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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일석삼조

 

전화를 받자 학교 근처라고 한다. 보름 전 약속이라 까맣게 잊고 있었다. 수화기를 내려놓고 현관으로 내려갔다. 사반세기 전 푸른 나이에 만난 제자의 얼굴이 물안개처럼 피어오른다.
“절대 학점을 줄 수 없습니다.”
“한 학기만 더하면 졸업인데 다른 방법이 없겠습니까.”

 

몇 번을 사정했지만 요지부동이다. 출석 점수 때문이었다. 지각과 결석이 많아 학점을 줄 수 없다고 한다. 필수과목이라 학점을 받지 못하면 유급인 줄 알지만, 규정을 어길 수 없다는 교수를 찾아갔던 일이 떠오른다.
야간반을 맡았다.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 공부하는 산업체 위탁생들이었다. 주로 자동차정비공장의 말단 기능직이었지만, 말쑥한 정장 차림의 사무직이나 영업사원들도 있었다. 복장만 봐도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짐작이 갈 정도로 겉모습부터 확연히 달랐다. 시간 맞춰 오느라 몸에 묻은 기름만 대충 씻고 오다 보니 대부분 옷차림이 꾀죄죄했다.

 

첫 수업시간이었다. 한 학생이 헐레벌떡 뛰어 왔다. 사냥꾼에 쫓기는 사슴처럼 정신없이 빈자리를 찾더니 맨 뒷줄에 앉았다. 아직 출석을 부르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꾸만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는 것을 보면 한참을 달려온 것이 분명했다. 책가방을 열고 뭔가를 찾더니 책 한 권을 올려놓았다. 수업과 관련 없는 책을 올려놓는 것을 보니 무슨 수업시간인지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무심한 듯 시선을 돌려 출석을 불렀다.

 

다른 학생보다 나이가 들어 보였다. 엉클어진 머릿결과 기름 묻은 작업복 차림 때문만은 아니었다. 언제나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완연했다. 자세히 보면 온종일 기름을 만졌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작업복뿐만 아니라 손톱 주위에는 페인트와 기름이 배어 있었다. 얼핏 봐도 어디선가 페인트를 칠하다 온 것을 알 수 있었다. 수업에 전념하지 못했다. 학우들과도 잘 어울리지 않았다. 면담하려 해도 수업이 끝나면 바람처럼 사라지는 바람에 별도로 만날 수가 없었다.

 

작심하고 불렀다. 쉬는 시간에 연구실로 오라고 했다. 열린 문 앞에서도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한동안 말을 하지 않더니 집안 형편이 어려워 야간 공업고등학교도 겨우 다녔다고 했다. 실습을 나갔다가 급여가 많다는 말에 선뜻 나선 곳이 페인트를 칠하는 도장 일이었다. 첫 직장인 그곳에서 기술을 배우다가 군 복무를 마치고 복직을 한 상태였다. 공부를 더 하고 싶었으나 기회가 없다가 처음 생긴 무시험 전형의 산업체 특별반에 입학했다.

 

도장공정은 만만치 않았다. 불순물을 제거하고 표면을 갈아내다 보면 엄청나게 먼지가 발생하고 시너로 희석한 페인트를 칠할 때는 인체에 해로운 휘발성 유기물질을 마셔야 했다. 충분하게 장비를 갖추고 작업해야 하지만 영세한 업체라 방진 마스크 하나만 쓰고 칠을 했다. 종일 반복적으로 뿌리다 보니 얼굴이나 손은 물론이고 몸속까지 유해물질이 파고들었다. 수업시간에 정신없이 앉아 있는 것도 휘발성 시너의 중독 때문인 것 같았다.

 

나도 그럴 때가 있었다. 공고를 졸업하기도 전에 실습을 나가 용접을 했고, 회사에 다니면서 야간에 대학원을 다녔다. 산업체 근무 경력이나 주경야독을 한 경험 때문인지 학생들과 빠르게 공감했다. 정상적으로 진학한 어린 학생들보다 사회생활을 한 나이든 학생 지도가 더 좋았다. 등교부터 밤중에 공부하는 게 얼마나 어렵고 힘든지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다. 쓰러질 듯 지쳐있는 자세와 연방 깜박이는 게슴츠레한 눈빛만 봐도 상태를 알 수 있었다.

 

면담을 몇 차례 하면서 점차 표정이 밝아졌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공부 욕심이 많았다. 수업에 임하는 자세도 진지했고 과제도 빠지지 않고 착실하게 제출했다. 매주 면담을 하다 보니 굳게 닫혔던 마음의 문도 조금씩 열렸다. 복잡한 가정사도 드러내고 자신만의 고민도 서슴없이 말하는 단계에 이르자 표정이 밝아졌다. 또래 친구들과도 자연스럽게 어울리기 시작했다. 학교에 오는 것이 즐겁다고 했다. 당연히 성적도 올라갔다. 한 학년이 끝날 무렵에는 장학금을 받아 걱정하던 등록금 문제가 해결되었다.

 

방학이 끝나고 갑자기 연락이 닿지 않았다. 물론 학교에도 나오지 않았다. 다니던 회사가 외환위기로 문을 닫은 것이었다. 사방으로 수소문했지만, 아는 사람이 없었다. 자동차 정비협회에 찾아가 사정을 말하고 회원사에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잊힐 무렵에 전화가 왔다. 찾아갔더니 작은 정비업체에서 칠을 하고 있었다. 친구 회사에 찾아가 장학금을 받아와 등록했지만, 혼자서 일을 하다 보니 일감이 많아지면 어쩔 수 없이 학교에 나오지 못했던 것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전문대학 졸업반이 되었다. 마침 일하면서 공부할 수 있는 평생 교육이라는 제도가 생겨 도전을 권했다. 사이버 수업이 많아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학생의 여건에 맞게 학점을 자유롭게 신청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게다가 전공 자격증이 있으면 이수학점을 감해주는 특전까지 있어 기술 자격증에도 도전하기로 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야 단기간에 졸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대학원에도 진학하기로 했다. “세 마리 토끼를 잡자.”라고 다짐했다.

 

그해 자격증을 두 개나 취득했다. 금박이 빛나는 국가 기술 자격증을 평생교육원에 제출하고 기본 학점을 이수하자 1년 만에 학사학위를 받았다. 이번에는 석사학위에 도전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정비공장에 다니면서 공부하기는 힘들 것 같아 여러 방면으로 고민을 했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페인트회사에 다니는 대학 후배를 찾아가 사정을 설명하고 일거리를 받아왔다. 영업용 페인트 시편을 만드는 고난도의 일이었다. 정확한 비율로 페인트를 배합하고 균일하게 수차례 도포 하는 일은 최고의 숙련공이라야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난감했다. 일은 받았지만 쉽지가 않았다. 자동차 도장의 기준이 되는 샘플이라 여간 까다롭지가 않았다. 정확한 색상을 찾을 때까지 배합 비율을 수없이 반복했다. 며칠 동안 밤을 새웠지만, 한 장도 만들지 못했다. 도막 두께와 광택의 균일성 때문에 별도 시스템을 만들었다. 일주일을 밤낮없이 노력한 결과 드디어 합격 판정을 받았다.
등록금 걱정은 없었다. 정비공장보다 수입도 좋고 시간적 여유도 많아졌다. 꿈에도 그리던 공대 대학원에도 진학했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늘 먼저 출근해 시험편을 만들어 놓고 실습장에서 공부했다. 둘이서 석사 논문도 조금씩 준비했다. 실습 기자재 보관실에다 작은 연구실도 만들어 주었다. 정식 실습 조교가 되어 후배들을 지도해 기능경기대회에서 은상도 받았다. 석사과정을 수료하자 강사로 승격되었다.

 

석사학위를 받고 자동차 정비공장 사장이 되었다. 오랜 고민 끝에 배운 실력을 발휘하겠다며 패기 있게 사업을 시작했다. 많은 사례를 검토하며 타당성을 조사하고 여러 곳을 직접 답사도 했다. 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공장을 차렸다. 자주 왕래하며 문제점을 협의하고 해결책을 찾았다. 정비업체 누구도 하지 않는 인터넷을 활용해 회사를 홍보하고 부품 판매도 했다. 날로 번창했다. 큰 건물을 통째로 자동차 도장 전문 회사로 만들었다.
승용차 한 대가 내 앞에 와서 멈춘다. 중년 신사가 정중하게 다가와 인사를 하고는 차 문을 연다. 지난날의 모습만큼이나 사연들도 점점 희미해져 간다. 이제는 세월의 물결에 밀려 같이 늙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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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교단수기 공모 - 은상 수상 소감

교학상장

 

이제는 조금씩 떠날 준비를 합니다. 숱한 사연들을 가슴에 담고 조용히 돌아가려 했는데 이렇게 글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돌아보면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그럴 때가 되었습니다.

 

공학을 전공하고 교사자격증을 받았지만, 공업 입국의 물결에 휩쓸려 산업 현장으로 갔습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는 교단의 꿈은 쉽게 떠나가지 않았습니다. 먼 길을 돌고 돌아 교단에 섰습니다. 학생들과 처음 만난 날은 강산이 몇 번이나 바뀔 정도로 세월이 흘렀지만 잊히지 않습니다. 대학원에서 배운 이론과 산업 현장에서 경험한 기술 전수보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향학열에 불타는 학생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일이 훨씬 즐거웠습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대화했습니다. 듣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상처가 있는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옹이를 안고 자라는 소나무처럼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곳에 상처가 남아 있었습니다. 가슴속 응어리로 짜낸 진액으로 자신을 치유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속전속결을 주장하고 하면 된다는 식으로 밀어붙이기보다는 서로를 보듬고 격려하며 천천히 멀리 가는 법을 배우고 가르쳤습니다.

 

학교가 가르치고 배우면서 함께 성장하는 곳이라는 것을 아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번 수기도 그중 한 사연입니다. 늘 뒤돌아보지만, 세월이 갈수록 아쉬움만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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