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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교단수기 동상] 동심을 노래하다, 희망을 노래하다

 

"선생님, 동시 낭송대회에 가서 저는 대상은 안 탈거예요. 왜냐하면 대상을 타게 되면 내년에는 못 나가잖아요".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우리 혁준이. 동시 낭송대회요강을 살피면서 꿈도 야무지게 대상을 탈까봐 걱정했다.

 

"선생님 저는 동시가 시시한 건 줄 알았는데 소리내어 노래 부르듯이 친해지다 보니 마음의 문을 열어주어 속이 시원해지는 것 같아요."

 

교직 생활 30년 만에 처음, 3학년 과학 교담을 하면서 만난 혁준이는 호기심이 많고 지적 수준은 높으나 친구들과 전혀 어울리지 못하고 타인에게는 무감각, 무관심으로 소통이 안 되는, 자폐와 유사한 행동을 보이는 학생이었다. 교담 전담교사는 학부모와의 관계나 생활지도에 대한 심적 부담이 적어 아주 자그마한 것이라도 혁준이와 함께 나눌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할 여유가 생겼다. 
 

해리 왕은 ‘좋은 교사 되기’에서 교사는 4단계(환상→생존→ 숙련→영향)를 거쳐 성장한다고 했다. 그런데 ‘담임교사로서 나’를 돌아보니 교실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내기 위한 ‘생존’과 ‘숙련’ 단계에만 머물러 있었던 자화상이 떠올라 많이 부끄러웠다. 성찰의 시간을 통해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내가 가진 장점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다가 취미로 틈틈이 익힌 시 낭송이 떠올랐다. 시 낭송을 통해 얻은 새로운 에너지를 혁준이 같은 아이들과 함께 소통하는 삶에서 다른 것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교사의 삶이 바로 학생들에게 배움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배움을 얻게 해 준 혁준이를 통해 미미하지만 ‘선한 영향력’ 있는 교사로서 살게 해 준 문화예술동아리 ‘동시랑 마음이 말랑말랑’ 이야기 보따리를 지금부터 펼쳐본다. 
 

교직 슬럼프로 많이 힘들었을 때 만난 시 낭송은 내 삶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던 짐의 실체들, 세상에 미처 풀어놓지 못하고 가두어 두었던 수많은 말과 소리를 자유롭게 풀어내게 해주었다. 낭송을 통해 길러진 내면의 평화로움은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이 훌륭한 도구와 나의 작은 경험들을 나누고 싶어서 문화예술동아리 ‘동시랑 마음이 말랑말랑’을 2017년부터 운영했다. 
 

36학급의 대규모 학교로 여유 있는 교실 공간이 없어서 아침수업 전 20분, 중간놀이 시간 20분을 활용해 오전만 사용할 수 있는 돌봄교실에서 동아리 문을 열었다. 혁준이를 포함한 12명의 동아리 학생은 졸음을 이겨내고 학교에 나와 근면의 미덕을 발휘하며 동시랑 친해져갔다. 
 

"동시와 친구되기 1단계는 읽는 거야." 동시집에서 마음에 드는 동시를 찾아 큰 소리로 읽어보기 활동을 했다. 국어 시간에 학습하던 방법으로 접근하지 않고 자기 느낌대로 동시 읽는 것을 녹음해서 들려주었다. 처음에는 자기 목소리를 녹음해서 듣는 것을 부끄러워했는데, ‘장, 단, 고, 저/ 강, 약, 완, 급’의 의미를 익히고 동시 맛을 살려 녹음을 반복하다 보니 자기 목소리 듣기를 즐거워했다. 특히 혁준이는 정확한 발음과 풍부한 성량으로 감정을 잘 표현해 새로운 재능을 발견했고 동아리 친구들의 칭찬을 받으며 인기남이 되었다. 다른 사람과의 소통은 아직도 어려워했지만, 아무 때나 불러내도 반갑게 달려와 주는 동시와는 아주 친한 친구가 되어가는 모습이 정말 사랑스러웠다. 
 

"동시와 친구되기 2단계는 많이 써 보는 거야." 낭독(보고 읽는 것)과 낭송(외워서 하는 것)의 차이점을 알아가며 많이 읽고 많이 써 보면 저절로 외워진다는 것을 체득해갔다. 낙서하듯 써 보고 쪽지에도 써 보고 동시가 찾아오면 그냥 보내지 말고 꼭 써 보기를 권했다. 
 

"동시와 친구되기 3단계는 네 마음을 털어놓은 일이야." 친구가 되면 서로의 비밀을 털어놓듯 시에게 자기의 마음을 그대로 보여주도록 했다. 자기만의 목소리로 느낌을 살려 표현할 수 있을 때 동시로부터 위로 받을 수 있고 멋진 친구로 함께 있어 줄 거라고. 
 

이렇게 동시와의 우정을 나누며 즐기고 있을 즈음, 광주카톨릭평생교육원 대건문화관에서 열리는 나태주 시인 초청 특강 오프닝 무대에 우리 동아리팀이 사제동행 동시 낭송과 풀꽃 퍼포먼스 공연을 하게 되었다. 나태주 시인의 동화책 풀꽃을 바탕으로 구성한 역할극과 풀꽃 시 낭송을 했다. 뜨거운 박수 갈채를 받으며 오프닝을 멋지게 장식한 아이들은 해냈다는 기쁨과 환희, 열정으로 자부심을 갖고 동아리 활동을 더욱 즐기게 되었다. 아울러 시민과 함께하는 금남로4가 지하철 예술 무대에 특별출연해 동시 낭송 공연으로 재능기부도 하면서 배움과 나눔의 삶을 실천했다. 또한 매년 8월에 개최하는 윤보영 동시 전국 어린이 낭송대회에 참가해 상을 받고 동시 낭송가 인증서도 받았다. 작년에는 전국적으로 총 216명이 예선을 거쳐 35팀이 본선에 진출, 지정 시(윤보영 동시) 1편과 자유시 1편을 낭송하며 경연을 펼쳤는데 우리 학교에서 5팀이 출전해 모두 수상(은상3, 동상2) 하는 영광을 안았다. 아이들은 여러 동시집을 보며 마음에 드는 동시를 고르고 낭송까지, 대회 준비 과정을 즐기는 동시에 스펀지처럼 쏙쏙 빨아들이면서 신나게 참여했다. 
 

혁준이와 친구들은 "내 목소리를 녹음해서 들어보는 게 즐겁고, 동시는 이상한 힘이 있는 것 같아요", "자꾸자꾸 소리내고 싶어지고 중독이 되는 것 같아요", " 동시가 공부인 줄 알았는데 참 맛있어요", " 선생님 내년에 다른 학교로 가시면 안 돼요"라고 했다. 삶에 지친 나에게 시 낭송이 따뜻한 위로를 주었듯이 아이들에게도 동시는 열려라 참깨와 같은 주문처럼 마음의 문을 열고 부푼 꿈을 안겨주었다. 동시의 매력에 빠진 아이들의 모습에 나는 작은 희망의 꽃을 보았다. 
 

혁준이는 처음 시작할 때 대상을 타면 다음 대회에 못 나간다는 귀여운 걱정(?)을 해서인지 재작년에는 동상, 작년에는 은상을 수상했다. 올해 6학년이 되면서 윤보영 동시 낭송대회에서 꼭 대상을 탈거라고 벼르고 있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대회가 취소되어 엄청 서운해했다. 하지만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한 유튜브 언텍트 생중계 공연’을 앞두고 동시 낭송 연습을 열심히 하는 중이다. 
 

"혁준아! 어느 날, 길을 걷는데 문득 낭송했던 시 한 편이 생각난다면 넌 시에 빠진거야. 중학교에 가서도 시와 너의 우정이 영원하길 바라."
 

한 편의 동시를 낭송한다는 것은 아이들 마음속에 한 송이 꽃을 피어 내는 것과 같았다. 아이들이 눈높이에 맞는 동시를 노래하며 시처럼 예쁜 말, 시처럼 아름다운 마음을 닮아가는 모습에 감동했다. 작은 날개짓이지만 동시와의 만남을 통해 말랑말랑해진 마음으로 낭송의 즐거움을 맛보며 즐길 줄 아는 아이들에게서 얻은 행복함과 감사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나무와 풀과 별과 대화할 줄 모르는 우리들을 대신해서 그들과 나눈 애기를 나직나직 우리에게 전해주는 시인들의 위대함에도 감사하게 되었다. 사는 일이 숨 가쁘고 고달플 때 시인이 나에게 희망을 노래해 주었듯이 동시의 맛과 향기로움은 아이들에게도 전인적인 성장의 밑거름이 되어 삶과 배움의 주인공이 될 수 있게 해줄 거라 믿는다. 작은 나눔이 큰 성장을 만들어 동심으로 꿈과 희망을 노래하는 진정한 여행을 오래도록 아이들 곁에서 함께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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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 소감> 한 사람을 위한 시 처방

 

한 사람을 위해 책을 처방해주는 ‘사적인 서점’ 운영자인 정지혜 씨은 독특한 방식으로 책과 사람을 연결해준다. 일대일 상담 후 맞춤형 책을 골라주는, 마치 증상을 말하면 의사가 약을 처방해 주듯이 책을 처방해 주는 서점이다. 이처럼 나도 좋아하는 것을 바탕으로 가보지 않는 길을 향해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는 중이다. 코로나 블루로 지친 영혼을 달래주고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해 주는 ‘맞춤 시 처방’, 나만의 콘텐츠 개발을 꿈꾸고 있다. 귀로 들어가는 기계음은 많지만, 입을 통해 나오는 가슴의 소리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현실 속에서, 마음의 벙어리가 되지 않도록 사람과 사람 사이를 시가 잇도록 하는 것이다. 
 

요즘 트로트로 심리적인 허기를 채우고 위안을 얻는 분들이 많다. 감성 언어의 결정체인 시 낭송도 시시할 것 같지만, 시의 토닥거림을 즐기다보면 금새 빠져들 것이다. 신바람 나는 인생이란 소리가 풍성한 데서 누릴 수 있기에 지금은 무엇보다도 아이들과 무대를 즐길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이 빨리 오기를 소망해 본다. 끝으로 아이들과 나누었던 ‘동시(童詩)랑 마음이 말랑말랑’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방현미 광주 유안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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