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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교단수기 동상] 유다이모니아(eudimonia)-진정한 행복을 찾아서

 

북한과 바로 맞닿아 있는 파주 북쪽 끝자락. 문산 농어촌 학교에 근무하게 된 것은 나의 의지가 1%도 반영된 것이 아닌 직업 군인인 배우자를 따라온 결과였다. 학구에 살게 돼 놀이터만 나가도 대부분 아이들이 나를 알아보고 엄마들 또한 질문 세례를 하거나 부담스러워 피하는, 소위 비호감 연예인(지금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생활을 시작했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우리 반 민서(가명)를 처음 만난 것 2년 전. 3학년 때 담임으로 만나 1년을 함께 보냈던 밝고 에너지가 넘치던 아이였다. 청각 장애를 앓고 있는 2살 터울 오빠와 한창 손이 많이 가는 네 살 여동생 때문에 부모님의 살가운 챙김을 받지는 못했지만, 뭐든 스스로 씩씩하게 해내며 주변을 밝게 만들던 사랑스러운 학생이었다. 평소 놀이터, 놀이터 노래를 부르는 혈기 왕성한 두 아들 녀석들 때문에 퇴근 후 지친 마음과 몸을 이끌고 놀이터에 있는 나를 보고 뛰어와 스스럼없이 와락 안기곤 했던 민서는 학부모들 눈치 보느라 불안한 나의 마음을 아는지 두 에너자이저 아들들과 놀아줬고 음악 시간에 가르쳐주었던 리코더를 가지고 나와 불어주기도 했다. 그런 민서에게 어린 시절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여동생을 챙기곤 했던 내 모습이 투영됐다. 소심했던 나의 어린 시절과는 다르게 힘들어도 밝은 민서를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유독 민서는 해가 바뀐 후에도 고맙고 한편으론 애틋함이 남는 제자였다. 
 

2년 후 다시 민서를 5학년 담임으로 만났을 때는 1년 전 갑작스레 찾아온 병마로 몰라보게 다른 아이가 돼 있었다. 민서를 만나러 가고 싶었지만 암 병동 집중치료실에 있어서 대면이 불가한 상황이었고 코로나까지 우리의 만남을 힘들게 했다. 6월, 개학을 앞두고도 민서와 전화 통화조차 할 수 없었다. 민서는 1년 사이에 많이 변해있었다. 투병 생활을 하느라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많이 괴로워하는 듯했다. 부모님 말씀으로는 백혈암으로 투병 생활을 시작하며 심적으로 많이 지쳤다고 하셨다. 사춘기를 맞은 민서는 항암치료로 인해 하루하루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에 괴로워하며 가족 외에 자신을 알던 사람들과의 만남도 힘들어하는 듯했다. 주변 사람이 슬퍼하며 측은지심을 가지는 것 또한 자존심이 강한 민서가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고민하다가 교과서 꾸러미 전달이 생각났다. 직접 교과서 꾸러미를 가져다주며 나의 손편지를 전해주면 되겠다 생각했다. 그때부터 틈틈이 민서네 집 문고리에 응원 편지를 걸어주기도 하고 화분이나 걱정 인형 등도 선물했다. 잠이 안 올 때는 민서에게 대화하듯 학교 일을 시시콜콜 쓰기도 했다. 
 

나 또한 마흔이 넘은 나이에 첫 학년 부장을 시작하며 힘들었던 일, 고마웠던 일, 우리 반 아이들과 있었던 해프닝, 아이들이 민서를 그리워하며 쓴 편지나 말들을 전해주면서 그렇게 문고리 프로젝트는 시작됐다. 문고리에 걸고 나오다 우연히 민서 아버님을 뵙고 내가 눈물을 쏟아 아버님의 위로를 받고 헤어진 민망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나의 문고리 메신저들(두 아들) 또한 킥보드로 무장하고 경쟁하듯 쌩쌩 달려가 꾸러미를 걸어주고 와서는 씨익 웃으며 엄지를 척! 들어 보였다. 답장은 없었지만, 부모님을 통해 민서가 편지를 읽고 많이 좋아하며 마음의 생기를 찾아가고 있다는 말씀을 전해 듣고는 너무 기뻤다. 방학을 며칠 앞두고 민서에게 문자가 왔다.‘선생님 보고 싶어요. 아이들 모두 저를 잊은 것 아니겠지요?’라는 메시지에 울음을 삼키며‘그럼! 목소리가 우렁차고 존재감 뿜뿜 민서를 어떻게 잊니. 모두 그리워하며 기다리고 있어!’라고 답장했다. 여름방학을 며칠 앞두고 민서가 올해 학교에 나올 수 없을 것 같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전해 듣고는 마음이 아팠다.
 

그즈음 민서가 집중치료실에서 나와 어머니와 잠시 짐을 챙기러 집에 들른다고 연락이 왔다. 민서를 드디어 만나게 된 것이다. 우리 반 아이들에게 받은 응원 편지와 미술을 좋아하는 민서를 위한 컬러링북 등을 챙기고 민서 집으로 향했다. 1년 반 만에 만나는 민서. 안을 수도, 손잡아 줄 수도 없는 1미터라는 물리적 거리를 둔 만남이었지만 우리는 서로를 보고 활짝 웃었다. 나는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는 민서를 바라보며 "민서야! 너무 고생했어. 정말 네가 자랑스러워. 늘 주변을 챙기고 씩씩하고 멋지게 생활한 우리 민서, 곧 건강해져서 다시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자!"라고 이야기했다. 그 순간 민서도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고, 아무 말 하지 않았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활짝 웃음 지었던 민서를 지금도 기억한다.‘선생님, 고마워요. 선생님 보고 싶었어요. 선생님도 힘내요’라고 말하는 듯했다.
 

11월 민서는 많이 호전돼 가정에서 통원치료를 받았다. 줌을 통해 원격수업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민서가 지난주 처음 우리 반 아이들과 줌을 통해 만났던 날을 잊을 수 없다. 민서를 향해 친구들은 하트를 만들며 인사했고 대화창으로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민서는 마스크를 벗고 2년 전 나를 와락 끌어안으며 보여주었던 따뜻한 미소와 함께‘선생님은 최고의 선생님이에요’라는 감동적인 문장을 선물했다. 구름 위를 걷고 있는 듯 행복했다. 
 

나는 올해 기적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외적 성장도 있었지만, 민서를 통해 내적으로 성장한 것 같아 뿌듯하다. 10년의 세월을 돌이켜 봤다. 연년생 형제를 키우고, 남편의 직업적 특성 때문에 미뤄 온 교사로서의 성장…. 승승장구하는 동료 교사들을 보면서 내가 한없이 초라했던 순간도 많았다. 하지만 민서의 선물과 연수 중 접한 이야기가 나를 일어서게 했다. ‘직(職)보다 업(業)이다. 업을 하려면 직이 필요할 때가 있다. 어떤 사람은 직을 탐내 업을 다하지 못하기도 한다. 업을 다하면 직을 내려놓을 수도 있어야 한다. 업에 따라 직을 선택할 때 멋진 인생을 꾸려갈 수 있다’라는 말씀을 들으며 내 마음은 뜨거운 무언가로 가득 채워지는 듯했다.    지금 학교는 자기 방식의 투쟁적인 삶, 제도적 갇힘에서 벗어나려는 삶, 순응하는 삶, 포기하는 삶 등 다양한 모습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직이 아닌 업을 선택하는 삶이 아픔을 치유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있는데, 올해 민서를 만나면서 그랬다. 보람, 성찰, 치유의 순간순간들이었다. 자신의 영달을 위한 연구나 노력은 결코 오래가지 못하고 그 한계를 드러낸다. 삶 속에서 배움과 교육을 고민하고 아이들의 상처와 아픔을 함께할 때 비로소 진정성은 꽃을 피운다. 
 

교사 실재감이라는 말이 있다. 화려한 콘텐츠, 플랫폼이 많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교사 실재감이다. 아이들 옆에 선생님이 있고 학생이 좌절했을 때 일으켜주고 지지해줄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행복해질 수 있다. 우리의 눈빛, 제스처, 목소리 톤, 말 한마디가 모두 아이들에게는 긍정적인 상호작용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 나 또한 잦은 전학과 병치레가 잦았던 어머니 때문에 힘든 학창 시절을 보냈다. 외로웠던 감수성 예민한 한 소녀의 손을 잡아주시며 긴 어둠의 터널에서 빛을 찾게 해주신 두 선생님의 진심 어린 한마디가 나를 다시 일어서게 했듯이, 나의 한마디, 나의 눈빛과 진심은 아이들에게 행복을 선물할 수 있다고 믿는다.
 

교사는 반성적 실천가이다. 시선이 아이들을 향해 있을 때 비로소 참교육이 시작된다. 마음을 움직이는 힘은 위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교사의 권위는 배움을 향한 노력, 성찰의 결과인 전문성에서 나온다. 동료 교사를 위해 솔선수범할 때, 학생들을 진정성 있게 대할 때, 학생들의 시선으로 교육을 바라볼 때 배움을 일깨우고 마음을 열 수 있다. 
 

나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교사이다. 직을 쫓는 교사는 결국 한계가 드러나고 직이 업이 될 때 비로소 가치 있는 직업이 된다는 진리를 이제야 깨닫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삶이 균형을 이루는 순간을 설명하면서 자신의 욕망을 다스리며 중용의 삶을 살아갈 때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했다. 존재론적 삶을 향해 주체적으로 살아갈 때 인간은 행복해질 수 있다. 올해 비로소 교사로서 삶을 살아가는 에너지인 업, 소명 의식을 찾게 된 것 같다. 나는 오늘도 알짜두레반 이끄미로서, 대한민국의 교사로서 자부심을 느끼고 직을 업으로 살아가고 있다. 

 

대한민국 모든 교사의 삶이 다채롭고 풍요로운 숲이 되길!
11월 12일 민서의 건강을 기도하며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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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 소감] 한 교사의 고백이자 성장의 기록

 

"힘들다 힘들다 하여도 이 업이 천직인지 아이들이 있는 생동감 넘치는 교실이 무척 그립다. 아이들과 소통하고 공감하며 내 영혼이 살아 숨 쉬는 느낌, 내 가치가 인정받는 느낌, 나를 따라오는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빛이 사무치도록 그립다."
 

2월 16일. 오늘 일기는 이렇게 마무리됐습니다. 저는 마음이 답답하면 끄적끄적 일기를 쓰는 습관이 있습니다. 작년에는 마음이 많이 답답했나 봅니다. 거의 매일 일기를 썼으니까요. 일기를 쓰면서 마음속 울분이 씻겨져 나가고 눈물이 희망이 되고 절망이 행복이 되는 마법 같은 일은 제 삶의 큰 축복입니다. 그리고 제 삶에 큰 축복은 또 하나가 있습니다. 바로 아이들의 아름다운 영혼과 눈빛과 함께 할 수 있는 일상입니다. 그러기에 저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 글은 고백이자 성장의 기록입니다. 일기로 시작된 부족한 글이 수상이라는 덤까지 주시니 부끄럽기 그지없지만 ‘사람을 잘 키우는 것이 가장 위대한 인생이다’라는 생각으로 행복한 교직 생활을 이어가겠습니다. 
 

"선생님도 힘내세요~. 화이팅!"이라고 전하는 민서의 마음은 큰 울림이 돼 번아웃 된 제 마음이 금세 열정으로 활활 불타오릅니다. 따뜻한 민서의 마음은 업(業)의 윤활유가 되어 따뜻하게 아이들을 감싸 안아줄 것입니다. 저를 교사의 길로 인도하시고 따뜻한 마음과 문학적 감수성을 물려주신, 돌아가신 할머니에게 이 영광을 바칩니다. "할머니~ 늘 그러셨듯이 하늘에서도 눈물은 많지만, 의지가 강한 재란이 교직에서 업을 다하도록 응원해주실 거지요?" 오늘은 특히 눈물은 울컥 나는데 마음은 더없이 따뜻해집니다. 모두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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