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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커피는 향기를 남기고~

 

제가 아이들을 가르친 지도 어느덧 20년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교직을 시작하면서 생긴 습관은 커피를 마시는 것입니다. 하루의 일과를 끝내거나 여유 있을 때가 되면 따뜻한 커피믹스가 생각나는데 커피 하면 떠오르는 제자가 한 명 있습니다. 교대생 때는 잘 먹지 않았는데 사회에 나와서는 그 횟수가 늘었고 요즘은 2~3잔을 꼭 마시곤 합니다. 그리고 그때 그 제자 때문에 커피가 더 좋아지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경기도의 크지도 작지도 않은 학교로 발령 난 것은 교대에서 실습할 때와는 느낌이 전혀 달랐습니다. 그리고, 순수한 시골 아이들을 만난 것은 축복이었습니다. 아이들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던 나는 선생님을 하면서 아이들이 무척 좋아졌고, 신규 때 3학년 아이들이 사랑스러워서 가끔 안아주기도 하고 업어주기도 했던 기억이 납니다. 때로는 화가 나더라도 벌을 서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갑자기 웃음이 나와서 화가 도로 쏙 들어가곤 했습니다. 또, 눈처럼 순수하고 호수처럼 맑은 아이들을 보면서 나도 함께 어려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발령을 받고 두 번째 해인 2004년에 6학년을 처음 맡았습니다. 저에게는 6학년이 생활지도가 힘들다는 불안보다는 첫 제자가 생긴다는 기대가 더 컸습니다. 그 아이를 처음 만났을 때는 3월 초에 잠깐 본 기억과 내가 그 아이의 이름을 외우고 있다는 것밖에는 없었습니다. 그 아이는 한부모 가정에 가정형편이 어려워 보호자의 사랑과 관심이 소홀했고, 공부에 대한 흥미가 떨어져 학교에 가야 한다는 의무를 못 느끼는 것 같았습니다.
 

3월 중순에 갑자기 그 아이는 소식도 없이 일주일 이상 무단결석을 하였습니다. 아이에게는 핸드폰도 없고 가정에 전화기까지 없는 데다 아버지와 연락이 잘되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처음 겪어보는 일이라 그때는 속이 얼마나 많이 탔는지 모릅니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찾는다’는 말이 있듯이 요즘에는 잘하지 않는 가정방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가정방문을 하고 나서야 그 사정을 알 수 있었지만 그 아이는 아빠, 중학생 오빠와 셋이서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표정은 항상 밝았고 힘겹게 살아간다는 것을 내색하지 않는 어른스러운 아이였습니다.
 

그 당시 3월은 봄이긴 했지만, 꽃샘추위로 인해 쌀쌀한 날씨가 계속되어 방안도 추웠습니다. 그리고, 여자 동생이라 오빠를 대신해서 살림을 도맡아 하는 것 같았습니다. 고사리 같은 작은 손으로 추운 겨울에도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는 싱크대에서 설거지하고, 아침밥은 거의 먹지 않고 등교한다는 것을 알게 되어 눈시울이 뜨거워졌고, 선생님으로서가 아닌 인간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돌아가는 길에 아이와 함께 지갑의 현금을 탁탁 털어 치킨집에 들어갔습니다. 돌아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포장한 치킨 1마리가 부족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저의 가정방문에도 그 아이는 학교에 오질 않았고 저는 그 아이와 친한 친구들을 통해 계속적으로 설득하였습니다. 그리고, 제가 가정방문을 세 번째 하는 날 그 아이는 제게 학교에 꼭 가겠다는 약속을 새끼손가락을 걸며 했습니다. 그리고, 오빠와 얘기하고 있는 제게 가져다준 것은 커피 한 잔이었습니다. 제가 가정방문을 할 때마다 간식거리를 사서 가니깐 많이 미안한 눈치였던 것 같습니다. 또, 아직 6학년이지만 엄마의 손이 없어 벌써 살림살이를 배우던 아이는 손님 접대하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아이의 착한 심성을 읽을 수가 있어 커피를 맛있게 마시고 왔습니다.
 

무더운 어느 날 아이들이 너무 떠들고 말을 듣지 않아서 감정이 머리끝까지 오른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내 특기인 전체기합을 아이들에게 주고 나서 일장 연설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감정을 완전히 식히면서 했던 말 중에
  “나는 여러분에게 선생님이 될 자격이 없습니다. 나중에 여러분이 나이가 들어서 날 찾아오더라도 ‘스승’이라는 말은 하지 말아주세요.”
  교실은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잘 되었다’라고 쾌재를 부르면서도 이 분위기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고민했습니다.
 

그때 그 아이가 물었습니다.
  “그럼 우리는 선생님을 어떻게 불러야 할까요?”
  영화 제목이 퍼뜩 떠올라 이런 말을 하며 끝을 맺었습니다.
  “음… 이제부터 나는 아이 엠 ‘샘’입니다. ‘샘’이라고 불러줘요.”
  그 순간 아이들은 슬며시 웃기 시작했습니다.
 

샘은 시골 사투리처럼 정겨운 데가 있습니다. 반면에 요즘 교권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시점에서 어느 누구에게는 조금 반감이 들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나 자신이 호칭으로 교사의 교권을 무너뜨리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의 교육철학은 아이들에게 솔직하게 다가서는 선생님이 되고 싶습니다. 체면과 겉치레로 포장하기보다는 한 사람의 인간 대 인간으로 다가서고 싶습니다. 실수하고 나약한 모습을 감추기보다 진실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지금도 난 아이들 앞에 서면 아이 엠 ‘샘’이라고 외칩니다.
 

그 이후로 작고 많은 일이 있었지만,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졸업식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동 학년 선생님들과 협의를 하고 현금을 모아 그 아이에게 장학금을 주기로 하였습니다.
그 아이는 제가 가정방문을 했을 때 맛있게 커피를 마시고 간 기억을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또, 평소에 제가 커피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 졸업하는 날에 제게 커피를 선물하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솔직히 그때 먹은 커피는 뜨겁지도 않고 차갑지도 않은 물에 커피도 잘 휘젓지 않아 커피 가루가 둥둥 뜬 밋밋한 커피였습니다.
 

졸업식 날 그 아이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저에게 볼록 튀어나온 작은 편지 봉투를 내밀었습니다. 제가 받은 봉투 속에 정성스럽게 쓴 편지와 함께 커피믹스 두 개가 있었습니다.
  “고맙구나. 이런 기특한 생각을 다 하고 어른이네. 학교 잘 다니고 꿈을 잃지 말고 건강해라. 그리고, 장학금 잘 챙겨라. 이건 6학년 선생님들이 손수 마련한 장학금이니깐 좋은 곳에 쓰렴.”
  “네. 샘 때문에 학교 열심히 다닐 거예요. 장학금으로 열심히 공부해서 화가가 되고 싶어요. 제가 상상한 많은 것들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어요.”
  “그래. 네가 갖고 싶은 모든 것을 그림으로 멋있게 표현해주렴.”
  “예. 알겠어요. 샘도 건강하고 제가 놀러 올 때 맛있는 거 사주세요. 그리고, 저 잊지 마세요.”
  “그래. 너도 나 잊지 말아라.”
 

그 후에 그 아이는 중학교에 가서도 가끔 교실에 놀러 오고, 편지를 들고 오기도 하였습니다. 꼭 커피와 함께~ 지금은 그 아이와 연락이 되지 않지만 제 마음속에는 아직도 그 아이가 끓여준 커피의 향기가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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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교단수기 공모 - 금상 수상 소감

진심이 전달될 때까지

노력하며 정진하겠습니다.

 

우선 부족한 저의 글을 선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약 20년의 교육경력 기간 동안 가장 보고 싶은 제자를 떠올리며 쓴 경험담입니다. 되돌아보면 신규교사의 열정과 패기만 가지고 생활하여 그 제자에게 제대로 된 교육과 사랑을 보여주지 못했던 것 같아 아쉽습니다. 지금의 저라면 그 제자에게 필요한 것을 더 채워줄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 자식을 키우면서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인식이 바뀌고 교육관도 변화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삭막해진 요즘 교육계를 보면 예전처럼 사제 간의 정을 느끼기가 힘들다고 생각됩니다. 추락한 교권과 학교폭력으로 인한 학교의 불신으로 인해 교사와 학생 간의 신뢰가 서로 붕괴되었습니다. 교사도 인간이기에 그런 일들로 실망과 자괴감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기 말에 문자나 카톡으로 전해지는 학부모와 제자의 감사 글을 볼 때면 아직 사람의 풋풋한 정이 느껴집니다. 또, 매년 반복되는 새 학기 만남이지만 설레면서도 나와 잘 맞는 학생들을 만나기를 기도하며 준비합니다. 계속 저의 진심이 제자와 학부모들에게 전달될 때까지 노력하며 정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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