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부진학생들을 만난 첫해에는 내 기준으로 혹은 주변 학생들과의 비교 기준으로 이러고 있으면 안 된다고 계속 이야기했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났지만, 아이들은 쉽게 변하지 않았다. 이듬해부터는 어떠해야 한다는 기준을 버렸다. 괜찮다는 위로로 다가갈 수 있었고, 작은 성공에 큰 의미를 부여해 줄 수 있었다.
다음은 그간 학습부진학생들을 지도하는 과정에서 자칫 빠지기 쉬운 함정들이다.
① 어려워야 공부지="저는 분수부터 포기했어요.", "수학은 배웠는데, 또 배워요." 이런 말을 하며 계속 오르기만 해야 하는 가파른 계단 앞에 서 있는 아이들에게 어떤 기울기의 길을 만들어 주면 오를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분수를 어려워하는 것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중3이 분수의 사칙연산을 배우고 연습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어야 한다.
② 누군가 하겠지=누군가가 가르쳐 줄 것이라는 막연한 바람은 아무도 안 가르쳐 주는 상황을 야기하기도 한다. 초등학교에서는 중학교에 가면 또 배우라고 하고, 중학교에서는 초등학교 때 다 배우고 왔다고 한다. 학습하는데 필요한 문해력과 수리력이 부족한 학생들을 도와주는 ‘누군가’가 분명해야 한다.
③ 하다 보면 되는 거야=작은 성공 경험들이 누적된 학생들은 그냥 하다 보면 될 수 있다. 그런데 학습부진학생들은 그 작은 성공경험조차 없어서 ‘그냥 하면 된다’라는 말에 아프고, "내용을 이해하는 친구들은 미리 배우고 온 것이 아닐까요"라고 되묻기도 한다. ‘책 많이 읽어’라는 말은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한 학습부진학생을 돕는 말이 아니다.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학생을 한 번 해보도록 하기 위해서는 매우 세분화된 단계별 전략이 필요하다.
④ 대답이 없으면 덜 물어본다=물어봐도 대답하지 않으니까 덜 물어보게 된다. 학습부진학생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단답형 대답만 반복하는 아이에게 솔직한 말을 듣기까지 3년이 걸렸다. 게임을 몇 시간 하냐고 물을 것이 아니라 무슨 게임을 좋아하는지 어떤 캐릭터로 게임을 하냐고 묻는 것이 맞았다.
⑤ 모두에게 해줄 수 없으니 안 한다=학습부진학생 지도에는 많은 품이 들고, 번민의 수준도 보통을 넘는다. 한둘이 아니라 도저히 견적이 안 나오기도 한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해줄 수 없어서 안 하게 된다. 그런데 못하는 학생을 친절히 지도하면 주변 친구들이 기웃거린다. 잘 준비한 잉크 한 방울을 잘 떨어뜨리면 주변으로 번져나간다. 잉크를 내 앞에 있는 그 아이에게 잘 떨어뜨려주는 것이 필요하다.
⑥ 호기심과 귀찮음의 싸움=딸아이가 씻고 있는 쌀에 손을 넣어서 휘젓고 싶어 할 때 나는 못하게 했다. 이유는 단 하나, ‘귀찮음’과 ‘시간’의 문제였다. 아이의 호기심과 어른의 귀찮음 간의 싸움이다. 시간이 충분치 않고 손이 모자라기 때문에 학습의 맛을 볼 수 있는 여건을 만들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사람과 시간이 풍족해야 이 아이들은 변할 수 있다. 아이의 호기심을 들여다봐주는 것은 어른이 아이에게 지켜야 하는 최소한의 예의다.
⑦ 가장 효율적인 방법=좀 더 쉬운 방법을 고민하고 학습부진에서 빠르게 벗어나는 방법을 생각하게 된다. 효과적인 고퀄리티의 프로그램들은 만들 수 있으나, 그것 역시 기본적으로 사람의 품을 필요로 한다. 품을 덜기 위한 노력은 있어도, 효율적인 시스템은 없다. 결국 번민이다. 번거롭고, 답답함을 어른이 견뎌줘야 아이도 견뎌낸다.
얼마 전 만났던 중3 학생이 말한다. "저는 지금까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몰랐어요." "내가 너에게 3년 동안 줄곧 말해왔는데, 그걸 이제 깨달은 거야? 나 너무 힘 빠진다." 그랬더니 그 학생이 빙긋 웃으며 나에게 말한다. "그래도 선생님이 계속 했던 말이 저에게 영향이 있지 않았을까요?" 그리 생각해주니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