작과 종점을 더 깊이 파헤쳐보고 음미해 볼 수 있는 긴 여로를 기다리는 즐거움으로 2018년 시작부터 설렌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책을 볼 수 있는 공공도서관이 집 주변에 두 곳이나 있고 언제든 책을 사서 볼 수 있는 대형서점도 가까운 곳에 있다. 집을 살 때 첫째 조건이 도서관이었고 산책로가 있는 곳이었다. 필자에게 최적의 서식 환경인 도서관과 산책로는 내 생명체의 '지속적 서식 가능 영역'이다. 이 책은 바로 그 산책로를 따라 걸어서 찾아간 도서관의 신간도서 코너에서 선점한 책이다. 과학 분야의 책은 신간일수록 좋기 때문이다. 누적된 과학적 지식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그 책 속으로 여행을 떠나는 설렘은 비행기를 타고 해외로 떠나는 것만큼이나 행복함을 안겨준다. 작가가 오랜 시간 공들인 노력의 열매를 돋보기 하나만 준비하면 끝나는 책 속으로의 여행은 세상에서 가장 저렴한 비용에 가성비는 매우 높은 여행지이다.
과학자들은 생명체에게 필요한 서식 환경을 논할 때 "지속적 서식 가능 영역"이라는 고전적 개념을 제일 먼저 떠올린다. 임의의 행성이 모항성과 적절한 거리만큼 떨어져 있어서 액체 상태의 물이 존재할 때, 그 행성은 지속적 서식 가능 영역에 있다. 간단히 줄여서 "골디락스 영역"이라고 한다. (골디락스는 어린이 동화 <골디락스와 세 마리 곰>에 등장하는 여자아이의 이름에서 따온 용어이다. 이 아이는 곰 가족이 외출한 사이 빈 집에 들어가 가장 적절하게 식은 수프를 먹고, 적절한 크기의 의자에 앉고, 적절한 크기의 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다. 그래서 골디락스는 '가장 적절한 조건'을 의미한다. -<모든 것의 기원> 174쪽
이 책은 우주와 은하, 별과 원소, 태양계와 행성, 지구의 대륙과 내부, 바다와 대기, 기후와 서식 가능성, 생명, 인류와 문명을 주제로 다룬다. 예일대학교 학부생을 대상으로 강의 한 내용이므로 전문적이고 학문적인 용어가 많이 등장한다. 그럼에도 새 것을 배우고 싶은 욕구와 호기심이 강한 독자라면 충분히 읽어낼 수 있을 만큼 친절하다. 군데군데 저자의 위트와 비유가 잠이 오는 것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우주과학이나 지구과학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면 이 책의 어느 곳을 펼쳐도 금방 몰입할 수 있을 만큼 탄탄한 구성을 지닌 책이다. 감동 받은 어느 대목을 골라 쓰기 어려운 이유는 필자의 과학적 지식이 낮아서 감히 서평이랍시고 내려다보며 쓸 수 없는 지식의 한계에 기인함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인문학 책이라면 욕심을 내볼 수도 있지만 필자도 공부하기 위해, 새롭게 배우는 영역이기 때문에 개인적인 잡담 수준의 책 소개에 그친 이 글이 죄송하다. 그럼에도 좋은 책을 소개하고 싶은 마음만은 간절하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줄은 알지만 요리하는 방법은 소개하지 못하는 심정이다. 다만 그 맛집의 위치만은 자신 있게 소개하고픈 마음으로 독후감 수준도 되지 못하는 글을 올려서 죄송하다.
필자는 요즈음 늦게 배운 '도둑'처럼 책으로 공부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친구들의 수다모임도 여행을 권하는 목소리도 귀에 들리지 않는다. 교단에서 내려서는 날 해야 할 일을 찾은 기쁨으로 하루하루가 즐겁기 때문이다. 하고 싶었던 공부를 마음 놓고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애인 기다리듯 손꼽아 세어보며 일 년에 몇 권의 책을 읽을 수 있는지. 몇 권의 책을 독후감으로 쓸 수 있을지, 나도 다른 작가들처럼 서평으로 책을 줄줄이 내고 싶은 바람을 키우는 중이다. 그러니까 이 독후감은 2018년 내 모든 책 읽기의 시작이다. 인생 후반전을 시작하는 노년 책 읽기의 기원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